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07화 (307/510)

00307 이 대륙에서 오직 두 명  =========================================================================

*  *  *

소위 꼭두각시 전쟁이라 불리는 전역은 3개월 만에 종료했다. 내가 생각해도 솜씨 좋게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마계는 이번 전쟁의 결과를 두고 열광했다. 월맹군이 또다시 위업을 이루어냈다, 하찮은 인간종에게 마족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고 흥분했다. 브르타뉴군과 맺은 조약은 어느새 마계의 시민들에게 「항복 문서」로 여겨졌다.

─ 지난 월맹군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호쾌한 승리.

─ 전략적으로 완벽할 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마족의 권위를 바로세우는 전쟁 그 이상의 전쟁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그런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 평판이 나돌도록 뒤에서 돈을 잔뜩 뿌렸다.

군단장들이 니블헤임에 귀환하자, 시민들은 바알을 토벌했을 때와 비교도 안 되게 기뻐하며 환호로 맞이했다. 개선식을 지켜보고자 무려 십만의 시민이 집결했다.

당연했다. 저번 개선식에서는 단지 반역자를 처치했다는 명목만 있었다.

이번에는 반역자는 물론이고 인간의 군대까지 압살해버렸다. 어느 쪽에 시민들이 더 환희할지 일목요연했다.

참고로 마계인들은 합스부르크 제국와 바타비아 공화국이 '월맹군에 복종하여 얌전히 협조했다'라고 알고 있다. 거짓이지만 거기엔 어느 정도 진실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세간의 인식을 왜곡하는 것쯤이야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아군이 입은 피해와 적군의 병력을 왜곡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우리는 자그마치 칠만의 대병력을 이천 명 정도의 피해만으로 물리친 군대가 되어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라고 한다. 음, 여론이란 무척 편리하구만.

이번 전쟁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라우라였다.

일각에선 왜 인간이 '위대한 마족'의 군대를 통솔하느냐고 불평불만이 일기도 했다. 월맹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까닭은 마족의 위대함 때문이지, 결코 나약하고 하찮은 인간 덕분이 아니라고…….

멍청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간계든 마계이든.

마르바스는 개선식 대표 연설에서 그러한 추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라우라 데 파르네세는 인간이다. 그러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긍지와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 고귀한 마족들이여, 언제부터 우리가 실력이 아닌 출생으로 한 인물을 평가했던가? 마왕이 마왕이라는 이유만으로 군림하는 시절도, 어느 종족이 그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세하는 시절은 이미 끝났다.”

마르바스가 특유의 침착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연설했다.

“마족들이여, 우리는 전사이다. 설령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 해도 속에 품은 긍지가 고귀하다면 그 역시 훌륭한 전사이다. 본인과 마왕군의 대표자들은 이 자리에서 라우라 데 파르네세라는 한 명의 전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사는 출생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만으로 우뚝 선다. 그것이 마족의 긍지이다. 비록 마계의 이면에는 지독한 계급제도가 존재했으나, 마르바스는 이를 비판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이번 전쟁에는 전체의 승리를 도외시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다 적발된 일당이 있다. 그들은 제멋대로 부대에서 탈영하여 민간인 마을을 약탈하고 방화했다. 우리는 이들 배후에 특정한 마왕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충격적인 발표에 시민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고작 한 개의 중대만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마물로 이루어진 중대를 살인멸구했다.

간단한 이유다. 인간 병사의 목만 보내서야 프랑크에서 의심할 여지가 있다. 혹시 희생양을 보낸 것 아니냐고. 하지만 마물까지 죽여서 보내면 의심이 대폭 줄어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학살의 주범을 열심히 찾고 있다'라고 제스처까지 보여줄 수 있다.

“본인은 시민 여러분에게 상세한 사정을 알려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번 전쟁은 단순히 마왕군의 전쟁에 지나지 않고, 마계 전체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배신자는 마계 전체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

명령을 위반한 부대는 마계가 아니라 대륙 출신. 현지에서 고용된 오크 부락민이다.

이들은 보통 마족과 구별해서 마물(魔物)이라 불린다. 설령 똑같은 오크족일지라도 보통 마계 출신은 지능이 높은데 비해, 대륙 출신은 지능이 떨어지기에 그같은 멸칭이 붙는다. 사실 마족은 인간종보다 편견이 심한 종족이다.

마족이건 마물이건 아무튼 지능이 떨어질수록 마왕에게 반항하기 힘들다.

즉, 마왕으로 이루어진 사령부의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서는……'또 다른 마왕'의 명령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어느 마왕이 배신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마르바스가 침통한 어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만 사령부의 명령을 무시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왕이 개입해 있다. 본인은 아군의 군단장들이 배신했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이번 전쟁에서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십만 명의 대중이 숨을 죽이고 긴장했다. 누가 감히 신성한 월맹군을 배신했는가.

마르바스는 광장에 가득 찬 시민들을 내려다보았다.

“긍지 높은 마족들이여! 본인은 이 자리에서 묻고 싶다. 인간인데도 아군의 승리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자가 있다. 반면, 마왕임에도 아군을 배신하고 사익을 가로챙긴 자 또한 있다. 어느 쪽이 진정한 전사인가. 어느 쪽이 우리의 동료인가. 부디 곰곰이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렇다.

이것이 내가 구태여 프랑크 남부의 학살을 부인하지 않은 이유이다.

마족과 인간이 협력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한다. 라우라의 권위와 명성을 확립시킨다. 이것이 첫 번째 목적이며,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은 다른 지점에 있다.

마르바스는 이번에 참군한 군단장들이 결백하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바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강력한 마왕'.

이들이 대거 용의선상에 올라간다.

마왕군은 바알을 참살함으로써 새로운 지도자 집단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은 마왕들이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열 제6위인 발레포르, 서열 제7위인 아몬…….

이들은 서열이 최상급에 해당하는 만큼 매우 위협적이다. 마왕군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에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조적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눈엣가시처럼 거슬린다.

우리에게 비협조적인 마왕이 두세 명쯤 있어도 괜찮다. 문제는 그런 이들이 똘똘 뭉치는 경우이다. 이때, 틀림없이 우리한테 반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왕이 중심이 되겠지. 발레포르와 아몬은 잠재적인 정적이다.

바퀴벌레는 한번 늘어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초장부터 짓밟아야 한다.

프랑크 남부의 학살은 매우 적절한 시기에 터져주었다. 엘리자베트와 국제적인 공세를 펼쳐보았자 쌍방이 증거부족으로 지쳐 떨어질 뿐이겠지. 이렇게 내부의 적을 말살하는 데 이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좋다.

“현재 탈영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곧이어 배후가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본인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즉시 널리 알릴 것임을 약속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내던지는 경고이다.

아직까지 밍기적거리며 우리한테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마왕들이여, 들으라.

우리는 미지근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든지 아니면 반항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리고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그대는 반역자 바알과 아가레스의 뒤를 쫓아야 할 것이다…….

이미 마법사를 동원해서 몇몇 마물의 정신을 완벽하게 세뇌했다. 마물들은 자기가 발레포르와 아몬의 밀명을 받아 움직였다고 철썩같이 믿게 되었다.

만일 발레포르와 아몬이 최후통첩을 무시한다면……음, 피바람이 다시 한 번 불겠지. 이미 바알과 아가레스라는 피폭풍이 일어났다. 한 번쯤 더 일어난다고 해봤자 나는 아무 상관없다.

다음날.

승전을 축하하는 무도회가 니블헤임 궁정에서 열렸다.

바알이 무너트린 궁정은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빠르게 수리되었다. 아직도 무너진 잔해가 남아 있긴 했지만 그곳은 영구히 보존하기로 했다. '반역자의 최후'라는 작품명을 붙여서.

마계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는 죄다 참석했다. 니블헤임의 시민 대표자들은 물론이고, 상회 회주들과 마계 대공들까지. 그들은 군단장들을 둘러싸고 화기애애하게 떠들었다. 참고로 라우라도 마계의 귀족들한테 포위되어 아이돌 싸인회를 절찬리에 열고 있었다.

물론, 친애하는 마왕 전하들도 참석했다.

“단탈리안.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겠나.”

옷차림이 화려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피부가 검은 구릿빛에 대머리였다. 남자의 뒤편에는 머리가 온통 새하얀 여인이 서 있었는데, 그녀는 두 눈을 붕대로 감았다.

발레포르와 아몬. 그들도 무도회에 온 것이었다.

내가 활짝 웃었다.

“예. 제가 어찌 두 분 전하의 권유를 무시하겠습니까?”

“…….”

“로드브로크 회주. 나는 잠시 전하들과 얘기를 나누고 오겠네.”

나와 얘기하고 있던 이바르 로드브로크한테 양해를 구했다. 노인의 몸을 쓰고 있는 이바르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무도회장 저편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무도회장 구석에 마련된 발코니에 들어갔다.

“어제 마르바스가 한 연설은 대체 무엇인가.”

발코니 문이 닫히자마자 발레포르가 입을 열었다. 푸른 눈동자에 조급함이 실려 있었다. 이런, 연설의 소식을 전해듣고 꽤나 마음이 다급해진 모양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월맹군에서도 열과 성의를 다했어. 마왕성까지 이끌고 브루노 평원에 몸소 간 것을 벌써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내가 의자에 앉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전하. 프랑크 남부에서 학살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원정에 참여한 마왕 중에 누군가가 행한 일이겠지. 단탈리안, 이건 말도 안 되는 모함이야. 내가 그깟 푼돈을 챙기겠다고 자네들 몰래 분견대를 보냈겠는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의도가 무엇인지도 오리무중입니다.”

“솔직하게 말해보게. 단탈리안, 애당초 학살이란 게 있기나 했는가? 설마 우리를 협박하려고 자작극을 펼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슬며시 발레포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 월맹군의 공식적인 발표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발레포르가 입을 다물었다. 아몬은 뒤편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전하. 저는 월맹군에서 다른 마왕들과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저는 전우를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전우가 아닐지라도 동지이자 동족이신 두 분 전하를 행여나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목적이 무엇이지요?”

아몬이 말했다. 마치 성녀처럼 자애롭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저는 이런 정치적인 술수에 능숙하지 않아요. 평생 그런 것에 몸을 담아본 적도 없어요. 단지 여러분이 저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 당신에게 협상의 의지가 있다는 것, 두 가지만 간신히 알 따름이에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몬 전하. 우리는 전하를 절대로 위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종의 모함으로부터 전하를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좋아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대가는 무엇이지요?”

아몬이 질문했다. 대화가 빨라서 좋았다.

“마왕군이 회의를 소집할 때 적극적으로 참석해주십시오. 비록 두 분 전하께서 이번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으셨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멋대로 만든 단체에 협력하라는 얘기군요.”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마왕군이 두 개나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일주일 뒤, 탈영자들에 대한 조사가 발표되었다.

안타깝게도 탈영자들은 철저한 고문 끝에도 배후를 실토하지 않았다. 매우 강력한 세뇌 마법이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마탑의 의견도 첨부되었다. 시민들은 정체모를 배신자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하여, 꼭두각시 전쟁이 완전히 끝을 맺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짓으로 치장된 전쟁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