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72화 (272/510)
  • 00272 만우절 특집 특별루트  =========================================================================

    1. 루트 no.07: 천하통일까지 일직선

    합스부르크 제국의 제3황녀, 엘리자베트 폰 합스부르크는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최근 들어 궁전에서 소동이 일어났으며, 이에 관련해서 황녀는 골머리가 썩어들었다. 다름 아니라 황궁 안쪽의 호수에 웬 평민이 떨어진 것이었다.

    철두철미한 보안을 자랑하던 황궁이 일개 평민에게 뚫렸다는 사실은 모든 궁정인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더 나아가, 황실근위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엘리자베트 황녀에게 이번 사건은 정치적인 충격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어쩌면 좋을까. 엘리자베트가 고민하는 가운데, 미리 매수해두었던 감옥 관리인이 그녀에게 고했다. 호수에 떨어진 평민이 제발 자신을 만나달라고 울구불며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인간을 이용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기대하고, 엘리자베트 황녀는 비밀리에 감옥에 행차했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청년이 엘리자베트를 보자마자 따발총처럼 떠들어댔다.

    “안녕하십니까, 합스부르크의 영광이시여.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소인은 전하께서 제국을 재생시킬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해 충성과 협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먼저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는 저택의 2층 지하에 귀족 출신의 성노예들을 가두고 있는데, 이걸 밝혀내서 폭로하면 간단히 황위계승전에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폰 합스부르크 황자와 계약하고 있는 레벨로 상단은 사실 브르타뉴 왕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반제국 집단입니다. 상단 건물을 쥐 잡듯이 수색하면 반역죄로 몰고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현재 수도방위군을 담당하는 데카브리트 백작 말입니다만, 그의 부관 두 명이 언제든지 상관의 등을 찍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데카브리트 백작한테 부인이 먹혔기 때문이지요. 난감하다는 표정이시군요. 물론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소인은 황녀 전하께서 열 살 무렵에 동생인 로베르트 황자를 별궁 뒤쪽의 숲속, 벚나무 아래에서 처리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전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셨는데요. 아무튼 지금이 제1황녀와 제2황녀가 살아있는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르데냐의 파르세네 가문에 라우라라는 영애가 있는데 그 아이는 반드시 영입해야 합니다.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그림자'들을 동원해서 하루라도 빨리…… 잠깐만요. 전하. 제발 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전하와 제가 힘을 합치면 대륙통일은 거저 먹는 거나 다름없――.”

    2. 루트 no.12: 너의 패턴은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이다.

    대마왕 바알은 경악했다. 눈앞의 인간은 정확하게 자신의 마왕성에 돌입한 지 11시간 만에 모든 마인 부대를 전멸시켰으며, 단 하나의 함정에 걸리지 않았고, 심지어 바알 본인을 '단신'으로 쓰러트렸다. 게다가 놀랍게도 인간은 '소녀'였으며, 더 나아가, 아무리 봐도 열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바알은 심장이 성검에 뚫린 채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런 강함을 손에 넣은 것이냐.”

    “대마왕 바알. 서열 제1위. 물리공격을 받을 경우 적룡의 고유마법을 발동하고, 마법공격을 받을 경우 청룡의 고유마법을 발동. 하지만, 대규모의 사역마로 동시에 공격하면 반마법이 걸린 망토를 벗는 패턴이 있으며, 이를 고려할 경우 마검사로 전직하여 공격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

    “네, 네놈, 무슨 헛소리를……?”

    소녀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척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님한테 배드엔딩 뜬 횟수만 여든아홉 번이에요, 개껌아.”

    3. 루트 no.28: 켠 김에 세계멸망까지

    비너스빤스는 키보드 배틀에서 지자 분노가 치밀었다. 일단 뇌가 달아오르면 아무도 그녀를 제지할 수 없었으므로, 비너스빤스는 환생 제2호 트럭차를 몰고 그 빌어먹게 재수없는 녀석을 치어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상대방이 어떤 서열의 마왕으로 빙의되느냐 결정하는 데 있어 '72'라고 적어야만 했는데, 그만 '2'를 한 번 더 눌러서 '722'라고 입력되어 버린 것이었다. 나중에 비너스빤스가 회고하며 “어제 저녁에 소주를 마셔서……” 라고 변명했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세상에 서열 722위의 마왕은 없으므로 시스템은 오작동을 일으켰으며, 정해진 서열이 없어지자 임의로 랜덤을 돌렸고, 세상에 가득 찬 악의와 기회주의적인 전개 및 노블레스적인 클리셰에 따라 상대방은 하필이면 서열 제1위의 바알에게 빙의되었다. 그렇게 마왕 중에서도 최강의 마왕이 크아아아아 울부짖었다. 빙의된 바알은 졸라짱쎄서 마왕 중에 최강이었다. 신이나 마족도 이겼다. 다 덤벼도 이겼다. 빙의된 바알은 세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짖었다. 세상은 멸망했다.

    4. 루트 no.29: 나의 한국이 쥬신제국일 리 없어!

    여기서 비너스빤스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세상에 서열 722위의 마왕은 없으므로 시스템은 오작동을 일으켰으며, 세상에 가득 찬 악의와 민족주의적인 전개 및 노블레적인 클리셰에 따라 상대방은 하필이면 16세기 조선 반도에 환생해버렸다.

    환생하게 된 몸의 본래 주인은 하성군 이균. 훗날 선조가 될 소년이었다.

    5. 루트 no.50: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노블레스적 클리세에 따라 단탈리안은 매우 잘 생긴 미남이 되었다.

    허우대 같은 체형은 사라지고 근육질이 적절하게 박힌 미형이 되었다. 그 잘생김력은 대략 로맨스물에 환생하면 황태자가 반할 지경이요, 삼국지 TS물에 환생하면 조조와 유비가 그를 사이에 두고 개싸움을 벌일 지경이었으며, 레이드물에 환생하더라도 능히 십만 미녀를 발바닥으로 후려치고 다닐 기세였다.

    단탈리안이 안드로말리우스를 죽이고 청문회에 서자, 당초 단탈리안을 책문하려던 파이몬은 입을 뻥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너, 너무 잘생겼사와요!’

    신의 대리석 조각이 그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포도주를 홀짝이던 바르바토스는 그만 와인잔을 떨어트려버렸고, 가미긴은 수백 년 동안 고이 간직해온 표정 연기가 깨졌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여마왕들은 심장이 심각하게 바운스하였다.

    문제는 청문회에 참여한 게 비단 여마왕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남자 마왕들 전원이 단탈리안에게 반하고 말았다. 단탈리안을 사이에 두고 마왕군에 전쟁이 일어날 뻔했으나, 단탈리안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일시적인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브루노 평원, 십만의 인간과 십만의 마인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에서 단탈리안이 소리쳤다. 그는 역사적인 명연설을 남기고 있었으나 인간과 마인의 귀에는 그딴 연설 따위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 잘 생겼다!’

    ‘꼭 아름다움의 신이 강림한 것 같아!’

    ‘너무 잘 생겨서 머리가 어지러워!’

    이리하여 단탈리안 쟁탈전에는 엘리자베트 황녀와 앙리에타 여왕 및 각 나라의 군주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단탈리안이 필사적으로 전쟁을 막으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든 마계의 군주와 모든 인간계의 군주가 뛰어들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세계대전이 이루어졌다. 단탈리안이 바라던 대로 난세가 펼쳐진 것이었다.

    놀랍게도 최후의 승자는 시트리였다.

    6. 루트 no.99: 마왕의 체질이 약간만 달랐다면…….

    “그럼 청문회를 시작하겠다.”

    마르바스가 침통하게 말했다.

    마르바스는 언제나 분쟁의 조절을 맡아왔고 그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오늘 청문회에서 사회를 맡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르바스 이외에는 누구도 중재자 역할을 맡을 수 없다며 마왕들이 칭얼거렸고, 더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마르바스가 나왔다.

    “피고 단탈리안.”

    “예.”

    단탈리안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는 현재 우리 월맹군이 대륙으로 진출해야 할 시점임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즉, 현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마왕이 이탈하면 아군에 있어 치명적인 손해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마르바스가 쿵, 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그런데 왜 마왕들을 단체로 임신시켰는가!”

    증인석에는 바르바토스, 아가레스, 파이몬, 가미긴, 시트리, 이외에 여마왕 일곱 명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배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었는데, 모두 배가 언덕처럼 불렀다.

    “중상모략입니다.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도적으로 임신을 유도하지 않았습니다.”

    단탈리안이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르바스가 이를 박박 갈면서 서류를 넘겼다.

    “증언을 따르면 자네는 불과 한 달 동안 바르바토스와 열한 번, 가미긴과 일곱 번, 파이몬과 일곱 번, 시트리와 세 번, 나머지 여마왕들과도 최소 두 번의 성관계를 가졌네. 다 계산해보면 자네는 30일 동안 67번의 성교를 했어!”

    참고로 이것은 여마왕에만 한정시킬 경우였다. 평범한 마인, 인간까지 합치면 숫자는 단숨에 세 배로 건너뛰었다.

    이런 사실관계가 적힌 서류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마르바스는 끔찍했다.

    “심지어 한 달 동안만 이런 게 아니라 자그마치 여섯 달 내내 그랬지. 이러고도 자네가 의도적으로 임신을 안 시켰다고 발뺌할 생각인가. 어디 변명해보시게, 최고참모 양반.”

    단탈리안은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임신의 가능성은 아시다피시 꽤나 낮은 확률이며, 집단으로 임신하는 것은 더더욱 이상할 정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허구한 날 떡을 치고 다니니까 임신이 될 수밖에!”

    마르바스가 괴성을 질렀다.

    끔찍하게도 여마왕들은 단체로 '임신 휴가'를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일 경우 월맹군의 전력은 영락없이 반쪽으로 거덜나게 생겼다. 만약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역사가들은 월맹군의 패배 원인을 '임신'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하겠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발정난 개 같으니라고, 전쟁 도중에 잠깐이라도 참으면 될 것을 그걸 못 견뎠는가!”

    “혹시 성욕을 참으라는 말씁입니까? 실례합니다만, 마르바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어떻게 성욕이란 걸 참을 수 있겠습니까?”

    “바르바토스는 겨우 '열두 살'짜리 몸을 갖고 있다네! 빌어먹을! 출산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어머니가 항상 젊음을 유지할 테니 아이도 기분이 좋겠군요.”

    단탈리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태평하게 대꾸했다. 마르바스가 깨달았다. 이 녀석은 글렀다.

    쾅!

    전령이 문을 박차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마르바스가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느 장소라고 함부로 소음을 내는가!”

    “죄, 죄송합니다, 군단장 각하. 하지만 시급하게 보고해야만 하는 중대사가 일어나서…… 바알 전하께서 임신하셨습니다!”

    뭐라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알 전하께서 임신하셨으며, 이에 대해 임신휴가를 선언하셨습니다.”

    뭐라고오오오?

    “무, 무슨 소리인가. 바알은 남자…….”

    “지금까지 성별을 숨겨왔지만 사실 여자였습니다. 외모 변형 마법을 쓰고 계셨더군요. 각하, 현재 제7군단은 완벽하게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소식이 전파되면서 나머지 군단들도 공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알 전하께서 밝히신 바에 따르면 아이의 아버지는 단탈리안 전하라고 합니다…….”

    “…….”

    마르바스를 비롯하여 모든 마왕이 입을 떠억 벌렸다.

    충격과 공포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단탈리안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겨우 '한 번'밖에 안 했는데…….”

    ============================ 작품 후기 ============================

    해리포터 팬픽 중에 <해리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명작이지요. 그중 <오마케>라고 해서 외전으로 적힌 편이 있는데, 그걸 보고 너무 재밌어서 저도 한번 그런 식으로 외전을 적어봤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군요.

    바알은 정말로 여자였는가, 아니었는가.

    그러나 본편에서 이미 바알은 죽었으므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이 문제는 '슈뢰딩거의 바알'로서 전세계 학계에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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