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1 D급 모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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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도시에 수상쩍은 소문이 돌았다.
풍문이 전하기로 무려 백 명이 넘는 모험자가 야밤에 도주했다던가. 실제로 도시에는 부랑자의 숫자가 훌쩍 줄어들었다.
시민들은 소문을 주고받으며 수군거렸다.
“소식 들었나? 이번에 모험자들이 마왕성에서 단단히 한몫 잡았다는군.”
“도시에 세금을 내는 것이 두려워서 단체로 도주했지. 현지의 주민들이 증언했다네.”
“거기 마왕성에 그렇게 금은보화가 넘쳐난다면서?”
모험자들은 마왕 단탈리안을 토벌하는 데 실패했다.
그 대신, 몬스터들을 잡아죽이며 엄청나게 큰 이득을 벌어들였다. 너무나 돈벌이가 짭짤했던 나머지 모험자들은 세금이 두려워 아예 다른 도시로 이주해버렸다…….
“재화를 두고 모험자들끼리 싸웠다고 하는데.”
“마왕성에서 죽은 사람보다 내분에 휘말려서 죽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군!”
“으이구. 모험자란 놈들이 그렇지 뭐.”
소문에 소문이 덧붙어져 불어났다.
며칠이 지나자, 산더미만한 금화를 둘러싸고 백오십 명의 모험자가 패싸움을 벌여 그만 하룻밤 만에 모조리 죽어버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시민들은 모험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이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유언비어였다.
백쉰다섯 명의 모험자 중에서 생존자는 불과 두 명. 제레미와 나뿐이었다.
나머지 인원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던전에서 뼈를 묻었다. 고블린들은 그날 성대하게 축제를 벌였다. 고블린들은 인육을 뜯어먹으며 마왕 전하 만세를 연호했다.
포상금을 노리고 달려든 모험자가 백오십 명만은 아니었다. 학살이 일어나고 며칠 뒤늦게 도착한 모험자도 있었다. 다만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차마 마왕을 토벌할 용기가 없어 던전 입구에서 고블린이나 몇 마리 잡고 돌아갔다. 그들에게 소문을 흘렸다.
한 발자국 늦어버렸다. 대박을 놓쳐버렸다. 소수의 모험자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성난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허름한 술집에서 분노하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갔으면!” 하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정말이지 운이 좋은 놈들이 아니고 뭔가?
뭐, 이번 모험대는 어차피 부차적인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나의 영지에 사법권력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마을의 촌장과 지주를 몽땅 불러모았다. 스무 명 가량 되는 마을 유지. 이들이 영지를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이들이자 앞으로 나의 최측근이 될 가주(家主)들이었다.
“본인은 그대들이 바라는 대로 극악무도한 모험자 무리를 물리쳐주었다.”
내가 장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들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백오십 명에 이르는 모험자를 반나절 만에 괴멸시키는 영주. 달리 말해, 언제든지 자신들도 파리 목숨처럼 쉬이 비틀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임을 유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은 그대들에게 숨기는 바가 없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생긴다면, 처음에는 자그마한 틈에 불과할지라도 서서히 벌어져서 이윽고 영지 전체가 그 구멍에 잡아먹히고 만다. 마을의 장로들이여.”
나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했다. 유지들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본인은 결코 이번에 모험자를 격퇴해준 것이, 본인의 완전한 선의(善義)와 자비에서 비롯한 행위라며 감언이설을 일삼지 않겠다. 그대들이 내게 충성하는 이상, 나 역시 그대들을 인정한다.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백쉰다섯 명의 모험자를 격살했노라고 본인은 솔직하게 밝힌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사법권을 나에게 넘길 것.
마을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절대로 주민들끼리 몰래 처리하지 말고, 다른 마을에 가서 재판받을 것. 그리하여 법정이 바깥 세상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
만약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불합리한지 만인이 판단할 수 있게끔 재판이 공개될 것. 그리하여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개선해나갈 여지가 생겨날 것.
유죄를 판결하고 무죄를 판결한 그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명확하게 될 것. 그리하여 잘못된 판결에는 불만이 성토되고, 훌륭한 재판에는 찬양이 뒤따를 것.
결과적으로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판옵티콘의 영지가 들어설 것.
“마을의 유지들이여. 이 재판제도를 인정하겠는가?”
“물론이옵니다, 전하. 뜻대로 하소서.”
스무 명의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지금 이곳은 내 영지 한가운데에 솟아난 언덕이었다. 난쟁이 건축가들한테 시켜서 여기에 원형극장을 지었다. 과연 마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건축업자답게 사흘 만에 그럴듯한 원형극장이 완성되었다.
정중앙이 음푹 아래에 들어가고, 관객석들은 계단이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나는 정중앙 부분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반면에 유지들은 내 키보다 높은 관객석에 앉았다. 그들은 이러한 자리 배치가 “지나치게 불경하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뭐, 내가 강권하자 어쩔 수 없이 앉았지만 말이다.
굳이 이런 공간을 만든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대들은 앞으로 이곳에서만 법정을 열 수 있다. 재판에 참여하는 자는 모두 지금 본인이 서 있는 곳에 올라와야 한다. 또한 재판을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관객석에 앉을 수 있다.”
법정을 공개하려는 의도였다.
마을주민들의 대소사가 환한 태양 아래에서 열리면 열릴수록, 그만큼 나는 그들의 사정을 잘 파악한다. 더 세심하게 그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재판을 벌이는데 누가 지켜보는지 모른다. 내 끄나풀이 섞였을 수도 있다. 장로들은 재판에 임하면서 ‘혹시 내가 잘못 발언하면 마왕 전하의 귀에 흘러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겠지.
바로 그 ‘혹시’가 나에게 보이지 않는 권력을 쥐어줄 것이다.
내가 일일이 유지들을 감시할 필요가 없다. 진정으로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에게 심어진 의심과 의혹,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시자이다.
유지 중 한 사람이 극히 공손하게 질문했다.
“삼가 말씀을 아뢰옵니다. 모든 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전하?”
“아아. 모든 재판이다. 그대들에게도 생업이 있을 터, 재판은 매달 두 차례씩만 이루어진다.”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재판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면 안 된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모든 것이 명백하게. 마치 노출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전부 광장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여기에 한 가지 수법을 더 섞는다.
내가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을의 유지들이여. 본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재판관으로서 임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본인도 이곳에 법정을 세울 것이다.”
“전하까지……?”
“그렇다. 일단 재판관이 되면 그 사람은 단지 한 사람의 공명정대한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마왕이든 노예이든 상관없다. 명심하라. 그는 단지 한 사람의 공명정대한 재판관이어야 한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이 원형의 법정에서 만인이 그대들의 재판을 바라볼 것이다. 설령 바라보는 눈이 적더라도 반드시 입소문을 타서 마을과 마을에 퍼질 것이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마을의 모든 인간이 바라보는 앞에서, 여신들께서 굽어살피는 가운데에서 재판에 임한다고 생각하라.”
고로, 하고 내가 말했다.
“그대들은 긍지를 품으라. 그대들이 내리는 재판 하나하나가 본보기가 되고 정의의 목록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올바른 해답이고 무엇이 현명한 해결책인지, 만인만신(萬人萬神) 앞에서 큰 목소리로 밝혀라.”
수법이란 다름 아니라 사람들에게 '긍지'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업무가 아니다. 여기엔 매우 중대한 가치가 걸려 있다. 정의와 법도, 도덕, 윤리,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자네들의 어깨에 놓인다. 그 임무를 운반하는 자네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인간'이다.
“영지의 주인은 과연 마왕인 본인이다. 하지만 정의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상에 윤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따로 정해져 있던가?”
“…….”
유지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여타의 영주가 말하는 것과 무언가가 다른 것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그들도 깨닫고 있었다.
“물론 신들께서 정의를 관장하고 윤리를 다스리신다. 그러나 신께서 지상의 법관을 맡아주시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대들 한명한명이 스스로 정의의 주인이요 윤리의 주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이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시점은 바로 자신의 하루하루가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이다. 학교를 다녀서 뭣 하는가? 지금 내가 고생해서 하는 것들이 결국은 시시한 업무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러나 자신의 일에 중대한 사명이 걸렸다고 믿는다면. 자기 자신이 실제로 법률을 실행하고 정의를 집행한다고 느낀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맹목적으로 변한다. 자신의 일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한다. 긍지를 품으라, 필멸자들이여!”
나는 그처럼 의심하지 않는 일개미로 꾸려진 영지를 원한다.
“그대들 스스로 법률의 대행자이자 책임자로 거듭나라. 신들의 하인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서 심판하라.”
절대로 마왕 단탈리안의 통치를 의심하지 마라.
재판이 잘못되었는가? 그것은 단탈리안의 잘못이 아니다. 재판관들이 잘못했다. 영지민인 인간들이 잘못했다. 왜 조금 더 현명하게 재판하지 못했는가? 어리석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다…….
마왕 단탈리안은 언제까지나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길이 보존된다.
“오늘부로, 여기 언덕을 법률과 정의의 궁전이라는 의미에서 팔라티누스(Palatinus)라 명명할지어니. 신께서 현현하시지 않은 지상에도 영원불멸의 왕국이 생겨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오로지 그대들 손에 달렸노라.”
“마왕 전하 만세!”
누군가가 흥분에 못 이겨 소리 질렀다.
“위대한 단탈리안 만세!”
“팔라티노 단탈리안 만세!”
목소리는 곧바로 전염되어 스무 명의 유지가 만세를 울부짖기 시작했다. 원형극장은 열기로 후덥지근해졌다. 그들은 눈동자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나는 영주임에도 몸소 극장에서 가장 낮은 곳에 섰다. 최고 권력자가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었다. 유지들도 망설임 없이 이곳에 설 수 있겠지. 아니, 마왕과 똑같은 곳에 선다는 사실 자체에서 자긍심을 느끼리라.
나는 제레미를 비롯하여 암살단원들을 치안대로 편성했다. 혹시 모험자가 마을에서 행패를 부릴 경우 이들 치안대가 단숨에 해결한다. 어지간한 모험자가 아니고서야 제레미의 암살단을 당해낼 수 없겠지.
더불어서 팔라티노 언덕에 성곽을 짓기로 했다. 대규모의 군대가 몰려오면 암살대만으로 막을 수 없다. 그럴 경우에는 주민들이 마을에서 대피하여 팔라티노 언덕에 모여든다.
‘마을들은 각자 떨어져 있으면서도 재판과 군정(軍政)에 있어서는 하나가 된다.’
재판과 군정, 두 가지만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게임은 끝난다.
달리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마을 유지들의 절대적인 환호성을 받으면서 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후, 팔라티노 언덕의 법정에는 내가 손수 조각칼로 글귀를 새겨넣었다.
『그대들, 가장 긍지 높은 하인이 될지어다.』
물론 블랙유머였다. 사실 내가 말하는 것은, 하인이지만 긍지를 품으라는 소리였다. 하인으로서의 긍지를.
과연 그걸 알아차릴 사람이 과연 영지에서 몇이나 태어날지 의문스러웠지만. 글쎄, 그런 인물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인생의 낙이지 않을까?
마왕의 삶은 수천 년이다. 길고 또 길다. 마왕으로서 느긋하게, 천천히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