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98화 (198/510)

00198 백합 전쟁  =========================================================================

앙리에타 여왕에 대응하는 나의 전략은 간단했다.

“앙리에타가 평범한 '마드모아젤'이 아니라 암사자, 그중에서도 숫사자를 집어삼키는 암사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도회에서 파트너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무서운 아가씨이지…….”

내가 자크리에게 말했다.

“퇴짜맞을 것이 뻔한데 아가씨한테 춤을 신청할 이유가 전무하다. 자크리. 이제부터 우리는 앙리에타를 '벽에 핀 꽃'으로 만든다.”

“브르타뉴의 여왕과 전면전을 피하실 생각입니까?”

자뭇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자크리가 바라보았다.

“아아. 사교계에 불쑥 신성(新星)이 출현한 것이지. 아름다운 미모에 절대적인 카리스마……무도회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에게 반했다. 그런 아가씨를 꺼꾸러트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혹시 알고 있는가?”

내가 웃었다. 가슴 부근, 심장보다 더욱 깊은 곳에서 내장들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꽤 오래 기다렸다. 훌륭하게 인내했다. 바로 지금부터 펼쳐질 지옥도를 위해서 나의 내장들은 스트레스를 기꺼이 견뎌주었다. 새파랗게 굶주린 그것들은 이제 생피가 뚝뚝 흐르는 만찬을 대가로써 원하고 있었다.

“다른 아가씨들을 전부 한편으로 만들어 하나의 일치단결한 동맹을 창설하는 것이야. 제아무리 화려하게 데뷔했을지라도, 다른 아가씨들을 적으로 돌려서야 사교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지. 마찬가지이다.”

앙리에타, 너는 조금 지나치리 만치 화려하게 승리했다.

가공스러운 군단은 적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만큼 적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게 만든다. 평소에 툭탁거리던 이웃들도 오크가 나타나면 주저없이 함께 민병대가 되어 저항하듯이.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해보자.

앙리에타 여왕이 간과한 것, 아니.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세력이 있었다. 나는 마법수정구를 통하여 그곳에 당장 연락을 취했다.

─ 단탈리안. 바타비아 공화국의 군대는 언제든지 출병할 수 있사와요.

바로 마왕 파이몬이 수백 년 동안 대륙 곳곳에 심어놓은 비밀결사 <해방동맹>이었다. 수정구에서 파이몬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동안 파이몬에게 직접 대화를 건 적이 없었으나, 당연하게도 해방동맹원인 자크리는 우리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장 파이몬한테 보고하고 있었다.

─ 그대가 자크리에게 말한 대로 브르타뉴가 침공했군요. 여전히 놀라운 혜안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예언의 능력이 없음에도 어찌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한낱 시답잖은 재주일 뿐입니다, 파이몬 님.”

─ 시답지 않다라. 그래요, 단탈리안이 자평하면 소녀야 할 말이 없지요. 그 시답지 않은 재주에 대륙이 진동했으며 이제 또 한번 진동하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겠사와요.

파이몬은 그리 말했어도, 정말 나는 겸손을 떤 게 아니었다. 앙리에타 여왕이 프랑크를 공격한다. 이것은 게임에서 이루어진 사실이었고, 나는 이미 아는 정보를 통해 마치 나의 지식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뿐이었다.

정말로 대륙을 진동시킨 장본인은 바로 눈앞의 파이몬이겠지. 그녀야말로 순전히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여기까지 세력을 일구었다. 정략과 모략을 제외하면, 나 따위는 도저히 파이몬에게 미치지 못한다…….

─ 출병의 시기는 언제로 잡을까요? 이미 국경지대에 배치해두었어요.

“아직입니다. 바타비아의 원군은 압도적인 명분을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프랑크의 귀족들이 먼저 손을 벌렸을 때 출격을 명하십시오, 파이몬 님. 그러면 우리는 모든 프랑크 백성의 지지를 쉽게 얻을 것입니다.”

─ 확실히 그렇네요.

파이몬이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가 벌써 국경지대에 배치됐다는 말에 속으로 놀랐다. 내가 자크리한테 '브르타뉴가 공격해올 것'이라 말하고, 그 정보가 자크리를 경유하여 파이몬에게 보고된 바로 그 순간부터, 파이몬은 군대를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이거 원.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판이군…….’

쓴웃음이 나왔다. 파이몬은 이쪽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라 말이 실감되었다. 몇 번이고 파이몬을 궁지에 몰아세운 나이기에, 도리어 파이몬은 그만큼 나의 실력을 믿었다. 이쪽도 똑같았다. <던전 어택>에서 용사를 끝까지 물고 넘어진 자가 파이몬이었음을 깨달았다. 신뢰할 가치가 충분했다.

─ 어쩔 생각이지요? 프랑크에게도 자존심이 있사와요. 그들이 먼저 구원을 요청하기가 아주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특사가 되어 귀족들을 설득하겠습니다.”

바로 이 설득을 위하여 지금껏 백성들을 선동했다.

우리 용병단은 가르시벨, 라로웨, 라시아렐, 트로인, 총 네 군데의 영지를 '해방'시켰다. 마왕 레라지에를 이끌어들여 영지전을 벌이고, 난전 속에서 영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반대로 용병단은 영지를 지킨 수호자가 되어 백성의 지지를 얻었다.

영주의 속박에서 풀려나 무장한 백성의 숫자가 합쳐서 약 1,500명. 무장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봉기에 참여한 백성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늘어났다. 중앙정부가 황제와 황태후의 싸움 탓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금, 이들을 다독일 자는 없었다.

신전의 사제들이 있긴 있었지만…….

‘내가 바로 그 사제이지!’

쟝 볼레, 사제로서의 나는 오히려 민중을 자극시켰다. 악마 같은 브르타뉴에 맞서 싸우자는 외침은 순식간에 프랑크 북부 일대에 퍼졌다. 백성이 직접 창칼을 꼬나쥐고 일어서자, 일대의 영주들은 갈팡질팡했다.

나는 이들 영주를 찾아가서 설득했다. 이미 쟝 볼레는 양날도끼 용병단의 후원자이자 인기를 몰고 있는 설교자로 유명해져 있었다. 영주와 접견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자작 각하.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예로부터 백성의 뜻은 하늘의 뜻이며, 여신들은 은밀히 자신의 의중을 백성들에게 퍼트린다고 했습니다. 지금 외적 브르타뉴에 맞서 일어서는 것이야말로 인민과 천하를 위한 길입니다.”

“하지만……쟝 볼레 사제. 황제 폐하의 지엄한 명령이오.”

공화주의자 귀족들도 과연 황명에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충성심에서 발로한 머뭇거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귀족들은 두려운 것이었다. 프랑크 황제와 브르타뉴 여왕이 이끄는 군대에 대항하는 것을.

육군 총사령관인 몽모렌시 원수조차 패사(敗死)했다. 무서울 법했다. 허나 외세가 두려워서 망설이는 자에게는 다시 외세가 해결책이 되는 법.

나는 은밀하게 말했다.

“바타비아 공화국이 원조를 약조했다면 어떻습니까?”

“공화국이! 그것이 정말이외까!”

귀족이 놀랐다.

“소인은 바타비아의 신전에도 친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물어서 알아본 결과, 공화국 지도층은 프랑크 내부의 공화주의자들이 불법적으로 억압을 받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작 각하. 각하는 혼자가 아닙니다.”

귀족들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수백 년 동안 독립전쟁을 벌이며 기어코 공화국을 수립해낸 바타비아 공화국. 그 나라의 군대가 도와준다면 승산이 없지 않았다.

프랑크 북부 영주귀족 열한 명이 나한테 교섭의 전권을 부여했다. 정말로 원군을 내줄 수 있는가, 내준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을 얼마나 빠르게 내어줄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용병단에 돌아와서 곧바로 파이몬에게 연락했다.

파이몬이 웃었다.

그녀는 네 개의 단어를 짧게 끊어서 말했다.

─ 보병 일만오천. 기병 칠천. 내일. 용병비 없이.

바타비아 공화국의 참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프랑크 북부는 바타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안 그래도 공화주의자가 많았다. 북부의 영주들은 일단 원군이 충분하다는 것을 파악했고, 심지어 상대측에서 용병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현재 프랑크 궁정에선 간신배가 충신인양 행세하며, 도적이 근위대인양 으스대고, 외적이 자국의 군대인양 돌아다니고 있다. 이에 우리, 프랑크의 안위와 백성의 앞날을 걱정하는 자들이 고한다…….”

꽤나 긴 성명문이었으나 요약하자면 브르타뉴군을 깨부수겠다는 말이었다. 북부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오직 간신배를 처단하기 위해 봉기했지, 결코 황제 폐하에 대적하는 게 아니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글쎄, 저기 멍청한 황제라면 믿을지도 모르겠군.

전국은 순식간에 혼돈으로 돌입했다.

바타비아 공화국은 정말 약조한 대로 성명서가 발표한 바로 그 다음날 출진했다. 공화국은 북부 귀족들을 가리켜서,

“그들은 진정한 명예와 충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의 친구를 전력으로 도와줄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원조이다. 공화국은 향후 일체의 영토적인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현재 대륙은 마왕군의 침략에 신음하고 있다. 브르타뉴는 대륙 전체의 안위를 무시하고 오직 자국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위해 행동했다.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브르타뉴 왕국은 지금 당장 프랑크 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그렇게 선언했다.

뭐라고 할까. 질이 너무도 나빠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자기네가 원군을 파병하는 것은 '친구'인 프랑크의 귀족들이 요구해서 이루어졌다. 자기들은 대륙 전체를 위해 행동하는 반면, 브르타뉴는 치사하게 행동하고 있다…….

아니, 정말로 바타비아 공화국이 그리 생각했다면 모르지만. 저 선언을 한 공화국의 배후에는 파이몬이 숨어 있다. 마왕이 대륙 전체의 평화를 위해 움직이겠다고 말한 셈이니 어찌 재미있지 않겠는가. 하여간 파이몬도 특이한 양반이야.

프랑크는 물론이고 대륙 전체가 요동쳤다.

브르타뉴가 출병한 게 내정간섭이냐 아니냐, 프랑크 황제의 행동은 정당하냐 불법적이냐, 바타비아 공화국의 행동은 올바르냐 그릇되냐…….

황제파와 황태후파의 내전에서 끝났을지 모를 사건은, 브르타뉴 왕국과 바타비아 공화국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완전히 국제전이 되어버렸다. 황태후의 출생국인 사르데냐 왕국에선 브르타뉴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자칫하면 더 많은 국가가 끼어들 판국. 대체 어디까지 사태가 커져버릴지 짐작도 안 되었다.

지금쯤 프랑크 황제와 브르타뉴 여왕은 야연실색하고 있겠지.

황제는 몰라도 앙리에타 여왕은 유능했다. 바타비아 공화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응이 너무나도 재빨랐다. 그게 문제였다.

“자아. 여기서 앙리에타 여왕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겠느냐?”

“…….”

지도를 펼쳐놓고 데이지에게 물었다. 데이지는 낮에 제레미한테 각종 교양을 교육받았고, 저녁과 밤이 되면 나의 시중을 들었다.

나는 이따금 데이지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일종의 유희였다. 나와 쏙 빼닮은 성격을 타고난 이 여자아이에게 질문한 다음에 대답을 듣는 것은, 꼭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가끔은 역겨웠지만.

“앙리에타 여왕은……바타비아 공화국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데이지가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얘기했다.

“아직 월맹군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국가들은 섣불리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두렵겠지요. 바타비아 공화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아마도 앙리에타 여왕은 그렇게 여겼을 겁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지도를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타비아 공화국은 마왕군과 직접 국경을 맞닿지 않습니다. 튜튼 왕국이 보호해주고 있지요. 즉, 다른 국가와 달리 내전에 참전할 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아닌가요?”

나는 씨익 웃고 말았다.

“나쁜 대답은 아니지만 아깝게도 틀렸다.”

정답은, 월맹군에서 바타비아 공화국 방면의 사령관을 맡은 마왕 파이몬이 동시에 공화국의 수령이라는 것이었다.

즉, 바타비아 공화국은 애시당초 마왕군과 싸울 일이 없다……그러니 마음 놓고 프랑크 내전에 참여할 수가 있다. 이건 시작부터 앙리에타 여왕으로 하여금 오판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데이지는 물론이고 앙리에타조차 당연히 몰랐다. 마왕 파이몬이 인간계의 공화국을 막후에서 조종한다는 것 따위, 알 턱이 없었다. 앙리에타 여왕은 결코 잘못하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자아, 게임의 역사에서는 프랑크를 점령하고 제국을 건설한 여왕이여. 그대는 훌륭하게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나와 해방동맹 역시 매우 오래동안 계획을 준비해왔다.

그대가 다음에 둘 수는 무엇인가? 아직 황녀에 불과했던 엘리자베트는 이미 패권에서 멀어졌다. 그 다음 차례가 너다.

부디 멋지게 왈츠를 추어주기를. 나는 일일여삼추와 같은 심정으로, 마치 애인을 몹시 애태우며 그리워하듯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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