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68화 (168/510)

00168 마왕만이 아는 세계  =========================================================================

“후우.”

기지개를 쭈욱 폈다. 새벽의 시원한 바람이 폐를 청소했다.

가슴에 달성감이 차올랐다. 지금 내 손 안에는 종이가 수십 장 있었다. 밤새서 프랑크 내전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었다.

일생의 역작이라 해도 좋았다. 내전과 혁명. 이것들은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극도로 섬세한 장치들이 필요했다. 나는 이 장치들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서 조립하였다.

첫 번째 장치. 대략 열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원고였다. 여기에는 <영원한 국가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였다. 원고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속박하고 있는 이 허위를 깨트려 없애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체의 진실을 말해서 그대로 행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문서는 고대제국어로 작성되었다.

내가 앞으로 뿌릴 책자는 결코 일반 백성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논리가 아니라 강렬한 감정이었다. 반면에 귀족 중에서도 교양이 있는 자, 젊은 학자를 설득해내려면 논리라는 이름의 가면이 필요했다.

어차피 교양인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들도 어디까지나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다만 소위 '끓는점'이 일반 백성보다 높을 따름이다. 논리란 이른바 교양인들이 쉽게 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다.

─ 농민들은 귀족에 노예처럼 예속되어 있다. 때로는 대지주에 예속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며 또 사실 모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입은 그 노예제도 위에 의존해 있으며, 우리 스스로 그러한 제도에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고 잔혹하다는 것조차 알고 있다…….

─ 일찍이 젊을 적에 ‘내가 작위를 물려받는다면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해주리라’ 하고 다짐해보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새벽에 긍지를 품었다가 저녁에는 다시 체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인은 우리의 생활에 있다. 일 년에 300리브라나 되는 돈을 낭비하게 되면서 우리는 다시금 노예제도에 협력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 현재 우리 고귀한 이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아니하며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 이것이 기가 막힌 역설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지금까지 노예제도란 오직 귀족을 위하여 일반 민중을 예속시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도리어 귀족이 노예제도에 예속되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지조차 못하게 되었다.

─ 오늘날 ‘우리 지배계층의 위엄과 수준이 날이 갈수록 형편없어진다’라는 우려의 소리가 곧잘 회자된다. 이 현상의 원인은 다름아니라 저 노예제도의 역설, 즉 주인인 자가 도리어 노예인 자에게 예속된다는 역설에서 비롯한다…….

“캬아! 문장 좋고.”

여기까지 원고를 검토하고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명문이었다.

이건 학술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연설문이나 다름없었다. 연설문은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기술이며, 고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철두철미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 원고의 청자는 젊은 귀족이었다.

젊은 귀족이란 명예에 껌뻑 죽는 새끼들이다.

그들은 노예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자신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한다고 굳게 믿는 놈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귀족의 삶에도 자유 따위는 없다.

장남으로 태어났다면 무조건 후계를 물려받아야 한다. 군주가 전쟁을 벌이면 무조건 소집령에 응해야 한다. 차남이나 삼남으로 태어났으면 기껏해야 이류 기사로 떠돌아다닌다. 그들에게는 온갖 의무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나는 이 지점을 찌르고 있다.

─ 신들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토지의 주인이 되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수천 년에 걸쳐서 대지를 경작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건대, 우리는 토지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다만 토지의 노예로 전락한 것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무엇이 올바른지를 알면서도 외면한 결과이다.

─ 우리는 학회나 정부기관에서 농민들이 왜 빈곤한지, 생활을 증진시키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무수히 많이 논의했다. 그러나 농민의 생활을 올바르고도 유일하게 진흥시키는 방법, 즉 농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토지를 농민들에게서 그만 빼앗을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

먼저 귀족들의 긍지를 인정한다. 그리고 왜 긍지를 스스로 저버리는지 비판한다. 다음에는 긍지를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설교하는 듯한 말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꾸짖는다. 단, 당신은 얼마든지 정의로워질 수 있다고 착각을 불어넣는다. 자존심을 자극한다. 행동을 부추긴다. 감정을 달아오르게 만든다.――고대제국어로 쓰인 이 글줄은,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럴듯한 논리를 조미료로 뿌려놓은 선동문구였다.

장담컨대 여기에 넘어가는 귀족들이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 토지는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물이나 공기나 햇빛과 마찬가지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 모든 인간은 토지에 대하여 또 토지가 인간에게 주는 온갖 이익에 대해서 평등하게 권리를 갖고 있다.

마치 당연한 진실을 얘기하듯이 단언조로 얘기한다. 마치 지금까지 말한 것들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처럼.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단지 선동문구에 불과한 문장을 논리적인 귀결로 받아들인다.

물론 여기에 넘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몇 가지 도구를 더 추가했지.’

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원고를 계속 검토했다. 신기하게도 오자(誤字)가 전혀 없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맞춤법이 틀려먹은 적이 없었다. 내 언어능력에 모종의 힘이 더해진 것 같았는데, 어찌되었든 좋은 일이었다.

─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은 여러 사람이 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따라서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받아서, 공동협정에 따라 지대(地代)를 지불하고, 그 지대는 공동기금으로 납입한다. 이 공동기금은 물론 농민들 자신을 위해서 사용된다.

─ 지대를 결정하는 것은 농민들의 자치기구인 민회(民會)에서 결정한다.

그렇다.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내가 무슨 정치 전문가는 아니다. 어떻게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겠는가? 그러니까 '공동협정'이라느니 '공동기금'이라느니, '자치기구'라느니 '민회'라느니, 무척 멋들어진 고유명사를 써먹는다.

마치 대단한 얘기가 오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원래 고유명사에는 사람을 기죽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삶이란 원래 빌어처먹었다'라는 문장을 '삶이란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다'라고 바꿔 말할 경우, 마치 대단한 진리라도 발언된 것처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귀족들은 그런 수사학을 좋아한다. 젊은 귀족일수록 그렇겠지.

귀족들의 긍지를 자극시킨 다음, 선전문구에 불과한 것을 논리적 귀결인양 위장하고, 그 논리적 귀결을 현실에 이루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멋진 고유명사로 치장한다. 이쯤 되면 꽤나 많은 귀족이 설득되었을 거다.

마지막 어퍼컷으로는.

─ 그렇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우리는 그 문제의 의의를 알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왜 친척들은 살고 있을까? 왜 한스라는 남자가 태어났을까? 나는 왜 몹쓸 짓을 했을까? 왜 누군가는 죽고 나는 살아 있는 것인가? 왜 나는 진실을 외면했을까?

─ 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즉 신들의 운명과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양심에 새겨져 있는 신들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 따라서 끊임없이 숙고해보면 숙고해볼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양심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눈앞에서 보고 느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시작하여, 무한하게 광대한 세계들 너머의 세계들로, 신들의 참된 뜻에로 나아간다…….

“세시봉! 세시봉!”

나도 모르게 프랑스 신사가 되어 감탄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태어났더라면 일약 스타덤에 오를 것이 확실한 문학적 재능이 바로 여기 있었다.

마지막은 역시 종교와 도덕이다. 누구나 종교와 도덕에 열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아무리 냉소적인 인간일지라도 일단 한번 도덕심에 불이 지피면 어쩔 도리 없이 활활 불타오른다. 여태까지 기껏 논리적인 어조로 말했다가 마지막은 도덕적이게 된다, 크흐.

“나 자신의 재능에 감탄할 수밖에 없군…….”

나는 감격에 둘러싸여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새벽의 어둠이 내 재능에 깜짝 놀라 서둘러 산맥 너머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그런가. 나는 마침내 하늘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는가……이 무슨 재능……이 무슨 천재……때때로 나 자신이 두렵다…….

첫 번째 원고를 전부 검토했다.

이걸 책자로 인쇄하여 귀족들한테 전부 뿌린다. 왕당파와 공화파를 가리지 않고.

민회의 공동기금을 일시적으로 귀족이 맡는다느니 하는 내용도 원고에 포함되어 있었다. 즉, 귀족들에게도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두었다. 의협심에 불타오르는 몇몇 왕당파 귀족은 꽤나 혹할 것이다.

“으흐흥.”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다른 종이뭉치를 집었다.

내전과 혁명을 위하여 내가 준비한 두 번째 장치. 이것도 원고였다. 다만 브루노 평원에서 연설한 내용을 아주 약간만 각색했다. 귀족이란 죄다 싸잡아 죽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마찬가지로 이걸 책자로 인쇄해서 귀족들한테 뿌릴 것이다.

단, 공화파한테만.

“미리 분열의 싹을 심어두어야지.”

행여나 인간들이 공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동단결하면 난감했다.

애당초, 왕국에서 공화국이 되면 국력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마련이었다. 원래 세계의 프랑스가 그러했다. 국민들 스스로 혁명을 위하여 일어섰다.

자기 국가를 지키려고 자발적으로 일어선 병사, 황제를 지키려고 억지로 동원된 병사. 어느 쪽이 더 강력할지는 뻔했다.

그럼 곤란하다.

설령 공화주의가 승리할지라도 인간들은 계속 분열되어 있어야 한다. 기껏 열심히 뛰어다녀 제국을 무너트렸더니, 그 다음에 더욱 강력한 공화국이 나타난다고? 웃을 수 없는 농담이겠지.

공화주의 아래에도 여러 파벌이 생기게끔 유도한다. 과격파인가 온건파인가, 귀족을 전부 말살하는가 아니면 관용을 베푸는가, 귀족공화정인가 민주공화정인가……하나의 파벌에 수만 가지의 이념을 갈라놓아 서로 싸우도록 한다.

내가 미소를 지었다.

“딱 사백 년 정도만 이념으로 치고박고 싸워주면 고맙겠는데.”

사백 년보다 더 길게 싸워주면 고맙고.

무얼, 어느 쪽이든 일반 백성의 권리는 올라간다. 대륙의 인간들은 나한테 감사해야 마땅하다. 너희를 대신하여 언젠가 일어날 혁명을 앞당겨주는 것이다. 게다가 파벌까지 미리미리 정해주지 않는가! 성인(聖人) 단탈리안의 조각상을 도시 광장에 세워줘야 할 정도이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장치였다.

앞선 장치들이 귀족과 교양인을 목표로 삼았다면, 마지막 세 번째 장치는 일반 백성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건 연설문이 아니었다. 학술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노래에 불과했다.

크레시에서 수국전쟁까지

푸아티에 그리고 아쟁쿠르여

눈물과 핏물로 얼룩진 검의 언덕을

우리는 오로지 맨발로 지났다네

진격하자, 조국의 아들딸이여.

타는 목마음으로 울부짖으라,

영광의 순간이 왔도다!

붉은 성에서 울름 평야까지

보외티아 그리고 미뉘아이여

언덕과 계곡에 울려 퍼지는

적군의 지옥과 같은 함성을 들으라!

핏물 묻은 전쟁 깃발을 올려라!

핏물 묻은 전쟁 깃발을 올려라!

적들이 우리 아내와 연인의

목을 자르러 다가오고 있다!

창칼을 잡으라, 시민 동지들이여!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여신이시여, 모든 언덕과 계곡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여신이시여, 이제 정의를 노래함을 허락하소서!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이거면 그럭저럭 먹히겠지.”

내가 방긋 웃었다. 혁명가였다. 정확하게 노래가 어떻게 작곡될지는 모르겠어도, 쿤쿠스카 상회에 의뢰하여 마계 최고의 작곡가에게 맡겨보자. 부디 인간 혁명 동지들께서 내 자그마한 선물에 만족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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