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16화 (316/510)
  • 00316 겨울왕(Rex Hyemis)  =========================================================================

    공화국 사신의 자잘한 공격은 요컨대 장난스러운 서막에 불과했다.

    나는 파이몬보다 한발 앞서서 합스부르크 제국을 국제 무대에 올려버릴 심산이었다. 제국이 국제 정치에 등장한다. 그것은 여태까지 '합스부르크의 정당한 후계자'를 자처한 합스부르크 공화국과 정면으로 충돌함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이번 겨울을 장식할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  *  *

    먼저 프랑크 제국.

    “황태후 폐하께서는 귀국에 무한한 협력을 지시하셨습니다.”

    프랑크는 어느 국가보다 확실하게 우리를 지지했다.

    나는 프랑크 남부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역도당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르시 백작에게 밀서를 보내어 합스부르크 공화국의 농간이라 알려준 바가 있었다. 프랑크의 궁정은 '괘씸죄' 때문에라도 공화국한테 한방 먹여주기를 원했다.

    다음으로, 약간 의외일 수 있겠지만 브르타뉴 왕국.

    “여왕 전하께서는 이미 합스부르크의 황제 폐하를 정당한 주권자로 인정하셨나이다.”

    이런 협력에는 지난 전쟁에서 맺은 르 아브르 조약이 걸려 있었다.

    브르타뉴에서 우리를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조약도 파기된다. 곧바로 전쟁이다. 주력군이 소멸해버린 브르타뉴 왕국은 더 이상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설령 앙리에타 여왕이 엘리자베트 통령과 개인적인 협력을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국가의 명운이 달린 문제에 직면해서는 어쩔 수 없으리라.

    우리의 아군은 이렇게 프랑크 제국과 브르타뉴 왕국이었다.

    물론, 우리가 아니라 합스부르크 공화국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귀국에 전쟁 의지가 없다는 것을 쉬이 믿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마왕군이 우리의 국토 일부를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영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희는 결코 무조건적인 선의를 선물해드릴 수 없습니다.”

    사르데냐 왕국과 폴리투니아 왕국이다.

    사르데냐는 공화국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다. 그네들 입장에서 공화국은 무시무시한 마왕군의 침략을 막아주는 방파제. 공화국에 협력할 만하다.

    폴리투니아 왕국은 중립파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마왕 마르바스가 통솔하는 중립파는 월맹군 전쟁 때부터 이미 단독으로 폴리투니아에 침략했다. 일부 영토를 함락하여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그 덕분인지 폴리투니아는 우리한테 절찬리에 적대심을 불태웠다.

    나머지 국가들은 전부 중립이다.

    버니시아, 튜튼, 칼마르, 아나톨리아, 카스티야, 모스크바. 심지어 바타비아까지.

    일곱 개의 나라가 느긋하게 사태를 관망하며 누구 편을 들어줄까 고민했다. 필시 즐거운 고민이겠지. 우리와 공화국, 둘 중에 누가 더 달콤한 제안을 내미느냐에 따라 일곱 국가는 언제든지 협력의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현재 스코어 2:2.

    합스부르크 제국과 합스부르크 공화국이 한판 벌이는 형제 싸움.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나 단탈리안과 엘리자베트 통령이 벌이는 외교전이다.

    만약 진짜 전투라면 나는 주저없이 후퇴할 거다. 엘리자베트는 군사의 천재이다. 나 따위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철과 철이 맞부닥치는 전쟁이 아니다. 쇠붙이 없는 전쟁, 혓바닥의 전쟁이다…….

    더군다나 엘리자베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본인이 직접 외교전에 뛰어들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일국의 군주인 만큼 아무래도 행동에 제약이 따라붙는다.

    반면에 나는 마음껏 자유롭게 움직인다. 영지 관리는 라피스와 파르시에게 몽땅 맡겨버리고 온전히 외교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이 승패를 가르겠지.

    *  *  *

    “모조리 돈으로 매수해버려라.”

    나는 무엇보다 먼저 뇌물 공세에 착수했다.

    뇌물은 고전적인 전술이다. 그만큼 효과가 입증되어 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를 공략한 지금, 나는 마계와 대륙을 합쳐서 명실상부 가장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바르가 보유한 자산은 무려 리브라 금화 5천만에 이른다. 황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니고 뭔가.

    이게 어느 정도 재산이냐 하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정에 배정되는 1년 예산이 150만 리브라 금화이다. 이바르는 혼자서 제국의 궁정을 자그마치 33년 동안 굴릴 수 있다! 혼자서! 그것도 33년 동안 일하지 않고 재산을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가정 아래.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금발 소녀가 나에게 물었다.

    “금액이 어느 정도 필요하옵니까?”

    “각국의 사절단을 전부 매수하는 것이다. 금화 십오만 어치는 되어야 충분하겠지.”

    아직 시장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 금화 십오만은 막대한 자금이었다.

    쿤쿠스카의 영원불멸하는 진조(眞祖)는 약하게 코웃음을 쳤다.

    “가볍군요.”

    그녀는 무이자 무담보로 즉석에서 삼십만 리브라를 융통했다. 몽땅 현금으로, 그러니까 경화(硬貨)와 보석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덕택에 자금이 본래 십오만에서 두 배나 붙어버렸다.

    어마어마한 뇌물 공세가 쏟아졌다.

    이바르와 나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선수였다. 돈이란 반짝거리는 그대로 선물해서야 약빨이 떨어졌다. 인간이란 기계장치와 같아서 약간의 기름칠이 언제나 필요했다.

    “마계에서 최고급 기생을 불러들이지. 창관 길드에 의뢰하라.”

    “서큐버스와 엘프를 깔아뭉개는 것이 인간의 평생 소원이라 하지요? 그 환상을 듬뿍 만끽시키겠습니다.”

    마계에서 내로라 하는 창녀와 창남이 직접 공수되었다. 하룻밤을 사는 데 입이 떡 벌어지는 돈이 드는 이들이었다.

    “악단과 배우, 연금술사도 고용하지.”

    “창관 길드에 연락하여 함께 고용하면 될 것이옵니다.”

    성적인 문화에서 마족은 인간종보다 한참 발달했다. 마족의 삶은 심심찮게 수백 년에 이르고, 기나긴 삶을 달래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향락이 고안되었다.

    예컨대 무대에서 배우들이 문란한 공연을 펼치며, 악단이 간지러운 음악을 켜고, 연금술사가 흥분제 효과를 가진 약초를 피워내어――그 한가운데에서 농밀한 성교를 즐긴다든지. 가히 섹스의 종합예술이라고 부를 법했다.

    외교관들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황홀경에 충격을 받았다.

    “이, 이것은…….”

    “서큐버스가 아름답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사신들은 마계의 우월한 문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살면서 이렇게 감미로운 술은 처음이오!”

    “궁중백, 대체 어느 장인이 이 미주를 빚었습니까.”

    술도 전부 마계의 물건으로 채웠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데 효과적이었다. 새로이 맛보는 명주란 그 자체로 훌륭한 대화거리가 되었다.

    일주일.

    나는 일주일 내내 외교관들을 구워 삶았다. 사신들은 아예 쾌락에 쩌든 절임이 되었다. 성교와 술이 오가는 와중에 그들의 돈주머니가 두둑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당연하지만, 뇌물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말했다시피 뇌물은 기름칠에 불과하다. 사신들은 어디까지나 주군에게 명령을 받아서 외교적인 사항을 결정할 따름이다.

    그러나 군주들은 이곳에 참석하지 않았다.

    군주는 사신의 보고를 받아 거기에 입각해서 판단을 내린다. 말하자면 사신은 각 나라 군주의 눈이다. 사신들은 마법 수정구를 이용해서 주기적으로 군주에게 경황을 보고한다.

    자아, 그럼 이제 외교관들이 자국의 상관에게 어떻게 보고하겠는가?

    ─ 합스부르크 제국에 적어도 전쟁을 다시 일으킬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 마왕들은 명확하게 황제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섭정은 다소 방약무인하오나 의외로 궁정의 실세는 궁중백이 장악하고 있으며, 궁중백이 섭정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습니다. 황궁의 정세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궁정백은 확실히 제국과 인간의 전통을 이해합니다. 궁중백에게는 제국의 황실 그리고 자국의 왕실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일체의 편견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인이 판단하기로, 그는 진심으로 자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습니다.

    가는 물건이 있으면 오는 물건이 있는 법이다.

    외교관들은 자신들이 받은 축하와 향응에 대하여 '자그마한 호의'를 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여기에는 내가 접대하는 동안 쉼없이 사신들을 설득한 영향도 있었다.

    합스부르크 공화국의 사절단은 무시무시한 뇌물 공세에 경악했다.

    공화국은 허겁지겁 외교 라인을 가동했지만, 미안하게도 실력은 둘째치고 자금의 수준에서 상대가 안 되었다. 신생 합스부르크 공화국은 결코 돈이 넘쳐나는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축에 속하겠지.

    공화국에서도 뇌물을 건넸지만 우리쪽과 대조해서야 절망적으로 빈약했다. 이미 최고급 서큐버스를 한 명씩 하녀로 챙긴 사신들의 성에 찰 리가 없었다.

    ─ 합스부르크 공화국의 사절단은 기념식이 진행되는 동안 반쯤 공공연하게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언사를 내비추었습니다. 모두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되었으며, 이에 소신은 무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제국 궁정이 보여준 태도는 실로 칭찬할 만했습니다. 황제는 배후에 모욕이 숨은 발언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인 분노를 터트리지 아니하고, 그 대신 소신들의 주목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적절하게 대응했습니다.

    ─ 황제는 개인적으로 공화국의 통령에게 호감을 품고 있으며 이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공화국의 사절단은 무례하기 그지없으며, 아국의 사신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도 품격이 떨어집니다.

    결국 초전은 완벽하게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사절단의 보고에 군주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사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와 교섭했다. 지금까지 속 빈 강정 같은 입발림과 아부가 오갔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거래의 시간이었다.

    첫 타자는 튜튼 왕국이었다.

    “궁중백. 우리는 서로 간에 충분히 친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대사.”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본국은 제국에 제일 가까이 위치합니다. 제국이 행여라도 본국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을 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튜튼 왕국은 동쪽은 마왕의 성역, 서쪽은 바타비아 공화국, 남쪽은 합스부르크 제국에 둘러싸였다. 사면초가라는 단어를 실감하고 있겠지. 그만큼 안보에 민감했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대사. 저는 궁중백이지만 동시에 마족의 왕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작게나마 영지를 갖고 있지요. 천만다행으로, 그 영지는 튜튼 왕국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예.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영지라고 들었습니다.”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이렇게 다른 왕국들도 그 나름대로 정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제 영지는 기묘한 곳에 있지요. 경우에 따라 합스부르크에 붙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튜튼에 붙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본디 화전촌이었던 곳인지라 공식적인 소속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궁중백. 설마.”

    튜튼 왕국의 대사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 대왕께 주청을 올려 부디 제 영지를 튜튼의 백작령으로 봉해주십시오. 그리되면 저는 합스부르크의 궁중백인 동시에 튜튼의 백작이 됩니다.”

    “이를 말입니까!”

    대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대사는 내 두 손을 잡으며 기뻐했다.

    “궁중백이 본국에 협력해준다면 실로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하, 과찬입니다. 제가 대사의 우정에 기대를 걸어도 되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궁중백. 소인의 이름을 걸고 이번 일은 반드시 성사시키겠습니다.”

    바로 다음날, 튜튼 왕국의 답안이 비공식적으로 전달되었다.

    내 영지를 튜튼 왕국에 귀속시키는 조건 아래, 합스부르크 제국을 주권국으로 인정하며 바르바토스를 정당한 섭정으로 인정하겠다는 문서였다.

    ――스코어,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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