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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248화 (248/510)
  • 00248 던전의 주인  =========================================================================

    “정말 제정신이 아니로군…….”

    단탈리안이 연초를 뻐끔거렸다. 그는 표정이 점점 무뎌졌다.

    “지금 이 자리, 메모리아 아티팩트가 없다는 걸 천운으로 여기십시오. 여신께서 저로 하여금 때마침 놔두고 오도록 배려하셨으니까요. 당신의 정치적 생명은 방금 끝장날 뻔했습니다, 가미긴.”

    “……!”

    가미긴이 담뱃대를 낚아채서 내던졌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담뱃대가 바닥에 떨어지며 머리 부분이 깨졌다.

    단탈리안이 무심한 눈초리로 가미긴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작센에서 장인이 만든 담뱃대였습니다. 꽤 비쌉니다만.”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어.”

    가미긴의 이빨 틈새로 분노에 찬 숨결이 흘러나왔다.

    “나를 모욕하지 마.”

    붉은색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그녀는 마왕인 동시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온몸에서 마력이 피어오르면서 살기를 자아냈다.

    “……알겠습니다.”

    단탈리안이 말했다.

    “사죄하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나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저는 일전에 가미긴 님께 모라비아 지방을 넘겨드렸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계산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만……뭐, 좋겠지요. 어차피 공식적으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단탈리안은 무표정했다.

    “그런데도 사죄를 바라십니까.”

    가미긴은 대답하지 않고 상대방을 노려볼 뿐이었다. 단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가미긴이 자리를 비켜주자, 단탈리안은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마도 머리를 바닥에 대고 사죄하는 것이리라. 가미긴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사과에 성의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욕받지 않았는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모욕. 그에 반해서 사죄는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도저히 형평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자. 가미긴이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생각했다.

    단탈리안이 자신에게 양보해준 것도 틀림없이 많았다. 슐레지안 지방에 대한 통치권 인정. 더 나아가, 일찍이 아가레스가 점유한 모라비아 지방에 대한 인정. 내전이 끝난 지 이 년째가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가미긴은 확고하게 일국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가로써 가미긴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단탈리안에게 협조해왔다. 바르바토스는 단탈리안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으나, 한 파벌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아무래도 거동에 제약이 따랐다.

    단탈리안은 서열 제4위라는 이름값을 등에 업고 마음껏 활동했다. 각자가 실리와 명분을 만족스럽게 교환한 것이었다. 가미긴은 그것이 공평한 거래임을 머리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감정의 문제였다.

    ‘아무리 거래가 공평했다고 해도……조금은 이쪽의 체면을 생각해주어도 괜찮잖아!’

    벌써 일백 번에 가깝게 몸을 섞었다. 대부분 단탈리안이 강요해서 억지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가미긴은 단 한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예전에 주고받은 내기. 단탈리안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패배할 경우에는?’

    ‘앞으로도 간간이 저와 놀아주십시오. 제가 가미긴 님과 몸을 섞고 싶다고 말했을 때 웬만하면 거절해주지 말아주십사 부탁드리고 싶군요.’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지극히 가벼운 조건이다.

    가미긴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잠자리를 거절할 수 있었다. 오늘은 싫다, 피곤하다, 너와 자기 싫다……변명거리 따위는 수없이 많겠지.

    그런데도 가미긴은 변명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여 내기를 존중했다. 그녀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은 계속해서 단탈리안을 존중해주는 데 반하여, 단탈리안은 언제든 그녀를 모욕하고 있었다.

    불공평하지 않는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쪽이 존중하는 만큼만 배려해주었으면 한다. 굳이 이렇게 화내면서 말해야만 그걸 알아채는지. 가미긴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그때 단탈리안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아?”

    가미긴이 사태를 인지할 겨를도 없었다.

    단탈리안은 칼날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직후, 단검을 그대로 쭈욱 위로 올렸다. 칼날이 뱃가죽을 째고 있었다. 새빨간 핏물이 옷을 적시며 순식간에 번졌다. 크윽, 하고 단탈리안이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다.

    “무, 무슨 짓을!?”

    그제서야 가미긴이 눈앞의 현실을 파악했다.

    그녀가 경악하면서 단탈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단탈리안의 두 손을 단검에서 빼내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우악스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피가 옷을 뚫고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멍청이――얼른 놔!”

    “크아악!”

    혼란스러웠지만 가미긴은 재빨리, 매우 현명하게 조치했다. 억지로 단탈리안의 손가락 하나를 잡아서 비틀어버린 것이었다. 단탈리안이 비명을 지르며 단검에서 손을 놓았다.

    가미긴이 상대방의 옷을 찢어서 상처를 확인했다.

    “읏……!”

    좋지 않았다. 칼날이 깊은 곳까지 쑤셔버린 데다가 완전히 내장을 갈랐다. 마왕의 재생력이 있다 해도 단탈리안은 최하위, 본연의 실력은 정말로 보잘 것이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단탈리안이 신음했다.

    “사죄는……크흑, 이걸로…….”

    “멍청이! 개자식! 병신 새끼!”

    가미긴이 욕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회복 마법을 걸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그러나 회복 마법은 일시적으로 체력을 오히려 빼앗아버렸다. 포션, 적어도 몸에 원기를 돋아주는 약이 절실했다.

    하지만……포션을 가지고 다닌 것이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가! 가미긴이 아직 약해빠진 마왕이었을 시절에나 그런 도구를 들고 다녔다. 대마법사가 된 이후로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품안에 안긴 채로, 단탈리안이 확연히 안색이 나빠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공들에게 부탁해서……아니, 무슨 일이냐고 의심받아버려. 시녀들도……제기랄, 어떻게 하면……!”

    별장에는 포션이 썩어넘쳤다. 순간이동해서 가져오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립지대인 니블헤임에선 순간이동 마법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순간이동을 발동하는 순간, 바로 모든 마왕이 합심하여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지.

    가미긴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대공들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도 안 되었으며,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으, 아……!”

    가미긴이 서둘러 단탈리안의 옷가리를 파헤쳤다. 그렇다. 단탈리안 정도로 신중한 녀석이 설마 평소에 포션 한병 챙겨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망토에는 갖가지 물약이 숨겨져 있었다. 그중에는 언제나 그녀를 괴롭히던 미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미긴의 안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여섯 개의 유리병 중에 약물이 유독 붉은색을 띄는 것이 있었다.

    가미긴이 허겁지겁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았다. 연금술 길드들 사이에 체결된 조약에 따라, 회복 포션에는 반드시 로즈마리 향기를 가미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물병에서 로즈마리 향이 강렬하게 피어났다!

    가미긴은 눈가가 핑 돌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단탈리안의 입구멍에 포션을 천천히 흘려넣었다. 일 분에 두 번씩 나누어서. 아주 오래 전, 자기가 상처 입었을 때도 그렇게 투약하는 편이 가장 효율이 좋았다. 이미 천 년이 지난 옛날 일이건만 거의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음……으음…….”

    단탈리안의 안색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효과가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이만 안심해도 좋겠지.

    가미긴이 자기 손으로 아름다운 금발을 헤집었다. 마치 전쟁터에 다녀온 것처럼 지쳐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분노와 경악, 안심, 이런저런 것들이 엉망진창으로 섞여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게 바닥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가미긴이 일어서서 단탈리안을 부축했다. 그녀는 단탈리안을 끌고 연회장으로 나갔다.

    “오오. 가미긴 전하, 무얼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단탈리안 전하께서 약간 이상하시군요……?”

    대공들이 가미긴을 반기면서도 의아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어차피 밀실에서 몸을 섞고 있겠거니, 하고 대공들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미긴이 단탈리안을 부축하며 걸어오는 것 아닌가.

    “아휴. 진짜, 완전히 취해서 이 모양이야~.”

    가미긴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미 얼굴을 가면으로 완전무장하고 있었다. 단지 가면을 쓰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래서 밀실에서 말없이 바닥을 멍하게 지켜본 것이었다.

    “내가 그만 좀 마시라고 그랬는데두 아예 정신이 없어가지고는!”

    “껄껄껄. 가미긴 전하께서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시군요.”

    가미긴이 너스레를 떨자 대공들이 웃었다.

    그녀가 가볍게 윙크했다.

    “평소에는 절대 취하지 않는데 오늘은 기분이 꽤 좋았나봐. 으응, 본인이 취했으니까 말해버려도 괜찮겠지? 의리가 있다느니, 배려가 깊다느니, 대공들 칭찬을 많이 하더라구.”

    “하하. 두 분 전하께서 즐겨주셨다면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공들은 기분이 좋았다. 가미긴은 둘째치고 단탈리안은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그런 자가 분위기에 취해 만취해버렸으니 접대하는 입장에선 대만족이었다.

    “나도 오늘 유쾌했어. 그런데 얘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좀 가봐야겠는걸. 먼저 자리를 떠나서 미안해.”

    “허어! 미안하실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밤이 많이 깊었습니다.”

    대공들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풀어진 옷을 여미고 깍뜻하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전하를 모시게 되어 더없이 영광이었습니다.”

    “바깥에 마차와 종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부디 조심히 들어가시길.”

    “고마워. 나중에 또 초대해주기를 기다릴게.”

    가미긴이 해맑게 웃었다. 미인이 약간 붉어진 얼굴로 솔직하게 미소를 짓자, 대공들은 상대가 마왕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차가 가미긴의 별장에 갔다.

    별장에는 시녀가 부재했다. 가미긴은 홀로 끙끙거리며 단탈리안을 부축해야만 했다.

    가미긴은 오늘 내일 시녀들에게 모조리 휴가를 내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탈리안과 오늘밤을 같이 보내기로 약속해둔 터에, 남들한테 들려주기에는 적이 민망한 섹스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탈리안은 섹스에 들어가면 좀처럼 자제하질 않았다. 그런 것을 시녀들에게 보여주기가 절대로 싫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금 가미긴은 서열 제4위 마왕의 체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부상자 따위를 부축하고 있었다…….

    “개새끼!”

    침실에 도착하기까지 가미긴은 몇 번이고 큰소리로 욕했다.

    “빌어먹을 후레자식! 말도 안 따먹을 원숭이 새끼! 아가리에 흙을 쑤셔넣어도 시원찮을 개자식!”

    어차피 들을 사람도 없었으므로 평소의 가면을 내려두고 마음껏 욕지거리를 떠들 수가 있었다.

    “끄응……!”

    가미긴이 단탈리안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하여 단탈리안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피로감이 가미긴의 전신을 뒤덮었다.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가미긴이 슬쩍 단탈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이쪽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혀 모른 채로, 상대방은 침대에 엉거주춤 누워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가미긴은 또 다시 열불이 터졌다.

    차라리 뒈져버렸으면.

    “……하아.”

    가미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로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 작품 후기 ============================

    질문자: 섹파(섹스 파트너)가 자꾸 애인 행세를 하려고 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탈리안: 식칼로 자해를 하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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