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68화 (268/510)
  • 00268 반역하는 자  =========================================================================

    침묵이 감돌았다.

    “…….”

    “…….”

    단탈리안과 바알은 단지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몇몇 마왕은 그렇게 자문해야만 했다. 단탈리안이 말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머리가 거부했다. 서열 제1위인 지고지상의 마왕에게 서열 제71위인 최하의 마왕이 정면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있을 수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

    바싸고가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충격에 빠진 것과 별도로, 수천 년의 업을 쌓아온 본능이 바싸고로 하여금 주위를 살피도록 강요했다. 혼란에 빠지기만 해서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본능만으로도 바싸고는 자신이 서열 제3위에 어울림을 증명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놈들이 적다.’

    지나치게 적막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여 동요하는 마왕은 기껏해야 열댓 명 남짓. 회장이 온통 술렁거려야 마땅할 대참사인데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냉정을 유지했다. 긴장감만이 가득하여 숨통을 죽이고 있었다.

    동요와 긴장감. 둘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던가.

    마치 이런 사태를 미리 예고받았다는 것처럼, 마왕들 대부분은 긴장하되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싸고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반역이다!’

    소수의 무투파 마왕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곳에 참석한 모든 파벌의 마왕들이 명백히 공격 태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순히 서열 제71위가 서열 제1위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이 아니었다.

    ‘마흔 명과 동시에 상대하라니……바알은 당연하고, 아가레스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싸고가 꼼짝없이 경직되었다. 그때였다.

    “포위하였군요.”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한 명의 마왕이 말했다. 온 머리가 노인처럼 하얗게 새어버린 여자였다. 그녀는 눈가에 붕대를 칭칭 묶고 있었다. 두 눈이 멀었으나 <천리안> 능력을 가진 마왕, 서열 제7위의 아몬이었다.

    “병사들이 매복되어 있어요. 감쪽같이 속았네요.”

    아몬이 어딘지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멍하게 중얼거렸다. 무엇을 말해도 먼 세상 얘기처럼 들리는 것이 그녀 특유의 어조였다.

    바싸고가 얼굴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물었다.

    “매복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아몬.”

    “사방의 그림자에서 희미하게 마력의 잔재가 느껴져요. 죽음과 긍지의 냄새. 죽음의 기사들이겠네요.”

    아몬이 한 박자 느릿하게 덧붙였다.

    “숫자는 사백 이상.”

    “……!”

    바싸고가 고개를 휙 돌렸다.

    무도회장 한켠에서 바르바토스가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두 마왕이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바르바토스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히죽 휘었다.

    “바르바토스, 역시 네 녀석이!”

    “그리고 상공에 와이번 부대가 강습을 준비하고 있어요.”

    맹인의 마왕 아몬이 말했다.

    “숫자는 오백쉰여섯. 외곽에서 마법사 대부대가 반(反) 마법을 발동하고 있네요. 색깔로 보아서 순간이동 마법과 소환 계열을 차단한 것일까요.”

    “…….”

    “흑마법과 백마법, 정령마법. 모두 대마법사의 솜씨로 혼합되어 있어요. 꼭 무지개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워요. 예. 무척이나 아름다워요.”

    아몬은 무언가에 감동했는지 멍하게 감탄했다.

    이제 모든 것이 파악된 바싸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미긴을 쳐다보았다. 금발이 아름다운 여마왕은 여느 때처럼 친근하게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으응. 바싸고, 무슨 일이야~?”

    오직 가미긴밖에 없었다. 와이번 부대를 오백 단위로 활용하는 마왕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싸고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독단적으로 이런 대규모 매복을 준비했을 리 만무했다. 니블헤임이라는 도시 자체가 협력하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했다. 여태껏 어떤 마왕이 추파를 던져도 꿋꿋하게 절대적 중립을 지켜온 니블헤임이…… 단탈리안에게 협력했다.

    똑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니블헤임의 거대 상단들은 결코 마왕에게 굴복하지 않는 위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웬만한 마왕보다 오래 산 괴물이기도 했다. 그런 니블헤임의 지도부를 언제부터 장악한 것인가.

    모든 시선이 한 사람한테 쏠렸다.

    “이런.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는군요.”

    단탈리안이 태평하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사실 별로 놀라신 것 같지도 않고요. 저는 이래 봬도 바알 전하를 깜짝 놀라게 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잔치를 주최한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충분히 놀라고 있다. 그대와 같은 잔챙이에게 이만한 담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마왕 바알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우선 본인이 어떠한 죄를 지었다는 것인지 들어보겠노라. 화려한 잔치상은 모름지기 전채요리부터 즐겨야 마땅할지어니.”

    “분부하신 대로.”

    단탈리안이 오른손을 정중하게 가슴팍에 올렸다. 주인을 모시는 집사처럼 예의바른 태도였다. 하지만 그 입술에서는 지극히 무례한 문책만이 흘러나왔다.

    “하늘을 우러러 감히 책망하건대 바알 전하께서는 세 가지 대죄를 범하셨습니다.”

    “대죄가 세 개나 된다라? 흥미롭도다. 어디 첫 번째 놈부터 고해보거라.”

    “예. 첫 번째 대죄는 지난 월맹군 원정에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것.”

    단탈리안이 손뼉을 두들겼다.

    그러자 공중에서 반투명한 지도가 큼지막하게 펼쳐졌다. 지도에는 대륙이 그려져 있었고, 화살표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횡단하고 있었다. 화살표는 마왕군의 각 군단을 상징했다.

    “지난 원정에서 모든 군단이 브루노 평원에 집결했습니다. 인간종의 군대가 먼저 평원에 집결했기 때문이지요. 당초에 예정되었던 계획과 어긋났으나, 무엇보다 핵심 전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대작전 목표에 비추어볼 때 아군은 타당하게 행동했습니다.”

    단탈리안이 싱긋 미소 지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 승리하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륙에 교두보를 건설하였습니다. 허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군단이 있었지요.”

    “…….”

    “바알 전하. 당신께서 이끄신 제7군단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바알에게 문책을 가하는 것 자체가 무모했으므로.

    “설마 잊어버리지 않으셨을 겁니다. 제8차 월맹군 원정을 선포한 장본인이 누구였는지.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바알 전하께서는 월맹군 원정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전쟁을 결의한 당사자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탈리안이 뒷짐을 지고 회장을 거닐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후방 지원을 맡은 가미긴 전하의 제5군단조차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바알 전하만이 전쟁과 상관없다는 듯이 홀로 주둔했습니다. 아무래도 바알 전하께서는 솔직한 감상을 선호하시는 듯 하니, 제 진심을 말씀드리지요.”

    단탈리안이 바알의 시선을 넘겨 받았다.

    “책임감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비겁하고 더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지나친 폭언에 좌중이 싸늘해졌다.

    “십만에 이르는 마인이 자기 피를 흘리며 싸웠습니다. 바알 전하, 바로 당신이 선포한 전쟁으로 인하여 그들은 죽어나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장본인은 마왕성에 눌러앉아 평화롭게 시간을 때웠다…….”

    단탈리안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당신이 마왕군에서 가장 강대한 전사라고요? 실례합니다만, 뭔가 잘못된 것 아닌지요? 저는 비겁하고 더러운 자가 전사라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저런, 원숭이 같은 벌거숭이가!”

    바싸고가 흥분하여 나서려 하자, 단탈리안이 차분하게 말했다.

    “부외자는 잠자코 계십시오. 저는 지금 피 흘리며 죽어나간 십만의 마인을 대신하여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한몸 건사하겠다고 흡혈귀 일족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자 따위 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뭐…….”

    바싸고가 멈칫했다. 귀공자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네놈, 무슨 소리를……?”

    “가장 현명하고 공명정대한 마왕, 서열 제3위의 바싸고. 그것이 당신의 이명이지요.”

    단탈리안이 작게 키득거렸다.

    “희극도 이만한 희극이 없습니다. 위험이 닥치면 약속을 내팽개치고 도주하며, 자신보다 강력한 마왕이 나타나면 냉큼 서열을 넘겨주는 겁쟁이 주제에 현명하다니요. 글쎄. 다른 의미에서 현명하긴 현명하군요. 모쪼록 본받고 싶습니다.”

    단탈리안은 어디까지나 성격 좋은 호인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싸고 전하. 푸른 달의 일족에게 당신이 무슨 짓거리를 벌였는지 폭로되기 싫다면 가만히 닥치고 계십시오. 이대로 평판이 떨어져도 상관없다면 얼마든지 떠드셔도 괜찮습니다만.”

    “…….”

    바싸고가 침묵했다. 주먹이 떨렸지만 그뿐이었다.

    “음.”

    단탈리안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습니다, 바알 전하. 아까부터 왱왱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시 쫓아내고 왔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련지요?”

    “좋다. 용서해주마.”

    바알이 재밌다는 듯 받아쳤다.

    “본인의 두 번째 대죄란 무엇인고.”

    “두 번째 대죄는 당신께서 마왕군의 내분을 좌시했다는 것입니다. 삼 년 전, 아가레스 전하는 명백히 내란을 목적으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는 하나로 통합된 월맹군의 기치를 완벽하게 망가트리는 이적 행위였습니다.”

    단탈리안이 천천히 회장을 걸으며 말했다.

    “그때 바알 전하께서는 내란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무엇이 완전무결한 책임 방조인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것이지요.”

    “…….”

    “이상으로 결론은 간단합니다. 바알 전하. 당신은 월맹군이 성공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월맹군이 내분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런 분께서 월맹군의 수장을 맡으시다니 농담도 뭣도 아닙니다.”

    바알이 입가를 들어올렸다.

    “네놈의 말이 진실이라면 어찌할 셈이냐? 본인을 처벌하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당연히 처벌은 뒤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약과이지요. 전하의 진정한 죄상은 따로 있습니다.”

    “호오, 진정한 죄상이라.”

    단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왜냐하면 전하께선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방관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마왕의 세력이 소모되는 동안 자기 세력만 보존한다,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조금 더 질 나쁜 이유가 숨어 있지요.”

    단탈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바알 전하. 전하께서는 일부러 마왕들이 당신에게 반역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마왕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일부러 반역하기를 기다리다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다른 모든 이는 모르겠지만 저만은 알 수 있습니다. 파이몬 전하의 행동을 가만히 내버려둔 것도, 아가레스 전하의 행동을 좌시한 것도,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지요. 전하께서는 계속해서 마왕들을 자극한 것입니다.”

    더 이상 참지 말고 폭발하라.

    이 불합리한 폭거에 들고 일어서라.

    “본래라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만 결의되는 월맹군 원정을 혼자서 천명했다. 본래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돌격해야만 하는 총사령관이 주저앉았다. 본래라면 엄정한 심판자가 되어 처벌을 내려야만 하는 장본인이 침묵했다…… 끊임없이 마왕들을 건드렸지요.”

    마치 불만이 터져서 타오르기를 열망하듯이.

    “왜냐하면, 바알. 당신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입니다.”

    “…….”

    “따분했겠지요? 하급 마족으로 태어나 지존의 자리까지 올라간 당신이 어떤 삶을 겪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난이요 전쟁이었을 터. 당신은 결코 그 가열찬 투쟁의 나날을 잊지 못했을 겁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전쟁광이니까.”

    바알이 덤덤하게 듣는 와중에, 단탈리안이 한발자국씩 바알에게 다가섰다.

    “누군가가 결투를 벌여오고, 생사를 두고 싸우던 흥분을 망각하지 못했겠지요. 막상 서열 제1위에 오르니 대마왕이라느니 앙골모아의 재림이라느니, 당신을 떠받드는 소리에 진절머리가 났을 겁니다.”

    단탈리안이 바알 앞에 섰다.

    “이제 밝혀보지요. 당신의 세 번째 죄과는, 바알. 당신이 천팔백 년 전 제2차 월맹군 원정에서 보급선을 끊은 장본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왕들이 웅성거렸다.

    천팔백 년 전, 바르바토스-마르바스-파이몬으로 이루어진 제1군단은 대륙의 국가들을 종횡무진하며 전진했다. 그러나 후방에서 보급선이 끊어지는 바람에 괴멸당했다. 범인은 인간계의 기사단들로 밝혀져 있었다.

    하나로 뭉쳐 있던 마왕군이 평원파, 중립파, 산악파로 산산조각나게 된 원인――.

    다름 아니라 서열 제1위 바알이 범인이라고, 단탈리안은 말하고 있었다.

    “그대로 대륙을 정벌해봤자 왕좌에 오르는 사람은 당신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나의 마왕 아래 만인이 복종하여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했겠지요. 당신은 그게 싫었던 겁니다.”

    “…….”

    “영원히 투쟁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습니까? 강한 마왕만이 살아남아, 말도 안 되는 폭거를 휘두르는 당신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는, 그런 광경을 바라지 않았습니까?”

    단탈리안이 두 손을 벌렸다.

    “그래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바알, 당신이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면――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풍경이 펼쳐집니다. 바르바토스가 당신을 증오할 것입니다. 파이몬이 당신을 원망할 것입니다. 마르바스가 당신을 경멸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가장 강력한 마왕들이 모두 당신의 심장이라는 목표 하나를 향해서 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제 드디어 한 발자국만 남았습니다. 겨우 한 발자국입니다. 기뻐하셔도 좋습니다. 바로 제가, 최하이자 최약의 마왕인 저 단탈리안이 오롯이 당신을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아, 바알. 부디 대답해주십시오.”

    단탈리안이 싱긋 미소 지었다.

    “당신이 자신의 알량하고 이기적인 투쟁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월맹군을 파탄시킨, 그 더러운 개새끼가 맞습니까?”

    그리고 바알은.

    “……크흐.”

    서열 제1위의 위대한 마왕은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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