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57화 (157/510)

00157 폭군의 시대  =========================================================================

여자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단면은 결코 과도에 잘린 과일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도끼날은 뭉툭하게, 사정없이 여자의 신체를 위쪽에서 아래로 파고들었다.

온갖 희여멀겋고 샛붉은 덩어리와 액체가 튀었다. 그중 도끼에 툭, 툭, 하고 걸리는 것이 여자의 뼈였다. 벨레드는 손바닥에 전해지는 진동을 즐겁게 느꼈다. 이윽고 육체는 두개골에서 가랑이까지 흉칙하게 갈렸다.

대검들이 그림자에 도로 들어갔다. 그러자 반 쪼가리 몸이 서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하나는 왼쪽으로,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마치 붉은 꽃이 활짝 핀 것 같지 않은가. 벨레드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밖에 별다른 감상이 없었다.

“흐흐흥, 흐우으. 크루프 크루프, 크르훕, 크후흡. 크훌라, 크르훕.”

벨레드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여자의 두 동강 난 육체 사이를 걸었다. 프즉, 하고 벨레드의 맨발이 내장을 밟았다. 성문이 무너지면서 피어난 먼지를 향하여, 벨레드는 어디 동네를 산책하는 것처럼 나아갔다.

여검사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검주(劍主)라는 명예에 비추어보면 지극히 허망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죽음만은 아니었다. 약간이나마 마왕 벨레드의 발을 붙잡았다. 그 약간의 시간 덕분에 제국군은 성문 앞에 집결했다.

“대열을 맞춘다!”

요새지휘관도 성벽 아래로 내려왔다. 마왕이 온 것이었다. 검의 주인인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무사들을 다독이면서 성문을 주시했다.

“크루프 크루프, 크르훕. 크후흡. 크훌라, 크르훕.”

먼지구름은 아까 전보다 짙어졌다. 뿌연 먼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느리지만 확실히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걸음마다 목소리는 늘어나 이윽고 한 사람의 콧노래에 불과하던 것이 불길한 합창곡으로 번졌다.

먼지 너머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크르훕. 크후흡. 크훌라, 크르훕.

─ 크루프 크루프, 크르훕. 크후흡. 크훌라.

─ 라일라 파를리아, 크훌라 크훌리.

오래된 군가였다.

아직 악기가 발명되지 않아 인간의 성대만이 세상 유일한 악기였던 시절. 악보도 악법도 없는 고대에 마인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오로지 단선적으로 이어지는 선율은 마치 신전의 성악처럼 성스러웠으며, 한편으로 지나치게 투박하여 화음과 화음이 어긋났다. 그 원초적인 군가에 합스부르크가 자랑하는 제국 무사들이 긴장했다.

터벅.

먼지 너머에서 발끝이 빠져나왔다. 마왕의 발이었다.

이후로 수십, 수백의 발끝이 황색 먼지를 뚫고 나왔다. 온몸이 검은색 갑옷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기사들은, 단 한치의 빈틈도 없이 대오를 이루고 있었다. 먼지구름마저 틈새를 발견하지 못해 그들의 갑옷을 힘없이 비껴갔다.

“…….”

“…….”

양측이 대치했다. 제국군의 대열, 마왕군의 대열,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요새지휘관은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무엇보다도 선두에 선 마왕, 오우거처럼 거대한 작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성교를 하던 와중 절정에 도달한 남자처럼 마왕은 기분 좋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나는 대 합스부르크 제국의 제1급 무사, 비오팔트 폰 라그란츠이다.”

요새지휘관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소리쳤다.

“그대, 일검을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왕이라 생각하는 바. 이름을 고하라!”

“으이구야. 한심한 화상 같으니라구. 제국의 무사란 죄다 꼬락서니가 이런가.”

벨레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가 제국 소속이든 제1급 무사이든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놈도 전사가 아닌가? 대저 전사란.”

벨레드가 도끼를 쥐지 않은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머리 위에 하늘이 있으며, 발 아래 대지가 있고, 이 손에 무기가 쥐어져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자. 그 외에 명성과 명예, 예법이란 한낱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

“…….”

“나는 이미 자신이 마왕이라는 것을 잊었음이라. 내 이름은 벨레드. 네놈과 싸울 것이고, 네놈을 쓰러트릴 것이며, 네놈을 모욕할 장본인이다! 크하하하!”

벨레드가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거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포탄이 되어 질주했다.

죽음의 기사 수백 명이 벨레드를 뒤쫓아 돌격했다. 그들은 바닷새 떼거지가 먹이를 향해 자신의 몸을 쏜살같이 내려꽂으며 사납게 울부짖는 것처럼 달렸다. 이제 질세라 제국군도 고함을 지르면서 내달렸다. 무사들은 밀집대형을 이루어 흙먼지 자욱한 결투장으로 뛰어들었다.

“크하아아아!”

“밀어붙여라! 쳐죽여라!”

성문 앞의 좁다란 길목은 순식간에 격전지가 되었다. 창과 방패, 검과 검이 서로 들이치자 대기를 찢어버리는 듯한 쇠소리가 울렸다.

전사들은 방패로 상대의 몸을 밀어넣으면서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질러댔다. 인간들의 고함 소리에 대기가 떨었고, 마인들의 고함 소리에 마나가 요동쳤다. 귀가 멍멍해졌고 가장 굵은 근육에서 가장 미세한 근육까지 흥분에 꿈틀거렸다.

“벨레드, 내가 상대해주마!”

요새지휘관이 쇠몽둥이를 바로잡았다. 그는 애당초 마왕을 상대할 목적으로 왔다. 상대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이상 이쪽도 검이 아니라 다른 무구로 맞설 필요가 있었다. 마나를 가득 담은 지휘관의 목소리는 곧바로 직진하여 벨레드의 귓속에 울렸다.

“크흐!”

벨레드가 웃음으로써 포효했다. 벨레드는 마침 팔꿈치로 어느 검사의 흉갑을 짓뭉개버린 참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오러로 방어했음에도 갑주는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검사는 피를 토하여 땅바닥에 거꾸로 쓰러졌다.

“나를 벨레드라 불러주었는가――인간!”

벨레드는 갑옷을 걸치지 않았다. 구리색으로 빛나는 상반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벌써 빨간 생채기가 몇 줄기 그어졌지만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마왕의 가공할 만한 치유력이야말로 벨레드에게는 갑옷이나 다름없었다.

요새지휘관과 벨레드, 두 전사가 서로를 향해 뛰었다. 두 사람에게 간격이란 무의미했다. 한 번 땅을 내딛는 것만으로 그들은 격돌했다. 도끼와 몽둥이는 각자 적의 신체를 밀어붙이며 불꽃을 튀겼다.

“크하하하하! 좋다!”

벨레드가 광소(狂笑)했다. 그는 도끼날이 가로막히자 능숙하게 몽둥이를 흘러보내며 도낏자루를 찔러넣었다. 요새지휘관은 도낏자루가 미처 추진력을 얻기 전에 팔꿈치로 막았다. 두 사람의 간극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벨레드는 요새지휘관의 얼굴 바로 코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를 적대하라! 나를 증오하라!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이 나, 벨레드에게 이빨을 드러내라!”

“헛소리!”

요새지휘관은 오른손 주먹으로 벨레드의 복부를 후려쳤다. 쇳덩이처럼 단단한 근육이 그의 주먹을 가로막았다――지휘관이 예상한 그대로, 괴물과 같은 육체였다. 벨레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계속하여 폭소하고 있었다. 공격이 막혔다는 것을 알고 요새지휘관은 재빨리 약간 뒤로 물러섰다.

“나는 너희 인간에게 증오를 받음으로써 살아 있다 느끼노라!”

벨레드가 열렬하게 고백하는 소녀처럼 외쳤다. 그는 도끼를 들어올려 힘껏 내리쳤다. 요새지휘관이 서둘러 몽둥이를 세워 막았다. 도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산사태가 되어 몽둥이를 후려갈겼다. 지휘관은 충격을 흘리기 위하여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크으읍!”

“온 천지에 오로지 너희 인간만이 나를 증오해준다! 오로지 너희만이 순수한 증오심과 순수한 미지로서 곧게 부닥쳐온다!”

마왕이란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여 공정하게 심판하는 제왕.

인간, 그러나 인간 앞에서만큼은 마왕의 의미가 사라졌다.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절대적인 타인 대 타인으로 바로설 수가 있었다. 벨레드는 세상에 인간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 영원토록 인간과의 전쟁에 투신하리라 맹세했다.

인간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고로 정복할 가치가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고로 굴복시킬 가치가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고로 죽일 가치가 있다.

인간은 마인과 전혀 달랐다. 벨레드가 평원파에 들어간 까닭은 다만 평원파가 가장 인간과 적대적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랑 타협하라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벨레드가 생각하기에, 마인과 인간은 단지 서로 맞서싸우기 위하여 존재했다.

아니라면 왜 세상에 마인이 있고 또 인간이 있겠는가.

“아아! 나는 실로 인간을 사랑하노라!”

마왕은 마왕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마왕은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 즉――벨레드에게 인간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동급의 존재였다. 마인을 복종시켜봐야 아무런 재미도 뭣도 없었다.

오직 인간을 정복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존재의의였다.

성문의 길목에서 시체가 시체를 뒤덮었다. 살육의 비명들이 엇갈리며 공기를 뒤흔들었다. 승리한 자가 목이 쉬도록 외치는 포효, 패배한 자가 끔찍하게 내지르는 신음,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인세에 지옥도를 펼쳤다. 바로 지옥이 서열 제13위의 마왕 벨레드의 고향이었다.

벨레드가 폭풍우처럼 도끼를 내리꽂았다.

“고작 그것인가! 인간! 네놈의 증오는 고작 그 정도인가!”

“크으읏!”

“나는 네놈들의 고향을 파괴한다! 아이, 노인, 아녀자, 가장 약한 자에서 가장 강한 자까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살육할 것이다. 너희가 추수하는 밭은 태워질 것이고, 너희가 수백 년 동안 일구어낸 마을은 폐허로 전락할 것이다. 아아! 맹세한다!”

벨레드가 외쳤다.

“나는 네놈들이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한다. 네놈의 아내를 강간하고 네놈의 자식들은 오장육부를 도려내 전시할 것이다. 네놈의 군주는 특별히 개돼지들에게 진상해준다!”

요새지휘관이 전신에서 오러를 피워내며 도끼를 받아쳤다.

“벨, 레드――!”

“구하고 싶다면 전력으로 부딪혀라, 인간이여! 나를 죽여라!”

요새지휘관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아까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벨레드의 손을 얼얼하게 마비시켰다. 지휘관은 아껴둔 오러를 전부 소모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 황녀가 사수하라고 명령한 사흘의 기간, 그것을 무시했다.

벨레드가 미친 듯이 웃었다.

이것이었다. 자신은 이런 전쟁을 바랐다. 그는 한 명의 인간이 검주(劍主)가 되려면 얼마만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틀림없이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리라. 수천수만 번 근육이 파열했으리라. 그럼에도 곧은 정신으로 검을 휘둘러 마침내 경지에 도달했으리라.

말하자면, 지금 자신이 받아내는 일격과 일격은 전부 상대방의 인생을 담고 있었다.

무겁다!

삶이란 여기까지 무거울 수 있는 것이었다!

“크하하하!”

네 녀석은 어떤 새벽과 어떤 밤을 지세웠는가.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회의했는가. 주군을 위해 충성하며 환희를 느꼈는가. 칼질 하나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는가. 그것이 너의 인생이었는가.

벨레드는 그 모든 염을 담아 전투도끼를 들었다.

“비오팔트 폰 라그란츠! 그 생――내가 끝내주마!”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서 놀란 것일까. 지휘관의 눈이 커졌다.

벨레드가 혼신의 힘을 담아서 베었다. 요새지휘관은 그것을 막아냈다. 그러나 아직 한 번 막은 것에 불과했다.

“부서져라!”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곧게, 벨레드는 끊임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요새지휘관은 공격을 쳐내고 또 쳐내었다. 이쪽의 공격을 예상해서 막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팔을 들어서 아슬아슬하게 막는 것이었다.

이 나약한 인간이 천오백 년을 살아온 마왕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언젠가 정말로 마왕의 일격을 견뎌낼 인간이 등장할지 몰랐다. 서로가 인생의 무게를 내걸어 격돌했을 때, 언젠가 인간이 승리를 거머쥐는 그런 날이 정말로 다가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부서져라, 인간!”

오러째로 몽둥이가 절단났다. 요새지휘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도 전에, 도끼는 그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도끼날은 참혹하게 머리를 분쇄하고 그 기세를 살려 목과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크라아아아!”

벨레드가 도끼를 빼들고 짐승처럼 포효했다.

그러나, 아직 인간이 승리하는 날은 오지 않았다. 천오백 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오늘 살아남은 쪽은 인간이 아니라 서열 제13위의 마왕, 벨레드였다. 대지는 마왕의 승리에 공포와 경의를 보내며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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