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77화 (77/510)
  • 00077 인류의 번견  =========================================================================

    *  *  *

    ‘또 오는군.’

    한스는 노련한 병사였다. 멀찍이서 오크 무리를 발견하고 그가 생각했다. 한스는 벌써 십오 년 동안 산맥 부대에서 생활했다. 소규모 전투를 수십 번 겪었다. 정예병이었다. 그가 보기에 저기서 다가오는 오크 무리는 수십 번의 전투 경험에 한 번을 더해줄 사건에 불과했다.

    마왕성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대륙 북부. 그곳에서 인간계의 대다수 국가들이 위치한 대륙 중앙으로 침공하기 위해서는, 이곳 검은 산맥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검은 산맥에는 몬스터의 침략을 대비하여 무수히 많은 초소와 여러 개의 산성이 지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스는 최전방 초소에 소속되었다.

    최전방이란 고독한 곳이었다. 탈영해봤자 막을 사람도 없었다. 동료들이 있다지만 그 동료들과 함께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한스와 동료들은 십오 년 동안 초소를 지켰다. 자발적으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군인의 직업을 남성적이라 여겨서가 아니었다. 한스는 군인을 최고의 직종이라 떠벌려대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자신의 조국을 특별히 사랑해서도 아니었다. 한스가 태어난 합스부르크 제국은 유난히 귀족의 권력이 강했으며, 평민인 한스는 피지배층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고향을 사랑했지 조국을 사랑하지 않았다. 군인의식이나 애국심 따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견고한 사명감이 한스에게 있었다.

    인류의 번견(番犬).

    최전선을 맡은 자기가 얼마나 빠르게 마왕군의 침공을 발견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침공 경로를 짐작하는가에 따라서, 검은 산맥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주둔군이 움직였다. 주둔군이 궤멸해버리면 마왕군은 곧바로 대륙으로 진출한다. 끔찍한 일이었다.

    대륙이 전화에 휩싸이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자신의 임무에 달려 있다고, 한스는 물론이고 검은 산맥 최전선의 초소병들 모두가 믿었다. 그들은 헌신적으로 초계를 벌여왔다. 설령 자기가 침공을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제2선이, 제3선이, 제4선이 알아차릴 것이었다……그들은 자신과 동료를 신뢰했다.

    때때로 변경백 영주들이 보급을 늦게 보내오더라도, 초소병들은 자력으로 사냥을 하면서까지 버텼다. 초소병이 된 이들 중에는 재빵사도 무기장인도 있었다. 심지어 2서클이지만 마법사도 있었다. 그들은 이미 외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작지만 강력한 군대였다.

    지난 이천 년, 대륙에서는 수십 개의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쳤으나 이곳 검은 산맥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산맥 너머를 지켜본다. 몬스터가 다가온다. 그것을 신속하게 보고한다……초소병의 임무는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인간과 몬스터가 영원히 서로 적이듯이, 초소병의 임무 또한 영원하겠지. 한스의 핏줄에는 유구한 정신적 유산이 흐르고 있었다.

    ‘일단 초소에 합류하는 편이 좋겠어.’

    다행히 지금 정찰하는 곳에서 초소는 멀지 않았다. 한스는 재빨리 산을 타고 초소에 돌아갔다. 돌로 이루어진 건물――이것 역시 지어진 지 이백 년이 지났다――, 동료들이 바깥에서 산림욕을 즐기면서 전쟁장기를 두고 있었다.

    “몬스터 부대가 몰려왔다.”

    “제기랄. 또야?”

    동료들이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입과 다르게 몸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한스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오크 부대야. 고블린과 하급골렘도 섞여 있어. 오우거까지 다섯 마리나 있더군. 전부 합쳐서 대략 오백 마리.”

    “본격적이군. 오백 마리 급의 침공은 이 년만인가.”

    초소장인 프리드리히가 말했다. 오크와 고블린, 하급골렘은 하찮은 상대였다. 근방에 위치한 오십 개의 초소가 연합해서 무찌를 수도 있었다. 초소장 프리드리히만 하더라도 사십 평생 오크를 서른두 마리 사살했으며, 고블린을 백이 넘게 도륙했다. 두려워할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료들이 장비를 챙기면서 대화했다.

    “오백 마리면 몇 놈이나 연합한 거지?”

    “두세 명이겠지. 한스, 깃발이 몇 개나 있었냐?”

    “세 개. 세 개의 깃발을 확인했다.”

    프리드리히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세 명의 마왕인가. 서열이 높은 마왕이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 비슷비슷한 마왕끼리 연합을 이룬 것인지, 그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군.”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가 멀어서 깃발의 문양을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어. 하지만 오우거 다섯 마리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어. 한 마왕의 수하일 가능성이 높아.”

    동료들이 침음을 흘렸다.

    오우거는 위험했다. 녀석은 산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보통 야산에 한 마리 정도밖에 서식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구역을 명확하게 나눠 먹었다. 인간 국가로 따지자면 작은 영주나 다름없었다. 오우거에 비하면 오크나 고블린은 영주민에 불과했다.

    한 병사가 불안함을 감추고 말했다.

    “어떡할까, 대장? 우리끼리 해결할 일이 아니야.”

    “부대를 셋으로 나누자. 파비안, 너는 올리버와 함께 주변 초소들한테 오크 부대의 출현을 알려. 우리 동네만 돌면 된다.”

    “알겠어.”

    병사는 곧바로 사슬갑옷을 벗었다. 두 명이서 정찰을 하는데 사슬갑옷이나 방패와 같은 중장비를 가져가봐야 쓸모가 없었다. 여차하면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최대한 몸무게를 가볍게 해두어야 했다.

    “그 다음에는?”

    “산성으로 퇴각해. 아마 산성에서 오크 부대를 맞이할 테니까. 브루노, 너는 니콜라스와 함께 장비들을 짊어지고 곧바로 산성으로 가라.”

    “알겠습니다, 대장.”

    초소장 프리드리히가 투구를 썼다. 햇빛에 반사되지 않도록 까맣게 숯칠을 한 투구였다.

    “나는 나머지 인원과 함께 오크 부대의 뒤를 쫓는다. 한스, 길을 안내해.”

    “아아.”

    “제군들. 단위가 오백이 넘는 침공은 이 년만에 처음이다. 우리 인류의 산성이 고작 오백의 부대에 뚫릴 일은 없으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만일 우리 초소가 이번 침공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면 우리의 임무는 실로 막중하다. 신속하게 행동하도록.”

    열 명의 초소부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여유로웠지만 눈빛만큼은 예리했다. 프리드리히가 부대원의 훈련도에 만족하며 구호를 읊었다. 이천 년 전부터 초소부대에 내려져 전해오는 선조의 구호를.

    “――모든 악이 멸하는 그날까지.”

    부대원들이 한 목소리로 회답했다.

    “우리야말로 인류의 사냥개일진저!”

    *  *  *

    제파르 대장의 막사. 어제 회의가 가볍게 끝났다면, 오늘은 본격적으로 작전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분위기 때문인지 어제 제멋대로 흥분한 신출내기 마왕들도 조용히 작전 개요를 경청하고 있었다.

    “선봉대의 임무는 인류 최전선의 방벽을 함락하는 것이다. 바로 이곳.”

    제파르가 막대기로 지도를 짚었다.

    “녹색의 산성이 우리 목표이다. 녹색의 산성을 무시하고 진군할 경우, 선봉대는 본군과 나뉘게 된다. 인간들은 산성들끼리 연계하여 선봉대와 본군에 산발적인 전투를 강요할 것이다. 안전한 진군을 위해서라도 녹색의 산성은 반드시 점령해야만 한다.”

    검은 산맥.

    마왕의 영토와 인간의 영토를 자연적으로 갈라주는 산맥이었다. 대규모 군대가 진군할 만한 통로는 세 군데. 세 통로는 각기 튜튼 왕국, 폴리투니아 왕국,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이어진다.

    대륙 중앙 정벌군의 대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1) 서열 제9위의 파이몬. 그녀는 월맹군 제1군단, 산악파를 이끈다. 제1군단이 산맥의 첫 번째 통로를 경유하여 튜튼 왕국으로 향한다.

    (2) 서열 제5위의 마르바스. 그는 월맹군 제2군단, 중립파를 이끈다. 제2군단이 산맥의 두 번째 통로를 경유하여 폴리투니아 왕국으로 향한다.

    (3) 서열 제8위의 바르바토스. 그녀가 월맹군 제6군단, 우리 평원파를 이끈다. 제6군단이 산맥의 세 번째 통로를 경유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으로 향한다.

    여기까지가 대전략의 첫 번째 작전. 작전 목표는 검은 산맥 일대를 월맹군 아래 복속시키는 것이다. 한꺼번에 세 경로로 진군하는 까닭은 적의 전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해서이다. 제1차 월맹군에서 제3차 월맹군에 이르기까지, 마왕군은 전력을 집중하여 단숨에 검은 산맥을 돌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부 실패했다.

    검은 산맥은 지나치게 넓었다. 월맹군이 통로를 돌파하는 시간보다 인간의 군대가 집결하는 게 더 빨랐다. 월맹군이 험악한 산악 지대를 거쳐야 하는 반면에 인간군은 평야 지대로움직이니 당연했다. 그렇게 인간의 변경백 영주들이 통로 한쪽을 수비하는 동안, 각 국가의 군대가 동맹군을 조직하여 월맹군에 맞섰다…….

    월맹군 수뇌부는 수차례의 패배를 통해 깨달았다. 인간의 군대를 분산시켜야 한다. 그리고 마왕군의 군대를 분산시켜야 한다.

    인간이 집결하면 집결할수록 강해지는 반면, 마왕군은 모이면 모일수록 내분을 일으킨다……파벌을 중심으로 군단들이 결성된 이유도 여기 있었다. 같은 파벌끼리 군단을 이루면 아무래도 내분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차 월맹군에서 제7차 월맹군까지 내분은 어김없이 일어났지만.

    자, 그러면 우리 제6군단에 집중해보자.

    우리는 검은 산맥의 세 번째 통로를 돌파해야 했다. 세 번째 통로는 가장 굳건한 수비를 자랑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경계에 도달할 때까지 자그마치 네 개의 산성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관문, 녹색의 산성.

    두 번째 관문, 청색의 산성.

    세 번째 관문, 황색의 산성.

    마지막 네 번째 관문, 적색의 산성.

    정말이지, 빌어먹게 난이도 높은 난관이었다. 뒤로 갈수록 산성이 굳건해짐은 물론이었다. 어찌어찌 황색의 산성까지 전부 돌파해봤자 네 번째 적색의 산성만큼은 난공불락이었다.

    앞선 세 개의 산성을 돌파하는 시간이 문제였다. 그때쯤엔 합스부르크 제국의 강대한 변경백들이 벌써 군대 소집을 끝마친 채, 적색의 산성에서 기다린다……이쪽은 산성들을 거쳐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마왕군. 저쪽은 방금 소집되어 상태가 최고조인 인간군. 승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전력을 적색의 산성에 도달할 때까지 보존해야만 했다.

    우리 선봉대의 역할은 첫 번째 관문인 녹색의 산성을 뚫어버릴 것, 거기에 더해 청색의 산성에 피해를 강요할 것. 그 정도였다. 나머지는 본대에 맡기라는 얘기였다.

    제파르가 말했다.

    “녹색의 산성에는 약 오백 명의 군대가 머무르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이천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설령 적군이 산성을 끼고 방어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열 마리의 오우거가 있다.”

    “우리의 필승이로군요!”

    서열 제58위의 아미가 소리쳤다. 전투에 앞서 승패를 간단하게 논하는 모습이 좋지 않았으나, 나 역시 녹색의 산성이 쉽게 돌파되리라는 것에 동의했다. 오우거 열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녹색의 산성이 버틸 리가 없었다.

    제파르 또한 생각이 똑같은 것일까.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다. 허나 명심하도록. 단순히 승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정도로 압승하느냐가 중요하다. 적색의 산성에서 결전을 벌이기 전까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허투르게 병력을 낭비하는 일은 결코 용서되지 않는다.”

    마왕들이 알겠노라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벌써 승리한 분위기였다.

    “저에게 오우거 부대를 맡겨주십쇼!”

    “아니, 부디 저에게! 제파르 대장. 단 한 명의 오우거도 손상시키지 않고 성문을 부숴보겠습니다!”

    이런, 군공 다투기에 들어갔다……대체로 너희는 혈기가 조금 지나치다. 제파르는 방금 전력을 보존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경고했다. 어떻게 하면 제파르의 요구를 만족시킬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라고.

    “흠. 달리 좋은 생각을 가진 자는 없는가?”

    거봐라. 제파르도 저렇게 묻지 않는가. 상관의 마음을 미리 읽어서 대답해주는 부하가 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전면으로 뚫어버립니다. 무려 열 마리의 오우거입니다! 인간들 따위 오줌이라도 지리면서 도망치겠지요.”

    나머지 신출내기 마왕 두 명이 그렇다고 동조했다. 아이구야, 도무지 대답이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만약 적군이 평범한 인간 군대라면 아미의 말이 옳았다. 징집병 따위 오우거의 머리털만 보여도 줄행랑칠 게 뻔했다. 그러나 검은 산맥에서 주둔하는 인간 병사들은 징집병이 아니었다.

    상비군, 그것도 절반 정도가 지원병으로 꾸려져 있었다. 인류를 지키겠노라고 일부러 최전선까지 달려온 정예병. 오우거가 많다고 해서 도망칠 정도면 아예 검은 산맥 주둔군에 지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출내기 마왕들은 적군이 어떤 녀석들로 이루어졌는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제안을 가진 이는 없는가?”

    제파르가 한숨 쉬듯 물었다. 기분 탓인지 그가 내쪽으로 시선을 보내온 것처럼 느꼈다.

    내가 공손하게 말했다.

    “각하.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군대를 둘로 나눕니다.”

    “군대를 둘로 나눈다?”

    제파르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마자 아미가 비아냥거렸다.

    “하! 전술도 모르는군요. 아군을 모아서 일점타격한다, 이것이 전술의 기본입니다. 단탈리안 님은 아무래도 적을 지나치게 우습게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속으로 웃었다. 적을 우습게 여기는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이제는 아미가 귀엽게 보일 지경이었다. 네 녀석의 재롱을 보는 것도 제법 즐겁지만 지금은 조금 입을 다물어주라고. 여기서 인간군의 사정에 정통한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무엇을 숨기겠는가. 나는 <던전 어택>에서 다름아니라 저 산성들에서 마왕군에 맞서싸웠다. 당연히 인간군의 약점에도 빠삭했다. 겉보기에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네 개의 산성에도 꽤나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거기를 파고들면 된다.

    이건 <던전 어택>에서 실제로 성공한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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