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4 동족혐오 =========================================================================
“의외의 장소에 있었군.”
“츄으읍……으응.”
제레미가 조심스럽게 내 물건에서 입을 뗐다.
귀두가 입술에 살짝 걸렸다. 제레미는 하아, 하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의 절반이 흉터에 덮여 있었다. 누군가는 흉칙하다고 꺼려하겠지. 나에겐 색다른 매력으로 비추었다.
“반응이 나왔나요, 전하?”
“아아. 어디인지 알면 놀랄걸. 레라지에 전하께서는 자그마치 무대 위에 계셨다. 그것도 조연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이야.”
“어머나. 그분도 취미가 꽤 특이하네요.”
제레미가 웃으면서 다시 얼굴을 숙였다. 뜨거운 혀가 음경을 집어삼켰다. 입 전체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마치 저절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펠라 솜씨에서는 제레미가 라우라보다 한 수 앞섰다.
“오페라 배우라는 게 취미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으응, 응, 흐으응…….”
제레미가 교성이 섞인 콧소리로 대답했다. 절대 아니지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긴 오페라에 출연하려면 연기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배워야 하리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흐음. 그럼 레라지에는 제법 진지하게 오페라에 몰두한다는 얘기인데…….
“좋지 않은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제레미.”
“하웁?”
“아. 멈추지 말고 듣기만 해. 기분 좋으니까.”
내가 무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랫도리에서 쾌감이 한층 강해졌다. 제레미가 얼굴을 앞뒤로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귓가에 오페라 배우들의 노래와 제레미의 질퍽한 침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모르긴 몰라도 아까 전에 비하면 음악의 수준이 훨씬 높아진 게 분명했다.
“처음에 레라지에가 우리랑 만나는 것을 꺼려했잖아. 나는 그냥 단순히 우리의 의도를 모르겠어서 간을 재보는 거다 싶었는데……만약 레라지에가 열광적인 오페라 배우라면, 자기가 나오는 오페라의 초연을 포기할 수는 없을 거 아냐?”
“……으응, 응, 으으읍.”
제레미가 아주 잠깐 멈칫했다.
“혹시, 만에 하나의 이야기지만. 그냥 공연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우리와 만나는 걸 망설인 걸지도 모르겠다. 듣자하니 공연은 내일도, 내일모레도 열리는 모양이지 않냐. 그때가서야 시간이 빈다는 얘기인데, 레라지에 입장에서 우리를 사흘씩이나 기다리게 만들기는 곤란했을 테고…….”
내가 곤란함을 얼버무리려고 웃었다.
“오페라 공연을 포기하기도 싫다. 우리와 만나는 걸 거절하기도 싫다. 그렇다면 차라리 초연 공연에 초대해서 '제가 바로 남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깜짝 놀랐지요!' 하고 자그마한 유흥을 안겨주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어……아, 슬슬 싼다?”
“응, 흐흥, 응, 응――으읏, 흐으읍.”
음경이 대여섯 번 떨면서 정액을 뱉어냈다. 제레미는 정액이 전부 나올 때까지 입을 멈추지 않았다. 꿀럭, 하고 모조리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사정의 쾌감이 짜릿하게 흘렀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하아……나는 레라지에의 장단을 아예 무시해버린 꼴이 되는 거야. 내 예술적 취향이 이런 데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상대방에게 최악의 인상을 심어주게 생겼네요.”
제레미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고 얘기했다.
“어쩌죠? 단탈리안 전하, 그렇지 않아도 공연 내내 열일곱 번이나 하품하셨잖아요. 오페라 배우로서 레라지에 전하의 면목이 땅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우물 구덩이를 팠을걸요.”
“젠장할.”
나는 억울했다.
“애당초 왜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을 나까지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지루한 공연에 이끌려와서 도리어 불평하고 싶다고.”
“원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상대방도 좋아해주기를 바랍니다. 배우처럼 자존심이 높은 직종, 타인의 관심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일에 종사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아마도 레라지에 전하는 단탈리안 전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래와 연기를 보여준 것 아닐련지…….”
제레미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녀석은 지금도 '일이 재미있게 되었다'라고 좋아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근성이 뿌리부터 썩은 여자였다.
“이게 어디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들어? 먼저 빨아주겠다고 한 건 너잖아.”
“허락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전하랍니다. 중간에 멈추라고 명령하실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하께선 진상을 깨닫고 나서도 결코 멈추시지 않았지요. 실컷 즐기셨으면서 이제 와서 소인을 책망하려는 것인지요.”
“우와, 요 년 봐라.”
그럼 한번 시작한 것을 관두겠는가?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남자가 그러기란 불가능했다. 일단 시작하면 태풍이 몰아닥치든 테러리스트가 총을 쏴갈기든 끝내야 하는 것이었다.
“으휴. 됐다, 됐어. 널 욕해서 내가 뭐 좋은 걸 얻겠냐. 아무래도 구라를 까야겠다.”
“구라요? 누가 봐도 무례한 짓을 저질러버린 게 분명한 이 상황에서 거짓말이 통할 것 같지 않습니다만.”
“소인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시지요, 제레미 님. 야. 한번 더 빨아.”
제레미가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또요? 정말요?”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빨라면 빨아.”
“아니, 그보다도……사정한 지 몇 초 지났다고 또 합니까.”
제레미는 퍽 의심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네가 내 정력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붉은 흉터 암살대의 엘프 대장이여.
“내가 마왕성에서 일박이일 내내 밥만 먹고 박아본 적도 있는 양반이야. 오페라 끝날 때까지 네가 빨아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간다.”
“헤에.”
그러자 제레미가 헤에, 하고 웃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 승부욕이 자극된 듯했다.
“소인이 이래봬도 화상을 입기 전까지는 암살대에서 주로 미인계를 맡았습니다만.”
“아서라. 방금도 별로 기술이 대단하지 않더구만, 뭘.”
“그야 공연 도중이었으니까요. 실례합니다만, 단탈리안 전하. 소인이 진심으로 나서면 전하께서는 신음을 주체하실 수가 없어서 그만 주변에 폐를 끼치고 말 겁니다.”
별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우리 둘 사이에서 시합이 시작되었다.
과연, 제레미는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음경을 애무했다. 마치 입 전체가 빨판이 되어 흡입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차원이 달랐다. 공연이 끝나기까지 고작 한 시간 동안 어림잡아 일곱 번을 사정했다.
그렇지만 나는 목소리를 참는 데 성공했다! 일곱 번 사정할 때까지 단 한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았다. 나의 입술은 난쟁이족이 만든 성문마냥 굳건했다. 공연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제레미도 스퍼트를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하마터면 흑, 하고 신음할 뻔했지만 참아냈다.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막이 내렸다.
“마, 말도 안 돼요……이럴 리가 없어요. 이건 꿈이에요!”
갈채 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제레미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한때 프란타판스의 흑장미라 불렸던 제가……아무리 그래도, 정말 한번도 소리를 내지 않다니…….”
“이게 마왕의 격이라는 물건이다, 어리석은 마인이여.”
쿨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바지춤을 올리고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동안 제레미는 바닥에 주저앉아 절찬리에 좌절하고 있었다. 뭐, 그녀 덕분에 지루하기만 한 오페라를 한껏 만끽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겠다.
나는 박수 시간이 끝나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이미 관객이 잔뜩 몰려 있었다. 사람들은 공연에 무척 감명을 받았는지 배우들이 한 명씩 나올 때마다 극장 전체가 울릴 정도로 환호했다. 그 정점은, 레라지에로 추정되는 배우가 등장했을 때였다.
“쟈키 베르나르!”
“오, 베르나르! 여길 봐주세요! ”
“꺄아아악! 제홈므! 여섯 번째 베르나르!”
레라지에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코 아래의 입가만 드러났다. 가명이 쟈키 제홈므 베르나르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배우라는 느낌이 풍겨났다.
레라지에가 미소를 지으면서 주변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나 오늘 기절하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으니 말리지 말라는 기세로 마음껏 비명을 질러댔다. 대단한 인기였다.
레라지에의 양팔은 금세 꽃다발로 가득 찼고, 한발 늦어서 꽃다발을 선물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우나마 배우를 향해 꽃송이를 흩뿌렸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했다.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는군.”
“소인이 더더욱 안 좋은 정보를 드려야겠는데요. 프랑크의 오페라 배우 베르나르라면, 마계에서 사는 저한테도 익숙한 이름이에요. 대대로 음악이나 연기에 종사하는 가문이라 들었어요.”
“인간계를 뛰어넘어 마계까지 명성이 드높은 배우 양반이시라.”
볼 것도 없었다. 자존심이 높다 못해서 하늘을 찌르는 성격이었다.
대대로 배우를 했다는 것은 아마도 거짓말이겠지. 마치 후손이 선대를 이은 것처럼 레라지에 본인이 위장했으리라. 그 선조와 후손이 사실은 모두 레라지에가 혼자서 연기한 것이고. 이렇게 되자 자신의 감식안이 조금 절망스러웠다.
“나는 세계 최고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하품했던 거냐…….”
“어쩐지 너무 잘한다 싶었어요. 전하만 아니었으면 소인도 끝까지 봤을 텐데, 아휴.”
어쩌겠는가. 물은 이미 쏟아져도 한참 쏟아졌다.
나는 제레미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레라지에는 천천히, 군중의 파도를 겨우겨우 헤쳐나가면서 극장 출구로 다가왔다. 이윽고 그가 우리 앞까지 접근했다. 우연히 다가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의도적으로 우리한테 온 것이었다.
내가 활짝 웃었다.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무슈 베르나르.”
“이거, 이거. 귀한 손님께서 찾아오셨군요.”
레라지에 역시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그렇게 봐주셨다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무슈 볼레.”
겉으로 듣기에는 아무런 억하심정이 들어 있지 않았지만, 일단 말 자체가 불안했다. 정말로 훌륭한 연기였다 생각하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서열 제14위의 마왕은 단언컨대 괴물 중 괴물에 해당했다. 나 따위는 주먹 한방에 골로 가겠지. 그런 괴물이 나를 나쁜 방향으로 비꼬고 있었다. 어이구야. 두개골이 지끈거렸다. 정말이지 삶에서 쉽게 풀리는 일 하나 없었다.
나는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말했다.
“물론 진심입니다. 마드모아젤 바르바께서도 귀하의 공연에 참석하지 못하신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계십니다. 아시겠지만, 그분께선 이곳에 올 만한 사정이 안 되니까요.”
“호오, 그렇습니까. 이거 영광입니다.”
바르바란 물론 바르바토스를 가리켰다. 내가 단지 개인적인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 바르바토스의 의도를 배달하러 왔다고 암시한 것이었다. 바르바토스의 이름을 들으면 조금 얌전해질까 싶었는데, 레라지에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레라지에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우리 사이에 쌓인 회포를 풀기에 썩 적당하지 못하군요. 어떻습니까, 무슈 볼레?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제 마차에 동석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런. 올해 들어 받아본 초대 중에 가장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고백해야겠군요.”
심장에 영 좋지 않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당연히 수락하겠습니다, 무슈 베르나르. 다른 관객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제가 당신의 곁을 차지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제 뒤를 따라오시지요. 인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하하.”
레라지에는 바로 등을 돌려서 출구를 빠져나갔다.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얼굴 표정과 다르게 화가 엄청나게 쌓였다는 증거로 보였다. 나는 제레미와 함께 그의 뒤를 졸레졸레 쫓아갔다.
우리는 군중을 뚫고 간신히 마차에 올라탔다. 붉은색의 화려한 마차였다. 무려 네 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었는데 이 도시에서 레라지에가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하게 했다. 설마했는데 출신마저 귀족으로 위장해놓은 것 같았다.
마차의 문이 닫히자 레라지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배우를 휘감던 화사한 공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우리 평원파의 최고 참모 나으리.”
레라지에가 가면을 벗었다. 가면 너머에는 조각상처럼 생긴 미남이 있었다. 까만 곱슬머리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자라 있었다.
“미천한 소인의 연기는 잘 관람하셨는지 모르겠군. 하긴 사정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겠지. 배우로서 이만한 영광은 겪어본 적이 없다네.”
레라지에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명백히 이쪽에 적대적이었다.
입맛이 썼다. 자아, 변명이 먹혀들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