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88화 (188/510)
  • 00188 순례의 길  =========================================================================

    데이지가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이 말했다.

    “무엇이 당신의 이름입니까?”

    “응?”

    “처음 마을에서 뵈었을 때 당신께선 안드로말리우스라 자칭하셨습니다. 다음은 단탈리안. 그 다음은 쟝 볼레.”

    그녀는 눈초리가 반항적이었다. 단순히 나에게 순응하기 싫어서 반항하는 게 아니었다. 일종의 확신이라 할 무언가가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저는 당신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겠습니까?”

    “다만 단탈리안이라고 불러라.”

    “단탈리안.”

    데이지가 입술을 자그맣게 열더니,

    “그게 정말로 당신의 이름입니까?”

    “그래.”

    “……단탈리안.”

    하고 다시 중얼거렸다. 발음을 자신의 혓바닥과 입안에 똑똑하게 새기겠다는 듯이. 그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만큼 자존감을 채워주는 일은 없었다. 설령 상대방이 나를 죽이고 싶어하더라도.

    “그래, 단탈리안이다. 라엘리아 산마을에서 온 꼬맹아.”

    나는 작게 웃으며 담뱃대를 꺼내들었다. 제레미에게 부탁해서 얻은 물건이었다. 향초잎을 꾹꾹 눌러담아 부싯돌로 불을 지폈다. 쌉싸름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후우, 하고 연기를 흘려보냈다. 향기로웠다. 연금술사가 손수 제조한 최고급 향초라느니 뭐라느니 제레미가 선물하며 잔뜩 생색을 냈는데 과연 자랑할 만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단, 너는 일단 내 양녀로 되어 있다. 필요할 때는 아버님이라고 불러라. 기본적으로 도시나 마을에 갈 때, 주변에 낯선 인간이 있을 때 아버님이라 부르면 된다.”

    “아버님이라.”

    데이지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일찍이 산골 화전촌에서 보았던 바로 그 미소였다. 즉, 당신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안다는 미소였다. 노예각인 수술 이후로 불과 며칠 만에 소녀는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왜, 내가 아버지라니 마음에 안 드냐?”

    “딸아이를 그리 폭행하는 아버지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잠자는 도중에 암살하려 드는 딸년도 없지. 거 멋진 집안이로군.”

    잡담을 떠들고 있자니 슬슬 시간이 되었다.

    나는 성직자용 로브의 안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집었다.

    “입을 열고 혀를 내밀어봐라.”

    “무엇인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미약이다. 세 방울만 마셔도 웬종일 발정한다지.”

    데이지가 어이없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딸아이에게 미약을 마시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정말로 대단한 분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군요. 개인적으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네가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나 대단한 건 세상이 다 안다. 입이나 열거라.”

    “…….”

    데이지의 작은 입술이 열렸다. 틈새에서 발간 혀가 나왔다. 나는 허리를 굽혀 키를 맞춘 다음, 정밀하게 물약 두어 방울을 혓바닥에 떨어트렸다. 또옥, 또옥, 하고 보라색 물방울이 스펀지에 빨려들듯이 바로 녹아서 사라졌다. 맛이 이상한지 데이지가 눈썹을 찌푸렸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목소리를 내지 마라. 이건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녀석은 단탈리안, 주인님, 아버님이라는 세 가지 호칭 중에 마지막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물론 나를 진짜 아버지로 모시겠다는 갸륵한 마음가짐 따위는 전혀 없었다. 순전히 비꼬는 의미였다. 너까짓 것이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니 어떤 기분이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징글징글한 꼬맹이가 아닌가.

    나는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제국로 길변의 숲속으로 끌고왔다. 용병 몇 명쯤은 우리가 나가는 모습을 보았으련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아무도.

    *  *  *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제 막 봄이 움트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거미줄처럼 뒤덮었고, 미처 줄에 걸리지 않은 햇볕이 가느다랗게 땅바닥에 떨구어졌다. 깊은 숲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살인과 강간, 핏물이 몇 번이고 숲을 적셨겠지.

    나무들은 실로 많은 것을 봐왔다. 무엇보다 멋지게 침묵하는 법을 안 덕택이리라.

    사람들은 나무가 말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데 왜냐하면 나무가 대화를 걸어온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한테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이 나무에게 생각하는 능력조차 없다고 확신한다. 말할 줄 아는 존재라면 당연히 자기들한테 말해오리라고, 정말이지 그들은 한치 의심 없이 믿는다…….

    그리하여 남들 앞에서는 못할 짓을 나무가 보는 앞에서 많이도 행했다. 키스와 맹세, 거짓말, 모략, 살인, 강간……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진 그 많은 일을 어떻게 전부 열거할까.

    숲이 한결같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인간 중에 누군가가 만약 나무가 되어 그토록 자주, 그토록 짙게 정액 냄새와 피 냄새를 맡는다면 이윽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하아.”

    어느새 데이지는 숨소리가 가빠져 있었다. 새하얀 목덜미가 빨갛게 물들었다. 단지 걸을 뿐인데도 이따금씩 몸을 쭈뼛거렸는데, 그 횟수가 점차 눈에 띄게 늘어났다. 얼마 가지 못해서 결국 데이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땅바닥을 밟으면 진동이 척추 끝까지 흔들어대는 것일까. 데이지는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정전기라도 느끼는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신음은 이빨과 입술의 틈마저 비집고 튀어나왔다.

    “제대로 찾아왔군.”

    내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그러는 김에 데이지의 등을 눌러서 녀석도 내려앉혔다. 손바닥으로 등을 꾸욱 누르자, 데이지가 견디기 힘들었는지 또 한 번 신음이 흘렀다.

    “자아. 데이지. 저쪽을 보아라.”

    내가 수풀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데이지는 풀린 눈으로 그곳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아마도 한동안은 눈앞의 광경이 지각되지도 않은 듯했다.

    “……!”

    약간의 시간차가 있고 난 뒤, 데이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온몸에 쇄도하는 정전기를 잠시간 잊어버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비로소 그녀의 귀에도 저쪽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수풀 저편에는 제레미와 루크가 있었다.

    “누나, 잠깐만요, 흐윽, 더 이상은……!”

    “어머나. 꼬마 주제에 커져서는, 응? 누구를 골려먹으려고 이렇게 커졌을까요?”

    루크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지춤을 내렸는데 열한 살치고는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물건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을, 루크와는 반대로 상반신을 벗어재낀 제레미가 가지고 놀았다. 그녀는 두 가슴 사이에 루크의 물건을 껴서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정말이지, 한창 때의 소년은 다르네요. 벌써 두 번이나 가버렸으면서 전혀 기죽지가 않아요. 괴롭히는 보람이 있는걸요.”

    “아까 전에도, 쌌는데……! 흐윽, 왜……!”

    “갈 것 같아요? 갈 것 같은 거죠? 후후. 여기 끄트머리가 기분이 좋은 거죠?”

    “또, 또……흐윽, 또……!”

    루크. 이 소년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쾌락의 파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기 얼굴에 침이 줄줄 흐르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절정에 시달렸다. 데이지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빠가 여자와 놀아나는 모습을 본 탓일까. 데이지가 이쪽을 노려보았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것이 당신의 노림수였습니까.”

    뚜렷하고 맑게 개인 시선이었다. 고요한 분노가 그곳에 있었다.

    “여자한테 명령해서 제 오라비를 놀리고, 이제는 당신이 저를 범할 생각입니까? 남매를 한자리에서 따먹는다. 위대하신 존재에게는 지나치게 얄팍하고 어수룩한 수작이라고 생각되는군요.”

    “크흐.”

    어린아이가 거침없이 따먹느니 마니 하는 단어를 썼다. 데이지에겐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저건 어디까지나 루크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는…….”

    “너희 오빠는 사춘기이지. 제레미처럼 성숙한 여자가 유혹하면 네 오라비가 단칼에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데이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루크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제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걸 저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친오빠의 개인적인 생활을 훔쳐보는 악취미 따위, 저는 가진 기억이 없습니다.”

    “오오. 걱정하지 마라. 이건 나의 악취미이니까.”

    내가 데이지의 뺨을 쓰다듬었다.

    “……!?”

    소녀의 몸이 퍼뜩 소스라쳤다. 예민해진 신경이 그녀를 깜짝 놀래킨 것이었다.

    데이지는 이를 악 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꼭 사나운 짐승 같았다.

    “잠자코 지켜보아라.”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소녀의 뺨을 잡아서 그대로 돌렸다. 데이지는 온몸을 떨면서도 물기가 맺힌 눈동자로 루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제레미와 루크가 그곳에서 한창 놀고 있었다. 아니, 한창이라는 표현은 과했다. 루크는 벌써 기진맥진했다. 그 나이또래에게는 너무 강력한 쾌락이었겠지.

    “우리 귀여운 루크. 이게 뭔지 알아요?”

    그때 제레미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제부터가 본방이었다.

    “뭐, 뭔데요, 누나?”

    “후후. 루크, 원래 이 물건은.”

    짜잔! 하고 제레미가 과장되게 말했다.

    “놀랍게도 여자의 그곳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물건이랍니다!”

    “네?”

    “으응. 그러니까 이걸 사용하면 말이죠, 루크. 정말로 여자한테 집어넣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어요. 루크는 아직 어리니까 언니랑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가 없어요! 아쉽게도. 그러니 진짜 여자 대신에 이것처럼 정교하게 제작한 모조품으로 즐기는 거랍니다. 원래 남자아이들은 전부 그래요!”

    제레미의 한 마디에 전세계 소년들의 성생활이 왜곡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데이지는 지금 저편에서 오가고 있는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내 옆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눈썹을 찡그렸다.

    소녀가 의문을 풀든 풀지 못하든 상관없이, 제레미는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자아. 오늘 루크랑 여기에 온 건 바로 이 물건을 선물하고 싶어서예요. 루크는 깡촌 시골마을에서 자라나 잘 모르겠지만 원래 이런 건 여자가 선물하거든요! 자기 마음에 든 남자애한테 선물하는 것이 오래된 전통입니다.”

    그런 전통이 있는 국가라면 망해도 진즉에 망했겠지.

    순진한 소년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 그래요?”

    “네. 저는 루크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제레미가 미소를 지었다.

    “어, 어?”

    “제가 열심히 준비한 선물을 루크가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정말로 기쁠 것 같아요.”

    루크는 기본적으로 선인이었다. 자기를 좋아해준다는 사람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상대방은 조금 전에 자신과 쾌락을 나누던 사이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소년이 거절할 리 만무했다.

    루크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누나가 저한테 선물하는 거라면……좋아요. 저도 기뻐요.”

    “와아아! 정말요!”

    제레미가 루크를 와락 껴안았다. 루크 역시 피부가 민감해져 있는지 비명 비슷한 신음을 질렀다. 그런데도 제레미를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누가 포식자이며 누가 피식자인지 이미 결정된 모양이었다.

    “그럼 루크! 제가 손수 이 물건의 첫경험을 안겨줄게요.”

    “네?”

    “엄청 기분이 좋으니까 루크도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이쯤 되니 무언가를 깨달았을까.

    옆에서 숨소리를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데이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불안한 시선으로 루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했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만이 거기서 떨고 있었다.

    “설마…….”

    내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설마이다, 꼬맹이 아가씨.”

    데이지가 공포에 담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작게 웃고 말았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요 꼬맹이의 시선에 공포가 담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데이지의 입가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나는 데이지에게 속삭였다.

    “몸통이 분열된 슬라임에는 특이한 성질이 있지. 한쪽이 고통을 받으면 다른 한쪽도 그대로 고통을 받는 거야. 물론, 고통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통각이라도 충실하게 전달하지……아아. 부디 마음껏 즐겨주기를 바란다.”

    코앞에는 경악하는 소녀의 눈동자가.

    멀리서는 제레미가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아, 우리 루크! 제 선물을 마음껏 즐겨주세요!”

    슬라임 오나홀. 데이지의 뱃속에 심어놓은 그것과 똑같은 슬라임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 물건을, 제레미가 루크의 하반신에 쑤욱 밀어넣었다.

    “……!”

    데이지의 허리가 활자로 꺾였다.

    ============================ 작품 후기 ============================

    조아라의 권고 조치에 의해 수정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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