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0 D급 모험대 =========================================================================
파비안이 눈을 부릅 떴다.
저런, 잘못하다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라우라가 좋아하겠군. 굳이 두개골로 만드는 데 눈을 손질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개새끼……!”
“파비안 씨, 당신뿐만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이 저의 아버지가 견공이라고 추측해왔지요.”
내가 말했다.
“실로 과감한 추측입니다. 단지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부디 파비안 씨가 그런 말을 하고도 죽지 않는, 최초의 생존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라우라도 제레미도 마찬가지였다. 폐에서 숨 대신에 웃음을 내보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우리 세 사람 모두 어딘가 중요한 부분, 아마도 사람에게 꽤나 중요한 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모험자 길드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그분……이름이 플뢰르라고 했던가요. 그분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럼 우선 여기서 살아남아야죠. 새신부가 시체랑 첫날밤을 보내서야 곤란합니다.”
“씹어죽일 자식! 모든 신께 저주받아 뒈져라!”
오오, 기세가 죽지 않았다.
파비안은 단순히 모험자 나부랭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존심도 품고 있었다. 자존심이란 대체로 쓸모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쓸모가 없지.
“끄어억!?”
파비안이 분개하든 말든 배틀로얄은 시작했다. 한 모험자가 옆에 있는 동료를 단검으로 쑤셔박은 것이었다. 모험자들이 깜짝 놀라서 살인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짓이야!” “감히 동료를 배신하다니!” 하고 모험자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단검을 들고 살인자가 덜덜 떨었다.
“원래 마왕성에 오고 싶지 않았어……일확천금할 기회라고, 당신들이 거짓말하지만 않았으면! 그, 그래. 너희가 잘못한 거야……나는 집에 밭이 있어……너희 같은 밑바닥 인생이랑, 차원이 달라!”
“살인자 자식!”
다른 모험자가 달려들어 도끼로 상대방의 얼굴을 후려쳤다. 살인자는 히이익,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단검을 치켜세웠지만 도끼를 막지 못했다. 도끼날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박살났다.
그것이 기점이 되었다.
모험자들은 방패와 창칼을 치켜들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방패에 달린 징이 징을 후려치는 굉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파비안도 날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 진흙탕 싸움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혹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치고 싶다. 원초적인 욕망들이 칼날을 타고 이쪽 혹은 저쪽으로 맹렬하게 쏘아졌다.
내가 팔짱을 끼고 검투장을 관람하고 있자, 어디선가 요정들이 날아왔다. 요정 네 마리가 낑낑거리며 와인병을 들고 있었다. 다른 세 마리는 각각 포도주잔을 배달해왔다. 주인이 술이 고픈 것을 알아차리고 대령해온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우리 요정들이 세계에서 제일 착하다니까!”
와인병을 받아들고 요정들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요정들이 꺄르르 웃었다.
우리는 포도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콜로세움을 구경했다. 싸움은 무척 격렬했다. 격렬한 만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그럭저럭 질이 괜찮은 포도주까지 곁들자 이만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싸우는 모험자도 있었고, 동족을 살해하는 것이 두려워 조심스러워하는 자도 있었다.
“제기랄, 싸우지 마! 마왕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라고! 젠장. 빌어먹을!”
그리고 파비안처럼 싸움을 말리려는 인간도.
이미 살인의 광기에 휩쓸린 모험자들은 파비안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파비안은 계속해서 싸움을 멈추라고 종용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 역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험자를 막기 위하여 칼을 휘둘렀다.
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인간이란 위기가 닥쳤을 때 맨얼굴이 드러나는군요.”
“음. 추악하기에 아름다운 것도 있는 법이다.”
십 분이 지나자 모험대는 스무 명에서 일곱 명으로 줄었다.
남은 일곱 명도 몸이 성하지 않았다. 단검에 쑤셔진 자, 칼날에 자상을 입은 자, 모두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생존자들을 매의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먼저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대치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래서야 게임이 길어져버리고 만다. 쓸데없이 길어지는 게임만큼 시시한 것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적당히 모티베이션을 주었다.
“자자. 여러분, 잠깐만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이쪽을 보세요.”
손뼉을 쳐서 이목을 이끌었다.
살기와 피로, 공포에 물든 눈동자 일곱 쌍이 이쪽으로 향했다. 나는 품속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어 흔들어보였다.
“이거 보이십니까?”
짤랑짤랑, 하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엔 금화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대충 오십 리브라쯤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분에게, 특별히 오십 리브라를 선물하겠습니다. 자, 모쪼록 싸움을 재개하십시오.”
“……!”
인간들의 눈동자에서 탐욕이 피어났다. 오십 골드는 모험자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혈투가 상금을 노리는 결투로 바뀌었다. 모험자들이 자세를 낮추었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크아아아아!”
그들이 포효하며 서로를 향해 질주했다. 분노의 베기, 정수리 베기, 빗겨내기, 저마다 자신 있는 검술을 사용하면서 오로지 살인을 위한 짐승이 되었다. 쇳소리가 엉망진창의 교향곡처럼 울려 퍼졌다.
내가 웃으면서 그들을 응원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살기 위해서라면, 돈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동족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여러분께서 말귀를 알아들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세시봉! 세시봉!”
라우라가 딴죽을 걸었다.
“주군은 정말로 취미가 나쁘다.”
“하, 두개골 수집이 취미인 아가씨한테 듣고 싶진 않군요.”
“……제가 보기에는 두 분 다 오십보백보인데요.”
제레미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싸움은 금세 끝났다. 오 분이 지나자, 고블린 장벽 한가운데의 콜로세움에 남은 인간은 한 명뿐이었다. 열아홉 명의 시체를 주위에 둘러치고 남자가 서 있었다.
“후욱, 훅……크으윽.”
파비안.
그는 폐에서 숨을 짜내고 있었다. 왼팔은 상대방의 일격을 허겁지겁 막아내느라 희생되었다. 도끼에 반쯤 잘라져서 망가진 장난감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허벅지에는 단검이 박혀 있었고, 핏물이 멈추지 않는 분수처럼 숨풍숨풍 솟아났다.
“훌륭하군요. 파비안 씨. 당신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요.”
“크흑……후욱, 흐으윽.”
“축하드립니다.”
나는 파비안에게 갈채를 보내었다. 라우라도, 제레미도 손뼉을 쳤다. 하는 김에 나는 고블린들에게도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 일제히 손뼉을 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비록 노예이지만 용감하게 분투한 검투사한테 로마 시민들이 경의를 보내는 일에 비유할 법했다. 수백 개의 박수갈채 속에서 파비안은 실로 영웅처럼 우뚝 서 있었다. 저 얼마나 사나이다운 기상인지!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파비안은 우리의 축하인사가 기쁘지 않은 모양새였다. 파비안은 얼굴이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했다.
어째서일까? 이렇게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는데. 고블린들에게 박수를 받은 인간은 파비안, 당신이 인류최초일 것이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 짤랑.
나는 돈주머니를 날렸다. 주머니는 정확하게 파비안의 발치에 착지했다. 파비안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서 잠시간 돈주머니를 내려다보았다.
“…….”
이것이 무엇인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에 호기심을 가진 동물과 같은 시선이었다. 파비안은 이내 주머니에 관심을 잃었는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약속한 보상입니다. 승자에게는 마땅히 그에 걸맞는 상금이 주어져야지요. 사양하지 마십시오. 제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윽.”
파비안은 당장 피눈물이라도 흐를 것처럼 눈동자가 시뻘갰다. 결투가 끝났는데도 눈에 살기가 흘렀다.
아아, 이해한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모조리 이해한다.
내가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파비안 씨. 저를 죽이고 싶은 것이지요?”
“…….”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까 전에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인간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노라고.
“저를 죽이고 싶다면 얼마든지 시도해보십시오. 당신에겐 저를 죽일 권리가 있습니다. 뭐, 썩 충분하지는 않지만 여러분 덕택에 좋은 구경거리를 즐겼으니까요. 있다고 인정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고 내가 덧붙여서 말했다.
“당신에게는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져 있습니다. 딱 한 번만 저를 공격할 기회가.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두 번의 기회란 우리 삶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요……안타깝게도 말입니다.”
“…….”
“만약 저를 공격하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시겠다면.”
내가 포션을 꺼내들었다. 유리병에는 붉은색 액체가 넘실거렸다.
“이럴수가! 명절을 맞이하여 단탈리안 마왕성에서 추가적인 보상이! 레어 아이템, 고급 체력 포션이 무료로 주어집니다. 이거, 완전 대박입니다. 출혈과다로 죽기 일보직전인 파비안 씨도 이걸로 무사히 생존가능!”
포션을 손에 들고 요란하게 떠들었다. 내 광대짓에 라우라와 제레미가 피식 웃었다. 오직 파비안만 개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곧 죽일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지요? 저를 죽이기 위해서 한 번뿐인 기회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포션과 금화를 챙겨서 이대로 금의환향할 것인가.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대머리 애꾸눈의 파비안 씨.”
“…….”
파비안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다. 이미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그에게는 걸어다닐 체력조차 남아 있지 않겠지. 달려와서 나한테 일격을 먹일 힘이 없었다. 그러니까 단검을 날리려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이 아니라 날 살해하는 것을 선택했다.
“……멋지군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도 중요했다. 그 사실이 나의 심장을 기분 좋게 착 가라앉혔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모험자 파비안이 단검을 들어올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 휘이익!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공격이 날아왔다. 놀랍게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손을 갖고서도 파비안은 단검을 명중시키는 데 훌륭했다. 푸욱, 하고 살점이 꿰뚫리는 소리가 내 몸에서 났다.
단검은 나의 오른쪽 가슴팍에 들이박혔다.
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안타깝습니다. 이걸로는 죽지 않아요, 마왕은.”
나는 손가락으로 나의 이마를 툭툭 두들겼다.
“이쪽. 가슴이 아니라 이쪽에 명중시켰어야죠.”
“…….”
파비안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무릎에서 힘이 풀려 쓰러진 것이었다. 그가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렸다. 온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다른 모험자들의 핏물로 흥건해진 동굴바닥이었지만.
우리는 파비안이 숨을 거둘 때까지 지켜보았다. 길어봤자 십 분일 테니 크게 지루할 일이 없었다. 가슴에 꽂힌 단검을 빼내자 상처가 천천히 아물었다. 격통이 일었으나 가죽갑옷을 입어 버틸 만했다.
“플……뢰르……플뢰르…….”
파비안은 마지막까지 모험자 길드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십 분 정도가 흐르자 중얼거림이 멎었다.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확실히 숨이 끊겨 있었다. 결국 여자 이름이 유언이 되어버렸는가. 진부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