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76화 (276/510)
  • 00276 대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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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트와 앙리에타는 반드시 연합하겠지. 내기해도 좋다.

    두 군주 사이에는 강한 협력체제가 완성되어 있다. 그걸 확신하게 된 시점은 지난 프랑크 내전이다.

    합스부르크 공화국에는 기사이지만 귀족 출신이라서 반강제로 퇴직당한 자가 많았다. 엘리자베트 통령은 그들을 앙리에타한테 보냈다.

    엘리자베트는 잠재적인 반란분자를 국내에서 쫓아낸다. 앙리에타 여왕은 훌륭한 기사 전력을 얻는다. 간결하면서도 멋진 협조이다.

    ‘엘리자베트와 앙리에타라.’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일찍이 패권을 두고 다투어야 할 제왕들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최강에 최강이 덧붙여진 셈이다. 에이스 투페어로군.

    글쎄, <던전 어택> 팬들이 보면 환호할 만한 광경일지 모르겠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내가 대적자라는 점에서 웃지 못할 일이다. 본래 능력으로 따지자면 나 따위는 그녀들에 비해 구더기 오줌에 불과하다.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는 것일까요.”

    작전회의에서 파이몬이 부채를 천천히 부치며 말했다.

    “합스부르크 통령은 공화국을 천명하고 있사와요. 반면에 브르타뉴의 여왕은 전형적인 군왕이지요. 두 사람이 떳떳하게 군사 행동을 함께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걸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컨대 의용병을 보낸다든지. 비록 정치체제는 다를지언정 우리는 국가의 일원이기 이전에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의 일원이며, 설령 증오스러운 왕정주의자일지라도 마왕군에 맞서서는 과감하게 단결해야 한다…….

    대충 그렇게 선동하겠지. 엘리자베트는 선동하는 솜씨도 발군이다.

    “다만 방법을 현실에 가능하게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실현시킨다면 그 자는 유능한 것이고,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무능한 것이지요. 그리고 합스부르크의 통령은 지극히 유능합니다.”

    바르바토스와 파이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자기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 불쾌했는지 흥, 하고 각자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런 점까지 박자가 맞아서 더 귀엽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작전회의에 두 사람은 이런저런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흐뭇해서 그만 아빠 미소가 나왔다.

    “마법도 못 쓰는 퇴물은 그냥 뒷방에서 자위질이나 하고 있지 그래?”

    “어머나. 할 줄 아는 거라곤 돌격밖에 없는 미친개는 얌전히 작전이 세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떤가요. 모쪼록 막사 근처에다 오줌을 싸갈기지는 말아주세요.”

    ……전언을 철회하겠다. 귀엽다고 칭하기에는 좀 많이 무섭다.

    작전회의에는 바르바토스와 파이몬, 가미긴, 마르바스, 바싸고, 벨레드 형님, 제파르 대장, 시트리, 총 여덟 명이 참석했다. 바르바토스와 파이몬이 서로한테 틱틱거리고 벨레드 형님과 시트리가 서로한테 틱틱거렸다. 그런 구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장소 불문하고 똥오줌을 싸지르는 건 그쪽의 특기이겠지, 파이몬.”

    바르바토스가 이죽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네 머리카락에선 똥냄새가 아주 진득하게 풍기거든. 너희 파벌 꼬붕들이 말하지 않아줬나봐? 참, 미안. 파벌이라고 해봤자 얼마 있지도 않았지! 내가 착각했지 뭐야.”

    “머릿수가 많다고 잘난 척하는 건 하등생물의 특징이지요. 바르바토스는 아직 뇌가 덜 자란 모양인걸요. 불쌍해라. 하도 박혀대서 쭈글쭈글한 그쪽 아랫입처럼 뇌에도 주름을 늘려보심은 어떤지요? 뇌가 아니라 하반신으로 사고하는 하등생물에게는 조금 무리한 주문이겠지만요.”

    너희 정말로 전생에 원수라도 지냈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이 표정 하나 까딱거리지 않고 쌍욕을 주고 받으니 그만큼 으스스한 장면이 없었다. 침대 위에서는 다들 귀여운 양반들께서 왜 이러실까.

    바알을 토벌하는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거였다. 형식적이든 뭐든 아무튼 간에 평원파와 산악파를 합류시키는 것.

    다행히 바르바토스는 산악파에게 빚이 하나 있었다. 내전에서 원군을 받은 것이었다. 바르바토스는 저래 봬도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지라, 일단 은혜를 받았으니 돌려준다는 식으로 협력했다. 입에서 쌍욕을 쏟아붓기는 했어도.

    문제는 파이몬이었다.

    죽어도 바르바토스와 손 잡기 싫다는 의지가 풀풀 풍겼다.

    하이델베르크 함락 작전에 협력한 까닭이 여기에도 있었다. 나는 평원파였다. 평원파가 산악파의 작전수행을 크게 도와준다고 알려지면 어느 정도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어서 라우라의 작전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로 내기를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파이몬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바르바토스와 협력했다.

    “얼씨구, 서큐버스 년이 입에 걸레를 처물었나. 내 껀 네 년에 비교하면 매끈한 민둥산이거든요? 입구멍에서 오징어 냄새나 지우고 지껄이세요, 늙은아.”

    “어머, 꼬맹이 같은 얼굴로 발랑까져서 정말 좋겠사와요. 뭣하면 제가 엄마가 되어드려서 모유라도 드릴 수 있는데요. 우리 바르바토스 어린이, 모유 마시고 싶어서 많이 힘들죠?”

    월맹군의 실패가 바알에서 비롯했다고 믿는 지금 시점에서도 양측 모두에게 감정적인 문제는 남아 있고…… 뭐, 하루가 멀다 하고 절찬리에 말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이럴 때는 신경 쓰는 사람이 지는 거다. 어찌 들으면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느긋하게 감상하자고.

    “……싸우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으니 제발 조신하게 처신해주면 안 되겠는가.”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신경줄 굵은 사람만 있지 않았다. 마르바스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 마르바스는 십 년은 더 늙어보였다.

    “각 군단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제3차 월맹군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마계인들이 얼마나 이번 원정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터. 부디 제군들도 분발하여 원정을 성공시켰으면 한다.”

    “포기하십시오, 마르바스 님.”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번 개선식에서 두 사람이 말머리를 나란히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더 이상 뭔가를 기대해봤자 우리만 피곤해집니다. 무시하고 회의하지요.”

    “자네마저 중재를 포기하면 이제 기댈 구석이 없다마는.”

    마르바스가 한숨을 쉬었다.

    “좋다. 통령과 여왕이 협력한다는 것은 알겠다. 우리군은 어떻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어차피 적군이 협력한다면 그 전에 기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바싸고가 다소 신경질적인 얼굴로 말했다.

    바르바토스와 파이몬이 말싸움을 벌일 때마다 바싸고는 표정이 나빠진다. 너무 바보 같아서 놀아주지 못하겠다는 심정이겠지. 조금 더 인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놈들은 우리의 계획을 아직 모르고 있다. 최대한 빠르게 행군하여 프랑크 제국과 아가레스를 먼저 처리한다. 합스부르크의 통령이 대단하다고 한들 혼자서 무엇을 하겠는가.”

    “으음.”

    마르바스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발상이었다. 각개격파는 가능하다면 언제나 최상의 시나리오니까.

    하지만 이번에 한정해서는 약간 안이한 낙관론이라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상대는 비단 통령과 여왕뿐만이 아니다. 아가레스도 포함되어 있다.

    마인들 중에는 틀림없이 아가레스를 지지하는 자도 있을 거다. 우리에 대한 정보가 아가레스한테 흘러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의 행보는 이미 어느 정도 노출되었다고 가정해야 올바르겠지.

    “단탈리안.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쎄요. 나쁘지 않군요.”

    바싸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쪽이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했을까. 무얼, 나는 진심으로 말한 것이었다. 잠자코 들어봐라.

    “여왕에게는 아가레스가 협조하고 있습니다. 마계인들 중에는 아가레스한테 정보를 흘리는 자도 분명히 있겠지요.우리가 아가레스를 토벌하려 한다, 이 정보는 이미 알려졌다고 상정해야 합니다.”

    “음.”

    마르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싸고가 기분 나쁜 듯이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알고 있는가? 댁은 대체로 표정이 너무 바깥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거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설령 각개격파가 성공하더라도 별로 우리한테 유리할 게 없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적들에게 유리해지겠지요.”

    마르바스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뜻인가?”

    “간단합니다. 우리의 주력이 프랑크 방면에 모조리 집중되면, 합스부르크 공화국과 맞대고 있는 국경이 텅 비어버립니다. 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요. 고토를 회복하겠다는 명목 아래 곧바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쉽개 말해서 양면 전쟁이 되어버린다.

    합스부르크 방면에서 바르바토스는 섭정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쪽에 사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마왕이 폭정을 펼치는 것이다. 엘리자베트 통령이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다고 알려지면 단번에 흥분하겠지.

    “섭정국 곳곳에서 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킬 겁니다. 지난 월맹군에서 겨우 얻어낸, 소중한 대륙의 교두보가 엉망진창으로 파괴되겠지요. 프랑크에서 승리할지라도 합스부르크를 잃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르바스가 침음을 삼켰다.

    “그래서는 '우리'가 곤란하군…….”

    과연 마르바스였다. 나의 얘기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합스부르크 섭정국은 인간들이 보기에는 하나일지 몰라도, 이쪽 입장에선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평원파가 차지하는 영토, 산악파가 차지하는 영토, 가미긴이 차지하는 영토, 그외에 소수의 무소속 마왕이 차지하는 영토.

    만약 이곳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해봐라. 자기가 차지한 영지를 지키겠답시고 마왕들이 원정군에서 대거로 이탈해버린다. 대부분의 마왕에겐 아가레스를 물리치는 것보다 자기 영지가 무사한 게 중요하다.

    월맹군은 일견 강력하게 단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으면 무너진다. 마르바스는 내 의도를 이해해서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합스부르크에 수비 병력을 남겨두어야 하겠는가.”

    “아니요. 그래서야 도리어 우리가 잘게 나뉘는 꼴이 됩니다.”

    프랑크에는 앙리에타와 아가레스. 합스부르크에는 엘리자베트가 버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쪽 전력을 나누어서 각자 상대하라고? 더없이 미친 짓거리이다.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전락해서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이상한 논리로군.”

    바싸고가 기분 나쁜 어조로 말했다.

    “전력을 집중하여 기습하는 것도 안 된다, 전력을 나누어서 측면을 방어하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대체 어쩌자는 말이냐?”

    “우리가 전력을 합쳐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싸고 전하의 지적은 옳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달려들지 마라, 바싸고. 꼭 애완동물 같아서 귀여워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귀여움을 어필해서야 나만 곤란해진다.

    “단지 굳이 기습을 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최대한 우리의 움직임을 광고하면서 행군합니다.”

    “하, 논외로다.”

    바싸고가 비웃었다.

    “세상에 어느 군대가 요란하게 행군을 광고하느냐. 이쪽의 움직임이 읽혀서 위험을 자초할 따름이야.”

    “그 군대가 마왕군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종의 군대라면 어떻습니까.”

    “뭐?”

    내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 황제……바르바토스 님의 꼭두각시 인형입니다만. 그 자를 명목상의 총사령관으로 추대합니다.”

    “……!”

    마왕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월맹군으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합스부르크 황제의 군대에 참여합니다. 아가레스라는 마왕과 협력하는, 극악무도한 폭군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를 인류의 군대가 토벌하는 것이지요.”

    이로써 전쟁의 모습은 완전히 역전된다.

    우리가 마왕군으로서 인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우리가 인류에게 협조하는 군대로서 마왕을 공격한다.

    “이럴 경우, 통령이 여왕에게 협력한다면 마왕군에 협력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명분이 크게 떨어지겠지요.”

    “…….”

    “합스부르크 공화국은 마왕군에 대한 대항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정작 통령 본인이 마왕군에 협력해서야 국가의 기반이 흔들립니다. 통령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됩니다.”

    마왕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숙고에 들어갔다. 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 아니, 반드시 이루어진다. 바타비아 공화국을 이용해서 실제로 인간군까지 어느 정도 섞어주면 그럴듯한 인류의 군대가 완성되니까.

    알고 있는가, 엘리자베트.

    전쟁은 전투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한참 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인류를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국가를 우선시할 것인가. 너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절망적이겠지…….

    너에게 다시 한번 괴로운 입장을 강요해주겠다. 서로 멋진 왈츠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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