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12화 (312/510)
  • 00312 소녀의 수난시대  =========================================================================

    무사히 점심 식사가 끝났다.

    시녀들은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에는 열 명의 죄수가 갇혀 있었다. 죄수들은 초췌한 안색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데이지가 감옥에 들어오자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미친 하녀다! 미친 하녀가 또 왔어!”

    “오, 여신이시여! 제발 오늘을 무사히 넘기게…….”

    죄수들이 저마다 독방의 구석으로 도망쳐서 오들오들 떨어댔다. 그들 눈에는 열네 살짜리 시녀가 사신으로 비추는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벌어진 난장판에도 데이지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버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모험자에게 관대합니다. 하지만 모험자를 가장한 군인에게는 잔혹하시지요. 이들은 모두 합스부르크 공화국에 소속된 분대입니다.”

    “하아. 그렇군요.”

    이바르가 양손에 든 음식 바구니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선배님, 저희가 가져온 식사는 세 명 몫밖에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딱 맞춰서 들고왔습니다.”

    데이지가 천사처럼 미소를 지었다.

    “금방 세 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니까요.”

    “…….”

    “이바르 양은 오늘 제가 하는 작업을 뒤에서 견학하세요.”

    데이지는 어느새 선반에서 꼬챙이를 꺼내들었다.

    꼬챙이 끄트머리에 피딱지가 눅진눅진하게 달라붙었다. 이바르는 확신했다. 이 선배라는 작자는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점심을 먹인 다음에 고문실로 데려왔다.

    ‘잔인한 광경을 보여줘서 내가 토하게끔 유도하는 것이군.’

    너무나 뻔하고 유치한 수작질에 이바르가 조소했다.

    흡혈귀만큼 피와 고문에 익숙한 종족은 없었다. 열네 살짜리 계집아이는 나이에 비해 매우 영리하고 교활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종족의 벽을 넘지 못하리라.

    “시작하겠습니다.”

    데이지가 독방 하나를 골라잡아 쇠창살을 열었다.

    그리고.

    “끄아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시기만 하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저는 상부에서 무슨 명령이 내려왔는지 모릅니다…….”

    “어머니……흐끄윽, 어머니이…….”

    두 시간 후.

    감옥의 어두운 바닥이 온통 핏물과 내장으로 범벅이 되었다. 정확하게 죄수 일곱 명을 죽인 다음에야 데이지는 고문을 멈추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광경을 지켜본 이바르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다 못해 아예 안색이 종잇장처럼 희여멀겋게 변해버렸다.

    “제법 흥미롭지요. 인간은 머리에 못을 박으면 생선처럼 경련이 일어납니다.”

    데이지가 볼에 튀긴 핏물을 닦아냈다. 두 시간 내내 고문을 했는데 별로 지쳐보이지도 않았다.

    “분명히 죽었는데도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내장도 유심히 관찰하면 각기 색깔이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지요. 인체의 신비입니다.”

    “……그거 정말, 신기하군요.”

    “예. 이바르 양. 이제 남은 세 명한테 식사를 전달하세요.”

    데이지가 양손에 피 묻은 고문도구를 들고 빙그레 웃었다.

    “어떻습니까. 딱 맞춰서 갖고왔지요?”

    “…….”

    그날, 이바르는 기어이 저녁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첫째날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이 악마적인 계집애는 정말로 둘째날부터 자신에게 고문을 맡겨버렸다. 어제 충분히 견학했으니 괜찮겠지요, 하고 고문도구를 건네준 것이었다. 이바르가 별로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자 데이지가 괜찮다며 말했다.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못하면 더 좋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선배님?”

    “이건 고문이니까요. 그렇군요. 연습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고문해보세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이바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연습, 입니까.”

    “예. 연습입니다. 딱히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두 시녀의 대화를 코앞에서 지켜보며 죄수가 사지를 비틀며 발악했다.

    “읍!? 으읍! 흐으으읍! 읍!”

    이바르는 이 죄없는 인간이 안쓰러웠다. 물론 그에게도 어느 정도 죄가 있으리라. 하지만 대역죄인이 아닌 이상, 어느 인간이 이런 계집애한테 걸려도 좋을 만큼 죄값이 막중하겠는가?

    안타깝게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일개 인간 계집한테 밀려나서야 흡혈귀 일족의 명예가 울 것이었다. 이바르는 최선을 다하여 죄수의 배를 쨌고 내장을 갈랐다.

    “폐는 과감하게 절단하십시오. 괜찮습니다. 포션은 넘쳐나도록 많습니다. 음. 나쁘지 않지만 약간 과감함이 부족하군요.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으흡, 으으으으읍!?”

    “반면에 심장을 다룰 때는 가장 작은 칼을 사용하여서.”

    그렇게 둘째날이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바르는 첫째날이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음을 절감했다. 계집애의 기상천외한 면모는 고작 한두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벗기고 벗겨도 계속 속알맹이가 나오는 양파처럼 계집애 또한 그러했다.

    기행 그 첫 번째.

    계집애는 이따금 복도를 걸어가다가 발길을 멈추곤 했다. 그럴 때면 계집애는 어깨가 조금씩 떨리면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선배님. 왜 그러시죠?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제발 좀 아프라는 속내를 감추면서 이바르가 짐짓 걱정스러운 말투를 꾸몄다.

    데이지는 뺨이 붉어졌을 뿐이지 표정이 전혀 바뀌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별 일 아닙니다. 오라비가 자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네에?”

    “제 아랫배에 슬라임이 부착되어 있다고 예전에 말했지요. 그것입니다. 이 슬라임은 다른 슬라임과 감각을 공유합니다만, 바로 다른 슬라임을 저의 친오라비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라비는 슬라임으로 허구한 날 자위를 해대는 사춘기 소년이지요, 하고 데이지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오라비의 자위는 평균적으로 4분 30초입니다. 앞으로 3분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정확히 삼 분 정도가 흐른 뒤에 데이지가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4분 11초밖에 걸리지 않았군요. 부디 이대로 조루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

    “자아, 이바르 양. 복도를 청소할까요.”

    이런 기행이 적게는 하루에 한 번, 많게는 하루에 세 번이나 이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잦다 싶어서 이바르는 언젠가 불평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데이지는 '최근에 오라비가 애인과 헤어져서요,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간결하게 응답했다.

    이바르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계집애는 단순히 미친 것이 아니었다. 변태적인 미치광이이며 과대망상증 환자인데다 정신병자였다. 청소하는 와중에 혹은 고문하는 와중에 갑자기 사 분씩 가만히 눈을 감아버리는 데이지를 볼 때마다 이바르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기행 그 두 번째.

    데이지는 은근히 이바르를 추행했다. 말 그대로 추행이었다.

    한참 빗자루로 복도를 쓸고 있자면 어느새 데이지가 곁에 와서 은근슬쩍 몸을 부딪힌다. 처음에 이바르는 그저 서로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몸이 부딪히는 것을 뛰어넘어 데이지의 손등이 엉덩이를 스치거나 허벅지를 스치자 이바르는 천천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 육체적으로 희롱하는 것이었다!

    “데이지 선배님.”

    이바르가 조용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경고했다.

    “저는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설령 부조리한 업무일지라도 그것이 단탈리안 전하께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업무와 상관없이 저를 계속 희롱하실 생각이라면 다른 분께 고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경고가 먹힌 것일까.

    피도 눈물도 뇌수도 없어 보이는 계집애가 드디어 사과했다. 이바르가 안심했다. 다행히도 상대방에게는 일말의 이성이 두개골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곧이어 이어진 말에 이바르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이 멍해지는 경험을 겪어야만 했다.

    “이바르 양이 매력적이라서 무심코 손이 나갔습니다.”

    “……예?”

    잠시 침묵이 있었다. 이바르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서, 선배님. 저는……여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도 눈이 달렸습니다.”

    데이지가 말했다.

    “참고로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그날 이후, 이바르는 데이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요컨대 데이지라는 소녀는 피가 낭자하는 고문에 미쳐 있으며, 사시사철 하루종일 아랫배에 슬라임을 집어넣고 다니고, 그 슬라임이 꿈틀대는 원인이 다름 아니라 자신의 친오빠가 자위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동성애자이다.

    이바르는 삼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으나 이런 미치광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결국 시녀가 된 지 한 달째.

    “재상 각하. 송구하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습니다!”

    이바르가 재상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어쩌면 한 달이나 버텼다는 점에서 이바르는 이미 초인적인 인내심을 지녔다고 평가해야 할지 몰랐다. 웬만한 영웅도 둘째날에 이미 백기를 들어올렸을 것이다.

    “시녀장은 미쳤습니다! 이걸 단순히 상급자에 대한 불평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시녀장의 변태적인 행각을 마흔일곱 개나 외울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바르 씨.”

    라피스가 무표정하게 이바르를 쳐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여기에는 조직의 질서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 와서 이바르 씨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다면 시녀장의 권위 자체가 흔들립니다.”

    “하지만, 재상 각하……!”

    이바르가 눈물까지 흘릴 기세로 절절히 외쳤다.

    “시녀장은 오늘만 제 허벅지를 다섯 번 만졌습니다! 이런 대우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고작 허벅지를 만졌을 뿐이지 않습니까.”

    라피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던전에서 산책하는 라우라 군무상서를 붙잡아서 다섯 시간 동안 성교하는 것이 취미이십니다. 전하와 비교하면 시녀장은 무척 건전합니다.”

    “…….”

    도대체 이 마왕성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가. 이바르는 머리가 띵했다.

    “하, 하지만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마왕성의 군주이시니까요. 예외입니다. 시녀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녀장은 개인적으로 전하의 양녀이기도 합니다. 지난 전역에 전하께 봉사하여 큰 공을 두 개나 세웠습니다. 다소의 특권은 충분히 용납될 수 있습니다.”

    “으윽…….”

    이 고지식한 하프 서큐버스가!

    이바르는 열불이 터졌다. 조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라피스의 주장은 분명히 옳았다. 그렇지만 이바르는 조직을 이끄는 회장이었지 결코 조직을 위해 희생되는 졸병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특단의 조치를 꺼냈다.

    “제1급 사무마, 라피스 라줄리. 나다. 그대의 고용주인 이바르 로드브로크이다.”

    “……?”

    라피스가 의뭉스러운 눈초리로 이바르를 쳐다보았다.

    “이바르 양에게 허언증이 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습니다만.”

    “믿기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하지만 정말이다. 그대가 지금까지 접한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내가 조종하는 인형이었다.”

    당연하게도 라피스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이바르는 필사적인 설득 끝에 겨우겨우 '증명의 기회'를 얻었다. 순간이동 마법서를 사용하여 이바르는 라피스와 함께 쿤쿠스카 상회 본부로 이동했으며, 밀실에서 자신의 인형 조종술을 선보였다.

    라피스가 놀라운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진실로 이바르 양께서는 로드브로크셨군요.”

    “믿어주는 것인가, 라피스 라줄리.”

    “예. 회주님.”

    이바르는 감동에 휩싸였다.

    마침내 미치광이 변태 인간 계집한테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럼 이제 본인의 부탁을 들어다오. 여신께 맹세하건대, 그 시녀장은 보통 미치광이가 아니다. 한시라도 녀석의 아래에서 도망치고 싶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라피스가 자신의 외투를 뒤적거리더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녀는 종이를 이바르한테 공손하게 바쳤다. 이바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게 뭔가?”

    “사직서입니다.”

    무엇이라?

    “예전부터 본격적으로 단탈리안 전하의 가신으로 들어가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회주께 사직서를 드릴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잘 됐군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이바르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만 노인의 몸으로 소녀처럼 반문했다.

    “그, 그럼 내 근무처는?”

    “변함없이 시녀장의 조수입니다.”

    지옥의 판결문을 읊는 염라대왕마냥 라피스가 단언했다.

    그녀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제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 '양'.”

    “…….”

    이바르는 세상을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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