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5 마왕결전(魔王決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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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니블헤임 궁전에서 제3차 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날에 마왕들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소란스러웠다. 특히나 여마왕들이 주변을 신경 쓰지도 않고 떠들어댔는데――원래 마왕이란 종자에게 주변을 신경 쓸 머리 따위는 전무하기도 했다――바로 하나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예, 저도 들었어요. 어제 저녁 무렵에 단탈리안이 가미긴 님의 별장에…….”
“한 분이 흥미가 동했는지 별장 정문에 사역마를 붙여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그마치 새벽이 되어서야 단탈리안이 빠져나왔다지 뭐예요. 소문이 사실이었죠!”
“협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진위를…….”
나는 가미긴의 별장에 들어갈 때 대놓고 정문을 이용했다. 당연했다. 처음부터 가미긴과 그렇고 저런 스캔들을 흩뿌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소문에 기름이 부어질수록 좋았다.
중립파가 참전했다는 소식이 한 발자국 늦게 알려지면서 사교계에 난리가 일어났다. 내가 무도회에서 마르바스와 춤을 추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의혹이 불거져 있었다. 일각에서는 정말로 마르바스가 나와 사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불어서 시트리까지.
처음 무도회가 열렸을 때 시트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에게 달려와서 팔짱을 끼었다. 마왕들이 그런 움직임을 놓칠 리 만무했다. 시트리가 산악파 일부를 이끌고 참전하자, 아무래도 나에게 의문스러운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그러니까 바르바토스 님까지 수에 넣으면…….”
“도대체 단탈리안은 몇 분이랑 사귀고 있는 것이죠?”
나에게 뒤따라다니는 소문은 현재 세 가지.
첫 번째, 가미긴과 열애를 하고 있다.
두 번째, 마르바스와 모종의 관계에 놓여 있다.
세 번째, 시트리와 무척 뜨거운 사이다.
무려 스캔들이 세 개씩이나 되었다. 단순히 허무맹랑한 풍문이 아니었다. 세 개 모두에 정황적인 증거가 확고하게 있었다. 단탈리안이라는 이름은 절찬리에 뜨거운 씹을거리로 승화하고 있었다.
내가 협상석에 앉았는데 여마왕들이 다소 큰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세상에! 바르바토스 님과 가미긴 님을 동시에 취했으니 소녀 취향과 숙녀 취향을 두루 갖춘데다, 마르바스 님까지 넘어트렸으니까 성별에도 개의치 않는 거잖아요.”
“그뿐이겠어요. 시트리 님은 아시다시피 그렇잖아요. 달리 말해, 여성과 남성, 심지어 양성까지 전부 폭넓게 섭렵했다는…….”
“그런 변태는 들어본 적도 봐본 적도 없어요!”
“대단하네요!”
참고로 마계에서는 변태 취급이 일종의 훈장이었다. 여마왕들이 묘하게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아니, 내가 뭐 그리 변태라고 그러는가. 애시당초 저 세 마왕 중에 나랑 실제로 침대에 들어간 사람은 한 명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야외 잔디밭에서 치고 박았으니 침대에 들어가진 않았다만.
가미긴은 좋았지.
녀석은 섹스하는 내내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신음을 하면 내가 기뻐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착각도 큰 착각이었다.
나는 파트너에게 신음을 내뱉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성적인 테크닉에 만족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랬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신음을 참으려고 얼굴이 찡그려질 대로 찡그러진 모습이 훨씬 더 흥분되었다.
야아, 가미긴이 워낙에 잘 참다보니까 말이야!
그만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눈앞에 있으면 실력 좋은 전술가들은 내 평생을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저것을 함락시키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마찬가지였다.
섹스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쯤 흘렀을까. 그때까지 예닐곱 번은 절정한 것이 분명했는데도, 가미긴은 결코 뜨거운 숨결을 내쉬지 않았다.
얼굴도 눈썹을 약간 찡그렸을 뿐이지 건재했다. 멋진 인내심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대단하군요. 한 자릿수 서열의 마왕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아니, 파이몬 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파이몬? 설마 파이몬이랑도 한 건 아니겠지?’
‘했습니다.’
거짓말이지만.
‘저야말로 질문하고 싶군요. 설마 시트리 님이 파이몬 님의 의향을 배신하면서까지 저를 도왔으리라고 생각합니까?’
‘…….’
가미긴이 입을 다물었다. 시트리가 파이몬의 충실한 사냥개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산악파 마왕들도 일단 명목상으로만 파이몬을 수장 자리에서 끌어내린 다음, 파이몬의 심복인 시트리를 대신 옹립한 것이었다.
실제로 파이몬은 아직까지 산악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트리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내전에서 평원파를 도와준 장본인은 다름 아니라 파이몬이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가미긴이 나를 어마어마한 인물이라 착각하도록 유도했다. 그럴수록 미래의 나한테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이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단탈리안은 공격한다는 것은 곧 바르바토스와 마르바스, 심지어 파이몬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여겨주면 고마웠다.
‘가미긴 님. 저와 소소하게 내기를 하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내기?’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성적인 기술에 꽤나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미긴 님께서는 도저히 쉽게 함락할 수 있는 성곽이 아니시군요. 승부욕이 생깁니다.’
내가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앞으로 딱 한 시간. 한 시간 이내에……그래요. 이건 어떻습니까? 가미긴 님께서 제발 더 이상 그만하라고 울부짖으신다면, 제가 승리하는 것으로 칩시다.’
가미긴의 표정이 묘해졌다.
‘물론 가미긴 님께서 한 시간을 버티신다면 제 패배입니다.’
‘내기에 뭘 거는데?’
‘글쎄. 지금 보유하신 영지를 전적으로 인정해드릴 뿐만이 아니라, 아가레스 님이 기존에 점거하고 있던 영지까지 추가로 얹혀드리면 어떨련지요?’
그녀가 장고에 들어갔다.
가미긴은 슐레지엔 지방을 점거하고 있었다. 아가레스가 강탈한 모라비아 지방까지 가지게 된다면, 가미긴은 단숨에 영지가 두 배로 불어나게 된다. 말도 안 되게 달콤한 제안이다. 말도 안 되게 달콤하므로, 가미긴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패배할 경우에는?’
‘앞으로도 간간이 저와 놀아주십시오. 제가 가미긴 님과 몸을 섞고 싶다고 말했을 때 웬만하면 거절해주지 말아주십사 부탁드리고 싶군요.’
‘…….’
가미긴에게 판단 재료로 주어진 것은 요 한 시간 동안 내가 보여준 섹스 테크닉.
여기서 한 시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리라. 비록 여태껏 가미긴이 잘 버텼다고는 하나 한 시간 동안 성감대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 쉬운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승리의 보상이 너무나 달콤하다.
한 시간. 겨우 한 시간을 버티기만 해도 거대한 영지가 손에 굴러온다. 반면에 패배의 대가는 비교적 보잘 것 없다. 단탈리안이라는 인물이 증오스럽기는 하지만, 가끔씩 몸을 섞어주는 것쯤이야 별로 대단한 재앙이 아니잖는가?
‘좋아. 간단하네.’
가미긴이 코웃음을 쳤다.
‘약속을 어길 생각하지 마, 애송이.’
‘저라고 해서 서열 제4위인 분과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습니다.’
다만 편법을 쓸 따름이지.
내가 품속에서 물병을 꺼내들며 상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쪼록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일찍이 데이지를 함락시킬 때 써먹었던 <제레미 제작 특효 미약>이었다. 혓바닥에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몸 전체가 클리토리스가 된 것처럼 달아올랐다.
승부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삼십 분 후.
‘흐윽, 하아……끄읏, 끄흐읏…….’
가미긴은 잔디밭에 망가진 장난감처럼 널브러져서 전신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육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는지 엉덩이며 어깨가 제멋대로 들썩였다. 꼭 뭍에 올라온 물고기 같네,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가미긴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이 닿은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가미긴이 흐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신체는 더없이 예민해져 있었다.
‘이런. 혹시 방금 가버리셨습니까? 손을 댔을 뿐인데도 가버리다니, 가미긴 님께서는 터무니없는 마조히스트 변태셨군요. 저 단탈리안,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흐끄윽……흐읏, 흐으윽……!’
‘자아. 아직 한 병 더 남았습니다. 입을 벌려주십시오.’
가미긴이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 손에는 미약이 담긴 물병이 들려 있었다.
‘한 병, 더 있다고……?’
‘예에. 저에게는 무척 뛰어난 약사가 있어서요. 한 방울만 마셔도 보통 사람은 온몸이 민감해져서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만, 역시 가미긴 님께서는 다르시군요. 한 병을 통째로 마셨는데도 멀쩡하시다니!’
내가 싱긋 웃었다.
용사 후보생인 데이지조차 고작 한 방울에 함락했다. 그런 물건을 가미긴은 병째로 들이킨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뇌속이 파열해버릴 것처럼 뜨겁지 않을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과연 최고위 마왕이었다.
‘이거, 이거. 어쩌면 제가 패배할지도 모르겠네요. 무척 초조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미긴 님. 부디 한 병 더 드셔주시길.’
‘…….’
‘아니면, 설마. 설마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물병을 좌우로 흔들었다. 보라색 물약이 기분 좋게 찰랑거렸다.
‘제발 그만해달라고 말씀하실 생각인지요?’
‘…….’
‘저야 이견이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만해달라고 말씀해주시면 즉각 약물의 투입을 그만두겠습니다. 제가 무슨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아니고서야 가미긴 님께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기라도 하겠습니까?’
참고로 무진장 즐거웠다.
‘자아, 가미긴 님. 말씀해주십시오. 저에게 약물을 그만 먹이라고, 그만해달라고 말씀해주시지요.’
‘……먹여.’
가미긴이 표독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까짓 물건에 좌절할 정도로, 시시하게 살아오지 않았어.’
‘오오! 훌륭합니다. 쎄시봉, 쎄시봉!‘
내가 병마개를 땄다.
‘그러면 당신께서 바라시는 대로, 조속히 두 번째 약물을 헌상하지요.’
가미긴의 입술 사이에 약물을 흘려넣었다. 제레미가 이거 하나를 제작하는 데 천금을 소모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서열 제4위의 마왕에게 아까워서 쓰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에게 쓰라는 말인가?
‘……!’
잠시 뒤, 가미긴이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아, 으, 으, 하고 단락적인 신음이 입술의 틈새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정원에 바람이 불자 신음이 한층 강해졌다. 바람결에도 반응할 만큼 민감해졌다는 얘기였다.
‘하아, 으으으……끄으으윽…….’
‘정말로 대단합니다. 아직도 꿋꿋하게 버티시는군요. 이 얼마나 엄청난 의지, 이 얼마나 엄청난 인내심입니까? 자아. 가미긴 님, 입을 벌리십시오.’
‘하, 읏으……?’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가미긴이 날 바라보았다. 어째서냐고 묻는 시선이었다. 내가 미소를 활짝 지었다.
‘저에게는 아직 물약이 여섯 병 남아 있습니다.’
가미긴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아……?’
‘가미긴 님께서 워낙에 엄청나신지라 이거, 아무래도 제가 가진 전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위험하겠는걸요. 당신과 같은 강적은 처음입니다.’
‘잠……깐…….’
‘오오. 말씀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직 이 정도는 끄떡도 없다는 것이지요? 과연 가미긴 님입니다. 자아, 제 경의를 다 받쳐서 진상하겠습니다.’
가미긴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물약 한 병을 그녀의 입에 쑤셔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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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말로 '이런' 녀석이 주인공입니까?
A: 예. 정말로 '이런' 녀석이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