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2 D급 모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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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
낭만으로 넘쳐나는 직업군처럼 보이나 그 실상은 낭만과 거리가 무척 멀다.
우선 그들은 도시의 시민도 아니고 마을의 농민도 아니다. 집이 없다. 그때그때 시민들이 의뢰해주는 것을 해결해주며 겨우 하루치 밥벌이를 해먹고 산다.
갑자기 생겨난 몬스터 부락을 토벌해달라, 특산품 생산에 필요한 희귀 재료를 가져와달라……말하자면 도시의 하청업자. 시민이 아니기에 세금을 내지도 않으며, 세금을 내지 않기에 그저 도시의 기생충으로 비출 뿐인 부랑자이다.
모험자는 대부분 실향민이나 고아로 이루어져 있다. 영주의 횡포에 견디지 못해 야간도주하여 모험자로 근근히 살아간다……라는 이야기는 희귀하지도 않다. 출신성분이 지극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모험자에게 의뢰를 맡기느니 고양이한테 청어를 맡기는 편이 낫다.”
이것이 대체로 모험자에 대한 인식이다. 영 꽝이라고 해도 좋겠지.
법률과 치안이 발달한 현대와 다르게 이 시대에는 '신뢰'라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중요하며, 출신성분이 애매모호한 모험자는 누구나 꺼려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킨다고 해보자. 아르바이트생이 만약 가게의 돈을 먹고 도망쳐버린다면 어쩔 텐가?
치안망이 강력하고 개개인의 정보를 세심하게 파악해놓은 현대라면 간단하다. 경찰에 신고하여 잡아들이면 된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치안망이 허술할뿐더러 정보 베이스 따위는 매우 조잡한 형태로만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도시 바깥으로 도망치기라도 하면 체포하기란 요원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쓰려 한다.
대표적으로 다른 시민의 아들딸. 이들은 시민권을 가질 예정이므로 도시에서 도망칠 염려가 적다. 설령 도망치더라도 그때는 부모들한테 피해를 청구할 수 있다. 안전하다.
혹은 신전의 사제와 도시의 관료가 신원을 보증해준 사람. 이런 사람은 신뢰가 간다. 사제와 관료는 자신의 이름값을 위해서라도 철저히 엄선된 이를 추천한다. 그렇기에 일거리를 얻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명망 높은 사제나 관료, 하다못해 상인한테서 신원보증서를 구해야 한다.
모험자에겐 그런 것이 전무하다.
“그나마 어느 정도 실적을 쌓으면 용병단에 입단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제레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와 나는 지금 모험자 길드 청사에 들어와 있었다. 건축된 지 오래된 건물이었다. 나무바닥은 밟으면 삐꺽거리고, 술값은 더럽게 비싼 주제에 싸구려 맥주밖에 없었다. 나는 질 낮은 맥주를 입안에 털어넣으며 길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단탈리안 마왕성으로 향하는 모험대를 모집하오!”
“노랑색 모험자에게 전체 지분 15%를! 초록색 모험자에게 10%를 약속한다!”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건물 안을 돌아다니느라 사방에서 나뭇바닥이 삐끄덕 삐끄덕 시끄럽게 울어댔다. 모험자는 소리높여 자신과 함께 모험대를 꾸릴 자 없느냐며 소리 질렀고, 조금이라도 질 높은 동료를 맞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곳이 모험자의 아지트. 길드 청사이다.
모험자들 개개인은 어쩔 수 없이 신뢰가 떨어진다. 그렇다면, 하고 모험자들이 강구해낸 방법이 바로 길드이다. 웬만한 도시에는 이처럼 모험자 길드가 하나씩은 있다.
길드에서는 다름 아니라 모험자의 '신뢰도'를 관리한다.
시민들은 길드에 의뢰를 넣는다. 그리고 모험자는 길드에서 공개적으로 내걸어둔 의뢰란에서 자기가 맡을 의뢰를 선택한다. 만약 모험자가 성공적으로 의뢰를 완수하면, '이 사람이 어떤 의뢰를 성실히 달성했음'이라고 길드 장부에 적힌다.
당연하지만, 만약 의뢰를 포기하면 '이 사람은 태만하게 의뢰를 방치했음'이라고 적힌다.
어떤 모험자가 어느 정도로 신용할 수 있는지 데이터가 축적되는 것이다.
신뢰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모험자는 쫓겨난다. 아무도 그 사람에게 의뢰를 맡기지 않는다.
잔인한 이야기로 들리지 모르겠으나, 모험자라는 직업군 자체가 성립하려면 어쩔 수 없다. 어느 세계에서나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모험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모험자는 자기 분수를 뛰어넘는 의뢰는 절대로 맡으려 들지 않는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지는 법이다. 이 퀘스트가 내 능력에 적당한가? 행여나 실패할 가능성은 없는가?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예컨대 『마왕 바르바토스를 잡아오는 모험자에게 5만 골드를 준다!』라는 의뢰가 있다고 해보자. 아무리 포상금이 먹음직스럽더라도 이건 터무니없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의뢰를 낚아채지 않는다.
허나 너무 신중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어찌되었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만한 배짱 역시 갖추어야만 한다.
신중한 안목, 뚝심 있는 배짱. 두 가지를 갖춘 자만이 모험자로서 성공하겠지. 거기에다 약간의 행운이 따라주어야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
내가 맥주를 들이켰다.
“하지만 내 마왕성은 허섭쓰레기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게요. 도시에 있는 모험자란 모험자는 죄다 몰려든 것 같은걸요.”
나의 던전에는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다.
바르바토스처럼 『모든 사자(死者)의 궁전』이라든지. 파이몬처럼 『레테가 잠드는 수해(樹海)』라든지. 잘 나가는 마왕성이라면 으레 하나쯤 붙는, 멋지구리한 별명이 전혀 없다.
그냥 단탈리안 마왕성이다.
내가 얼마나 허접스러운 던전의 주인인지 새삼스레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
뭐, 아무튼.
그런 허접한 던전에 자그마치 4000골드 상금이 붙었다. 그외에도 도시 시장이 개인적으로 내 목에 걸어놓은 1000골드 포상금도 있었다. 다 합쳐서 5000골드라는 거금이었다.
모험자들 입장에선 천운이란 거다.
열 명으로 모험대를 꾸려도 쉽게 계산하여 한 사람당 500골드가 떨어진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모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걸 노린 거지만 말이야.”
“후후, 청사 구석탱이에 바로 그 마왕님이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놀랄까요.”
제레미가 키득거렸다.
그렇다.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추론할 수 있겠지만, 저 의뢰는 전부 함정이다. 모험자들은 예전에 기록된 단탈리안 마왕성의 수준에 속고 있다.
“최하급 수준의 모험자들이 잔뜩 몰렸는걸요. 어휴, 불쌍해라. 다 죽겠네.”
제레미가 말한 그대로이다. 바르바토스네 정도로 흉악하진 않아도 내 거처가 이제 아주 만만한 곳은 아니다.
아직 1층뿐이긴 해도 마계 최고의 건축업자들이 달라붙어 만들었다. 자금도 거의 무한정으로 쏟아부었다. 던전에는 갖가지 함정과 미로가 건설되었다. 어지간한 모험자는 한번 깊숙이 들어갔다가 탈출하지조차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전하. 실력자들이 오면 조금 위험하지 않겠어요?”
“지금은 실력자들이 전부 백합전쟁에 용병으로 나가 있어.”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합전쟁이란 현재 프랑크에서 지속되고 있는 내전을 가리켰다. 검은 백합이 상징인 브르타뉴 왕국, 하얀 백합이 상징인 프랑크 제국. 그래서 백합전쟁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전쟁은 실력 있는 모험대에게 가장 훌륭한 비즈니스이다. 모험대는 간단하게 용병단으로 직업을 바꿔서 비용을 지불하는 측에 가담하여 싸운다.
합스부르크에서 소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월맹군 전쟁, 거기에다 프랑크에서 일어난 내전까지. 대륙의 인민들에게는 불행한 시대이지만 언제나 의뢰에 굶주린 모험자 무리한테는 '아, 살기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리라.
내가 말했다.
“아직도 도시에 남은 모험자는 죄다 쭉정이뿐이다. 절대다수가 최하급. 용병으로 써먹지 못할 부류이지. 글쎄, 아무리 높게 잡아줘도 중급 이상의 모험자는 도시를 떠나고 없을걸.”
나는 일부러 의뢰서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왕 단탈리안을 잡아오는 자에게 4000골드를 지급합니다.』
『기한은 촉박. 이번 달 마지막 날까지.』
『생사불문(生死不問).』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한이 촉박하다'라는 부분이야. 겨우 보름 남짓한 시간밖에 안 된다. 현재 전쟁터에 나가 있는 고급 모험대들이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참가하기란 불가능하지.”
“하아, 그런 의미였군요.”
제레미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역시 전하는 잔머리 하나는 잘 굴러간다니까요. 저 제레미는 매번 감탄합니다.”
“……그거 칭찬이냐?”
“물론입니다. 세상에서 잔머리가 제일 잘 굴러가지만 6만의 병력을 동원하고도 2만의 적군을 이기지 못한 단탈리안 전하.”
내가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움직여서 제레미의 정강이뼈를 찼다. 제레미가 아야!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가 사기인 거다……! 내 평생 다시는 기사단이 주력인 병력이랑 회전을 벌일까보냐!”
“으으. 여인을 걷어차다니, 전하는 야만인이에요.”
“아픈가? 매우 아픈가? 그거 쎔통이로군.”
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부하들 중에는 이 몸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가신(家臣)이 한 명도 없다. 라피스는 내 머리 꼭대기에 서 있지. 라우라는 예전에는 귀엽게 쫄쫄 따라다니더만 요즘엔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제레미는 그냥 나쁜 년이다.
“에잉, 못난 것들. 무일푼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올라온 나를 찬양하지는 못할망정…….”
“착각하시면 곤란해요. 저는 단탈리안 전하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또 경애한답니다?”
제레미가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단탈리안 전하는 뭐랄까요, 가까이 있으면 편해져요.”
“편해?”
“예. 소인은 파이몬 전하도 존경하지만요, 그분께서는 빈틈이 없지요. 천명을 받고 태어난 영웅이란 저런 거구나. 그런 감상이 저절로 들어요. 그래서 그분 옆에 서면 엄숙해지고 진지해지죠.”
하지만, 하고 제레미가 말했다.
“단탈리안 전하는 이상하게 머리에서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이에요.”
“…….”
나는 말없이 정강이뼈를 한번 더 걷어찼다. 이번에는 예상했다는 듯 제레미가 능숙하게 발을 피했다. 젠장.
“전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니에요. 파이몬 전하가 자신의 이상을 향해서 올곧게, 단 한 걸음도 생략하지 않고 낙타처럼 걸어가고 있다면……응. 단탈리안 전하는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처럼 보여요.”
“그건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말 아니냐?”
“아, 물론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죠.”
제레미가 웃었다.
“하지만 전하.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란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요. 그것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과 같아서 주위에 모여든 자들을 달아오르게 하죠. 동시에 그들을 연소시켜, 한줌의 잿더미로 만들어요……. 단탈리안 전하는 불길과 같은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흐음.”
내가 심드렁하게 맥주를 들이마셨다.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무튼 욕이 아니라니 넘어가주었다.
“단탈리안 전하께 모여드는 인재들은 틀림없이 전하 특유의 허술함에서 안식처를 찾은 사람들이겠죠. 가시나무밖에 없는 세상에서 그러한 안식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제법 소중할 거랍니다.”
그 이후로 대화가 중단되었다. 제레미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쪽을 쳐다보기만 했고, 나는 어째서인지 그 시선이 불편해서 맥주를 홀짝였다.
“어이. 동석해도 좋겠나?”
한 모험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고급스러운 가죽갑옷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척 봐도 견실한 모험자라는 인상이었다.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예,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내가 영업용 스마일을 드러내면서 대꾸했다. 사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표정을 0.5초만에 전환할 수 있었다.
“지금 모험대를 구하고 있는데 말이야.”
모험자 형씨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당신들 실력이 꽤나 있어보이는구만. 어때? 나와 함께 모험대를 짜보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