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30화 (130/510)
  • 00130 로마의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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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

    장장 한 시간. 내가 그리는 마왕성의 미래도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라피스와 라우라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입을 열었다.

    “터무니없습니다.”

    “아아. 허황된 얘기이다.”

    “돈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가도를 정비하는 데만 해도…….”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위험하다. 모험자를 요격하지 못할망정 끌어들이다니, 자칫하면 주군이 위험에 처한다.”

    내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재미있지.”

    두 사람이 다시 침묵하고 생각에 잠겼다. 라피스가 하나씩 정리해보자는 어투로 말했다.

    “터무니없는 계획은 차치해두고. 일단 현실적인 얘기부터 차근차근 해결해보지요. 단탈리안 님, 마왕성을 대폭 재건축한다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래.”

    아무래도 내 마왕성은 너무 초라했다. 사실상 동굴밖에 없었다. 말이 안 되었다. 딱히 궁전처럼 화려하게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몬스터 군대가 방어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 내가 구상하는 마왕성의 최종 규모는.

    “……아무리 그래도 지하 10층이라니. 그런 규모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라피스가 질려 했다.

    지하 10층의 던전!

    내 마왕성이 있는 동굴은 거대하다. 입구에서 마왕의 방까지 걸어오려면 몇 시간이나 걸린다. 그런 크기 때문에 우리는 마왕의 방 근처에서만 생활한다. 기껏해야 몸을 씻기 위해 조금 구석진 자리에 있는 지하 연못에 들락거릴 뿐이다.

    그만한 규모의 동굴을 10층 크기로 확대한다. 라피스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이야기겠지.

    “어디까지나 최종적인 모습이 10층이라는 거야. 처음에는 1층부터 준비해야지. 아무튼 지금보다 마왕성의 규모가 훨씬 더 거대해야 돼.”

    나의 계획은 간단하다.

    몬스터를 마왕성 안으로 무진장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계에 와서 깨달은 것이지만, 마왕성 안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몬스터 개개에게 굉장히 커다란 영광이다. 단순히 마왕의 근처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마왕성 자체가 몬스터에게는 천국과 같은 환경이다.

    해골 병사나 좀비 등, 본래라면 당장 활기를 잃고 해골과 시체가 되어 허물어져야 하는 몬스터의 신체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다름아니라 마나이다.

    마나는 자연의 어디에나 떠돌고 있다. 그러나 신체를 유지시킬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를 섭취하려면, 적어도 동물쯤의 생물을 먹어 헤치워야 한다. 먹이사슬에서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그 종이 몸안에 축적하는 마나도 많다.

    몬스터에게 인간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인 이유도 여기 있다. 한평생 온갖 동식물을 먹어온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하면 마나 덩어리이니까. 마나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 마나를 소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몬스터……두 종족이 싸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만약 몬스터가 마왕성에 있으면?

    마왕성은 일 년 내내 마나가 압도적으로 풍부하다. 동굴에서 광석을 캐기만 해도 마석(魔石)이 튀어나오는 곳이다. 일단 몬스터가 마왕성에서 살면 굳이 힘들게 인간을 사냥할 이유가 없어진다. 가만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 그럭저럭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다!

    만약 마왕이 몬스터에 대해 절대적인 명령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몬스터들은 진즉에 마왕성을 약탈하고 자리잡았겠지. 그 정도로 탐스러운 보금자리이다.

    ――이걸 개방한다.

    고블린, 오크, 리저드맨, 좀비, 뭐든 상관없다. 어떤 종족이든 가리지 않고 나의 던전에 받아들인다.

    자격도 필요없다.

    굳이 내 부하가 될 필요도 없다.

    그냥 몸뚱어리만 들고 오면 되는 것이다.

    “모든 마왕들이 소수정예를 지향하지. 마왕성은 마나의 보고. 보물을 누리는 자는 오로지 실력이 뛰어난 자뿐이어야 한다.……지극히 그럴듯한 논리이지만, 나의 마왕성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내가 손바닥을 모으고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물량. 오로지 인해전술로 밀고 나간다.”

    10층의 대미궁을 건설한다. 그 한층한층을 죄다 몬스터로 꽉꽉 채워버린다. 그리고 나 자신은 지하 10층, 맨 아래 층에 마왕의 방을 위치시키고 한가롭고도 평화롭게 살아간다. 건설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로 멋진 해결책이다.

    라피스가 신음했다.

    “마왕성으로서의 위엄이…….”

    “위엄은 무슨. 서열 제71위가 위엄 찾다가 뒈지겠다, 야.”

    “주군. 인해전술이라 말했다마는 거기엔 큰 약점이 있다.”

    라우라는 어떻게든 나의 계획안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마 그녀도 질 낮고 양 많은 군대보다 소수정예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이런, 전술가는 이래서 곤란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소수정예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으니까.

    “말해보세요.”

    “물량작전으로 나가면 분명히 어지간한 적은 마왕성에 침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 하지만 상대편이 매우 강력한 소수정예를 끌고오면 어쩔 텐가?”

    라우라가 이건 어쩔 수 없을걸, 하고 자신만만한 어투로 얘기했다.

    “그토록 거대한 마왕성이다. 굳이 몬스터 전부를 토벌할 필요가 없다. 마왕성 입구에서 마왕의 방……거기까지 이어지는 최단경로를 돌파하기만 하면 된다. 속전속결을 노리겠지. 반면에 이쪽은 오합지졸밖에 없다. 지나치게 강대한 적이 등장하면 서로 살기 위해서 도망칠 게 뻔하다. 마왕성은 간단하게 함락되고 만다.”

    “흐흐.”

    내가 웃었다.

    “바로 그겁니다, 라우라. 그래서 대규모 재건축이 필요합니다.”

    “음?”

    “저는 마왕성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궁으로 만들 것입니다.”

    라우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입장에서는 마왕성에 대해 논하는데 뜬금없이 미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던전을 미궁 형태로 짓는 것은 당연한 선택지였다.

    모험자들의 이동경로를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우선 이동경로는 이렇게 됩니다.”

    나는 바닥에다 분필로 대략적인 설계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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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입구(1층)―――지하 1층 입구―――지하 2층 입구―――지하 3층 입구 … 지하 10층 입구―――-마왕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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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이동경로의 양쪽을 단단한 벽으로 감쌉니다.”

    “아. 그래서 미궁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여나 벽을 뚫고 나아갈 수 없도록 아주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야겠죠. 여기서 조건은 각 입구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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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층 입구――――――――――――――――――――――――지하2층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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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미로를 꼬고 또 꼬아서 한 층을 꼬박 돌아다니게 만들면, 모험자들은 차라리 벽을 뚫고 이동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며칠만에 벽을 전부 뚫을 순 없을 테니 입구에서부터 조금씩 땅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나오겠죠. 그럼 안 됩니다.”

    지나치게 짧으면 의미가 없다. 모험자들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을 테니까.

    지나치게 길어도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공 들여서 세워놓은 미궁의 벽을 모험자들이 깨부수려고 들 테니까.

    “적당히 길어야 합니다. 약간 길다 싶어도, 이걸 조금 더 빠르게 가겠답시고 벽들을 뚫으면 쌩고생이겠구나, 싶을 정도의 길이여야 하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몬스터의 주거공간까지 신경 써야 합니다.”

    “몬스터들은 미궁의 통로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로는 꽤나 좁게 만들 겁니다. 구간마다 다르겠지만요. 아무튼, 통로처럼 좁은 곳에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거주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고로 몬스터의 거주지역은 미궁의 벽 너머에 마련합니다.”

    내가 땅바닥에 그림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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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층 입구――――――――――지하 2층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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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궁의 벽

    □: 몬스터 거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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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우라가 내 설계도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래도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험대와 몬스터가 아예 격리되어버리지 않는가! 싸움 자체가 안 일어난다.”

    “아이고, 라우라. 편의상 그림만 이렇게 그려둔 겁니다. 통로를 잘 배치해야지요. 몬스터 입장에서 지켜야만 하는 부분을 군데군데 지나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흐음.”

    그렇게 되면 특정한 골목에서만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설계도에 약간 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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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1층 입구――― (☆) ――――지하 2층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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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궁의 벽

    □: 몬스터 거주 지역

    ☆: 전투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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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자들은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싸움을 겪게 된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통로에 계속해서 몬스터가 생성되는 것처럼 보이겠지. 물론, 미궁의 벽에 틈새가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게 여러 가지 장치를 해두어야겠고 말이다.

    이른바 리스폰 지역이다.

    “예컨대 이 근처에다 버섯을 대규모로 재배할 수도 있겠지요. 버섯은 자라면서 던전 내의 마나를 흡수할 겁니다. 공기 중의 마나가 적어지고, 몬스터는 버섯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겠지요. 모험자들 입장에선 마나가 제법 쌓인 버섯은 돈이 됩니다.……몬스터는 여기를 지키기 위해, 모험자는 여기를 약탈하기 위해 부딪힐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악랄한 수법이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아마 수많은 몬스터가 비록 아주 풍족하지는 못할지라도 단지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으리라. 하지만 버섯 따위를 재배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모험자와 싸워야만 한다.

    “그래봤자 모험자입니다. 이대로 야생에서 살아가며 인간의 마을을 침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아니면 마왕성에서 살아가며 이따금 열 몇 명의 모험자와 맞붙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기대되는군요.”

    게다가, 하고 내가 덧붙였다.

    “각 층의 마나 농도도 다릅니다. 여기 동굴은 깊은 곳일수록 마나가 짙어지더군요. 모험자를 잘 격퇴한 몬스터에게는 이주의 권리를 줄 겁니다. 잘 살고 싶으면 잘 싸워라.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습니까?”

    “…….”

    라우라가 무언가 불만인 얼굴로 흐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하 10층에 이르러서는 정예 몬스터만이 남겠군.”

    “머나먼 훗날의 얘기지만 말입니다. 시작은 지하 1층. 즉 한 층입니다. 제가 기대한 대로 일이 굴러가는지 여러모로 시험해봐야 하니까요.”

    라피스가 그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단탈리안 님. 전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응?”

    “돈 말입니다.”

    라피스가 무척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벽이라고 표현하니 마치 간단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처럼 거대한 공간에 미로와 같은 통로를 놓는 일입니다. 어마어마한 공사입니다. 한두 푼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대체 어디서 그만한 돈을 얻으실 생각입니까?”

    “아아. 그거?”

    내가 가볍게 대꾸했다.

    “빌릴 거야.”

    “……예?”

    “빚 몰라, 빚? 화끈하게 땡겨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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