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107화 (107/510)
  • 00107 저주하려는 자, 무덤을 두 개 파두어라  =========================================================================

    연락장교의 말이 끝나자마자 벨레드 형님이 뛰쳐나갔다. 곧장 제파르와 내가 뒤따랐다. 등 뒤에 발소리가 우르르 들려오는 것을 보니, 한 타이밍 늦게 다른 마왕들도 연락장교가 한 말을 깨닫고 뛰어오는 모양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땅이란 땅은 온통 진흙 뻘밭이 되었다. 우리는 진흙을 튀기면서 앞으로 뛰었다. 몸이 비에 후줄근하게 젖었지만 그런 게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빗줄기와 뻘밭을 뚫고 아군의 진지에서 빠져나가는 부대가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였다.

    “세상에, 바르바토스 님!”

    평생 진중한 표정만 지을 것 같았던 제파르 대장의 얼굴에 경악이 스며들었다.

    “당장 막아야 하네! 고작 오천으로 제1군단에 돌격하다니, 미친 짓거리야!”

    “그냥 이대로 공격해버립시다!”

    뒤따라붙은 한 마왕이 소리쳤다. 빗물에 눈이 감겨 얼굴이 순간 보이지 않았다. 제파르 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적은 삼만이고 우리는 이만조차 되지 않는다! 하물며 군진을 차려놓은 적을 향해 돌격하라고? 자살은 자네 혼자서나――.”

    천둥이 쳤다. 제파르 대장의 목소리가 묻혔다. 젠장, 지독한 날씨였다. 근처 아무 도시나 함락시켜서 편안하게 쉬고 싶었는데 몬스터들이 '도시가 불편하다'라고 항의해서 무산되었다. 짐승 같은 놈들이다.

    어차피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언데드 몬스터를 향해 달렸다. 무슨 난리라도 난 줄 알았는지 몬스터들이 두런두런 몰려나와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도 언데드 몬스터 부대는 막 군진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다 멈춰섰다. 행렬 맨 앞에서 벨레드 형님이 떡하니 가로막은 것이었다.

    벨레드 형님은 한참 바르바토스와 뭔가 말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신장 4미터짜리 거인과 소녀가 서로 윽박지르는 모습이 가히 볼 만했다.

    아니, 윽박지른다고 해야 할까……소녀가 일방적으로 거인을 때리고 있었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동원해서 벨레드 형님의 정강이, 허벅지를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그들 곁에 다가서자 빗소리를 뚫고 대화가 들려왔다.

    “비켜! 비키라고, 시발!”

    “…….”

    “개새끼야! 비켜!”

    겉보기엔 저래도 바르바토스의 무력 수치는 몹시 높았다. 주먹 하나하나에 파괴력이 상당했다. 그런데도 벨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그저 바르바토스의 구타를 받아들였다. 그는 얼굴에 흐르는 빗줄기에 상관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이――!”

    바르바토스가 대낫을 소환했다. 그녀의 상징과 같은 무구였다. 사신(死神)의 무기를 들이밀면서 바르바토스가 소리 질렀다.

    “얼른 꺼져, 확 담가버리기 전에!”

    “…….”

    “내가 못할 줄 알아!?”

    그녀는 정말로 대낫을 휘두를 기세였다. 제파르 대장이 서둘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양팔을 벌리면서 말했다.

    “출격은 불가합니다, 바르바토스 님.”

    “이 새끼들이 단체로 약 빨았나……뭐, 불가? 군단장은 나야!”

    “일부러 전멸하기 위해 싸우는 군대는 없나이다.”

    뒤에서 벨레드 형님이 입을 열었다.

    “싸우더라도 제대로 싸워야지. 이대로 개돌하면 제파르 애송이처럼 군대 말아먹는 거밖에 더 되겠수. 군단장 각하. 이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제파르 대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머리카락이 빗물을 잔뜩 머금어 축 쳐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벨레드 형님도, 다른 마왕들도, 바르바토스도 물에 젖어 있었다.

    “각하는 언제나 냉정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머리를 차갑게 식혀야 할 때입니다. 계획 없는 전투는 아무것도 낳지 못합니다.”

    “모든 계획은 끝장났어!”

    바르바토스가 울부짖었다.

    “대의는 무너졌다. 긍지도 모욕당했다! 제파르, 이제 남은 것은 개싸움뿐이다――방향을 잃어버린 전사에게 무엇이 남는다는 거냐! 그저 살육기계이다. 저기서 우리를 깔보고 있을 개년들을 살육한다!”

    “바르바토스 님……!”

    “지금 산악파의 암퇘지들이 협공 같은 건방진 짓을 위해 우리 눈앞에 닥쳐왔다!”

    소녀의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빗소리와 천둥소리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전쟁은 우리의 긍지이다. 그것을 년놈들이 추악한 돼지발로 밟아서 망치려고 하고 있다! 허락할 수 있겠냐! 마왕놈들아, 친애하는 개새끼들아! 너희에게 묻는 거다. 허락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

    울분으로 가득찬 외침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기에 동조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대륙정벌의 꿈도, 목숨도.

    바르바토스는 씩씩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형태를 잃어버렸다. 난공불락의 성채와 같았던 바르바토스의 얼굴이……허물어졌다.

    소녀의 얼굴에는 비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빗물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아귀에서 대낫이 떨어졌다. 어떤 절망적인 전투에서도 결코 떨궈진 적 없는 그녀의 무구가 힘없이 진흙에 쳐박혔다.

    “아, 아아…….”

    그 순간, 벨레드 형님과 제파르 형님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망토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바르바토스의 주위를 감쌌다. 망토가 장막처럼 펄럭이면서 바르바토스를 보이지 않게 가로막았다.

    붉은 망토 너머로 소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흐아, 아……으흑…….”

    평원파의 수장이란, 자고로 가장 굳건한 마왕이어야 한다.

    가장 위대한 마왕은 서열 제1위 바알이다.

    가장 강력한 마왕은 서열 제2위 아가레스이다.

    가장 현명한 마왕은 서열 제3위 바싸고이다.

    그러나 가장 굳건한 마왕, 언제나 최전선에 서며――그 깃발이 부러질 날 없고, 그 발걸음이 멈출 날 없고, 그 함성이 잦을 날 없어, 모든 마계인의 등을 떠밀며 그들을 대륙으로 이끄는 자는, 언제 어느 때나 서열 제8위의 마왕이었다.

    불멸의 왕 바르바토스.

    “으으읏……흐윽, 으아앙…….”

    그렇기에 바르바토스는 울면 안 된다. 그녀가 우는 모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한 명의 전사이기 전에 대륙정벌을 열망하던 과거의 마계인과 지금도 열망하는 마계인을 대표하는 마왕이니까. 그녀가 절망해서 운다는 것은, 지금까지 피를 흘려온 마계인 전부가 좌절한다는 뜻이므로.

    “흐으윽……끄, 흐아앙……아…….”

    벨레드와 제파르는 망토로 뒤를 가린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바르바토스한테서 등을 돌렸다. 그저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벨레드와 제파르가, 그 다음에는 우리 마왕들이, 마지막으로 몬스터들이. 일만팔천의 무리 전원이 발끝을 돌렸다. 사방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들 귀에는 빌어먹을 빗소리만 들렸다.

    그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  *  *

    “이상하네요.”

    서열 제9위의 마왕 파이몬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천막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히는 것을 싫어하는 파이몬은 막사보다 천막을 선호했다. 지금처럼 바깥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언니, 뭐가 이상해?”

    옆에서 서열 제12위의 마왕이자 파이몬의 애첩인 시트리가 말했다. 시트리는 자신의 무구인 사복검(蛇腹劍)을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언제 제6군단이 공격해올지 모르기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바르바토스요. 이쯤이면 이성을 잃고 돌격해와야 하는데…….”

    “응? 걔는 머리가 얼음덩어리로 되어 있잖아.”

    시트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도 월맹군에 여러 번 참전했다. 바르바토스와 같은 군단에 소속되어 전투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바르바토스는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부대를 이끌었다. 함성과 포효로 가득찬 여타 부대와 달리 아무 소음 없이 고요하게 행군하는 것이 바르바토스의 특징이기도 했다.

    “자주 오해하곤 하는데 사실 바르바토스는 다혈질이와요.”

    파이몬이 키득 웃었다.

    “그저 감성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성을 쓸 뿐이지, 언제든지 과격하고 험악한 본성이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애당초 대륙정벌이라는 허무맹랑한 꿈을 이천 년 동안 추구하는 것만 봐도 그렇사와요. 아주 감성적인 아이지요.”

    “헤에. 언니는 바르바토스를 잘 아는구나?”

    “……동료였으니까요.”

    그것도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료.

    중앙군을 마르바스가 통솔한다. 좌익을 파이몬이 지휘한다. 우익을 바르바토스가 이끈다. 그것이 제2차 월맹군 제1군단의 진용이었다. 천칠백 년 전, 그들은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며 인간의 왕국 두 곳을 멸망시켰다. 후방에서 아군이 보급을 끊어버리지만 않았다면 대륙 끝까지 진군했으리라.

    그 이후, 월맹군에서는 10만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는 방식이 퇴보했다. 1만에서 3만의 군대만 운용하고 보급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대두되었다. 아군이 언제 보급을 끊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10만 대군은 악몽이었다.

    제2차 월맹군에서 마르바스, 파이몬, 바르바토스는 대륙 깊숙한 곳에 포위되어 무려 삼주일 동안 보급 없이 후퇴를 감행해야만 했다. 식량이 없어 오우거는 오크를, 오크는 고블린을, 아군을 먹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기사들…….

    13만 대군에 이르렀던 제1군단이 삼주일 뒤에 불과 2만으로 줄어들었다. 최고의 성공이 최악의 실패로 굴러떨어졌다. 무투파를 대표하던 세 마왕은 월맹군에 심각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무엇을 위한 월맹군인가?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서열 제5위의 마왕 마르바스는 중립파를 창설했다. 그는 마왕들 사이의 이기적인 투쟁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최우선 목표라고 생각했다. 마왕들의 회합 <발푸르기스의 밤>을 주최하는 자도 마르바스이다. 정치적인 해결을 노린 것이다.

    서열 제9위의 마왕 파이몬은 산악파를 창설했다. 대륙정벌은 불가능한 낭만이다. 그러니 최대한 마왕군의 피해를 줄이면서 인간계와 타협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실적인 타협에 나선 것이다.

    서열 제8위의 마왕 바르바토스는 평원파를 창설했다. 더 이상 아군은 믿지 못하겠다. 그러니 서로 믿을 수 있는 마왕들만 모인다. 이들은 바르바토스의 카리스마 아래서 마치 기사단처럼 단결했으며, 제3차 월맹군부터 독자적인 군단으로 움직였다. 과격파에서 더더욱 과격파로 나아간 것이다.

    천오백 년이 흘렀다.

    한때 하나의 군단에 모여 있던 이들이 이제는 각자 제2군단, 제1군단, 제6군단의 군단장이 되어서 각자의 행로를 걷고 있었다. 더군다나 파이몬 자신은 아군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진군했다…….

    ‘제2차 월맹군에서 후방의 마왕들이 했던 짓을 지금 제가 하네요.’

    파이몬이 자조했다. 이렇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그녀는 바르바토스의 소녀 같은 웃음소리를 떠올리면서 문득 자괴감에 빠졌다. 바르바토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파이몬도 알고 있었다. 월맹군이 실패하는 이유는, 어느 마왕 한 사람이 잘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모든 마왕의 필사적인 생존본능, 월맹군이 성공해버리면 자신의 존재의의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것에서 비롯했다…….

    고로, 월맹군은 영원히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파이몬은 이미 천오백 년 전에 확실했다. 대륙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종족은 마인이 아니다. 결국은 인간이 될 것이다.

    그때 가면 늦는다. 기껏해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에게 아부를 떨고 몸을 바쳐가면서 대륙에 마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치도시 한곳 정도를 허락받는 것이겠지……. 파이몬은 자신의 미모와 매력을 믿었다. 인간을 구워삶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굴욕적이다. 어떤 한 종족이 다른 종족에 절대적인 우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모든 종족이 절묘하게 평균을 이루어야만 한다. 또한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존중해야만 한다.……그러기 위해서 휴전협정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제1군단과 제6군단만이 합스부르크 제국과 협정을 맺는다. 이것이 시작의 축포가 되리라. 다른 마왕들은, 그리고 인간들은, 서로가 '여차하면 협정을 맺을 수도 있는 상대'임을 깨닫게 된다.

    ‘여태까지 죽기 살기로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전투하는 시대는 사라져요. 아니, 사라지게 만들겠어요……!’

    파이몬은 인간과 마인의 이기심을 믿었다. 그것에 의해 한번 처절히 배신당했으므로 역설적이게도 더더욱 신뢰했다. 마인과 인간은 전쟁을 벌이다가도 자기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협정을 맺으려 할 것이다. 차근차근, 더없이 차근차근 마인과 인간이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월맹군 이천 년 역사처럼, 다시 한번 이천 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그만한 각오를 파이몬은 하고 있었다. 이미 이천 년을 살아온 몸. 또 이천 년을 살아간다 한들 두려울 것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자신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인간과 마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그 세계를 향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 바르바토스를 짓밟는 것이다.

    ‘바르바토스. 당신은 지나치게 과격해요. 인간뿐만 아니라 마인에게도 당신은 공포를 불러일으켜요.’

    파이몬은 내심 바르바토스가 얌전히 당하는 대신 이성을 잃고 공격해오길 바랐다. 얌전히 있어도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겠지만, 이참에 평원파 세력을 멸절해두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천막 아래에서 전방을 노려보았다. 거센 빗줄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저 너머에 바르바토스가 있음을 알았다.

    ‘과거의 정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겠지만……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해드리지요.’

    하지만 그날 바르바토스는 공격하지 않았다.

    빗줄기가 거세게 양군의 진영을 때릴 뿐이었다.

    파이몬은 바르바토스를 꾀어내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인 언사가 적힌 편지를 전달했다. 조롱조로 가득했다. 앞으로 이틀 이내에 휴전협정에 서약하지 않을 경우 어찌될지 모른다는 최후통첩이었다.

    파이몬의 계략은 간단했다. 먼저 제3황녀가 바르바토스한테 '우리 영토에서 물러나주면 당장 휴전하겠다'라고 통보한다. 바르바토스가 그것을 수락할 리 만무. 제3황녀는 우리 영토에서 물러나라 부탁하기 위해 '시위'한다.

    말만 시위이지 실제로는 공격이다. 여기에 바르바토스의 제6군단이 맞서싸울 것이다.

    이제는 파이몬의 제1군단이 휴전협정을 '종용'하기 위해 참전한다. 어디까지나 명분은 휴전이라는 것이다. 그 실상은 물론 협공이며, 바르바토스의 제6군단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게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전투할 능력을 전부 상실해버린 제6군단에 강제로 휴전협정을 밀어붙인다.

    전형적인 정치적 전쟁이다.

    파이몬은 여유롭게 기다렸다. 이 책략에서 바르바토스가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하루이틀을 기다린 다음에 무력시위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파이몬은 실수했다. 그녀의 책략을 이미 한참 전에 꿰뚫어본 자가 한 명 있었으며――불행하게도 그자는 산악파가 아니라 평원파였다.

    마왕들이 '설마 마왕이 같은 마왕을 직접적으로 공격할까'라고 방심한 탓에 파이몬의 계책을 알아차리지 못했듯이, 파이몬은 '설마 마왕이 같은 마왕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리라는 것을 꿰뚫어볼 마왕이 있을까'라고 방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미래를 보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방심의 대가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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