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201화 (201/510)
  • 00201 백합 전쟁  =========================================================================

    *  *  *

    앙리에타의 의중을 간파했다고 해서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내가 소란을 떨어봤자 다들 고개를 갸웃할 거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그야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이쪽은 군세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북부의 영주귀족들(주로 공화주의자이다), 황태후파 귀족들, 그들이 고용한 용병단……여기에 바타비아군까지 모여든다. 군세만 헤아려도 벌써 가볍게 삼만 병력을 헤아릴 것이다.

    “좋다, 앙리에타! 그렇다면 아예 화려하게 춤에 어울려주지.”

    나는 밤새 고민하여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브르타뉴의 기병은 강력했다. 지난 전투에서 증명되었다. 일만의 브르타뉴군이 이쪽의 삼만을 섬멸할지도 몰랐다. 허나 삼만오천이라면 어떨까? 버거워지겠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만약 사만이라면 어떨까?

    오만 대군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때도 여전히 승리를 자신할 수 있을까, 오만방자한 여왕이여.”

    작전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상대방은 전술적 승리를 맹렬하게 노리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전략적인 우위를 공고하게 다졌다. 상대편에서 날카로운 창으로 이쪽을 꿰뚫으려 한다면――이쪽은 태산이 되어 놈들을 찌부려트리겠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앙리에타를 물리친다!

    일단 목표가 세워지자 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북부의 귀족들을 다시 설득하여 프랑크 방방곳곳에 격문을 돌렸다.

    “삼가 대의를 받들어 천하에 고한다. 외적(外敵) 브르타뉴와 간신배가 하늘을 속이고 대지를 이간질하며, 나라를 집어삼키고 황제 폐하를 농락하매, 황궁을 어지럽히고 이제 무고한 백성을 참살하기에 이르렀나니, 그 죄악에 떨어대지 않는 수풀이 없으며 그 악명에 격노하지 않는 하천이 없도다.”

    “여기, 황제 폐하의 밀조를 받들어 오로지 정의로서 의병을 일으킨다. 흉악무도한 외적을 물리치고 간신배를 처형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쉬지 않는 군마(軍馬)로서 종사하고자 하니, 천하에 뜻있는 자들이여! 늪기슭의 진창에 빠져버린 백성들을 구원하고 황제 폐하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 우리와 함께 일어날지어다!”

    프로파간다를.

    더 많은 프로파간다를!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 설령 네가 황제와 함께 움직이고 있더라도 명분은 우리 손아귀에 있다. 왕당파가 제아무리 나라에서 가장 파벌이 큰 세력이라 해도 외적인 네 녀석한테 충성을 맹세할 사람은 적다.

    암살대, 해방동맹의 비밀결사원, 귀족들의 하인,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란 인력은 총동원해서 대공세를 퍼부었다. 전국의 고을들에 방문을 붙였다.

    황제파에서도 반란이니 역모이니 하는 상투어를 써서 대응해왔다. 정보가 얽히고설켜 도저히 무엇이 진실인지, 백성들 입장에서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이야말로 내가 활약하는 전장이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고? 딱 좋았다. 진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오로지 힘, 수사학만이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녔다. 북부와 동부를 끊임없이 순례하며 연설했다.

    “백성들이여! 대저 혼란에 빠진 지금, 우리는 어찌해야 옳은가. 여신들이시여, 우리가 어찌해야만 하는지 당신들께서 빛을 내려주소서.”

    성량확대 마법을 빌어서 나의 목소리가 광장에 낭랑하게 퍼졌다.

    “여신들께서는 말씀하셨노라. 첫 번째, 몸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을 정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그곳으로 몸을 이끌어라! 두 번째, 이미 나 있는 길에서 뜻을 찾지 아니하고, 뜻이 향하는 그곳으로 길을 낼지어다! 세 번째, 그때 비로소 우리의 하늘은 넓고 또 넓어져 아무것도 잃지 않으니!”

    내가 오른팔을 들어올리며 울부짖었다.

    “하늘의 그물은 선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놓치지 않을지어다! 브르타뉴로부터 우리의 대지를 지켜라! 백성들이여, 의인들이여――봉기하라!”

    수천 군중, 수만 군중이 흥분에 도취되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요동쳤다. 도시 그 자체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우아아아아아! 프랑크 만세! 프랑크 만세!”

    “역적들 모가지를 따버려라! 브르타뉴의 계집애를 죽여라!”

    “쟝 볼레! 쟝 볼레! 쟝 볼레!”

    월맹군 원정에서 시작하여 나의 선동 능력은 이쯤에서 정점을 찍었다. 백성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성한 군대를 자처하며 나를 호위했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제 쟝 볼레. 내가 가는 길에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귀족과 민중이 들끓었다.

    내가 나지막하게 연설하면 그들은 숨을 죽였고, 내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분개하면 그들 역시 격노했다. 수만 명이 일제히 “여신을 위하여!” 하고 소리치는가 하면 또한 묵념의 시간에는 침묵했다.

    여기에다 예전부터 준비해온 책자들을 뿌렸다. 왕당파든 공화파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가리지 않고 뿌려댔다. 일단 삼천 권 정도가 흩어지자 다음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필사해서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이 허위를 깨트려 없애야 한다…….”

    “신들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토지의 주인이 되어라!”

    “모든 인간은 토지에 대하여, 또한 토지가 인간에게 주는 갖가지 이익에 대해서 평등하게 권리를 갖고 있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백성들이 나의 책자를 갖고서 가족과 친구에게 설파했다. 그들은 한곳에 모여들어 의용군을 이루었기에, 책자의 내용은 정말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졌다.

    이들은 단순히 의용병이 아니었다. 바로 이념으로 무장한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념에 물든 자만큼 강력하고 끈질긴 군사는 없다…….

    연설은 당장은 강력해도 그만큼 효력이 짧다. 반면에 책자는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한다. 내가 지나가고 떠난 자리에도 책자는 남아서, 사람들은 스스로 계속하여 의욕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물경 12,000명의 의병이 봉기했다.

    귀족들이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정도로 백성이 호응해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겠지. 그들은 뜻밖의 강력한 원군에 사기가 충천했다.

    “틀림없소. 신들께서는 우리의 대의에 손을 들어주셨소.”

    “당장 브르타뉴의 여왕을 사로잡으러 진군합시다!”

    모두가 좋아라 한 것은 아니었다. 앞날을 염려하는 귀족도 생겨났다.

    “황제 폐하와 나라를 위해 일어선 그들의 의기는 칭찬할 만하나…….”

    “공화주의가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 아니오외까?”

    황태후파든 황제파든 본질은 귀족. 그들은 백성들이 필요 이상으로 '전염병'에 물드는 것을 걱정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설득해야만 했다.

    적군의 귀족들을 역적죄로 숙청하면,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지가 그대로 손에 들어온다. 그럴려면 일단 브르타뉴군을 패배시켜야 한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백성들의 군대를 용납하자. 어차피 무지몽매한 백성이 아닌가? 당장은 목청을 높여서 떠들지라도 시간만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먹어버릴 것이다…….

    귀족이란 언제나 영지가 늘어나기만을 염원하는 족속이다. 설득은 유효했다.

    몇 번의 교섭이 오갔다. 귀족들은 백성 사이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나, 쟝 볼레를 의용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북부 영주를 설득하는 등, 프랑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닌 공로를 인정한다.” 표면상으로는 그러했다. 진실은 조금 더 단순했다. 백성들의 폭주를 막아내고 귀족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내가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댁이 책임을 져라. 그런 의미겠지.

    상관없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이다.

    원래 세계에서 농민병이야 훈련도가 낮고 사기까지 낮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나, 여기서는 다르다. 몇 년에 한 번씩. 많으면 일 년에 수차례나 농민들은 고블린의 습격에 시달린다. 운이 안 좋으면 오크떼와 맞붙는 경우도 있다.

    마을에선 모두 자경단을 운영한다. 그들의 훈련도는 결코 낮지 않다. 원래 세계의 농민징집병에 비교해서야 미안할 정도이다. 뭐, 농민병뿐만 아니라 기사들까지 원래 세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게 문제이지만.

    여하간 제법 잘 훈련된 일만이천 병력을 통솔하게 되었다.

    아마 마왕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에 속할 나한테는 군자금도 충분했다. 문제없었다.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 그 여왕에게 맞서싸우려고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래서야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겠는데요.”

    “……군무(軍務)에 대해서는 무지하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행동을 모두 지켜본 제레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옆에서 데이지도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최고의 암살대장과 미래 용사 후보생이 보기에도 나는 그야말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프로파간다, 즉흥 연설, 이념서적 배포.

    귀족들의 관계를 특사로서 조정하고, 그중에서 가장 명망 높은 공작을 우두머리로 세우게끔 뒤에서 돕고, 프랑크의 귀족들과 바타비아의 군지휘관들 사이까지 중재하고, 마지막으로 용병단에게 의용병을 훈련시키게 명령하고…….

    “크흐으.”

    나는 식초물을 단번에 마셨다. 입안이 알딸딸했다.

    장담컨대, 지난 며칠 동안이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날이었다.

    이 광경을 라피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천하의 라피스라도 이번만큼은 손뼉을 치며 “대단합니다, 단탈리안 님. 훌륭하십니다. 단탈리안 님은 실로 모든 마왕 중에서 제일 성실하고 착실합니다” 하고 경탄했으리라.

    마침내 아군의 병력이 총집결했다.

    ────────────────────

    <신성연맹군>

    총사령관: 앙리 드 기즈 공작

    부사령관: 안나 더 빗 최고위원회 의원

    ■제1군: 황태후파 귀족군. 총사령관: 앙리 드 기즈 공작.

    보병 24,000명(용병, 징집병). 기병 5,000명(기사 1,000명)

    ■제2군: 바타비아 공화국군. 사령관: 안나 더 빗 최고위원회 위원.

    보병 15,000명(용병, 시민병). 기병 7,000명(기사 150명)

    ■제3군: 프랑크 의용군. 사령관: 쟝 볼레 아르테미스-사제.

    보병 12,000명(농민병).

    □ 총병력: 보병 5,1000명. 기병 12,000명(기사 1,150명)

    ────────────────────

    어마어마한 대병력이었다.

    혹시라도 병력이 다 집결하기 이전에 브르타뉴군이 각개격파를 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노파심이 되었다. 브르타뉴는 이쪽을 노리는 대신 자국에서 병력을 충원했다.

    그래본들 브르타뉴의 병력은 일만오천에 불과했다. 여기에 황제의 근위부대가 가세하여 이만오천 정도의 군세가 마련되겠지. 만만치 않은 숫자이나, 미안하게도 이쪽은 무려 육만 대군이었다.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2.5배의 병력 열세를 극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쪽의 사령관들이 무능한 것도 아니다!

    앙리 드 기즈 공작은 용맹과감하면서도 귀족들을 통제하는 위엄이 있었다. 안나 더 빗은, 예전에 내가 해방동맹에 가입할 때 만난 적이 있었다. 안나는 해방동맹에서 파이몬 다음으로 가는 실력자였다. 적어도 무능하지 않겠지.

    그리고 쟝 볼레……나는 전술적으로 딱히 뛰어나진 않다.

    하지만 내 곁에는 백전노장의 용병단장 자크리가 있다. 의용병들을 완벽하게 장악할 카리스마도 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나는 제파르 대장과 바르바토스의 군지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천근처럼 값진 경험이었다. 자크리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세심히 군대를 운용하면, 실책만은 저지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한편생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구절이 하나 있다면, 바로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 승리하는 군대란 무엇보다도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전투에 나선다. 말 그대로이다.

    앙리에타 드 브르타뉴, 그대가 바라는 대로 회전을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유감이로군……. 그쪽이 주특기를 발휘하기도 전에 나는 전략적인 압승을 거둔 것 같다. 그대의 패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