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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124화 (124/510)

00124 가장 긴 십오 분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시트리는 거대한 가슴과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이스 바디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째 폼이 불쌍해서, 나는 근처의 담요를 주워 덮어주려 했다.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시트리는 아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막사에 들어와 이 광경을 본다면 마치 내가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리고……나는 보았다.

무언가가 달려 있다!

시트리의 아래에――여자라면 결코 갖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이, 그것도 엄청나게 큼직한 물건이, 자신의 존재감을 우렁차게 드러내고 있었다!

“흐억!”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펠라티오인가요? 펠라티오를 바라시나요?”

“아니, 됐습니다만!?”

내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러고보니 서열 제12위의 마왕 시트리는 양성애자라는 설정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본인이 '양성'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 따위 설정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시트리는 흑발이 풍성한 미인이었다. 가슴이 크고,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가 부풀어오른, 말 그대로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여자였다. 다만 나온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그 이질적인 거포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발기하지 않았음에도 길이, 약 15cm……원래 세계의 흑형조차 식겁할 만한 크기…….

시트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두 눈을 무시무시하게 반짝이면서 말했다.

“펠라가 아니라면……섹스, 오로지 섹스를 바라시는 거군요. 괜찮아요. 저, 잘할 수 있어요. 뚫는 게 취향이든, 뚫리는 게 취향이든, 아니면 양쪽 모두 취향이든, 냉큼 말씀만 해주세요!”

“히이이익!?”

바로 눈앞에서 가슴이 출렁거렸다. 실로 훌륭한 가슴이었다. 그 아래에 파묻히면 분명히 천국의 기분을 느끼겠지. 하지만 성욕이 끓어 오르긴커녕 생명의 위기를 맛보았다.

저건,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모종의 따돌림으로 인해 여성혐오증에 걸려버린 미친 과학자가 세상 모든 여성들의 생식기를 파멸시키고자 악의적으로 창조해낸 괴물이었다. 여성의 생식기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또한 남성의 그곳마저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는 그만 간과해버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인류의 재앙……창조자 본인조차 파멸로 몰아가는 핵무기와 같았다.

“죽어도 싫습니다!”

“어, 어째서죠? 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데요! 이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라면, 저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핫.”

시트리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몹시 껄끄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설마해서 여쭙는 거지만, 혹시 동물에 성적인 흥분을 느끼시나요……? 아무리 저라도 그 취향까지 만족시켜 드리긴 어려운데……아니, 이해는 하지만요. 죄송하지만 동물옷을 입는 걸로 타협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동물 울음소리도 열심히 따라할 테니까요.”

“전 완전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시트리의 얼굴에 의문이 한가득 떠올랐다.

“그러면 왜 저를 마다하시는 거죠? 하나만 있는 것보다 두 개가 전부 있는 게 당연히 더 좋은데…….”

“세상사를 덧셈하듯이 단순히 재단하지 마십시오!”

무슨 1+1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저기, 자랑은 아니지만 제 여성기는 훌륭하다구요?”

시트리가 내 허벅지에 가슴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제 의지대로 주름 하나하나를 제어할 수 있어요. 호두껍질을 파괴할 정도로 강하게 조일 수도 있고, 푸딩처럼 부드럽게 감싸안을 수도 있어요! 한번만 맛보시면 다른 애랑은 절대 못 주무실걸요. 진짜, 진짜예요!”

“…….”

아주 잠깐. 정말로 아주 잠깐 끌렸다.

하지만 고개를 젓고 얼른 정신 차렸다. 설령 시트리가 지상 최고의 명기(名器)라 할지언정 15cm짜리 거포가 달린 여자와는 자고 싶지 않았다. 이건 쾌락 이전에 인식의 문제였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싫습니다.”

“아! 방금 망설이셨죠? 그랬죠? 제 얘기에 혹하셨지요?”

“터무니없는 모함입니다. 당장 제 막사에서 나가주십시오.”

나는 축객령을 내렸다.

“애당초 파이몬은 최고위 마왕입니다. 그런 인물의 목숨을 단지 몸뚱어리로 무마해보려 하다니 언어도단. 오늘 얘기는 듣지 못한 걸로 하겠습니다.”

“다, 단탈리안 님.”

시트리가 나의 신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쫍, 쫍 하고 그녀가 입을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발에다 입술을 갖다대다니. 서열 제12위의 마왕이 서열 제71위의 마왕한테 애걸복걸하는 수준이 지나쳤다. 그래서 난감했다.

“부탁드립니다. 파이몬 언니는……단탈리안 님이 잘 모르실 뿐이지, 지금까지 마왕군에 많은 공헌을 했어요. 염치를 모르는 분이 아니에요. 단탈리안 님이 은혜를 배푸시면 틀림없이 몇 배로 갚을 거예요…….”

만약 파이몬을 죽이면 산악파 전체가 복수하겠다느니 하는 식으로 당당하게 나왔으면 난감하지 않았으리라. 서열 제12위의 마왕에게는 이쪽을 협박할 만한 지위와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트리는 파이몬과 자신의 잘못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어떻게든 용서해달라며 지극히 낮은 자세로 청해왔다.

한 나라의 군주가 일개 평민한테 발에 입을 맞춘 셈이었다. 게다가 알몸으로. 이렇게 나오면 설혹 내가 파이몬을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을지라도 재고해봐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저쪽에선 내가 이미 파이몬을 살리자고 마음먹은 걸 모른다.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

“으음.”

내가 얼굴을 찡그렸다. 고심에 빠진 척 연기한 것이었다. 그러자 시트리는 내가 파이몬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는 거라 믿고, 더더욱 애처롭게 애원했다.

“파이몬 언니만이 아니에요. 당연히 저도 보은하겠습니다. 제 육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른 수단으로, 금전이든 뭐든 마련해서 드릴게요.”

“…….”

“훌륭하게 교육받은 시녀처럼 당신을 받들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시트리 님.”

내가 목소리를 진지하게 가다듬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파이몬은 예전에도 저를 모함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공개적인 사과와 배상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이몬의 위상을 생각해서 단지 사적인 사과만을 받았습니다. 이미 한 번 용서한 상대입니다.”

“그, 그게…….”

“한 번 일어난 일이 다시 일어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또 한 번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절대로 그럴 일이 없게 만들겠습니다!”

시트리가 다시 땅바닥에 이마를 망치질했다.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시트리 님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이번 건에 대해서는 넘어가지요.”

“저, 정말입니까!?”

시트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마에서 피가 잔뜩 흘러내렸는데 만면에 미소를 지으니 다소 무섭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는 양손으로 나의 신발을 붙잡고 거기에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감사합니다! 단탈리안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무엇이든 말씀해주세요! 저 시트리, 목숨이라도 내놓겠어요!”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이, 제가 말한다면 소원을 두 개 들어주십시오.”

“소원 두 가지요?”

“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시트리 님한테 원하는 것이 딱히 없습니다. 그저 성심성의를 다해서 사죄하는 모습에 파이몬을 용서하고자 결심했을 따름입니다. 지금 당장 뭐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훗날, 제가 시트리 님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때 저를 두 번 도우십시오.”

시트리가 자신만만하게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그 정도야 너끈히 들어드릴게요!”

“아시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들어주어야 합니다. 설령 제 소원으로 인해서 파이몬과 적대하게 될지라도 말입니다.”

“어, 그건…….”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제딴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말 그대로 무엇이든. 무엇이든 두 가지의 소원을 들어드릴게요.”

“좋습니다. 기대하지요.”

“저의 힘이 닿지 않아서 소원을 들어드리는 데 실패하면 죽음으로 보상하겠어요. 파이몬 언니가 없다면 어차피 제 삶에도 의미가 없어요.”

시트리가 지극히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단탈리안 님은 파이몬 언니의 목숨과 제 목숨, 두 개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원 하나에 목숨이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요. 제 이름과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지요. 단탈리안 님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두 개를 실현시키겠다고.”

시트리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흐뭇했다. 단지 공짜로 막강한 마왕의 언약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바르 로드브로크와 다르게 시트리는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파이몬을 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행동했다. 그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

아까 전까지 이바르와 벌인 정치적 수싸움에 질려 있었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이지 않은 인물은 없겠는가, 하고 우울해하던 참이었다. 때마침 시트리가 이렇게 순진무구한 모습을 보여주니――칭찬도 욕도 아니다――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순진한 상대방한테서 정치적인 이득을 얻어낸 나는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는 쓰레기겠지. 하하하.

“하지만, 정말로 제 몸은 필요없어요? 끝내줄 텐데. 눈 딱 감고 한번만 즐겨보는 것이…….”

“필요없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그건 진짜로 싫다!

*  *  *

밤이 되고 청문회가 열렸다. 피고는 물론 파이몬. 그녀는 마력이 꼬여 척봐도 상태가 심각했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청문회에 참석했다. 안색이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는데, 그녀는 청문회 내내 말을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마왕들이 한자리에 모인 곳에서 나는 원고로서 파이몬의 죄과를 물었다.

놀랍게도, 내가 청한 파이몬의 죄과는 무죄.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시, 비록 파이몬이 소인을 적대한 것은 확실하나 정상참작의 이유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산악파는 오늘 전투에 선봉에 섰으며 마왕군의 승리에 일조했습니다. 파이몬은 나중에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마왕군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내가 마왕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하든 용서하지 않든, 죄는 죄로서 그대로 남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얼룩과 같습니다. 그러나 죄와 똑같은 무게의 선행을 베풀어 보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저는 산악파와 파이몬에게 자비로운 무죄가 선언되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끝마쳤다.

산악파와 중립파가 모인 방향에서 박수가 터졌다. 대조적으로 평원파는 심드렁했다. 장본인인 내가 이렇게 나오니까 참고 봐준다, 라는 아우라가 적나라했다. 특히 벨레드 형님은 청문회 내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바르바토스는……아예 하품을 하고 있군 그래. 저 녀석은 진짜 거물이야. 존경스럽다.

“실로 관대한 처사에 나 개인적으로도 감사한다.”

사회자인 서열 제5위의 마왕 마르바스가 말했다.

“아가레스, 가미긴, 바르바토스 그리고 본인은 여기 단탈리안이 내리는 결정을 무조건 존중하기로 결의했다. 혹시 반대 의견을 가진 자 있는가?”

최고위 서열의 마왕들이 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소리였다. 그 얘기를 듣고도 간 크게 딴죽을 걸 양반은 아무도 없었다. 마르바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본 청문회에서 파이몬의 무죄를 선언하는 바이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오늘 우리 월맹군이 승리한 것도 사실. 약소하지만 본인이 연회를 준비했다. 모두 마음 편하게 즐겨주기를 바란다.”

청문회가 순조롭게 끝났다. 산악파와 중립파 모두 기뻐할 만한 결과였다. 그들이 나에게 장차 호의적으로 대접해주리라 기대해도 좋겠지.

무엇보다도 이로써 나 단탈리안을 적대하는 세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산악파는 나에게 은혜를 입었고, 중립파도 나한테 빚을 졌으며, 평원파는 그냥 내 아군이었다. 생존하는 데 적이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벨레드 형님이 내 어깨를 안으면서 평원파 쪽으로 데려갔다. 그 전에 문득 파이몬 쪽을 바라보니, 마침 파이몬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한다는 뜻일까…….

그렇게 나의 첫 전쟁이 끝났다.

월맹군 전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쟁은 이제서야 초입에 들어간 것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내 입장에선 끝이다. 더 이상 내가 발벗고 나설 일이 없다. 인간군과 마왕군의 주력을 부딪히게 한다는 계획은 이미 성공했고――그게 이번 전쟁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초전에서 인간군이 패배했지만 저들은 아직도 전부 집결하지 않았다. 프랑크 제국의 원군, 사르데냐 왕국의 원군, 버니시아 왕국의 군대 등, 넉넉 잡아서 십 만의 군대가 지금도 열심히 이곳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들은 월맹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쳐줄 것이다…….

“자아, 단탈리안! 우리의 영웅! 영웅답게 쭈우욱 들이켜보라고!”

“들이켜라! 들이켜라! 들이켜라!”

설전에서 약간 과하게 이겨버렸다 싶기도 했지만, 무얼. 살다보면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벨레드 형님이 대접에다 따라준 이 포도주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보자.

============================ 작품 후기 ============================

─ 챕터 <가장 긴 십오 분> END.

─ 제2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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