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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300화 (300/510)

00300 제국 살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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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군은 한 발자국 늦게 함락 소식을 전해들었다.

와이번 정찰부대의 보고에 따르자면, 두 시간 전부터 갑작스레 적군의 행군 속도가 빨라졌다. 과감한 강행이었다. 추격전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당연하게도 라우라는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와이번 부대, 정찰 임무를 종료한다. 적들의 꼬리를 물고 집요하게 늘어지도록.”

라우라의 명령에 와이번 삼백 마리는 즉각 추격대로 변하였다.

와이번들은 상공에서 급속하게 하강하여 공격, 다시 하늘로 날아드는 전법을 구사했다. 상대하기 지극히 까다로웠다.

적군이 요새에 틀어박혀 있다면 별다른 효과를 누리지 못했겠지. 그러나 저들은 정신없이 행군하고 있었다. 궁병대를 제대로 배치해서 대응할 수가 없었다. 적군의 진군 속도는 확연하게 느려졌다.

아침에 시작한 추격전은 그날 밤이 되어도, 다음날 새벽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제아무리 몬스터가 인간종에 비해 체력이 월등하다 해도 이틀에 걸친 강행군에는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서서히 탈락하는 병사가 나왔다. 하지만 라우라는 변함없이 강행군을 명령했다.

“아군이 이렇게 힘들다면 적군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전력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아군이 피해를 입을지라도 적군이 더 많은 피해를 입으면 이쪽의 승리다.”

일부 마왕들이 휴식을 요구하자 라우라가 일언지하에 딱 잘라 말했다. 정말 최소한의 휴식을 제외하고 마왕군은 급하게 움직였다. 탈락자가 속출했으나 무시했다.

사흘째.

이 시점에서 아군은 브르타뉴군을 뒤쫓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우리가 세쿠아나(Sequana) 강줄기의 이남에 위치하고, 적군은 이북에 위치한 것이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대군이 나란히 달렸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까. 브르타뉴군은 퐁 드 라르셰라는 곳에서 도하를 시도했다.

그러나 다리는 지나치게 좁았으며, 다리 입구에는 아군이 빈틈없이 대열을 짜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브르타뉴군은 기사단을 앞세워서 어떻게든 이쪽 대열을 돌파하려고 했다. 접전이 펼쳐졌다.

만약 녹색 장미 기사단이 돌격했다면 포위망이 깨졌을지 몰랐다. 우리군은 사흘 동안 강행하느라 적잖게 지쳐 있었다. 하지만 겨우 기사단 하나로 이만오천 명의 대열을 깨부수는 것은 녹장미 기사단과 같은 규격 외의 괴물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했다.

도하는 실패했다. 브르타뉴군은 아까운 기사단만 하나 더 잃어버리고 후퇴했다.

엿새째, 서북부에 위치한 요새도시 루앙에서 다시 한 번 접전이 이루어졌다.

프랑크 북부가 대부분 지난 내전을 통하여 공화파에 의해 접수되었다. 하지만 루앙은 북부에서 가장 남단에 위치했다. 파리시오룸에 비교적 가까운 탓도 있어서 루앙은 브르타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브르타뉴군은 이곳에서 식량을 보급받고 사기가 충만하여 도하를 시도했지만――실패.

양군을 통틀어서 삼천 명 가량의 손실이 생겼다. 아군과 적군의 사망자는 비슷했다. 압도적으로 저들에게 불리한 도하 작전에서 피해율이 엇비슷하다는 것은, 과연 브르타뉴군의 실력을 입증하는 셈이었지만……실패는 실패였다.

11일째, 또 다시 루앙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브르타뉴군이 이번에는 아예 작정했다. 다리는 물론이고 뗏목을 대량으로 운용하여서 강을 건너왔다. 그러나 적군의 선발대는 강을 반쯤 건너오지도 못하고 모조리 수몰되었다. 바싸고가 거느린 물의 정령왕이 한바탕 물난리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에도 도하는 좌절했다. 브르타뉴군에서 일천 명의 사상자가 났을 따름이다.

연전연패.

한때 '패배를 모르는 군대'라 불리던 브르타뉴군의 사기는 밑바닥을 쳤다. 파리시오룸을 버리고 도망친 데다가 정신적 지주인 성녀마저 잃어버렸다. 여기에 연패가 겹치니 브르타뉴군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반면에 우리군을 말하자면, 이제 마왕들 사이에서 라우라가 거의 아이돌 수준의 숭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라우라가 곰팡이로 치즈를 만들겠다 선언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기세였다.

“저번에 대지의 정령왕이 죽었고 이번에는 바람의 정령왕이 죽었다. 네놈, 정령왕 수준의 정령을 키우는 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마왕 아가레스를 상대하느라 죽도록 고생한 바싸고를 제외하고.

내가 살갑게 바싸고를 달랬다.

“자아, 자. 저번에는 바싸고 님을 포함해서 세 분이 아가레스를 상대했지만, 지금은 바르바토스 각하도 함께하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입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말이다, 우둔한 놈.”

바싸고가 길길이 날뛰었다. 아끼던 정령왕을 둘이나 잃어버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거 참, 딱딱하게 굴기는. 전쟁이 끝나면 큼직한 영지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약조하니까 그제야 바싸고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꼭 사탕을 먹고 싶어서 날뛰는 어린애 같구만.

뭐, 사소한 해프닝을 빼고 마왕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군은 연패했다. 루앙에서 식량을 얻어 한숨 돌렸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바타비아 공화국의 해군은 여전히 강줄기를 틀어막고 있었고, 이는 루앙의 보급선도 끊겼다는 얘기였다. 근본적으로 보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보름째. 결국 브르타뉴군이 루앙을 포기하고 빠져나갔다.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브르타뉴군은 지나가는 길목마다 약탈을 자행했다. 북부는 브르타뉴에게 특히나 적대적인 지역이었다. 주민들은 저들에게 약탈을 당하느니 차라리 숲속으로 들어가 게릴라를 펼쳤으며, 이는 브르타뉴군의 처지를 더더욱 괴롭혔다.

몰릴 대로 몰렸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겠지.

브르타뉴군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지점은 르 아브르라는 항구 도시였다. 바다에 접한 항구 도시……당연하지만, 브르타뉴군에게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적에게 공성전을 강요한다.”

이번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라우라는 말했다. 자신은 절대로 브르타뉴와 회전을 펼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은 예언처럼 이루어져서 이제 한 달째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회전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규모 접전만이 이어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느새 브르타뉴군은 외통수에 몰려 있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로.

이제 브르타뉴군은 자신 없는 농성전을 강요받고 있다. 해상에서는 바타비아 공화국의 대함대가 포위했고, 육지에서는 우리 마왕군이 포위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레라지에 전하가 합류했습니다.”

“북부 도시 동맹군, 용병 오천을 이끌고 합류!”

전쟁의 승패가 명확해지자 그동안 가만히 관망하고 있던 군세가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프랑크 북부에 마왕성을 가진 전(前) 서열 제14위의 마왕 레라지에, 전 서열 제27위의 마왕 로노베, 북부 자유도시들의 병력까지.

우리군은 삼만오천까지 불어났다. 보급로가 끊길 위험도 전무했다. 바다로는 해군이 보급을 해주었고, 육지로는 북부 자유도시들이 보급을 맡았다.

가로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병법의 득책일진저. 만에 하나라도 앙리에타와 아가레스가 궁지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없다…….

나는 파리시오룸에서 행했던 학살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주변의 주민을 잡아와서 잔인하게 화형에 처했다. 이번엔 규모가 거대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에 이십 명 정도면 충분했다. 도시의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니까.

추격전이 시작된 지 35일째.

르 아브르의 성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불길이 치솟고 전투의 함성이 들려왔다.

“주군. 주민들이 봉기한 것일까?”

“아니요. 아마도 아가레스가 소란을 일으켰을 겁니다.”

“아가레스가?”

내가 미소를 머금었다.

“브르타뉴군은 드디어 항복하려는 것입니다. 전면적인 항복이 아니라 아마도 명예로운 항복. 즉, 순순히 브르타뉴에 귀국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항복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명예로운 항복이 이루어질 수는 없지요.”

나는 앙리에타 여왕을 굳이 죽여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다시는 대륙의 패자가 되지 못하도록 짓밟아두면 그만이었다. 프랑크에서 쫒아버리고, 강력한 기사단을 전멸시키고, 아울러 지지세력이 등을 돌리도록 만든다…….

“우리군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마왕 아가레스를 처치하자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아가레스의 수급을 우리에게 바친다면 명예로운 항복을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앙리에타 여왕은 아가레스를 기습했겠지요.”

“그리고 아가레스가 눈치를 챈 것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기습 자체는 성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가레스입니다. 기습을 허용했다고 해서 쉽사리 목까지 내주지 않습니다. 지금쯤 도시에선 한창 아가레스와 기사들 사이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겠지요.”

라우라가 씨익 웃었다.

“허면, 주군.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순간이겠군.”

“바로 맞혔습니다.”

우리 둘이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우리에게 항복을 받아들일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이대로 공격해서 브르타뉴군을 초주검으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공성전은 방어측보다 공격측에 불리하지만, 저쪽은 절찬리에 내분을 겪고 있다. 절호의 기회라 해도 좋겠지.

“여왕이 명예롭게 항복하고 싶다면 받아줍시다. 하지만 여왕의 군대까지 고이 보내줄 이유는 전무합니다……크흐. 여왕이 홀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 돌아가면 브르타뉴에서 어찌 생각할지 흥미롭군요.”

“역시 주군은 성격이 글러먹었다.”

“그건 라우라도 마찬가지겠지요?”

라우라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지휘봉을 높이 치켜들고 명령했다.

“전군, 공격하라.”

라우라의 한 마디에 삼만오천의 대군이 움직였다.

투석기가 바위를 쏘아올리고 공성병기가 성문을 두들겼다. 오우거가 통나무를 들고 직접 성문을 깨부수는가 하면, 와이번이 성벽 위의 수비군을 급습하여 도륙했다.

브르타뉴군은 용맹히 맞서 싸웠다. 연패를 겪은 군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기사들이 죄다 아가레스와 싸우러 떠난 모양인지 아무래도 기세가 부족했다. 성벽의 한 귀퉁이가 함락되는 데 불과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령들이 낭보를 전달했다.

“남쪽 성문을 파괴했습니다!”

“오우거 부대, 돌입! 벨레드 전하와 시트리 전하가 선봉에 나섰습니다!”

모퉁이 하나가 점령되지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나머지 방벽도 차근차근 떨어졌다.

브르타뉴군이 회전의 명수라면 마왕들은 대다수가 공성전의 명수였다. 이천 년이 넘게 인류와 치고박으면서 늘어난 것은 요새를 함락하는 솜씨밖에 없었다. 마족들은 쓰나미처럼 르 아브르의 외성(外城)을 넘어섰다.

“바타비아 해군이 부두를 점령했습니다.”

“아군과 협력하여 적을 협공하는 중입니다. 시가전에 돌입합니다!”

이쪽에는 해전의 명수인 바타비아 공화국군까지 있었다.

적군은 육로와 해로에서 협공을 받았다. 거기에다 내부에서는 아가레스가 날뛰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앙리에타가 아니라 엘리자베트일지라도 버티지 못하겠지. 시가지는 점점 우리군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가레스 발견! 서쪽 시내에서 아가레스가 발견되었습니다! 보고에 따르면――적도 아가레스는 상처가 중대! 온몸에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이번 전쟁의 목표인 마왕 아가레스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아가레스는 기습을 이겨냈을뿐더러 기사들의 맹공까지 버텨낸 모양이었다. 달리 말해, 우리 입장에서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아가레스는 상처를 입은 호랑이가 되었으며 브르타뉴의 기사는 수없이 많이 죽었겠지.

“데이지.”

나는 내 옆에 선 소녀를 나지막하게 호명했다.

“예, 아버님.”

“아가레스의 목을 따와라.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지 말도록.”

바알이 가진 검. 세계에서 가장 사기적인 무구 중 하나일 텐데, 지금은 데이지가 지니고 있었다. 비록 데이지가 용사로서 완벽하게 각성하지 않았으나 아가레스는 중상에 빠졌다. 다른 마왕들과 능숙하게 협공하면 능히 이겨낼 수 있겠지.

흑발의 소녀는 고개를 까닥 끄덕였다.

“그것이 아버님의 명령이라면.”

============================ 작품 후기 ============================

설정란에 지도를 올려둡니다. 그나저나 벌써 300화... 세월은 빠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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