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40화 (140/510)
  • 00140 거부할 수 없는 제안  =========================================================================

    드디어 상대쪽에서 비장의 한패를 내보였다. 독사대공은 여기가 승부의 갈림길임을 직감했다.

    ‘패의 종류는 협박.’

    대공이 생각했다. 협박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위협적이다……그러나 본질은 교섭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 무언가를 양보하게 만들고 싶다.

    ‘달리 말해――정말로 마계를 정벌할 생각은 없다.’

    만약 진짜 마계를 정벌하고자 했다면 애시당초 협박해오지 않았을 터. 여기서 파악해야 할 사항은 두 가지이다.……상대방에게 마계를 토벌할 힘이 있는가? 일단 이것부터 알아내야 한다. 만약 그럴 힘이 없다면 블러프. 허장성세이다.

    ‘만에 하나 그럴 힘이 있다면?’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고려해둬야 한다. 이 경우 사정이 약간 더 골치 아프다.

    상대측은 마계를 정벌할 힘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왜인가. 마계를 정벌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이 무엇인가. 자그마치 마계보다 더 큰 이득이 뭔가. 그 점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허장성세인지 아닌지 시험해볼까.

    독사대공이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허허. 단탈리안 전하, 소인을 너무 놀리시는군요. 제가 직위에 비해 담이 약하여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깜짝 놀라옵니다.”

    “본인이 뭐 할 일이 없다고 대공을 놀리겠는가.”

    “허면, 설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옵니까?”

    단탈리안이 만면에 웃음기를 지웠다.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 그대가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본인은 절대로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송구하오나 소인의 미천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나이다.”

    애송이가 제법 화술이 뛰어나군, 하고 독사대공이 생각했다. 녀석은 주변의 공기를 능수능란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아마 햇병아리 귀족 마인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곧바로 속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자는 마계에 스물여섯 명밖에 없는 대공. 무한경쟁의 지옥도에서 살아남아 정점을 거머쥔 자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온전히 줘본 적도, 빼앗겨본 적도 없다.

    독사대공은 정치가로서 호승심이 치밀었다. 마왕이란 어차피 대다수가 운으로 된 자들. 녀석들은 평생 몬스터와 싸워본 적도 없다. 너희가 오크의 주먹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은랑족의 이빨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는가. 그것을 일일이 헤쳐나온 자신을 이겨낼 수 있을까!

    ――칼 없는 결투를 치뤄보자, 최약체!

    독사대공이 양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최근에 월맹군의 기세가 좋다해도 아직 전쟁은 초입입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북부 일대만 점령했지요. 대륙의 절반은커녕 반의 반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계 정벌을 논한다……재차 송구하옵니다만, 도저히 현실성이 있다고 보지 못하겠나이다.”

    독사대공은 확신이 있었다.

    인간과 마인은 철천지원수이다. 단순히 땅만 점령했다고 해서 인간이 마인에게, 마인이 인간에게 고개를 간단히 숙일 리가 없다. 어마어마한 반란이 이어지겠지. 영토를 점령하는 것보다 안정시키는 것이 압도적으로 어렵다.

    현재 월맹군은 영토를 점령하지도 못했다. 전황이 약간 유리하다고 해서 여유를 부릴 계제가 아니었다. 하물며 마계를 정벌하겠다고? 언어도단이었다.

    단탈리안이 독사대공의 안색을 살피더니 피식거렸다.

    “왜 마왕군이 대륙을 다 정벌해야 하는가?”

    “……예?”

    대공이 눈쌀을 찌푸렸다.

    “그것이 무슨 뜻이옵니까.”

    “이런. 아무래도 대공은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단탈리안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마왕군은 하나가 아니다. 대공도 잘 알지 않는가?”

    “평원파와 산악파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소인도 물론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그게 지금 얘기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이온지…….”

    “파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대공, 조금 더 간단한 내용이다. 마왕군에는 상위 마왕이 있고 하위 마왕이 있다. 그러하지 않은가.”

    단탈리안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이쪽을 시험해보는 것 같았다. 그대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그런 느낌이 강렬하게 흘러나왔다.

    독사대공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난 이천 년 동안 월맹군이 실패한 원인이 바로 하위 마왕들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대들, 지옥의 대공들과도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겠지?”

    대공은 온몸이 잠깐 굳었다. 설마, 이 자?

    수백 년 동안 갈고 닦아온 본능이 맹렬하게 경고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사내는 어디까지 알아낸 것인가. 지레짐작인가? 이쪽의 속을 떠보는 것인가. 만약 아니라면……이런, 안 된다. 주도권이 저쪽에 넘어가지 않는가. 독사대공이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도록 집중했다.

    그가 반문했다.

    “아까부터 미처 단탈리안 전하의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 월맹군이 실패한 원인이 마왕 전하들에게 있다니요?”

    “호오. 뭐, 좋다. 오늘처럼 호화로운 무도회에 초대해준 것이다. 귀여운 영애들을 보아서라도 약간의 무례는 용서해주마.”

    단탈리안의 목소리에는 즐거워 하는 기색이 넘실거렸다.

    “대륙 정벌이 온 마인의 염원이라 흔히들 말하지만……글쎄, 대륙이 점령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세력은 마족에도 있지. 누구인지 짐작되는가, 대공? 아니.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자네의 입장은 대충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

    “바로 하위 마왕들과 지옥의 대공들이다.”

    독사대공은 손가락 사이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대륙이 정벌된다. 인간의 군주는 사라지고 마왕들만이 통치자로 군림하겠지. 그러나 일흔두 명의 통치자는 지나치게 많다. 지금까지 협력해온 마왕들은 이제 제각기 권력을 앞세워서 서로 싸울 것이다. 그 와중에 강력한 상위 마왕들이 살아남는 것은 필연.”

    알겠는가, 하고 단탈리안이 말했다.

    “하위 마왕들은 대륙 정벌을 바라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인간계가 건재해야만 그 마왕들은 생명과 지위를 부지할 수 있다. 무얼, 본인은 가장 허약한 마왕이다. 본인의 말만큼 믿음직스러운 것도 없을걸세. 이미 아는 내용이겠지만 말이야.”

    “…….”

    독사대공은 표정이 굳었다. 상대방은 지금 마왕의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공격함으로써 이쪽에서 뭐라 변명할 수 없게 만든다.……무슨 일인가. 이 내가 주도권을 쥐어잡지 못하다니. 독사대공은 초조해졌다.

    “너무 겸손하시군요. 마왕 전하들께서 서열이 높고 낮음에 상관하지 않고 그동안 월맹군에 헌신하셨다는 사실, 누구보다 소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헌신? 헌신이라고?”

    단탈리안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 다른 의미로 헌신적으로 노력했지.”

    그리고 단탈리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침묵이 독사대공의 신경을 아프게 쥐어짰다.

    대공은 상대방의 화술이 단지 '애송이들을 속여먹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회를 잡았음에도 이쪽을 무조건 공격하지 않는다. 때때로 공격하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임을 아는 것이다.

    만약 방금 단탈리안이 대공의 말을 부정했다면 대공은 지난 월맹군 역사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분투했던 하위 마왕들을 일일이 언급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단탈리안의 논지는 크게 뭉개졌겠지. 적어도 기세를 빼앗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면.

    “그러하옵니다. 제2차 월맹군의 사례만 보아도…….”

    “본인에게 지루한 역사 강의를 하사할 생각인가? 집어치우게. 본인은 그대와 현재의 월맹군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논의의 방향을 왜곡할 수 없게 된다.

    독사대공의 손바닥에 땀이 묻어나왔다.

    “하위 마왕뿐만이 아니다. 마계를 통치하는 대공……그대들도 대륙이 마왕의 아래에 통일되면 곤란하겠지. 지금까지 마왕들은 대륙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인간계에만 머물렀다. 허나, 인간이 멸망하면 어찌되겠는가?”

    “…….”

    “마왕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마계로 넘어간다. 곧이어 그대들의 통치권도 끝장난다. 본인의 말이 맞는가.”

    “전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대공은 어물쩡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다.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기 영지에 대해 마왕이 간섭할 구석을 만들게 된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마왕에 대한 반역죄가 되어버린다. 진퇴양난. 독사대공의 머리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하위 마왕들도, 마계의 실력자들도 대륙이 정벌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이천 년 동안 삽질만 한 것도 이해된다. 한심하기 그지없어.”

    단탈리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헌데 말일세. 아무리 그래도 상위 마왕들이 바보는 아니라서, 똑같은 시나리오가 이천 년씩이나 반복되니까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월맹군이 실패하도록 뒤에서 암약하는 무리가 있다고.”

    “…….”

    “뭐, 그 무리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말하지 않도록 하지. 본인은 진실을 말할 뿐만이 아니라 관대하기까지 하거든. 이거 목이 마르는군.”

    단탈리안이 품속에서 물통을 꺼내 마셨다. 무도회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물통을 챙겼다. 항상 독살을 의심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하필 지금 타이밍에 자기 물통을 꺼내보였다. 무슨 뜻인가. 네놈이 나를 독살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네놈들이 바로 월맹군의 실패를 조장했다고 소리없이 규탄하고 있었다.

    독사대공은 입안을 넘어서서 목구멍이 갈증에 잠겼다. 이게 호색한이라고? 헛소리에도 정도가 있다. 이 자는 전사, 집안에서 잠잘 때조차 머리맡에 검을 올려두는 전사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네. 대륙의 정벌은 나중. 먼저 집안을 청소하자, 라고.”

    단탈리안은 그렇게 말하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실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인류라는 공적을 두고도 파벌을 나눠서 싸우던 우리가 도리어 마왕과 마인에 맞서서 손을 잡았다. 과연, 역사의 여신께서도 농담을 할 줄 아시는 게지.”

    “……아까부터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정확히 어느 분들을 가리키는 것인지요?”

    독사대공이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단탈리안이 대공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대공은 등줄기에 한기가 느껴졌다.

    “바알, 바르바토스, 파이몬, 마르바스, 가미긴. 가장 유력한 협력자는 이 정도일까.”

    대공이 헛숨을 들이켰다.

    말도 안 된다! 서열 제1위, 평원파의 수장, 산악파의 수장, 중립파의 수장, 무소속 상위 마왕――그들이 전부 협력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각 파벌의 실세들이 참여했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사실상 대다수의 상위 마왕이 협력체제를 이룩한 것이다!

    “왜, 믿기지 않는가?”

    단탈리안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동안 죽도록 싸웠으니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보게. 그렇게 죽도록 싸워온 원인이 사실은 전혀 엉뚱한 제3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어느 정도로 분노했을지.”

    독사대공은 마음속으로 전력을 다해 부정했다. 거짓말이다. 증거가 없다. 단순한 협박에 불과하다.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단탈리안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반년 전, 파이몬이 본인을 구하려다 마력을 전부 상실했다는 얘기는 들었겠지. 산악파의 수장이 고작 평원파의 일개 하위 마왕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지금까지 각자 따로 움직이던 파벌들이 왜 합스부르크 제국에 집결했다고 생각하는가? 산악파를 견제하기 위해서? 그러나 정작 산악파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누구보다 산악파를 증오하는 바르바토스가 어째서 양보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단탈리안이 비웃었다.

    “무르군. 지옥의 대공이여, 한없이 무르다. 아직까지도 서열 제1위의 대마왕 바알이 월맹군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지 않은 이유조차 그대는 모르고 있다.”

    독사대공은 이제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인가. 바알 대마왕은 프랑크 제국 방면을 맡았을 터. 그 길목인 합스부르크 제국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고보면……현재 합스부르크 전역에는 프랑크 제국군도 참여하고 있다. 바알이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말인가? 지옥의 대공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의도가?

    혼란스러워 하는 독사대공에게 단탈리안의 말이 천둥처럼 떨어졌다.

    “바로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그대들――지옥의 대공들이 다스리는 마계를 토벌하기 위한 전력을 말이다.”

    마계 토벌.

    대륙을 정벌하려면 먼저 안방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바알이 준비하고 있다. 바알뿐만이 아니라, 합스부르크 전역이 일단락되면 평원파는 물론이고 산악파, 중립파, 무소속 마왕까지 참여한다――.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상위 마왕들이 진심으로 마계를 정벌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 얕보지 마라.

    그제서야 독사대공은 다른 대공들이 경고한 바를 깨달았다. 다른 대공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도 농락당했다. 아니, 사냥당했다.

    방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포식자와 피식자……상대편은 이미 이쪽을 물어뜯을 준비를 전부 끝마쳤다. 얕보지 마라. 상대와 내가 같은 수준이라고 아예 생각하지 마라. 대공들의 경고는, 그런 뜻이었는가!

    독사대공은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리리플]

    asd메이지// 단탈리안의 이명이 슬슬 기만의 마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실농축액2// 바르바토스와 파이몬, 엘리자베트 황녀를 헤쳐온 단탈리안에게 지옥의 대공은 탐스러운 먹잇감이었습니다.

    에르시리나// 옙, 3등입니다.

    의욕제로// 일단 히로인이 추가될 예정은 없습니다. 지금도 많아요!

    NineBreaker// 꽁냥이들과 노는 걸 방해받자 분노한 단탈리안.(...)

    시크리트으// 라우라가 이미 너무 강한지라 형평성 차원에서 다른 히로인을 밀어줘야 할 판입니다.

    woomee9// 연기 스킬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단탈리안 본인의 솜씨도 많이 늘었지요.

    TheDaybreak// 감사합니다!

    뱃살냥이// 저도 매번 속도에 놀라고 있습니다.

    할레데임// 알 수 없는 불합리가 지옥의 대공들을 덮친다...

    설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든 히로인을 골라주세요!

    역시 라우라 데 파르네세가 1위를 달리고 있네요. 바르바토스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트 황녀와 라피스 라줄리도 만만치 않군요. 우리의 산골촌장 파르시가 의외로 선전.(...)

    곧 표지를 바꿀 예정입니다. 표지가 바뀌어도 놀라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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