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95화 (295/510)
  • 00295 꼭두각시 전쟁  =========================================================================

    “증오심을 이용하다니. 더 정확하게 설명해보아라.”

    마르바스가 평소처럼 차분하게 물어왔다.

    이중에서 정략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마왕을 뽑으라면 단연 전(前) 서열 제5위인 마르바스였다. 아마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해주겠지. 나는 기대감을 안고 말했다.

    “마르바스 님. 쉽게 말하자면 프랑크에는 두 개의 정부가 있습니다.”

    우선 왕당파와 공화파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왕당파가 크게 두 개로 갈린다. 브르타뉴에 적대적인 왕당파와 호의적인 왕당파가 그것이다. 보통 전자가 애국자로 취급된다. 후자는 매국노라고 불리겠지.

    공화파도 무수하게 지파가 갈리지만 일단 간단하게 두 개의 정부가 있다고 말해두자. 이야기가 처음부터 복잡해지면 마왕들이 쫓아오질 못한다.

    “프랑크에선 상당히 많은 인민이 왕당파를 지지합니다. 전체 국민의 5할 정도일까요. 반면에 공화파입니다만, 겨우 3할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지자의 비율로 따지면 왕당파가 압승하지요……하지만, 그들의 비호 세력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비호 세력?”

    “먼저 공화파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프랑크 내에서 공화주의자는 몰살당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든 곳이 북부입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군대를 꾸릴 여력이 부족합니다.”

    북부에는 자유도시들이 들어서 있다. 자유도시, 라고 표현하면 무언가 그럴듯하지만 어차피 거대한 국가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중소 세력이다.

    “하지만 돈만큼은 넘쳐나지요. 프랑크 북부는 무역의 요충지인데다 곡창 지대입니다. 그 썩어넘치는 돈으로 북부의 귀족들은 방어 수단을 고안했습니다.”

    “용병이로군.”

    마르바스가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용병, 그것도 바타비아 공화국의 군대가 대다수입니다. 다시 말해 공화파를 비호하는 세력은 바타비아 공화국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내가 소위 애국전선을 비웃는 까닭이 여기 있다. 황제가 브르타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것은 부당하다. 확실히 비난할 만하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항해서 바타비아 공화국을 끌어들이면 어쩌자는 것인가? 장군에 멍군이라도 외칠 셈인가.

    졸지에 프랑크는 대리전쟁의 싸움터가 되어버렸다. 황제파와 황태후파의 싸움, 이라고 서술하면 간단해보이지만 실상은 왕당파의 신봉자인 브르타뉴와 공화파의 수장인 바타비아가 싸웠다. 외세에 시달렸을 뿐이다.

    “다음은 왕당파의 차례입니다만 이쪽도 심각합니다. 이들을 비호해줘야 하는 황제는 전혀 제대로 생겨먹지 못했습니다. 드 기즈 공작을 대표로 하는 대귀족들도 멸문했지요. 결국 왕당파들은 두 부류로 갈리게 됩니다…….”

    목구멍이 텁텁해졌다.

    그때 뒤에서 시종 겸 경호원으로 있던 데이지가 물컵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나는 물컵을 받아들어 단숨에 비웠다.

    마르바스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단탈리안. 두 부류라고 함은, 혹시 브르타뉴의 여왕에게 기대는 세력과 그러하지 않는 세력을 가리키는가?”

    “정확합니다.”

    역시 마르바스. 좋은 의미에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 말에서 벌써 뉘앙스를 낚아챘다.

    “왕당파 중에는 브르타뉴를 군주로 모셔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가 군주가 되든 좋다, 제발 끔찍한 내전만 없어져라……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왕당파를 비호하는 세력이 바로 브르타뉴 왕국입니다.”

    이들은 황제와 여왕이 결혼해서 국가를 운영하길 바란다. 공동 군주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르타뉴의 여왕에게 반항하는 왕당파가 있습니다. 의기는 가상하지만 약간 현실감각이 결여되어 있지요. 이들을 비호하는 세력은 전무합니다.”

    “공화파든 왕당파든 외세를 뒤에 두고 있다.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로군, 단탈리안.”

    “예.”

    도저히 정상적인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사태를 그 지경까지 몰고간 것은 프랑크의 귀족들이다.

    황제가 멍청하다고? 간단한 문제다. 황제를 버리고 황태후를 선택하면 된다.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어버리면 외국에 원군을 요청할 통로까지 막아버릴 수 있겠지. 앙리에타가 명분을 얻어서 활개칠 일도 사라진다.

    하지만 귀족들은 황제와 황태후를 눈앞에 두고 천천히 간을 봤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하게끔 유도했다. 무엇을 위해서 그랬는가?

    뻔하다. 황실의 권력이 강해지면 귀족의 세력이 약해진다. 반대로, 황실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귀족들은 강해진다…….

    황태후든 황제든 귀족들에게 손을 벌렸다.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귀족들은 한껏 코가 높아졌겠지. 뻣뻣하게 굴면서 자기네 몸값을 불렸을 거다.

    두 모자가 궁정을 개판으로 만드는 동안에 대부분의 귀족은 그저 사태를 관망했다. 화려한 저택에 들어앉아 포도주나 마셨겠지. 입으로는 고상하게 “황제 폐하는 뭘 하시는 것인가,” “황태후 폐하께서도 조금 더 자제하시는 편이” 하고 떠들면서.

    단적으로 말하자. 그들에게 애국심은 없다. 만약 애국심이 있다면 그때 국가란 단지 그들의 입맛에 어울리는 국가를 말할 따름이다.

    귀족들이 제딴에 진지하게 눈썹을 찌푸리고, 근엄한 어투와 고급스러운 어휘로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국가를 논하고 있을 때, 정작 내전에 휩쓸려서 피해를 본 쪽은 백성이다. 현자 바르톨로뮤 학살이 좋은 사례이다. 많게는 십만 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당연하지만 열 살짜리 어린애들도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간 어린애 앞에서 과연 귀족들이 입을 놀릴 수 있을까? 자신들이 국가를 위해 살았다고? 농담거리도 안 된다.

    결국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살았을 뿐이다. 귀족뿐만이 아니다. 앙리에타 여왕조차 그러하다. 그녀는 브르타뉴의 여왕이며, 고로 어디까지나 브르타뉴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 이쪽에서 보기엔 애국전선이나 여왕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는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까지 속여버린다. 이것이 애국이며 올바른 행위라고…….

    프랑크의 황제 앙리 3세도 그것을 느꼈겠지. 저 녀석은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지만, 충분히 정신줄을 놓을 만하다. 생각해봐라. 사방에서 신하들이 “소신은 국민을 위하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라고 조잘거린다. 사실은 자기들 안위를 도모할 따름이면서.

    진절머리가 나겠지. 이건 내 견해이지만, 황제가 앙리에타를 끌어들인 건 반쯤은 귀족들 보고 엿이나 먹으라는 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세력이든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두를 위한다고 거짓말한다. 심지어 당사자들에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다. 그리고 위선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생뚱맞은 백성에게 돌아간다. 학살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이래서야 엉망진창이다.

    뭐, 세상이 빌어처먹었다는 얘기는 식상하다. 술안주로 삼지도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학살 당한 사람들의 원한은 어디로 증발하는가?

    틀림없이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 귀족들도, 앙리에타도, 황제도, 사실 백성들 스스로도 거짓말을 일삼았다. 학살에 참여한 사람은 귀족만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백성들도 자신과 같은 시민을, 마을 주민을 죽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속이고 있기에, 자기들이 학살을 일으켰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왕당파 때문에 일어났다, 공화파 때문에 일어났다, 하고 싸우기만 한다. 학살에 책임을 질 의사가 아예 없는 것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에 희생당한 이들의 원한은 서서히 잊혀지겠지. 세대가 두 번쯤 바뀌면 '그때는 그런 비극이 있었다'라고 회상하며 남의 이야기처럼 회자되리라. 누구도 그들의 복수를 정당하게 이루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원한, 내가 대행해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역사에서 망각될 원한이다. 어차피 아무도 책임지지 못할 원한이다. 어차피 버려지고 잊혀질 물건이라면, 단지 길을 지나가다 물건을 발견한 사람이 주워도 상관없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브르타뉴군은 현재 극히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군량미를 잃었으니 농성전을 펼치거나 후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브르타뉴군의 행동 범위를 제약하는 데 있습니다.”

    “행동 범위를 제약한다라.”

    마르바스가 여전히 수염을 쓸면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냉철한 두 눈동자가 천천히 이쪽의 의도를 가늠하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간단합니다. 마르바스 각하. 우리가 왕당파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것입니다.”

    마왕들이 웅성거렸다. 지루하게 하품하던 벨레드 형님, 시트리 등의 마왕은 휙 하고 고개를 돌려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특히 벨레드 형님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뭐야? 무슨 얘기냐?’ 하고 눈짓으로 물었다. 정치적인 대화를 반쯤 졸면서 듣다가 학살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갑자기 흥미가 동했겠지. 너무나 일관적이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학살이라니요. 단탈리안,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사와요.”

    내 웃음을 불길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파이몬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살은 말 그대로 학살입니다. 주변 마을과 도시부터 시작해서 남김없이 해치웁니다. 사 년 전의 학살을 정반대로 재현하도록 하지요.”

    “그러니까, 왜 학살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설명이…….”

    “흑백 논리입니다. 파이몬 각하.”

    파이몬. 너가 인간종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군이 왕당파를 학살한다. 왕당파에 속한 귀족과 백성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격렬하게 반항하고자 하겠지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한테 대항할 무력은 전무합니다.”

    “…….”

    “그들에게 남은 수는 한 가지입니다. 브르타뉴의 여왕에게 도와달라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지요. 브르타뉴는 왕당파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여왕은 왕당파의 요청을 심각하게 고려해야만 합니다.”

    앙리에타에게 그들은 자기를 지지하는 기반이다. 지지 기반을 외면하는 정치 세력에게 미래는 없다.

    “참고로 파리시오룸은 왕당파의 성지입니다. 학살이 가장 철저하게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부터 본론입니다만……과연 브르타뉴의 여왕이 파리시오룸을 간단히 버리고 떠날 수 있겠습니까?”

    “……!”

    마르바스가 주먹을 꾹 쥐었다.

    “도시에서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런 얘기인가!”

    다른 마왕들도 눈빛이 진지해졌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졌다.

    “그렇습니다. 만약 파리시오룸을 방폐하고 떠나버린다면 여왕은 지지 세력을 스스로 배신하게 되는 셈입니다. 설령 도망치는 데 성공하더라도 여왕은 자신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비난받겠지요.”

    비단 프랑크인만이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이번엔 브르타뉴인도 여왕을 비난한다.

    비유하자면 기독교도 군대가 도시를 학살할 게 뻔한데도 이슬람교도 군대의 지휘부가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무엇을 위한 군대인가, 왕당파를 수호하기 위한 군대이지 않았는가……여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겠지.

    “그리고 만약 적군이 빠져나가지 않을 경우입니다만, 이것도 좋습니다. 적들은 하염없이 농성전에 돌입하겠지요. 군량미를 전부 잃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전쟁이 됩니다.”

    “과연…….”

    마르바스가 감탄했다. 내 작전을 음미하듯 턱끝을 천천히 끄덕였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저들에게 미래는 극히 불투명합니다.”

    이걸로 외통수다, 앙리에타.

    군대를 살리고 싶다면 지지 세력을 버려라. 지지 세력을 얻고 싶다면 군대를 버려라. 너에게는 왕당파와 브르타뉴군 양쪽이 모두 소중한 모양이다만, 세상사란 원래 전부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간단한 진리이다. 그러나 너는 욕심쟁이지. 전부 가지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직접 양자택일의 의미를 가르쳐주겠다. 무얼, 부담 갖지 마라. 과외비는 따로 받지 않는다. 이래 봬도 나는 제법 상냥하니까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