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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195화 (195/510)

00195 IF 루트: 프린세스 디펜스  =========================================================================

*  *  *

사냥회는 순조롭게 시작했다.

귀족들은 자유롭게 이합집산하여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열띄게 사냥감을 쌓아올렸다. 점심이 되어 한 차례 휴식시간을 가질 때가 되자, 수십 명의 하인이 저마다 사냥감을 들쳐매고 돌아왔다.

“베스트팔렌 변경백이 고귀하신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 전하께 진상합니다.”

“리히트호펜 남작이 고귀하신 엘리자베트 폰 합스부르크 전하께 바칩니다!”

“로젠베르크 변경백이 고귀하신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 전하께 진상하나이다.”

이번 사냥회에서 황실의 레이디는 두 사람, 요한나 전하와 엘리자베트 전하였다. 귀족들은 제각기 자신이 원하는 레이디에게 사냥감을 바쳤다. 두 전하 앞에는 사슴이며 멧돼지며 멋들어진 사냥감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헤에.”

“호오.”

두 전하가 흥미롭다는 듯 구경했다. 황태자파에 속하는 귀족들과 변경백들은, 재미있게도 요한나 전하한테 사냥감을 진상했다. 반면에 황녀파에 속하는 귀족들은 엘리자베트 황녀한테 진상했다.

요한나 전하가 씨익 웃었다.

“이거 어떡하지, 엘리자베트? 오늘 최고의 마드모아젤은 나인 것 같네.”

엘리자베트 황녀의 협박에 떨어대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장난스럽고 순수한 악동이 거기 있었다. 물론, 엘리자베트 황녀는 고단수였다. 한시도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직은 그렇군요. 하지만 사냥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언니.”

“흐응. 그래, 아직도 행사는 많이 남았지.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도 지루하지 않아?”

“지루하시다면?”

요한나 전하나 이쪽을 흘낏 쳐다보았다. 나는 신호를 알아듣고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마음속으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번 사냥회의 '백미'를 선보일 차례였다.

‘자아.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루돌프 황태자 전하. 엘리자베트 황녀 전하.’

두 사람은 우리 요한나 전하에게 선전포고했다. 한 사람은 직접적으로, 다른 한 사람은 간접적으로.

둘 다 건방지고 콧대 높은 황위계승자였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황제 폐하께서 지정하신 주최자, 요한나 전하한테 감히 무례하게 나왔다. 그들이 이런 태도로 나오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벌써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끄응, 끙.”

임시로 내 휘하에 배속된 하인들을 시켜서 큰 상자를 들고오라 명령했다. 하인들은 끙끙거리며 상자를 가져왔다. 쿠웅, 소리를 내며 상자가 바닥에 놓였다. 가볍게 점심을 챙겨먹던 귀족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친애하는 전사들이여! 수고했어.”

요한나 전하가 일어서서 손뼉을 쳤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녀뻘인 나에게 이토록 열렬히 구애하다니 경들의 취미가 심히 의심스러운걸. 합스부르크 제국의 미래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야.”

“하하하.”

귀족들이 뿔잔을 치켜들며 “황녀 전하를 위하여!”라고 소리쳤다. 여기저기서 무질서하게 건배가 이어졌다. 엉망진창인 건배 선창이 오히려 묘하게 화음을 이루어, 연회장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직 루돌프 황태자만이 뚱한 얼굴이었다.

“고마워, 친애하는 전사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위해서 한 가지 선물을 준비했어.”

“호. 그것이 무엇입니까, 전하?”

베스트팔렌 변경백이 물었다. 그는 성량이 유독 거대했다. 단순히 질문했을 뿐인데도 목소리가 모두한테 들렸다.

“바로 사냥감이지. 그대들이 나를 위해 이리도 많은 맹수를 잡아 진상하는데, 주최자인 나라고 그럴듯한 짐승 하나 잡지 않아서야 쓰겠어?”

“음? 황녀 전하께서 사냥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응, 아주 거대한 사냥감이야.”

요한나 전하가 대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그대들이 나에게 선물해준 사냥감보다 아무래도 격이 한 단계 높다고 고백해야겠어.”

“허허, 그거 기대되는군요.”

귀족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들은 이미 요한나 전하가 허언을 일삼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전하가 이렇게 말했으면 정말로 대단한 사냥감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재치 있는 농담거리일 거라고 기대하겠지.

“로리타.”

“예, 전하.”

내가 관짝처럼 커다란 상자의 문을 열었다. 상자가 열리고 그곳에서 소위 '사냥감'이 모습을 드러내자,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묘령의 여인이 있었으니까.

“그 아가씨가 전하의 사냥감이옵니까?”

베스트팔렌 변경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덩치가 고릴라처럼 거대했는데, 그렇게 위여운 동작을 보여주니 꽤나 어색했다. 요한나 전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아. 그녀는 반역자야.”

“……예? 송구합니다, 전하. 소신이 잘못 들었나이다.”

“그녀가 반역자라고 말했어. 베스트팔렌 변경백.”

반역자.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의뭉스러운 눈초리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여인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빠르게 루돌프 황태자와 엘리자베트 황녀의 안색을 살폈다. 황태자는 가만히 인상을 찡그렸고, 황녀는 평탄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 통해서 나는 깨달았다.

‘엘리자베트 황녀, 당신이었군.’

내가 몰래 오른손을 꽈악 쥐었다.

*  *  *

수주일 전부터, 세바스찬과 나는 계획을 짰다. 우리는 황제 폐하께서 대사냥회를 맡긴 이래 요한나 전하가 황위계승권자들의 타겟이 되리라 예상했다.

제1황녀, 제3황자, 제4황자, 자그마치 세 분의 전하가 의문사 당했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죽음에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우리는 “요한나 전하에게도 암살 위험이 밀어닥칠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빠르게” 다가오리라 생각했다.

“에이.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우리들의 생각을 전해듣고 요한나 전하가 반신반의했다.

“이제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인데. 루돌프 오빠랑 엘리자베트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까?”

“인생은 화살처럼 빠르지만 죽음은 더더욱 빠릅니다, 전하. 부디 고려해주시길.”

“하지만 어떻게 나를 죽여?”

요한나 전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황궁에 있어. 여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구. 암살자가 침입할 방법이 없는걸.”

“전하, 황궁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암살자가 널려 있습니다.”

“하아? 누구?”

“시녀들과 시종들. 그들이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리나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 말에 요한나 전하가 화나서 껑충 뛰었다.

“그럴 리 없어, 바보들아!”

요한나 전하는 어릴 적부터 황궁에서만 지냈다. 덕택에 시녀들이나 시종들과 친밀했다. 실제로 궁내부의 사람들은 모두 이 귀여운 두 번째 황녀 전하를 사랑했다. 하지만 음모는 바로 상대방이 “그럴 리 없다”라고 믿는 곳에서 시작한다…….

세바스찬과 내가 합심하여 겨우 전하를 설득했다. 황녀 전하가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좋아! 어디 너희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만약 암살 음모 따위가 없었다고 밝혀지면, 너희 둘 다 엉덩이 발개벗고 나한테 볼기를 맞을 줄 알아!”

황녀 전하가 엉덩이를 때리겠다 말한다면 그건 정말 때리는 것이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명심하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계획은 단순했다.

“만약 누군가가 요한나 전하의 암살을 노린다면, 틀림없이 하인들을 통해서 이루려 할 것입니다. 문제는 요한나 전하에게 직속 시종이라곤 고작 우리 두 명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내가 세바스찬에게 말했다.

“아마도 암살자는 세바스찬 님을 이용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그건 왜 그런가?”

“세바스찬 님이 지나치게 노련한 궁내인(宮內人)이기 때문이지요. 요한나 전하에 대한 충심도 확실하고, 더군다나 수십 년 동안 궁전에서 지내온지라 쉽사리 암살에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흠.”

세바스찬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뜻인지 알았네. 필경 자네를 통해서 암살을 모의하겠군…….”

“바로 그렇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루돌프 전하나 엘리자베트 전하, 두 분은 심복들을 총동원해서 저를 감시하고 있겠지요.”

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 증거로, 벌써 저에게 은밀한 하룻밤을 주문한 시녀가 스물세 명이나 됩니다.”

“허허허.”

세바스찬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제국 역사상 가장 인기많은 하인이 되었군. 축하하네, 로리타. 자네가 부럽구만.”

“이래서 인기 많은 남자는 곤란합니다. 뭐, 그중에는 순수하게 저와 즐길 마음으로 접근한 여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전부 거절했습니다.”

세바스찬이 음? 하고 눈썹을 쨍그렸다.

“어째서인가? 그들을 낚아올려야지 미리 암살에 대비할 수 있을 터인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중에 정말로 저와 한번 자려고 접근한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암살자라는 확신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하고 내가 제안했다.

“황녀 전하의 군것질거리를 제가 모두 책임진다는 소문을 퍼트립니다.”

“……실제로도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소문'입니다, 세바스찬 님.”

내가 그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세바스찬 님의 인맥을 경유해서 다과를 얻었습니다. 이제부턴 다릅니다. 저 홀로 주방을 오가면서 과자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나……그렇게 되면 자네가 볼품없이 주방의 하인들에게 구걸해야 할 것인데.”

“바로 그게 목표입니다.”

세바스찬은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가 전하의 입에 직접 들어갈 과자를 구하느라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런 소문이 퍼진다고 해보지요. 암살을 노리는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세바스찬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치켜들었다.

“그런가, 자네의 궁색한 처지를 이용하려 들겠군!”

“예. 저에게 과자장인이나 과자가게를 소개시켜 주려는 사람이 나오겠지요.”

내가 빙그레 웃었다.

“만약 주방의 하인들과 화해시켜주겠다고 말하면 암살자일 가능성이 적습니다. 하지만, 황궁의 주방이 아니라 예컨대 궁 바깥의 장인이나 가게를 소개한다면……틀림없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암살자입니다.”

우리는 차분하게 낚싯바늘을 드리웠다.

아니나 다를까. 사냥회가 시작하기 며칠 전, 한 명의 시녀가 내게 접근했다.

에리엘.

쇠퇴한 궁정귀족의 사녀이자 첩의 딸인 그녀는 사실상 가문에서 내쳐진 여자였다. 암살자로 써먹기에 이보다 적절한 시녀는 없겠지.

요한나 전하에겐 충격이었다.

시녀들 중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가 있었다. 가족의 우애 따위는 눈꼽만치도 느껴보지 못한 황녀 전하에게, 진짜 가족은 다름 아니라 하인들이었다……그런 이가 배신했다.

더더구나, 그 암살을 획책한 배후는 루돌프 황태자이거나 엘리자베트 제3황녀. 친오라비와 친여동생이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요한나 전하가 침울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궁정이 이런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슬프구나. 결국 나에게 가족이란 없는 거였어…….”

“전하.”

“로리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언해줘.”

요한나 전하의 눈빛이 어둡게 침잠했다. 나는 그것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  *  *

“그녀는 이미 자신이 암살자임을 고백했어. 하지만, 충성스럽게도 그녀를 고용한 주인이 누구인지는 끝끝내 밝히지 않더라구.”

요한나 전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귀족들이 아연질색하여 전하를 바라봤다.

며칠 전, 나는 에리엘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척 유인했다. 에리엘은 기쁜 듯이 따라왔다. 그녀를 기다리는 운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여성으로선 도저히 버티지 못할 칼질이 이어졌다. 그녀는 겨우 두 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토로했다. 다만, 모종의 마법이 걸린 것일까. 누가 그녀를 사주했는지만큼은 말하지 못했다.

요한나 전하가 검을 집어서 에리엘의 발밑에 내던졌다.

“자아, 검을 들어. 암살자.”

“…….”

에리엘이 벌벌 떨면서 발밑을 쳐다보았다.

옷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신체는 이미 고문으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다. 고문은 요한나 전하가 직접 관람하는 앞에서 치루어졌다. 에리엘은 명백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요한나 전하가 미소를 지었다. 잔인한 미소였다.

“왜 그래?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제국의 핏줄을. 두 번째 황녀인 나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 기회를 주려는 거야.”

“어, 으…….”

“경고하는데, 너가 검을 들든 들지 않든 결투는 시작해.”

에리엘이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롱소드를 들었다. 시녀의 가녀린 팔목, 게다가 고문을 겪은 몸으로는 검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했다.

그걸 보고 요한나 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또한 세검을 빼들었다. 결투가 시작한 것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에리엘이 괴성을 지르면서 전하에게 달려들었다. 누가 보아도 보법이 엉망이었다. 허나 황녀의 옥체에 검끝이 다가간다는 사실만으로 주변의 귀족들은 경악했다. 그들이 뛰어들려고 했다.

“전하, 위험합니다!”

그 직전, 요한나 전하가 한 발자국 먼저 움직였다.

전하는 사뿐하게 몸을 돌려서 가뿐하게 에리엘의 검을 피했다. 그대로 세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정확히 에리엘의 목을 쓸어넘겼다. 에리엘은, 자기가 달려온 기세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털썩 넘어졌다. 이 시녀는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후에 영원히 일어서지 못했다.

“…….”

좌중이 조용해졌다. 귀족들은 말문이 막혀서 전하를 바라보았다. 전하만이 도도하게 허리를 바로 세우고 서 있었다. 전하가 휙, 하고 검을 내리쳤다. 핏물이 땅바닥에 튀었다.

“합스부르크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여. 이 사냥의 주빈인, 위대한 변경백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황실에 불미스러운 풍문과 어두운 소식이 연달아 터지고 있음을 알 거야.”

황녀와 황자들의 의문사를 일컫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억해둬. 합스부르크는 아직 명예를 잊지 않았어. 제아무리 불법적인 수단이 황가를 위협하더라도, 불순한 무리가 황실의 이름을 더럽히더라도, 나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는 전사의 명예를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킬 것임을 그대들에게 보여주겠어.”

“…….”

“그러니 그대들은 황실을 걱정하지 마. 그대들의 영지로 돌아가. 그대들의 전선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영지를 보살피고, 국경을 사수해. 그대들이 합스부르크의 성벽을 지킬 동안 나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는 황궁에 충실히 봉사할 테니.”

요한나 전하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바치는 사냥감이야.”

*  *  *

대사냥회가 파했다.

점심이 끝나고도 사냥은 계속되었지만, 사냥에 신경을 열중하는 귀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은거하던 제2황녀가 공식적으로 후계경쟁에 뛰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결투'라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성한 방식을 통하여.

세련된 취향의 귀족은 이것이 야만스럽다 여겼으나, 대다수의 귀족, 기사도에 대한 낭만에 공감하는 귀족들은 요한나 전하에게서 깊은 인상을 느꼈다. 특히나 골수부터 군인인 변경백들은 사냥회가 끝나고도 개인적으로 요한나 전하를 알현함으로써 무언의 지지를 보내왔다.

그날 하루가 끝나고 밤이 깊어졌다.

요한나 전하는 좀처럼 침상에 들지 못했다. 끊임없이 포도주를 마셨다.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조용히 전하가 원할 때마다 유리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로리타.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루돌프나 엘리자베트와 경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전하가 중얼거렸다.

나에게 얘기한다기보다, 창밖 너머의 무언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즐겁게 살아가다 죽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싶었어. 하지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하인들조차 간단하게 나를 암살하려고 들어. 아마도 나는 언젠가 소리 소문 없이 암살되었겠지…….”

“…….”

아니다. 당신에겐 조금 더 처참한 죽음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루돌프 오라버니는, 엘리자베트는……벌써 몇 번이나 이런 일을 해온 거야? 어째서……황위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는데…….”

전하의 어깨가 조금씩 떨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주인이 우는 모습은, 일개 하인이 봐도 좋을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고개를 돌리더라도 살며시 이 어린 공주님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앞으로도 우리는 몇 번이나,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이런 일을 겪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다름 아니라 대륙의 패자가 될 여인이니까요.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절대로 전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결코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게 지지하겠습니다. 당신이 제 목숨을 구했듯이, 제가 당신의 목숨을 지키겠습니다.

설령 죽더라도 제가 함께 죽어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는 한낱 시종에 불과한 저라도 할 수 있겠지요…….

밤이 깊어졌다. 이 밤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모른 채,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 IF 루트 <프린세스 디펜스> END.

이후로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 황녀와 로리타, 세바스찬은 서로 의지해가며 난국을 헤쳐나가겠지요. 그들이 미래의 패왕에게 맞서서 어떻게 생존해나갈지. 그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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