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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67화 (67/510)
  • 00067 두 개의 음모  =========================================================================

    “……호오.”

    바르바토스가 입가를 비틀었다.

    간단한 논리, 그 말이 바르바토스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패배했음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완전무결한 추리에 의해 이루어진 패배였을까? 허점이 있지 않았을까. 약간의 운과 직감에 의존해서 단탈리안은 그녀가 범인이라고 어느 정도는 때려맞힌 것 아닐까. 바르바토스는 그것이 궁금했다.

    전사끼리 벌이는 결투에서는 운에 의해 승부가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오로지 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경우는 적을지라도, 어느 정도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야 비일비재하다. 바르바토스도 알고 있었다. 운 역시 승부의 요소임을.

    그러나 바르바토스는 천성적으로 전사의 기질을 타고 났다. 완전하게 운을 배제한 승부를, 진정한 건곤일척의 실력 싸움을 바랐다.

    “좋아! 단탈리안.”

    바르바토스가 빈 술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크리스탈 잔이 산산조각 났다.

    “네 자식이 승리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해. 그에 대해 어떤 불만도, 심지어 아쉬움도 분함도 없다. 오히려 기쁘다. 네가 나의 기대에 걸맞게 꽤나 뛰어난 새끼였다는 것이. 나는 너놈한테 99점을 매기겠어. 무슨 뜻인지 알겠냐?”

    “……백점만점이 아니라는 소리로군.”

    “깔깔깔! 그래! 100점과 99점 사이에는 대양과 하늘 사이의 간극이 있음이라.”

    그녀는 오른손을 번쩍 올려들었다. 위대한 흑마녀의 손짓에 영령들이 응답했다.

    공기가 음산하게 떨어댔다.

    ─ 고오오오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버섯과 같은 무언가가 솟아났다. 최고위 몬스터 <죽음의 기사>였다. 단탈리안이 보유한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최하급골렘 레벨 10짜리 따위는 칼질 한번에 무더기로 죽일 수 있는 괴물.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죽음의 기사>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오로지 주인의 부름에 대답하기 위하여.

    ─ 그르르르…….

    ─ 고오오오오.

    그들은 순식간에 마왕방의 드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바르바토스가 들어올린 오른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오백 마리의 몬스터가 일제히 장검을 빼들었다. 오백 자루의 검이 발도하면서 내는 쇳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숨소리마저 멈추었다. 바르바토스와 단탈리안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몬스터들이 완벽하게 대열을 이루었다.

    “…….”

    단탈리안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압권이었다. 여기 도열한 오백 마리의 몬스터를 이길 수 있는 군대 따위,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겠지. 인간계와 마계를 통틀어서 틀림없이 최강의 부류에 속하는 군대가 소리없이 압박을 보내오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부하들이다!”

    바르바토스가 입가에 한가득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나와 함께 전장을 돌아다니지 않은 이 여기 없으며, 명예로운 승리의 피를 맛보지 아니한 자 여기 없다. 이들이 내 영광이요, 이들이 내 역사이다. 나는 그 어떤 마왕일지라도 이들을 존중하는 만큼은 결코 존중하지 않는다. 단탈리안!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의 부하들 앞에서 나를 논파시켜 봐라!”

    그녀가 단탈리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결투다. 검이 오가고 피가 튀기지 않으나 엄연히 내 자존심과 네 자존심이 교차하는 결투야. 무릇 재미난 경기에는 그만한 관람객과 배당이 뒤따라야 하는 법. 단탈리안, 내 승부를 받아들여라. 네놈이 이긴다면 나의 명예로운 기사 열두 명을 건네주겠다.”

    죽음의 기사 열두 마리!

    단탈리안은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졌다. 현재 그는 던전 레벨이 아직 3에 불과하여 F급 몬스터밖에 구입할 수 없었다. A급 몬스터 죽음의 기사가 열두 마리나 가세한다면 계산할 필요도 없이 어마어마한 이득이었다!

    잔뜩 달아오른 심장과 정반대로 단탈리안이 냉정하게 사고했다. 그녀는 승부라고 말했다. 승리에 대한 보상이 주어졌기에 당연히 패배에 대한 대가도 상정될 터였다. 단탈리안이 말했다.

    “거 구미에 엄청 당기네. 그래서, 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데.”

    “내 부하가 되어라!”

    바르바토스가 두 팔을 벌렸다.

    “난 네놈이 마음에 들었어. 남자인데도 내 마음에 들었다는 건 시발, 엄청난 대사건이야. 그 정도로 네 녀석의 마음가짐과 능력이 끌려. 약속하지. 결코 섭섭하게 대우하지 않을게. 너는 서열 제8위의 마왕군에서 명실상부한 이인자로 인정받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

    “지금 마왕들은 태반이 쓰레기야! 마왕으로서의 존재이유까지 망각해버린 채 자기 한 몫의 목숨, 한 몫의 안전만 챙기고 있어. 녀석들을 따로 마왕이라 불러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녀석들이 저 인간계의 수많은 영주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 나는 녀석들이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고 단언해. 단탈리안, 나와 함께 지상에서 모든 쓰레기를 불태워버리자.”

    바르바토스가 음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인간계를 지배한다. 마인을 위한 세계를 구축한다.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제국을!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 대제국의 영원한 재상은 네놈이 될 것이야.”

    “크흐.”

    단탈리안이 웃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군. 그 승부, 받아들이지.”

    “좋아! 그렇다면 증명해봐라!”

    바르바토스가 팔을 휘저었다. 그녀와 단탈리안의 옆으로 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바르바토스의 키보다 세 배는 거대한 목록이었다. 거기에는 서른두 명의 이름이 한 줄씩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발푸르기스 밤에 참석한 총 서른두 명의 마왕! 그중에서 왜 하필 나 바르바토스가 리프의 시체에 각인을 새겨넣은 범인인지 설명해라.”

    “먼저 산악파 전원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한다.”

    단탈리안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 산악파가 같은 산악파인 벨리알을 모함할 리가 없기 때문이지.”

    “하, 우스워라!”

    바르바토스가 웃었다.

    “왜 하필 제3자가 표식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정말로 벨리알 본인이 리프의 시체에 각인을 남겼을 수도 있다. 단탈리안, 이곳은 신성한 결투장이다. 단 하나의 비약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 설명해라!”

    “이건 비약도 뭣도 아니야. 리프의 시체에 표식이 남아 있다――'그 자체'가 표식을 남긴 자가 벨리알이 아님을 증명한다.”

    단탈리안이 말했다.

    “리프의 모험대를 뒤에서 도와준 자를 후원자라고 부르자. 왜 후원자는 나와 직접 싸우지 않았을까? 왜 인간의 모험대 따위를 몰래 지원했을까?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야.”

    그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이리저리 걸었다.

    “그렇다면 '몰래 리프를 도와준다'라는 행동과 '리프의 신체에 자기가 그를 도와주었다는 증거를 남긴다'라는 행동은 명백하게 서로 모순되지. 고로.”

    그가 거대한 목록에서 벨리알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손끝으로 그었다.

    “리프의 시체에 표식을 남긴 자는 후원자가 아니야. 여기에서 리프와 후원자를 제외한 또 다른 '제3자'가 등장하지. 그가 바로 리프의 시체에다 벨리알의 표식을 새겨넣었어.”

    “깔깔. 좋아, 인정한다.”

    바르바토스가 팔을 한번 휘둘렀다. 목록에서 쉬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열 제68위 벨리알'이라 적힌 부분의 정중앙에 가로로 길게 획이 그어졌다. 단탈리안의 공격이 성공한 것이었다.

    바르바토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서른두 명에서 한 명이 용의자 혐의를 벗었다. 어쩌라는 얘기인가? 그래봤자 한 명. 아직 서른한 명이나 남아 있다! 그중에서 제3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특정 짓는 것은 여전히 아득하게 어렵다.

    “그렇지만 단탈리안 네놈의 논리에는 허점이 있어. 단순히 파벌이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산악파 전원을 용의선상에서 지워버리려 하다니!”

    바르바토스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똑같은 파벌일지라도 얼마든지 서로한테 원한을 품는 게 가능하다. 평원파 내부에서도 치고박고 싸우는 게 마왕이란 종자야. 산악파라고 다를까! 벨리알이 존나 싫어서 어떤 산악파 놈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반론이야. 하지만 쓰잘데기 없지.”

    단탈리안이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주위를 돌아다녔다.

    “난 반론을 위한 반론을 제법 싫어해.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듯한 반론이 실제로는 트집잡기에 불과한 경우가 부지기수란 말이지. 벨리알은 서열 제68위야.”

    그가 강조해서 되풀이했다.

    “겨우 68위에 불과하다고. 만약 68위한테 진지하게 계략을 꾸며야만 하는 누군가가, 그것도 이렇게 빙빙 돌려서 계략을 꾸며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68위조차 공격할 수 없는 그런 녀석일 거야. 68위보다 약한 녀석 말이야. 따라서 69위부터 72위까지 총 네 명이 용의자에 들어가게 돼. 저런, 안타깝게도.”

    단탈리안이 네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가 검지를 구부렸다.

    “제72위 안드로말리우스는 내가 죽여버렸군. 용의선상에서 제외, 세 명이 남는다. 다음으로 제71위 나 단탈리안은 당연히 범인이 아니야. 용의선상에서 제외, 이제 두 명이 남는다.”

    “흥.”

    바르바토스가 손을 저었다. 거대한 목록에서 '서열 제71위 단탈리안'이라고 적힌 곳에 획이 그어졌다. 단탈리안이 계속해서 말했다.

    “제70위 세에레는 청문회에 참여도 했고 살아도 있었지만 산악파가 아니야. 아무 파벌에도 가입해 있지 않지. 용의선상에서 제외. 마지막 한 명, 서열 제69위 데카라비아가 남는군.”

    단탈리안이 소리쳤다.

    “그런데 데카라비아는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았지! 범인이 될 수 없어. 고로 똑같은 산악파의 누군가가 벨리알을 모함에 빠트렸다는 네 반론은 무효해.”

    “……크. 하지만 서열 제68위 이상의 마왕이 벨리알을 모함했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거야말로 억지야. 한번 봐보시지.”

    단탈리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목록을 손으로 가리켰다. 일찍히 라피스가 단탈리안에게 제출한 양피지 목록과 똑같은 이름들이 그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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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열 제5위 마르바스  · · · (중립)

    서열 제8위 바르바토스 · · · (평원)

    서열 제9위 파이몬   · · · (산악)

    서열 제10위 부에르   · · · ( - )

    서열 제12위 시트리   · · · (산악)

    서열 제14위 레라지에  · · · (평원)

    서열 제16위 제파르   · · · (평원)

    서열 제20위 푸르손   · · · (중립)

    서열 제21위 모락스   · · · (산악)

    서열 제22위 이포스   · · · ( - )

    서열 제27위 로노베   · · · (산악)

    서열 제31위 포라스   · · · (산악)

    서열 제33위 가프    · · · (산악)

    ·

    ·

    ·

    서열 제50위 푸르카스  · · · (평원)

    서열 제55위 오로바스  · · · (산악)

    서열 제57위 오세    · · · (산악)

    서열 제62위 발라크   · · · (산악)

    서열 제68위 벨리알   · · · (산악)

    서열 제70위 세에레   · · · ( - )

    서열 제71위 단탈리안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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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리알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마왕은 발라크, 서열 제62위이다. 서열이 육 위나 차이가 나지. 파벌에서 두 사람이 갖는 발언권은 천지차이일 터. 62위가 68위를 모함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험대를 뒤에서 후원하고, 한 시체에다 표식을 새겨넣는 그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한다고? 그것도 다름아니라 자기보다 서열이 까마득하게 낮은 제71위, 나 단탈리안에게 복수를 대행시키기 위하여?”

    단탈리안이 웃었다.

    “말이 안 된다! 벨리알을 모함한 것은 같은 산악파가 아니다. 산악파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벨리알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하여 리프의 시체에 각인을 새겨놓았다. 제3자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

    첫 번째 반론이 논파당했다.

    바르바토스는 서른두 명이나 참석했으면 그중에서 정확하게 범인을 골라내지 못하리라 안심했다. 방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발푸르기스 밤에 참여한 마왕, 총 서른두 명.

    그중 산악파에 속하는 자, 열일곱 명.

    그녀는 단탈리안이 산악파 전원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해버리는 것을 잠자코 지켜봐야만 했다. 바르바토스는 입가를 비틀면서 손을 휘저었다.

    ─ 촤자자자작!

    한순간에, 열여덟 개나 되는 이름에 획이 그어졌다. 서른한 명, 이라는 용의자 숫자가 건네주던 안정감은 단박에 사라졌다.

    “자아. 용의자가 서른 둘에서 고작 열다섯으로 줄어들었어. 나도 용의자에서 빠졌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열네 명이로군. 여전히 많은 숫자이지만 범인을 골라잡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걸.”

    “……크.”

    바르바토스가 침음을 삼켰다. 단탈리안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빛났다.

    “자, 다음 경우의 수를 지워보자……그 전에 목 좀 축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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