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18화 (218/510)
  • 00218 D급 모험대  =========================================================================

    *  *  *

    스무 명으로 불어난 모험대는 자연스럽게 파비안이 대장을 맡았다. 우리는 순조롭게 던전을 공략해갔다.

    공략한다고 말하기에 약간 쑥스러운 구석도 있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해물은 기껏해야 고블린 서너 마리였다. 모험자들이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갈림길이 연속되어 당황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괜히 쫄았다”, “최하급 던전답다”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전부 어린 고블린이었어. 쯧쯧…….’

    인간은 몬스터의 나이를 잘 짐작해내지 못했다. 몬스터는 어릴 때부터 몸집이 금방 자라니까 더더욱 알아보기 힘든 것일지 몰랐다. 그렇지만 울음소리에서 미묘한 차이가 났다. 얼굴만 보아도 얘가 어른인지 어린애인지, 마왕인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마 대피명령을 듣지 못하고 미처 못 빠져나간 애들이겠지.’

    안타까웠다.

    미궁의 벽 너머에는 몬스터가 부락을 이루어 살았다. 마왕성 일대에 거주하던 고블린이 죄다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평소에 던전 통로 너머의 빈 공간에서 살다가, 지금처럼 모험대가 침입했을 때 숨겨진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공짜로 마나가 풍부한 던전을 몬스터들에게 허락했다. 대신에 몬스터들에게 거주지역마다 한 곳씩, 모험대로부터 방어해야만 하는 거점이 주어졌다. 던전에 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해당 거점을 사수해야 했다.

    인류의 국가로 따지자면 이른바 지방군……약간 변형된 둔전제라고 할까.

    몬스터 부락민들이 거점을 방어하며, 라우라가 이끄는 정예 몬스터 부대가 이들을 지원한다.

    마왕인 내 입장에서는 그저 거주공간을 내주고 저절로 방어병력이 생기는 셈이었다. 손해 볼 부분이 전혀 없다.

    아직 어린 몬스터에겐 전투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하고 말해두었는데……어디에나 말썽꾸러기는 있었다. 꼬맹이 고블린들이 미궁 통로에서 놀다가 그만 대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모험대의 사냥감이 되어버렸다.

    “이 정도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구만.”

    파비안이 여유롭게 말했다.

    “통로가 더 좁아지면 큰일이겠다 싶었는데 다행이야. 함정도 없고.”

    “어떤 함정이 있었으면 위험했겠습니까?”

    “응? 그렇군.”

    파비안이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거미둥지 같은 게 있었다면 곤혹을 치루었겠지. 어느 마왕성은 동굴 천지에 거미와 박쥐밖에 없었네. 물소만큼 커다란 거미를 본 적 있는가? 그놈들이 동굴벽을 타면서 쉴 새 없이 공격해오니까 미칠 지경이었지.”

    “과연, 거미둥지입니까.”

    나는 모험자들에게 '뭐가 없어서 다행인가?', '뭐가 위험했겠는가?' 하고 묻고 다녔다.

    잡담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다 나중에 써먹기 위해서였다.

    게임에서 몬스터 거미 따위는 잡몹에 불과했다. 칼질 한방에 우수수 죽어나가니까 별로 효율적인 몬스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모험자들에게는 달랐다. 만약 지금처럼 직접 모험자 무리에 끼어서 돌아다녀보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으리라.

    모험자들은 자기 지식을 뽐내며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았다.

    “갈림길 말고는 딱히 함정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

    사실 몬스터보다 함정이 가장 무섭다는 사람.

    “고블린밖에 없어서야 식은 죽 먹기이지!”

    몬스터의 종류가 고정되어 있으면 맞춤형으로 공략하기도 쉽다는 사람.

    “마광석이 워낙 밝아서 시야를 확보하는 게 쉽구먼.”

    게임에선 전혀 표현되지 않은 지점을 꼬집는 사람.

    “그렇군요. 아하, 그런 것까지.”

    내가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베타 테스트 작업이었다.

    거금을 주고 데려온 베타 테스터들은 내 기대에 응하여 훌륭하게 문제점을 지적해주었다. 모험자들은 부랑자 주제에 자존심 하나는 무척 강했고――원래 깡패들일수록 자존심을 따지는 법이다――잘난 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단탈리안 마왕성은 여러모로 개선되게 생겼다. 음,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보고해주신 문제점은 오픈 서비스에서 모조리 반영될 것입니다. 모쪼록 오픈 서비스를 기대해주십시오.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슬슬 마왕방에 도착할 때가 되었군.”

    파비안이 말했다. 던전에 들어온 지 대략 두 시간이 흘렀다.

    어제와 그저께 탐색조가 던전을 돌아다녀본 결과, 어떤 경로를 이용하든 두 시간이면 마왕방에 도착한다며 보고했다고 한다. 그들은 실수 하나를 저질렀는데, 아직 고블린들이 미궁벽에서 뛰쳐나오지 않았을 때 던전을 탐색했다는 것이다.

    하긴, 벽 너머에 몬스터의 부락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탐색조는 “딱 최하급 던전에 어울리는 곳”이라고 모험자들에게 보고해버렸다.

    잘못된 정찰의 결과는 본대의 파멸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실을, 모험자들은 마지막 통로에서 빠져나온 다음에야 깨달았다. 마왕방 앞마당. 너른 공터가 펼쳐진 그곳에서 모험자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광경을 목도했다.

    “……여자?”

    그곳에는 금발의 소녀가 있었다. 라우라였다.

    던전에 웬 여자아이가 있는가, 모험자들은 이해할 수 없어서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나 더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여자애가 두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었다. 라우라는 인간의 머리통을 들고 있었다.

    “음? 아아. 드디어 왔는가.”

    라우라가 이쪽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보란 듯이 하품했다.

    “나 참, 너무 지각하지 않았는가. 소녀는 기다리다 지쳐 그만 곯아떨어질 뻔했다. 그쪽 통로에는 아무런 부대도 지정해두지 않았건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리다니! 대장이 누군지 몰라도 지독하게 조심스럽군.”

    “…….”

    모험자들이 조용해졌다. 소녀의 목소리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평탄했다.

    라우라 주변에는 수십 개의 머리통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단검을 익숙하게 놀려 머리통에서 피부를 벗겨내고 눈알 따위를 발라냈다. 이쪽을 향해 말하는 와중에도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툭, 하고 손질이 끝난 머리통을 라우라가 옆에 던졌다. 거기에는 이미 살점이 조금 달라붙은 두개골들이 야트막하게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들까지 합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리였던 물건’이 백 개가 넘어섰다.

    ‘아이고, 또 저 짓거리 하네.’

    머리가 지끈거렸다.

    라우라는 내 던전에 오고나서 이상한 취향이 생겼다. 던전에 침입해온 자들을 전부 두개골로 만들어서 무슨 박물관처럼 전시하는 것이었다. 보기 흉측하니까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또 저런다. 으이구.

    라우라가 오늘 날씨가 어떻다는 둥의 어조로 말했다.

    “심심하여서 그대들의 동료를 먼저 합장하고 있었다. 숙녀를 기다리게 하다니, 아무리 모험자가 부랑자 나부랭이로 불릴지라도 너무 예의가 없군.”

    “우, 우웨에엑!”

    누군가가 토했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초보 모험자이겠지.

    머리만 남은 시체가 뒹굴거렸다. 눈알, 혓바닥, 두피 가죽 등이 피범벅이 되어 흩어졌다. 전쟁터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속이 뒤집어지고도 남았다.

    몇몇 베테랑 모험자만이 ‘저것’이 평범한 소녀가 아님을 깨닫고 창칼을 겨누었다. 그중에는 파비안도 섞여 있었다.

    “……네 년, 누구냐.”

    “흐음. 마드모아젤의 이름을 묻기 전에 먼저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신사의 예법 아닌가?”

    라우라가 눈쌀을 찌푸렸다. 파비안은 그녀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인상이 굳어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라우라는 정말로 순전히 예의를 지키라고 말한 것이었다. 나와 다르게 라우라는 말솜씨로 상대방을 농락하는 취미가 없었다.

    “파비안, 모험자이다.”

    “소녀는 라우라 데 파르네세.”

    라우라가 일어서서 인사했다. 마치 무도회에서 아가씨가 인사하듯이 치맛자락의 양끝을 잡아 공손하게 벌렸다. 옷 아래로 하얀 무릎이 드러났다. 파비안이 어리둥절해져 되물었다.

    “……귀족?”

    “파르마의 두 번째 공작영애다. 이미 멸망해버린 가문이니 신경 쓸 것은 없다.”

    “어째서 귀족영애께서 마왕성에 계신 것이오? 혹시 마왕한테 납치당한 거요?”

    “음? 납치?”

    라우라가 작게 웃었다. 웃는 얼굴은 정말로 십 대 소녀처럼 환했다.

    “옛날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군. 마왕이 한낱 귀족영애를 납치해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아니, 납치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마는.”

    “납치당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호해주겠소. 마왕이 시켜서 그딴 짓거리를 하는 것이라면 당장 그만두어도…….”

    “우둔하군. 그리 눈치가 없어서야 소녀에게 당할 수밖에.”

    라우라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두개골을 발라내고 있었다.

    “소녀는 결코 타의로 인해 이곳에 있지 않다. 여기에 있을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오, 이번에는 깔끔하게 벗겨졌군. 역시 여성보다는 남성이 처리하기 더 쉽다.”

    “……시체에 그런 짓을 가하는 것도, 온전히 영애의 뜻이오?”

    라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되지 않는 취미이다.”

    “젠장. 이제보니 훼까닥 돌아버린 년이로군.”

    파비안이 퉷,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애새끼야. 숙녀고 신사고 나발이고 고인에 대한 예의는 어디에 갖다 팔았냐!”

    “이것이 소녀 나름대로 장례를 치루어주는 것이다. 어차피 가만히 내버려두면 마물의 식사가 되거나 썩어서 문드러질 터. 두개골이라도 남기는 편이 고인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적어도 소녀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준다.”

    라우라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파비안의 얼굴이 혐오로 일그러졌다.

    “좆 까고 있네. 네 년은 시체를 모욕하고 있을 뿐이야.”

    “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라우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먼저 마왕성에 침입한 것은 그대들 아닌가. 가만히 있는 이곳을 휘저어놓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대들이다. 먼저 그쪽에서 무례를 저지른 것이다.”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쓰레기 인생’을 모욕한다고 해서 무에 큰 문제인지?”

    “으아아아악!”

    한 모험자가 견디다 못해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그는 도끼를 꼬나쥐고 힘껏 횡으로 내리쳤다. 소위 분노의 베기, 가장 강한 힘을 실어서 날리는 일격이었다.

    ─ 촤아아악!

    그러나 모험자는 불과 몇 걸음을 남겨두고 목이 날아갔다. 라우라의 그림자에서 대검이 튀어나오더니 모험자를 사타구니에서 머리끝까지 정확히 두 쪽으로 갈랐다. 시체 조각이 힘없이 쓰러지자, 대검은 스르륵 그림자 속으로 되돌아갔다.

    “흑기사여, 머리는 손상시키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라우라가 그림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러면 소장품에 추가할 수가 없다……! 대체로 자네들은 비효율적으로 인간을 살해한다. 이런 식으로 칼을 놀리면 날이 금방 상해버린다! 아아.”

    그녀가 반쪽이 되어버린 시체를 안타까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시체의 상태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소녀를 보며, 모험자들은 공포에 스멀스멀 잠겼다. 방금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저 소녀는 무엇인가?

    “혹시나 물어보지. ……그 머리통들, 어디서 났나?”

    “물론 그대들과 함께 침입해서 들어온 자들이다. 솔직히 지나치게 약해서 김이 빠졌다. 백오십 명이나 된다기에 기대했거늘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더군.”

    모험자들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라우라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거기엔 호의도 적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거 길가를 지나치다 어쩌다 마주치게 된 행인한테 미소를 건네는, 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직 도망칠 수 있다만? 아, 스무 명은 조금 많은가. 그대들끼리 합의해서 다섯 명만 도주하도록 만들어라. 소녀는 나머지 열다섯 명만 잡겠다.”

    “……시체애호증의 여자애가 파수꾼을 맡은 마왕성이라니. 터무니없는 곳에 와버렸군. 전원, 나를 중심으로 방진을 짜라! 미친 년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모험자들이 파비안을 중심으로 대열을 이루었다.

    “구태여 벌주를 마시겠다니 어쩔 수 없군.”

    라우라가 머리통을 아래에 내려두었다. 그녀가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마왕 단탈리안의 이름을 우습게 본 것을 후회하며 절명하라, 모험자들이여.”

    내 눈앞에서 홀로그램이 번뜩거렸다.

    『모험대 '파비안 모험대(임시)' 출현!』

    『던전 제1층 보스 '라우라 데 파르네세'가 적군을 요격합니다.』

    『보스전에 돌입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