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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222화 (222/510)
  • 00222 마녀의 예언  =========================================================================

    어느 날, 마왕방에 돌아오니 바르바토스가 있었다.

    “안녕? 여전히 낯짝이 재수없네. 참, 맛있어보여서 마시고 있었어.”

    “…….”

    방금 내가 무슨 일을 체험했는지 그대로 말하겠다. 아니, 체험했다기에는 완벽하게 나의 이해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나는 마을에서 영주 업무를 끝마치고 기분 좋게 퇴근했다. 그런데 마왕방 문을 열자, 하얀 머리카락의 여자애가 침대에 떡하니 누워 있었다. 내가 아껴둔, 비장의 최고급 포도주를 병나발로 마시면서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낯짝이 재수없네!’라는 말이 마치 인사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어버렸다. 만약 그런 대사를 인사말로 쓰는 부족이나 나라가 있다면 세 시간 만에 내전으로 멸망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이 로리년.

    “으――에――어?”

    나는 다가가서 바르바토스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나 최면술이나 깜짝 분장이 아닐까 기대했다. 바르바토스가 눈빛으로 뭐하는 짓거리냐고 물어왔다.

    “딴죽을 걸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만, 이것부터 질문하자. 합스부르크에서 섭정 노릇이나 하고 있을 녀석이 왜 여기에 있냐?”

    “아가레스 년, 가미긴 년이랑 싸우는 것도 지쳤어. 썅.”

    바르바토스가 내 손을 툭 쳐내고 한숨을 쉬었다.

    과거에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땅에서는 현재 절찬리에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원파를 영도하는 마왕 바르바토스, 서열 제2위의 마왕 아가레스, 서열 제4위의 마왕 가미긴. 이중에서 바르바토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아마 일이 썩 잘 풀리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영토 내놓으라고 지랄발광을 떨어대는데 버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영토를 내줬냐? 으이구, 병신.”

    “병신한테 병신 소리 듣기는 싫거든요, 상병신아.”

    바르바토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포도주를 건네주었다. 나는 침대에 털썩 앉고 한손으로 병나발을 불었다.

    뭐, 바르바토스에겐 그녀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다. 하지만 바르바토스는 한 명의 마왕인 동시에 평원파라는 거대 집단의 수장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야만 한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해서 마음대로 풀 수도 없다.

    버티다 못해 반쯤 도피하는 심정, 반쯤 휴식하는 심정으로 내 던전에 왔겠지. 지친 사람을 왜 왔냐며 쫓아낼 정도로 나는 박정하지 않았다.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참, 네 마왕성 보안 열라 허술하더라. 나 여기까지 오는 데 한번도 안 걸렸다? 금화를 수백만 개 쏟아붓는다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더니 존나 걸레처럼 아무한테나 가랑이를 벌리네. 앞으로 네 마왕성은 걸레 마왕성이라 부를게, 깔깔.”

    “…….”

    역시 쫓아내고 싶었다. 나쁜 년.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날 알아채는 녀석이 한 명 있더라고?”

    쓰윽, 하고 바르바토스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거 참 용한 녀석이라서 일단 잡아놨지.”

    손가락을 따라서 내가 고개를 올려보자――천장에 데이지가 데롱데롱 매달려 있었다. 마치 거미줄에 붙잡힌 날벌레처럼. 데이지가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

    “…….”

    너 거기서 뭐하냐?

    저라고 알겠습니까. 보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무언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 둘 다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참고로 데이지는 자기 부모님과 상봉한 이후, 내 마왕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하녀로 지내었다. 내가 마왕방을 비운 사이에 그만 봉변을 당해버린 것이었다.

    이곳에서 오직 바르바토스만이 신나서 떠들었다.

    “투명마법에 은신마법까지 곁들었는데 그냥 날 간파하는 것 아니겠어? 보아하니 이제 갓난아기에서 벗어난 인간년 같은데, 본능이 무슨 제6감 수준이야, 제6감. 너무 신기해서 이리저리 시험해봤지.”

    바르바토스가 내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짜식. 하여간 보는 눈깔이 있어, 보는 눈깔이. 쟤 아주 난 년이더라고. 저런 인재는 또 어디에서 구해왔대? 그래서 말인데, 저 꼬맹이 나 주라. 잘 키워서 좀 써먹자.”

    “즐.”

    내가 중지와 검지 사이를 벌여서 V자를 만들었다. 이 세계관에서는 대충 엿이나 처먹으라는 제스처였다.

    “내가 저 녀석 빼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건 모르지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지.”

    바르바토스가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나는 그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바르바토스의 손안에서는 다름 아니라 투명색 슬라임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 꼬맹이 몸속에다 꽤나 재미난 걸 심어놓었더라?”

    “…….”

    “우리 단탈리안이 잠깐 못 본 사이에 아주 변태가 되셨어?”

    내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나랑 놀아재낄 때는 이렇게 변태적인 짓거리는 절대로 못하겠다고, 응? 제발 정상적으로 성교하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주제에 말이야. 정작 뒤에서는 몰래 이런 놀이를 즐겨? 어이, 단탈리안. 자칭 세상에서 제일 착실하고 성실한 마왕 씨. 음란하고 변태적인 나한테 이것이 대체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보시지?”

    “자, 잠깐만. 바르바토스. 오해다. 그건 오해야.”

    내가 서둘러 슬라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바르바토스는 가볍게 내 손짓을 피했다.

    “여기엔 네가 상상도 못하는 사정이……무척 깊은 사정이 있어! 절대로 변태짓이 아니라고!”

    “오호라. 얼마나 깊은 사정이길래 열한 살짜리 여자애한테 고문 슬라임을 집어 넣어야만 했는지, 개인적으로 무척 관심이 가는걸.”

    바르바토스가 슬쩍 나에게로 몸을 기대왔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젠장! 이 녀석, 벌써부터 눈동자가 색정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목이 막혔다.

    나는 녀석이 걸어대는 색욕 마법에 걸리지 않도록 무진장 애를 쓰며 말했다.

    “그러니까, 쟤가 겁나게 위험한 놈이라서……나한테 반항하지 못하게 심리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서……야! 만지지 마!”

    “어째서 여자 구멍에다 슬라임을 넣는 게 심리적인 안전장치가 돼? 이해가 안 되는걸.”

    바르바토스가 히죽 웃으면서 나의 가랑이를 슬슬 문질렀다.

    “아무튼 지금 여기에선 하고 싶지 않다고! 어린애가 보잖아!”

    “어린애를 슬라임으로 괴롭힌 남정네가 할 소리는 아닌데. 그리고, 왜? 그런 거 있잖아.”

    그녀가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볼수록 흥분되기도 하거든.”

    결국 하고 말았다.

    데이지가 천장에 매달려서 빤히 내려다보는 가운데.

    더군다나 이번에는 바르바토스가 주인 역할이었고 내가 노예 역할이었다. 나는 열한 살 소녀가 관람하는 와중에 그렇고 그런 플레이를 강요받았다. 이 무슨 빌어먹을 일인가.

    제발 용서해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오히려 바르바토스는 “깔깔깔! 더, 더 울부짖어봐, 더러운 개자식아!” 하고 달아올랐다. 그렇다. 바르바토스는 원래 그런 녀석이었다. 옛날옛적부터 되바라질 녀석이었다.

    나는 내가 울어봤자 상대방이 좋아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네 여자들 다 불러봐.”

    플레이가 끝나고 바르바토스가 말했다. 그녀는 내 담뱃대를 강탈해서 멋들어지게 연초를 피웠다. 반면에 나는 침대 구석에 앉아 우울해하고 있었다. 남녀의 역할이 심히 뒤바뀐 것 같다만, 상대가 바르바토스이다. 뭘 어쩌겠는가.

    “내 여자들이라니?”

    “너가 아끼는 여자들 있잖아. 월맹군에 부관으로 데려왔던 년이랑, 네가 흑색 허브 팔아치울 때 도움줬다는 년. 걔네 말고도 너랑 떡치는 여자 있으면 불러오고.”

    그건 또 왜?

    반항 어린 시선으로 쏘아보자 바르바토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거 부르라고 하면 얌전히 부를 것인지 잔말이 많아요.”

    약자여서 더럽게 서러웠다.

    잠시 뒤, 내 마왕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막 던전 지하 1층 공사에 들어간 라피스, 고블린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에 매진하던 라우라, 팔라티노 언덕에서 농땡이를 피우던 제레미까지. 내 주변에서 친밀하다 싶은 여자는 몽땅 집합한 셈이었다.

    “미천한 자가 위대한 존재를 뵈옵니다.”

    “군단장 각하께 예를 올리나이다.”

    “영원불멸의 마왕 전하를 뵈옵니다.”

    그녀들이 바르바토스에게 극진하게 예를 올렸다.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절했다.

    서열 제8위의 마왕이면 사실상 세계에서 제일 고귀한 군주나 다름없었다. 라피스나 제레미처럼 출신이 미천한 마인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겠지. 둘 모두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나 지금 바르바토스는 알몸이었다. 나와 섹스한 다음 옷도 안 입었다. 정사의 흔적이 남은 그대로 애들을 맞이했다. 애들은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그래. 고개 좀 들어봐라.”

    바르바토스가 한손으로 턱을 괴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녀는 내 전용으로 제작된 옥좌에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단탈리안이랑 가장 먼저 만난 여자? 손 들어.”

    “……소인입니다.”

    라피스가 무표정하게 손을 들었다.

    “넌 단탈리안 아래에서 무슨 역할을 맡고 있는데?”

    “임시적이긴 하오나 재무상서를 맡고 있습니다.”

    으음, 하고 바르바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무상서면 제일 높은 거지. 그럼 이중에서 단탈리안이랑 가장 떡을 많이 친 여자는?”

    라우라가 오른손을 들었다.

    “황공하오나, 소녀입니다. 군단장 각하. 소녀는 군무상서를 맡고 있나이다.”

    “왠지 너일 것 같더라.”

    바르바토스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몇 번 쳤는지 기억하냐?”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백여든 번은 아니올까 하옵니다.”

    “음. 그 정도면 나보다 많이 했네.”

    내 눈앞에서 여자들이 나랑 몇 번 잤는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논하고 있었다. 너무나 포스트모던적인 광경에 나는 졸도해버리고 싶었다. 이건 뭐냐. 새롭게 개발된 고문법이냐?

    “여기서 가장 변태적으로 단탈리안이랑 놀아본 사람은?”

    “……소녀가 야외에서 해본 적은 있습니다만.”

    라우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바르바토스가 혀를 찼다.

    “쯧쯧, 그걸로는 택도 없지. 변태의 가장자리에도 못 닿았어. 또 없냐?”

    “소인이 오페라 관객석에서 한 경험은 있습니다.”

    제레미가 말했다.

    “오페라 배우들이 빤하게 정면으로 보이는 관객석이었습니다, 전하.”

    “그나마 좀 낫네.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한걸.”

    “…….”

    라피스가 경악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무표정하게 경악하고 있었다. 당장 잔소리를 퍼부어주고 싶지만 차마 바르바토스 앞이라 참고 있다, 그런 얼굴이었다. 아마 바르바토스가 떠나고 나서는 라피스한테 시달릴 것 같았다…….

    “꽁냥이들아. 너희가 보다시피 단탈리안 이 녀석은.”

    바르바토스가 천장을 가리켰다. 거기엔 아직 데이지가 매달려 있었다.

    “난봉꾼이다. 어디 나갔다 하면 꼭 여자를 홀리고 오지. 어쩌면 내가 모르고 너희도 모르는 애인을 두세 명쯤 숨겨뒀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연애자유주의자야. 하지만 세상만사에는 구획정리가 필요한 법이지. 안 그래?”

    “그러하옵니다, 전하.”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바르바토스가 씩 웃었다.

    “여기서 확실히 밝혀두지. 본처(本妻)는 나다.”

    “…….”

    “너희는 전부 첩이야. 재무상서랑 군무상서, 그리고 너 엘프. 이렇게 세 명까지만 첩으로 인정하겠어. 이외에 단탈리안이 또 여자를 만들겠다면 반드시 정실인 나의 허락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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