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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230화 (230/510)
  • 00230 마왕결전(魔王決戰)  =========================================================================

    “…….”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가미긴에게 분노하는 것은 잠깐 뒤로 미루어두자. 분노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렇다면 무엇에 호소하여 상황을 반전시킬까.

    법도와 예의? 언제 그런 것에 신경을 썼는가. 마왕들은 재미난 사건이 일어났다며 좋아할 뿐이겠지. 지금도 방청석에서 열댓 명의 마왕이 두근거리는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재자의 체면……대마왕 바알에게 호소하여 가미긴을 공격해본다. 그런 수도 있다.

    ‘왠지 몰라도 바알은 나를 꽤 싫어하지.’

    문제는 바알이 어느 정도의 처벌을 약속해줄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명분이 있으나 가미긴에게도 변명거리가 있다. 내 주장을 들어주어 전쟁 자체의 책임을 가미긴에게 추궁할 것인가? 아니면 가미긴의 주장을 들어주어 단지 실수의 책임만을 추궁할 것인가. 변명거리가 있으면 정치꾼은 얼마든지 얼굴에 철면피를 깔 수 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가미긴에게 말했다.

    “무려 오 할이나 되는 영토를 받으시길 원하다니. 한 명의 마왕이 독식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땅이 아닌지요.”

    “때로는 과식할 필요가 있으니까.”

    “오 할의 영토를 받아챙긴 다음에 각각 절반씩 아가레스 님과 공유한다……혹시 그런 의도 아닙니까?”

    가미긴이 웃었다.

    “무슨 증거로 나를 그렇게 몰아세우는지 모르겠네에.”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했다.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우리한테서 5할의 영지를 뜯어내서 아가레스와 가미긴이 사이좋게 나눠 가지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후로 한두 시간에 걸쳐서 서로의 신경줄을 건드려가며 조용히 싸웠다.

    소득이 없는 싸움은 아니었다. 적어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냈다. 벌써부터 무언가를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바르바토스가 아가레스를 물리치느냐 마느냐, 그것만으로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이제부터는 유동적으로 상대를 공략해야겠지.

    힘겨운 외교전이 될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  *  *

    바르바토스는 나의 의견을 전달받자마자 개전을 결심했다.

    “우리가 아가레스 년을 흠씬 두들겨패주면 끝날 일이야.”

    바르바토스 말이 옳았다. 평원파가 아가레스의 군세를 섬멸시킨다면 협상이고 뭐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명분과 실리를 전부 거머쥔 채 아가레스와 가미긴을 압박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가레스가 영토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다면서. 빈드보나는 이미 함락되었고, 브란덴부르크와 작센만 간신히 남아 있잖아. 괜찮겠어?”

    “아가레스가 비록 일신의 무력이 강대하다 해도 머리는 짱구야.”

    마법수정구에서 비추는 바르바토스가 자신있게 말했다.

    “경계할 필요는 있어도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지.”

    바르바토스는 곧바로 열여덟 명의 평원파 마왕을 규합했다. 그 군세는 2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상대하는 아가레스 역시 2만 명의 군세를 이끌고 있었는데, 정보에 따르면 일부 무속속 마왕들이 아가레스에게 협조했다.

    “속전속결로 깔아뭉개겠어.”

    “……그러다 기습받으면 어쩌려고?”

    “아가레스처럼 멍청한 년이 그런 꼼수를 부릴 리가 없지. 그 년 머릿속에는 정면대결이랑 회전, 두 가지 단어밖에 안 들어 있어. 단탈리안. 마왕이 살아온 세월이 이천 년을 넘으면 말이야, 결코 더 이상 사람이 변하지 않는 법이야.”

    바르바토스의 전략적인 안목은 언제나 정확했다.

    평원파는 가장 짧지만 동시에 가장 험준한 지형을 골라서 진격했다. 만약 아가레스가 그곳에 복병을 주둔시켰다면 평원파는 크게 곤혹을 치룰 것이었다. 그러나 아가레스는 자신이 점령한 영토에 틀어박혀서 평원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심지어 아가레스는 평원파가 느긋하게 영채를 세우는 것까지 내버려두었다.

    평원파는 이제 막 힘겹게 강행군을 펼쳐왔다. 이때 공격했더라면 아가레스가 크게 유리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레스는 그저 자신 역시 느긋하게 성밖에다 군막을 세웠다. 성 바깥에다가.

    나는 여기까지 전황을 보고받고 안심했다.

    과연. 요컨대 아가레스는 벨레드 형님이나 시트리와 같은 스타일이었다. 전략적인 안목이 부재했으며, 자기 자신의 강력함을 무기로 삼아 전투했다. 이런 타입의 지휘관은 일군에서 돌격부대를 맡을 만했다. 그러나 군 전체를 통솔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내가 점점 안심하는 것과 정반대로, 바르바토스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그녀한테 물었다.

    “이미 끝난 거 아니야?”

    “전혀. 이제부터 시작이거든.”

    바르바토스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는 바로 다음날 밝혀졌다.

    이날 바르바토스군과 아가레스군이 처음으로 격돌했다. 바르바토스는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었는데, 제1군을 자신이 맡았고, 제2군을 벨레드 형님이 맡았으며, 제3군을 제파르 대장이 맡았다. 전형적인 평원파식 진형이었다.

    제파르 대장이 중군을 맡아서 적군의 공세를 버텨준다. 그 사이, 바르바토스와 벨레드 형님이 양쪽으로 빠져나가서 적군을 포위한다. 이른바 포위섬멸을 노린 것이었다.

    반면에 아가레스군의 진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전투가 끝난 다음에 퍼진 소문이다. 풍문에 따르자면, 아가레스는 다가오는 평원파의 2만 군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고 한다.

    서열 제2위의 마왕이자 「가장 강대한 마왕」이라고 불리우는 아가레스는 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만의 병력을 너에게 주마. 저놈들의 공세를 막아내라.”

    “예? 그러면 아가레스 님께서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제2군을 이끌고 저 우둔한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부장이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송구하옵니다만, 가장 강대한 분이시여. 아군에는 이만 이외에 달리 병력이 없습니다. 어찌 제2군을 편성한다는 말씀입니까?”

    아가레스가 붉은 늑대에 올라타며 말했다.

    “내가 곧 제2군이다!”

    그러자 아가레스는 질풍이 되어 정말 '혼자서' 적군을 향해 돌격했다. 아가레스 휘하의 다른 마왕들은 기겁했으나, 명령이 지엄한지라 아가레스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아가레스가 향한 곳은 평원파의 제2군. 벨레드 형님이 통솔하는 오천 명의 부대였다. 벨레드 형님은――여기서부터는 본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이다――적군의 총사령관이 홀로 늑대를 몰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저거, 아가레스 맞지?”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만.”

    벨레드 형님의 부관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만했다. 세상에 어떤 총사령관이 실성해서 단독으로 공격을 펼치겠는가?

    벨레드 형님은 잠시간 멍한 눈길로 저 먼 곳을 쳐다보았다. 아가레스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크하하! 아가레스 님은 실로 두려움이란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벨레드 형님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단기필마로 오천의 군대를 향해 주저없이 한몸 내던지니, 마치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로를 향해 낙화하는 꽃송이라!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 같지 아니한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아가레스여!”

    벨레드 형님이 거대한 도끼를 들쳐맸다.

    “그대의 의지, 나 벨레드가 기꺼이 받아주겠다! 전군! 돌격하라!”

    벨레드를 필두로 하여 오천의 평원파 제2군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목표, 마왕 아가레스만을 노렸다. 그리하여 아가레스 한 명과 오천의 군대가 평원 한가운데에서 격돌했다.

    제일 먼저 아가레스와 격돌한 사람은 벨레드 형님이었다. 마왕군에서 무투파를 대표하는 두 명의 마왕은 서로 할버드와 도끼를 휘두르며 20합을 겨루었다. 하지만 20합뿐이었다.

    아가레스의 할버드가 번쩍이자 공중에 무엇인가가 솟구쳤다. 벨레드 형님의 얼굴이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마왕 벨레드의 오른팔이 어깨부터 잘려나갔다.

    그것은 불의의 일격에 당한 게 아니었으며, 벨레드 형님이 말하기로, 단지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바친 것이었다. 벨레드 형님은 오른팔을 희생하며 옆으로 뒹굴었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애송아, 거기서 우물이나 퍼마시렴.”

    아가레스는 땅바닥에 나뒹구는 벨레드 형님을 바라보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녀는 거기서 관심이 식어버렸는지, 벨레드 형님을 뒤에 내버려두고 다음 목표를 향해 휘몰아쳤다. 다음 목표란 벨레드라는 사령관을 잃어버린 나머지 오천 명의 군병이었다.

    아가레스가 남색 빛깔의 오러를 폭발시키며 포효했다.

    “그라라라라아아아――!”

    짐승과 같은 울부짖음을 몸에 두르고 마왕 아가레스가 돌진했다. 그녀가 할버드를 횡으로 내리칠 때마다 수십의 병사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내장과 핏물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제2군에 속한 마왕들은 오우거를 총동원하여 이 가공스러운 적수를 막아세우려 했다. 스무 마리의 오우거가 멧돼지처럼 나아갔다.

    그러나 아가레스는 단지 한 번의 내리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오우거를 격살했다. 인간과 마인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산군(山君) 오우거들은 고작 오 분도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코를 처박았다. 평원파에는 아직 수천 명의 병력이 남았지만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제대로 서 있을 리 없었다.

    마왕 아가레스가 전장에 강림했다.

    그녀는 마치 평원파를 비웃듯이, 바르바토스를 능욕하듯이 전쟁터를 휘저었다.

    「전략」이라고? 「전술」이라고? 그런 것은 약자들의 수작에 불과하다.

    진정한 강자에게는 전략적인 안목도, 전술적인 기교도 필요없다. 강자에게는 단지 한 자루의 창과 몸뚱어리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것이야말로 마왕이 전쟁하는 방식이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아가레스는 입가에서 끊임없이 광소를 터트렸으며, 웃음소리가 하늘을 찢을 때마다 평원파의 몬스터 군대가 공포에 떨었다.

    바르바토스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녀가 욕지거리를 흘렸다.

    “애미 뱃속에서 탯줄로 자위했을 년 같으니라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황이 불리하게 흘러가리라. 바르바토스가 몸소 전투 대낫을 휘어잡고 소리쳤다.

    “싸움 좀 한다는 놈들은 죄다 날 따라와!”

    바르바토스를 비롯하여 총 여덟 명의 평원파 마왕이 아가레스에게 달려들었다. 바르바토스는 직접 아가레스와 일합을 주고받으며 일기토를 벌였다. 무력의 측면에서 아가레스에게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바르바토스는 적절하게 흑마법을 운용함으로써 버텨냈다.

    바르바토스의 그림자인 흑기사들 또한 동원되었다. 사백 명이 넘는 죽음의 기사들이 순서를 번갈아가며 아가레스와 상대했다. 이렇게 되자 과연 균형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아가레스와 바르바토스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혼전을 자아냈다.

    그것은 바르바토스의 패배를 의미했다.

    평원파의 지휘관들이 아가레스를 막기 위해 대거 빠져나가자, 2만의 아가레스군이 전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평원파는 서서히 밀려나갔다. 더 이상 피해가 속출하면 곤란했다. 바르바토스는 이빨을 꽉 물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전투는 평원파의 패퇴로 끝났다.

    보고를 받고 나는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존나 개 같은 난이도, 씨발.”

    제아무리 아가레스라고 해도 <던전 어택>에서 저 정도 포스를 뿜어내지 않았다!

    뭐냐. 무슨 마왕군의 최종병기냐? 단기필마로 군대를 상대하다니,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어떠한 소드마스터도 펼쳐낼 만한 묘기가 아니다. 용사인 주인공이 만렙이라도 찍으면 또 모를까!

    나는 이런 보고를 받은 상태에서 가미긴과 제2차 협상에 들어가야만 했다. 빌어먹을 일이 아니고 뭐겠는가.

    협상석에 앉은 가미긴은 여느 때처럼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의 의미만큼은 예전과 달랐다. 꼴 좋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좋은 말할 때 듣지 그랬나. 그런 의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가미긴이 나를 보자마자 헤프게 웃었다.

    “협상하는 대가로 합스부르크 영토의 6할을 분배해줘~.”

    “…….”

    “미리 말해두지만, 이거 대박 할인 가격이다아?”

    죽여버리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전쟁 직전 합스부르크 중북부 일대의 영토 현황을 설정란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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