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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105화 (105/510)
  • 00105 저주하려는 자, 무덤을 두 개 파두어라  =========================================================================

    대륙력 1506년 3월 30일, 아홉 시 경.

    바르바토스가 이끄는 몬스터 정예부대는, 프리츠 폰 로젠베르크 변경백이 지휘하는 제국군을 격파. 마왕군이 프라첸 고지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바르바토스는 전열을 정비하자마자 그대로 기수를 돌려서 마왕군 우익――제파르 대장과 내가 필사적으로 수비하고 있는 지점에 전 병력을 투입했다. 이제 압도적인 병력으로 마왕군 우익을 공격하던 제국군 약 2만은 양쪽 방향에서 협공을 당하게 되었다.

    ─ 황태자가 포로로 잡혔다! 변경백이 전사했다!

    사령부가 전멸했다는 소식 앞에서 제국군의 지휘부는 명백히 당황했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후퇴하자는 의견과 결사 항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전자는 합스부르크 중앙군 소속 지휘관이, 후자는 변경군 소속 지휘관이 지지했다.

    마왕군 우익은 새벽부터 격렬하게 전투를 벌인 탓에 병력이 4천에서 1천 5백으로 줄어들어 있었고, 바르바토스의 부대 또한 2천 5백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에 제국군은 아직도 2만에 이르는 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군이 이도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가운데 바르바토스는 이번 전역에서 최초로 <뼈의 군주>를 동원했다. 본드래곤은 움직이는 데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비되었고, 마법사 부대 전체가 연료를 공급하느라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효과만큼은 대단했다.

    이십 미터짜리 본드래곤이 전장에 내려앉자 제국군은 삽시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전열 전체가 일시적으로 붕괴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파르 대장과 바르바토스 군단장은 부대를 돌격시켰다.

    무려 쉰 명의 마법사가 마나를 퍼부었음에도 <뼈의 군주>는 고작 십 분밖에 날뛰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의 명운을 가르는 데 십 분이면 충분했다.

    제국군은 마왕군의 협공을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다. 파벌 다툼과 상관없이 제국의 지휘관은 하나같이 용맹했다. 그들은 끝까지 몬스터의 파도에 맞서다가 전사했다.

    콜로브라트, 쿠투소프, 키엔마이어, 랑제론……<던전 어택>에서 이름 깨나 날리는 맹장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이것만으로 나의 의도는 절반이 달성되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이제부터 극심한 인재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설령 엘리자베트 제3황녀가 권력을 휘어잡더라도 그녀를 뒤에서 물심양면 뒷받쳐주는 인재가 없다면야 크게 두려울 것 없었다. 제3황녀가 게임 최고 먼치킨이라 해봤자 혼자서 국가를 관리하기란 불가능했다. 인간계는 확실히 약화되었다.

    이로써 마왕군은 중앙과 우익에서 승리했다. 좌익도 곧이어 승전보를 울렸다. 애당초 벨레드가 맡은 좌익에는 가장 많은 병력인 8천이 배치되어 있었다. 어렵지 않은 전투였다고 한다.

    석양이 아우스터리츠의 구릉과 평야를 비출 즈음.

    전투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마왕군은 후퇴하는 제국군을 쫓아서 짤짤한 부수입도 올렸다. 본래 전장에서 가장 큰 피해는 전투 자체가 아니라, 퇴패하는 와중에 적의 추격전에 의해서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뭐, 이번에는 제국의 정예병이 비정상적으로 용맹해서 전투 자체의 피해도 어마어마했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싸우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마왕군은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전과를 상찬했다. 전투에 참여한 열아홉 명의 마왕 전원이 무사했다. 마지막으로 돌격을 감행할 때 제파르 대장이 그만 지나치게 앞으로 나와 어깨에 화살을 맞았는데, 그게 가장 큰 부상이었다.

    “하여간 쟤 돌격본능은 개도 못 준다니까.”

    바르바토스가 혀를 찼다. 제파르 대장은 부끄러운지 잔뜩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벨레드 형님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월맹군 제6군단 총참모로서 교전 결과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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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스터리츠 전투

    날짜: 대륙력 1506년 3월 30일

    장소: 합스부르크 제국 북부 모라바의 브르노, 아우스테를리츠

    《월맹군 제6군단》    《합스부르크 연합 원정군》

    주요 지휘관:

    서열 제8위 바르바토스   루돌프 폰 합스부르크 황태자(포로)

    서열 제13위 벨레드     프리츠 폰 로젠베르크 변경백(전사)

    서열 제16위 제파르     페르디난트 폰 발렌슈타인 남작(전사)

    그외 마왕 16명       미카엘 폰 콜로브라트 남작(전사)

    요한 폰 쿠투소프 백작(전사)

    병력:

    몬스터 16,325        변경군 약 1만(기사단 약 1천 5백)

    중앙군 약 2만(근위기사단 1천)

    란츠크네히츠 용병단 약 2만

    피해규모:

    몬스터 8,031사상       제국군 약 4만 5천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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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군의 완전한 전멸로 막이 내렸다.

    월맹군 제6군단도 전체 병력에서 절반이 피해를 입어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결과에 직면했으나, 바르바토스 직속 부대는 곧바로 흑마법으로 인해 복구되었다. 그 결과 제6군단은 아직도 1만의 병력을 유지했다.

    새삼 바르바토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전투가 끝나서 아무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한들, 그냥 일주일에서 이주일에 걸쳐서 흑마법을 주구장창 써대면 곧바로 병력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서열이 한 자릿수인 마왕들은 이래서 사기였다. 쓰읍.

    제6군단에 남은 병력 1만에서 절반인 5천을 바르바토스 부대가 독차지하게 되자, 다른 마왕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제각기 친위대를 이끌고 인근의 산맥과 숲을 샅샅이 뒤졌다. 몬스터 부락을 찾으러. 그들은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부락민들에게 설득과 무력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마왕들은 병력을 보충했다.

    변경백 영지에선 오히려 우리가 몬스터 부락을 토벌했다. 식량을 충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지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제 사정이 완전히 바뀌어서 일종의 징집병을 뽑아버린 것이었다.

    아, 식량은 당분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우스터리츠에는 제국군의 시체가 4만 구나 널렸으니까. 그들은 얌전히 훈제고기가 되어 소중히 보관되고 있었다.

    식량창고를 지나칠 때마다 무언가 먹음직스러운 훈제향이 풍겨올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인간성과 부단히 싸워야 했다. 아니, 정말로 먹음직스러운 향기란 말이다…….

    몬스터 부락의 징집병들은 인간 훈제고기를 맛보더니 대번에 마왕들한테 충성을 맹세했다. 이쪽 지방엔 정예병이 많아서 몬스터 부락민들은 그동안 감히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지 못했다나 뭐라나. 인육을 맛본 지 하도 오래된 참에 우리군에 입대(라고 쓰고 강제징집이라 읽는다)하니까 갑자기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었다.……오죽하면 소문이 퍼져서 징집을 피해 달아난 몬스터 무리까지 자발적으로 입대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끝나고 2주일 뒤.

    월맹군 제6군단은 다시금 1만 8천의 병력을 갖추게 되었다. 전투를 치르기 전보다 되레 병력이 늘어버렸다!

    나는 어이가 가출할 수밖에 없었다. 라우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정말로 상식 밖이다. 인간에 비해 마왕은 참으로 군대를 운용하기 쉽다는 걸 깨달았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가. 고블린을 사는 데만 500골드가 들었다. 다른 마왕은 이렇게 간단하게 병력을 충원할 수 있는데! 물론 단기간 계약 같은 것이어서 적당히 전투가 끝나면 풀어줘야 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휴.”

    됐다.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다음부터는 나도 참고해야지.

    *  *  *

    새로이 징집한 몬스터를 마왕들이 한참 훈련하던 때였다. 급한 정보가 월맹군 제6군단에 날아들었다.

    “헤에? 합스부르크 제국에 정변이 일어났다는데.”

    바르바토스가 양피지 두루마리를 읽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참고로 그녀는 지금 소파에 알몸으로 엎드려 있었다. 아까 전에 갑자기 안마를 받고 싶다고 말하더니만 냉큼 나를 오늘 하루 전용안마사로 고용해버렸다. 나쁜 로리 년.

    “엘리자베트 폰 합스부르크라는 황녀가 쿠데타를 일으켰대. 하루만에 황성을 점령하고 제도까지 장악했다라. 제법 유능한 애인가봐.”

    “걔 이제 열일곱 살이야.”

    “흐응. 천재인가, 아니면 단순히 주위에 휘둘린 걸까, 으읏. 하응, 야. 손놀림이 야하잖아.”

    일부러 그랬다. 오늘은 월맹군 부대를 재편하느라 바쁘단 말이다. 고작 안마나 받겠답시고 막무가내로 끌고왔겠다……조금이라도 반항하지 않으면 속이 안 풀렸다.

    나는 올리브기름으로 바르바토스의 전신을 정성스레 닦았다. 대리석처럼 하얀 살결이 윤기로 환하게 미끌거렸다.

    “아……하응. 이러면 얘기를 못하잖아, 새꺄.”

    내가 코웃음쳤다.

    “놀고 있네. 어차피 떡 치려고 부른 거면서.”

    “어라, 눈치 챘어?”

    “제가 댁이랑 떡친 게 벌써 수십 번입니다. 시나리오 뻔하거든요?”

    바르바토스가 깔깔 웃었다.

    “짜식. 동정처럼 목석이던 녀석이 이제 아주 선수가 됐어요. 꼭 얌전한 남동생이 바람둥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서 찝찝하구만.”

    “남동생? 내가? 오빠겠지.”

    “내가 생긴 건 이래봬도 이천 살이란다, 단탈리안 꼬맹아.”

    으음. 실제 나이로 따지면 맞는 말이다만, 그러면 누나가 아니라 할머니라 불러야 옳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세상 어느 여자가 섹스 파트너한테 할머니 소리를 듣고 좋아하겠는가. 나는 매우 상냥한 남자였다.

    안마는 자연스럽게 섹스로 넘어갔다. 우리는 각자 서른 번 정도 가버렸다. 마왕이 되고나서 좋은 점은, 남자인데도 연속으로 몇 번이고 절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가 절반은 마나로 이루어져서 그렇다는데 나는 마법적인 논리에 영 꽝이라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것이니까.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우리는 숨을 색색거리면서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내가 아래에 눕고 샌드위치처럼 바르바토스가 위에 누웠다. 내 성기는 여전히 그녀의 속에 넣어져 있었는데, 굳이 빼는 것도 귀찮아서 우리 둘 다 그냥 드러누웠다.

    바르바토스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하아……흐으……그래서, 지금이 합스부르크로 진격할 기회일까?”

    “아니.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해.”

    바르바토스가 얼굴을 들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왜?”

    눈동자가 똘망똘망했다. 문득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무심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르바토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한동안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시간이 흘렀다.

    “왜냐하면 쿠데타로 인해서 제국이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지.”

    “혼란에 빠져 있으니까 이쪽에서 공격해야 하잖아.”

    “아니야. 첩보에 따르면 제3황녀는 중산층과 서민층을 지지세력으로 이끌어들이기 위해 공화주의자를 대거 끌어들였어. 그만큼 귀족층의 지지도를 많이 잃었겠지. 중산층과 서민층도 무조건 황녀를 지지하지는 않고.”

    합스부르크의 제도는 지극히 난해한 정국에 돌입했다. 기존에 황태자파를 이루던 문벌귀족과 중앙군부가 지난번 아우스터리츠 전투로 인해 궤멸했다. 수장인 황태자가 포로로 잡혔으니 당연했다.

    그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제3황녀는 근위대를 이끌고 단번에 제도를 점령했다. 이미 명목상의 군주였을 뿐인 합스부르크 황제는 별궁에 유폐되었고, 제2황자는 엄중한 경계 아래 저택에 갇혔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황실에 위해를 가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엘리자베트 제3황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황녀파는 신속하게 제도를 접수했다. 엘리자베트 제3황녀는 스스로 군무상서, 통수본부장, 제도방위군 사령관을 겸임함으로써 군권을 장악했다. 군정과 군령 그리고 실행부대의 정점에 오른 것이었다.

    황녀파는 승리했다. 그건 확실했다. 그래도 완전한 승리를 논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황태자파의 문벌귀족은 투옥되었어도 자기 영지에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2황자파도 건재했다.

    적이 알아서 내분에 휩싸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겠지.

    나는 그러나 바르바토스한테 확실하게 말했다.

    “지금 쳐들어가면 우리가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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