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54화 (254/510)
  • 00254 세상에서 제일 빠른 남자  =========================================================================

    “후우우.”

    입술 사이로 감미로운 연기가 새어나갔다.

    눈앞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술에 취하여 막 익은 사과처럼 발갛게 볼을 붉힌다. 오른손에는 미주(美酒). 왼손에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부하가 제작해준 연초. 이것이야말로 인생, 이것이야말로 남자.

    잇츠 쏘 뷰디풀 라이프.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표현하자면 부득이하게 양놈의 입을 빌려야만 했다.

    나는 약간의 감동에 젖어 허공에 처연히 사그라드는 담배 연기를 보고 있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무언가를 착각했는지 능글맞게 웃었다.

    “전하아? 더 이상 안 되겠으면, 술을 치우겠습니다?”

    “끌끌. 혀가 다 풀린 사람이 그래봤자 하나도 안 무서운걸.”

    “소인의 혀는 멀쩡합니다마안―?”

    “퍽이나 멀쩡하군.”

    너, 입가가 아예 녹아내려서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되고 있다.

    내가 술병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처음에 자신만만했던 소녀의 얼굴은, 병에 든 술이 줄어들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이윽고 술병이 텅 비어버리니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표정이 뚱해졌다.

    슬슬 이쯤에서 찔러볼까.

    “푸우…….”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소녀의 목소리가 약간 밝아졌다.

    “혹시 힘드십니까아?”

    “끄으응. 아니. 더는……후우, 힘들구만.”

    리얼리티를 살려주기 위해서 손에 든 술병을 떨어트렸다. 카페트가 깔려 있어 유리병이 부드럽게 착지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내가 취해도 단단히 취했다 생각했는지, 맞은편에서 벌떡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소녀가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전하? 그만하시겠사옵니까? 그럼, 소인이 이긴 걸로 해도 될련지요?”

    얼핏 들으면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목소리에서 기쁨이 마구 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니까 꽤나 귀여웠다. 넘어트려서 범할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현명한 자. 마왕인 나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면 도리어 정치적으로 써먹을 게 생겼다며 좋아하겠지.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나는 딱히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미색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던전 어택 마니아로서 정식 히로인을 공략해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그래……항복하겠네! 도저히 안 되겠군. 항복이야. 어디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물어봐. 내 뭐든지 대답해주겠어.”

    “허면……전하. 염치 불구하고 여쭙겠나이다.”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내 등을 쓰다듬었다.

    “어찌하여 소인의 과거지사를……소인이 본체를 숨겼다는 것이나 소인이 옛 연인을 잃었다는 것이나, 그런 것을 알고 계시온지요?”

    “아하? 그거 말인가. 간단하지. 나에게는 과거를 보는 능력이 있다네.”

    미리 준비해둔 답변을 들려주었다.

    “과거를 보는 능력이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옛날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그런 게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뭐, 대단한 능력은 아닐세. 무조건 떠오르는 게 아니거든. 예컨대 마왕들의 과거는 전혀 떠오르지 않고. 아주 드물게 떠오르고 그래.”

    소녀가 '예언 능력이 아니었는가……' 하고 중얼거렸다.

    “하옵시면. 부르노에서 합스부르크 황가의 여인을 공격했던 것도?”

    “아아. 그건 운이 좋았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보자마자 떠올랐거든. 그래, 아마도 상대방이 가장 괴롭게 느끼는 과거……그런 게 떠오르는 것 아닐까 싶네.”

    “과연.”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납득한 기색이었다.

    “전하께서는 마왕이……마왕의 존재의의가 의문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하옵니까?”

    “으음? 말하지 않았나. 마인이라든지, 인간이라든지. 그런 걸 구분하는 것부터가 마왕들의 잔수작이라고.”

    나는 머리가 아픈 것처럼 간간이 신음을 섞어주며 얘기했다. 마치 술주정뱅이가 장광설을 늘어놓듯이 길게 지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되 어디까지나 취중진담이라고 착각하게끔.

    “이성이 있다는 점에서……그래. 이성적인 존재자라는 점에서, 인간종과 마족은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어. 이성적인 존재자란 무엇인가? 자유로운 존재일세.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런데도 마왕 떄문에. 오로지 마왕 때문에 마족은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어…….”

    “…….”

    “마인이 마인으로 거듭나려면, 우선 마왕이 싸그리 없어져야 하네. 그래. 나의 목적은……나의 목적은 모든 마왕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야.”

    소녀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마왕을……?”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 될 것일세. 아아, 그렇고말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마인은 정당하게……진실로 이성적인 존재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돼.”

    “하, 하오나. 단탈리안 전하께서는 월맹군을 성공으로 이끄시지 않았사옵니까?”

    “중요한 건 균형이다.”

    내가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마왕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서 딱 하나 올바른 게 있지……바로 지옥은 마인이 살아가기엔 너무 척박하다는 사실이다. 오크족을 봐라. 대륙으로 나간 오크족은 방방곡곡에서 융성하여 번식하고……지옥에선 어떠한가? 기껏해야 수천이다. 대륙과 지옥의 환경이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어 한입 머금었다.

    “크흐. 이런 상태에서 마왕들이 다 죽는다면 어찌될까? 유례없는 대혼란이 일어나겠지. 그리고, 인간종은 기회를 틈타 대륙에서 아예 마족을 싸그리 몰아낼 것이야. 마왕들을 없애기 전에 인간종의 세력을 줄여놔야 하네.”

    “균형…….”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균형이다. 지속적인 전쟁을 통해서 인간종과 마왕군, 양측의 세력을 적절하게 깎아놔야 한다. 제8차 월맹군은 그를 위한 첫 번째 걸음이었어. 다만 아주 약간 거하게 이겨버렸지. 계산착오였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내전을 일으켰다.”

    “무슨 말씀이옵니까……?”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전쟁은 아가레스 전하와 가미긴 전하가 독단적으로…….”

    “무르군. 가미긴은 전쟁을 획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응징을 받지 않았다. 바르바토스는 도리어 평원파의 땅을 떼어주었지.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설마, 단탈리안 전하께서 처음부터 전쟁을 계획하셨다는 말입니까!”

    내가 미소를 지었다.

    “아가레스는 우둔하지만 아주 멍청하지는 않아. 가미긴 정도 되는 아군이 붙어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겠지. 가미긴을 설득하기 위해 모라비아 지방을 통째로 건내줘야 했지만, 무얼.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

    소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덕분에 그럭저럭 마왕군의 세력을 줄여놨지. 이제 더 이상 마왕군은 월맹군 전쟁을 이어나갈 기력이 없다. 아니, 설령 기력이 있다 하더라도 움직이지 않겠지. 왜인지 아는가?”

    “……소인으로서는, 전혀.”

    “흐흐, 술에 취했군. 평소였다면 쉬이 대답했을 텐데. 간단하다. 마왕군에 의심의 싹이 심어져버린 것이야. 아가레스가 이미 한번 전쟁을 일으켰다. 다른 마왕이 아군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실제로 중립파는 내전 이후에 월맹군 원정을 중단하였다.

    언제든지 아군이 배신할지 모른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일이 제법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 아가레스가 배신했다. 제8차 월맹군은 이제 일단락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종이 한숨 돌릴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 다행이지 뭔가.”

    “만약 인간종이 세력을 회복하면……전하께서는 다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내가 단언했다.

    “다음 전쟁에서는 인간종도 마왕군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겠다. 설령 마왕들이 모조리 죽더라도 감히 인간종이 전쟁을 벌일 수 없도록. 그래, 버니시아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정도를 남겨두면 딱 알맞겠지……그러면 얼추 균형이 맞게 될 거다.”

    “외도(外道)입니다. 터무니없는 외도입니다!”

    소녀가 격앙해서 소리쳤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나가리라 생각하십니까! 종족을 불문하고 수십만……어쩌면 백만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마인에게 자유를 돌려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도리어 마인들을 그리 죽음으로 몰아넣다니……언어도단입니다!”

    “호오. 그렇다면? 이대로 내버려두자는 말인가.”

    입가에 비웃음을 담았다. 어차피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동족에게 애정이 깊지 않았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월맹군 때문에 죽어나간 인간종과 마인이 이미 수백만이다.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죽어나갈 생명은 또 얼마인가? 그렇게 수천 년이 의미없이 반복되어도, 여전히 마왕들은 살아 있고 여전히 마족에 자유란 없을 터.”

    “…….”

    “어차피 수백만의 목숨이 사라질 것이라면 마왕이라도 죽어야 마땅하다! 외도이든 뭐든 상관없다. 이 방법이 더 올바르다!”

    나는 소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여리고 자그마한 손이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자네는 원망스럽지도 않은가. 나에게 말해보라. 과거에 그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얼마나 억울한 짓을 당했는지. 그대가 마왕에게 품고 있는 원한을 나에게 말해다오!”

    “소인은……소인은…….”

    소녀의 입가가 떨렸다.

    “……약소한 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바싸고 전하가……소인의 일족에 약속했습니다. 전하를 도우면 후일 풍요와 번영을 주겠다고.”

    드디어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입에서 내가 듣길 원하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싸고. 서열 제3위의 마왕. 아주 먼 옛날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그에게 충성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용족과 싸우던 도중에 위기에 처하자……바싸고는…….”

    “바싸고는?”

    내가 강하게 되물었다.

    “바싸고가 무엇을 했지?”

    “소인의 일족을……버림패로…….”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눈물을 흘렸다.

    “강제력을 써서……우리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어나가는 가운데, 바싸고만이 도주해서……아버지도, 어머니도, 제 연인도, 모두……저 혼자만. 시체 밑으로 숨어들어, 저 혼자만 구차하게…….”

    “…….”

    “마왕들이란 어차피 그런 족속……소인은 맹세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우리를 우롱하고, 능욕하고, 배신한 그들에게 똑같은 무게의 배신을 돌려주겠노라고……!”

    그래서 일족을 모두 잃어버린 소녀는 홀홀단신 상계로 뛰어들었다.

    마왕들에게도 돈이 필요하다. 소녀는 마계 제일의 상회를 만들어 마왕들의 돈줄을 휘어잡고자 다짐했다. 흡혈귀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때로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어떻게든 노력해나갔다.

    <던전 어택>에서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배반하자 실로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마계 제일의 상회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쿤쿠스카 상회에 기대고 있던 수많은 군소상회가 도산해버렸고, 니블헤임의 경제 자체가 파탄났으며, 당연하게도 마왕군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복수를 이루어내고 만 것이었다.

    “으흑……으읏…….”

    소녀는 울고 있었다.

    작은 어깨를 떨면서 이미 오래 전에 죽어버린 가족과 연인을 그렸다. 수천 년의 시간이란 복수심도, 가족에 대한 애정도 녹슬어버리기 충분했다. 그런데도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그날 맹세한 마음을 곱씹으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알고 있다.”

    나는 그녀를 꾸욱 안았다.

    “그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마왕이 얼마나 참혹한 존재인지 전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그대와 함께하고자 했어. 그대만이 마왕에 대한 나의 증오를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전하.”

    “이바르 로드브로크. 우리는 동지이다. 나는 마왕이고 그대는 마인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나의 마음을 품고 있다.”

    내가 소녀의 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모든 마왕을 멸하자. 다시는 마인들이 마왕 때문에 눈물 흘릴 일이 없는 세계를 만들자. 그것이 우리 둘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믿자. 설령 수백만의 피를 흩뿌리게 되더라도…….”

    소녀가 내 가슴에 안겨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전부 거짓말이지만.

    ‘크흐.’

    소녀는 지금 내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지. 마왕을 모두 없애버린다고? 그럼 나까지 없애자는 얘기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지.

    자살은 내 취미가 아니다. 그냥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기분에 맞추어서 그녀가 간절히 듣기를 원하는 얘기를 들려주었을 뿐이다.

    ‘됐다, 됐어! 조건을 전부 클리어했어!’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호감도 한계를 깨부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제1조건. 플레이어 캐릭터와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단 둘이서' 술을 마실 것.

    제2조건. 플레이어 캐릭터와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대작하기 시작한 지 게임 기준으로 최소 '세 시간'을 넘겼을 것.

    제3조건. 플레이어 캐릭터와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처음 만나고서 게임 기준으로 최소 '일 년'이 흘렀을 것.

    제4조건.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바르 로드브로크에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것.

    네 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면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호감도가 50 이상 올라갈 수 있다. 이후에는 호감도 99까지 순조롭게 올릴 수 있었다. 호감도가 100이 되려면 조건을 하나 더 완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망의 호감도 99 한계선을 깨는 조건은.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본체'를 보는 것이지!’

    그렇다. 이바르 로드브로크는 용사에게 합류했을 때도 처음부터 본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까 전에 나한테 보여주었던 몸, 눈동자 색깔이 다른 몸을 사용했다. 실로 용의주도한 성격이었다.

    이걸 어쩌나?

    나는 이미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본체를 보고 있는데.

    ‘즉……호감도 락이 두 개 동시에 깨졌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내가 그동안 제발 본체를 보여달라, 제발 본체를 보여달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바르 로드브로크가 본체를 들고 나와 만났을 때부터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말하지 않았는가? 게임이란 시작할 때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아니나 다를까.

    「깊은 우정! 상대방이 당신을 진심 어린 동료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우정으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새로운 칭호가 생성됩니다.」

    「완전무결한 신뢰! 상대방은 당신을 생애의 반려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우정과 신뢰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새로운 칭호가 생성됩니다.」

    호감도 한계가 깨질 때 나타나는 안내문이 눈앞에 번쩍거렸다. 아직 이바르 로드브로크의 호감도가 20이 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감도 한계가 깨졌다는 이유 때문에 효과가 발휘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꼼수 중의 꼼수.

    이제부터 호감도가 막히는 일 없이 쭉쭉 올라갈 일밖에 남지 않았다. 호칭 효과 때문에 호감도가 쑥쑥 오를 터. 공략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가 되겠지.

    “흑……흐윽, 읏…….”

    내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끌어안으며, 나는 상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약간 거짓말을 해버렸지만 이제 와서 거짓말에 캥기는 양심 따위는 일절 없었다. 정식 히로인을 공략했다는 달성감이 가슴에 벅차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공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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