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55화 (55/510)
  • 00055 E급 모험대  =========================================================================

    해가 중천을 지나 점점 서산에 몸을 뉘일 즈음해서, 모험대가 돌아왔다. 그들은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구릉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고블린과 인간을 나누어서 서로 싸우는 것처럼 연출했다. 약 백 마리의 고블린들 뒤꿈치에다 노끈으로 짚단을 달아놓았는데, 그 덕택에 마치 대단히 치열한 전투라도 벌어지는 것마냥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먼지구름 속에서 인간은 예의 꽹과리 악기를 동원하여 군가를 부르짖었고, 고블린은 고함을 질렀다. 철과 철이 맞부닥치는 소리도 요란하게 울렸다.

    라우라가 옷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말했다.

    “적들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한창 전투가 이루어지는 줄로 착각하겠지.”

    “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나이다.”

    내가 허락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우라가 몬스터 부대에 명령을 하달했다. 나처럼 즉각적으로 명령을 전달하진 못했으나――내 경우, 던전에서 정식으로 구입한 골렘이나 요정에게는 마음속으로 명령할 수 있었다――그녀 나름대로 깃발 등을 사용하여 몬스터를 이끌었다.

    ─ 케르르륵!

    ─ 끼루, 끼루룩!

    고블린들이 허겁지겁 마을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갑작스러운 적의 출현에 당황하여 후퇴하는 패잔병처럼. 미리 약속한 대로 인간들이 몬스터 부대를 득달같이 쫓았다. 나와 라우라는 마을 한켠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와아아아! 몬스터가 후퇴한다!”

    “놈들을 죽여라! 놈들을 잡아라!”

    모험대 입장에서 보기에 전황은 다음과 같았다. 몬스터와 마을사람이 한창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양측이 치열하고 싸우는 와중, 몬스터 부대의 후방에 자신들이 등장했다. 몬스터 부대는 갑작스럽게 적의 원군이 출현한 것에 놀라 후퇴한다.

    “미끼를 물었군요.”

    모험대-자경단 연합부대가 패주하는 고블린 부대를 향하여 돌격했다. 후퇴하는 도중의 군대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었다. 모험대는 마을의 추격군과 함께 앞뒤로 몬스터 부대를 압박함으로써 전투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몬스터 부대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모험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으며――.

    몬스터를 추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을사람들도 실은 모험대를 공격할 거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라우라와 내가 거의 동시에 중얼거렸다.

    “끝났습니다.”

    “끝났군.”

    마을 앞 평원에서 고블린 부대와 모험대가 맞닥트렸다.

    *  *  *

    “크하하, 생각보다 마을 애들이 잘해주었어!”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목격하자마자 리프는 주저없이 돌격 명령을 내렸다. 먼지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치열한 싸움이 이루어지는 게 틀림없었다. 시끄러운 소음, 고함, 비명, 모든 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의미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목책이 돌파당했다. 리프는 처음엔 마을이 불리한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했다. 마을측이 전멸하기 전에 얼른 합류하여 모루와 망치 작전을 실행할 속셈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대가 움직이자마자 고블린들이 마을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백중지세!’

    마을은 불리하지 않았다. 목책이 돌파됐어도 여전히 마을 안쪽에서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 네 겹의 목책을 뚫느라 몬스터 부대가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냈겠지. 그런 상황에서 리프가 이끄는 부대가 후방에 출현하자, 마왕군이 당황해서 후퇴 명령을 내린 것이리라.

    상황이 바뀌었다. 마을이 모루가 되고 자신들이 망치가 될 필요가 없었다. 도리어 자신들이 모루가 되어 후퇴하는 고블린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마을사람들은 거대한 망치가 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고블린들의 후방을 때려친다!

    리프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형님들, 보이오!? 고블린 자식들이 후장에 불 붙은 개새끼처럼 도망치고 있소!”

    “아아! 잘 보이고 말고!”

    “저 좇만한 애새끼들을 때려잡는 데엔 우리가 가진 창으로 충분하외다!”

    모험자들과 자경단원들이 그렇다고 소리질렀다. 개중에는 벌써부터 돌격 함성을 부르짖는 자도 있었다.

    고블린 부대와 리프 부대, 양측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둘 사이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악악 함성을 질러대는 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전투의 공포를 악으로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달리기가 심장을 가열했다. 함성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 순간, 모험대는 순식간에 진정한 의미에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죽자, 죽어버리자!”

    “흐웁! 흐웁! 흐웁!”

    “개새끼들 족쳐버려어억!”

    고블린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와 함께 몬스터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가 터졌다.

    ─ 끼르르르르륵!

    ─ 케룩! 케룩! 케르륵!

    리프가 창끝을 앞으로 쑤욱 들이밀었다. 도시에서 모종의 자산가에게 후원 받아 마련한 창이었다. 단창보다 길고 장창보다 짧은 그것은, 비록 인간의 군대에 맞서기에는 다소 길이가 부족했으나 인간종보다 키가 한참 작은 고블린을 찔러죽이기엔 넘치고도 남았다.

    “거차아앙!”

    “우아아악! 뒈져불자!”

    “끼효오오옥――!”

    리프의 거창 신호에 따라 부대원 전원이 창을 들었다. 근육질의 팔뚝, 고블린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신체, 통나무처럼 굵은 가슴팍과 허벅지가 창대를 굳건하게 지탱했다. 마침내 두 부대가 충돌했다.

    “끄아아아악!”

    거대한 비명이 평야에 울려퍼졌다. 리프의 손아귀에 쿠웅, 하고 강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무려 두 마리의 고블린을 창끝으로 한꺼번에 꿰뚫었다. 손바닥이 아프게 쓸렸다.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럼에도 리프는 오른쪽 발에 힘을 꽉 주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쿠웅! 쿠웅! 하고 창대에 충격이 전해졌다. 불길에 날아오는 부나방처럼 멍청한 고블린 새끼들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죽여봐라, 씨바아알!”

    “돌격! 돌겨어억! 멈추지 마! 멈추지 마라!”

    “한스 개새끼야 계속 달리라고!”

    모험대-자경단 연합부대는 움직이는 바위해안선 같았다. 고블린들이 쉴 새 없이 쿠웅! 쿠웅! 하고 밀어닥쳤지만 이내 바윗돌에 부닥친 거품처럼 나가떨어졌다. 고블린에게 중장보병의 거창 돌격은 기사단의 돌진만큼 위력적이었다.

    고블린은 기껏해야 가죽 갑옷, 그것도 몸 대부분을 맨살로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에 인간들은 질 좋은 천갑옷을 입고 그 위에 사슬갑옷을 껴입었다. 비록 값비싼 사슬갑옷을 전신에 걸칠 순 없었지만 상반신과 허벅지는 제대로 방어했다.

    몇몇 고블린이 창으로 이루어진 숲을 겨우 헤쳐나오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사슬갑옷 너머로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가 어려었다. 운이 안 좋은 소수의 인간, 부대원 일흔세 명 중에 고작 여덟 명만이 돌격 과정에서 죽었다. 나머지 예순다섯 명의 중갑보병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달리기 속도가 완전히 죽어서 돌격이 멈출 즈음에는 벌써 백여 마리의 고블린이 한순간에 궤멸했다.

    “아그들아! 싸게싸게 붙어라악!”

    “혼자 나대지 말고 함께 싸워! 야! 한스! 너 이 새끼 죽을래!”

    부대가 빠른 속도로 밀집 진형을 꾸렸다.

    지나치게 흥분하여 멀리 돌격해버린 부대원은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은 승냥이떼한테 잡힌 사슴처럼 몸의 이곳저곳을 고블린 이빨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인원은 예순 명이었다. 그들은 방진을 짜서 침착하게 고블린들을 찔렀다.

    “크하하! 식은 죽 먹기라니까!”

    “호흡을 맞춰. 흐웁! 찌르고! 후읍! 거두고!”

    “흐웁! 흐우웁! 흐웁!”

    평생 고블린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온 자경단이 특히 활약했다. 고블린에게 포위되지만 않으면 일단 큰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자경단원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게 돌격의 흥분이 약간 가라앉았을 때였다.

    “흐웁! 흐웁!……?”

    모험대 간부인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끈덕지게 정면을 노려본 채로, 그가 옆에 서 함께 창을 휘두르고 있는 리프한테 말했다.

    “대장님! 흐웁! 뭔가 이상합니다!”

    “훕! 뭐 이 새끼야! 헛소리하지 말고 찔러!”

    “고블린이 너무 많습니다!”

    고블린을 죽이는 데 모든 정신을 쏟아붓느라 그때까지 멈춰 있던 두뇌가 가동했다.

    ‘……고블린이 너무 많다고?’

    리프의 시선이 순간 넓어졌다. 눈앞으로 달려드는 고블린뿐만이 아니라 그 옆, 그 뒤, 그 너머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사내 말이 맞았다. 고블린이 지나치게 많았다. 1차 돌격에서 기백 마리를 죽였을 텐데도 녹색빛의 몬스터가 여전히 징그럽게 넘쳐났다.

    ‘잠깐만. 마을에서 공방전을 치르느라 숫자가 줄어들었어야 하는데?’

    어림짐작으로 대충 삼백 마리에 이르는 고블린이 있었다. 이상했다. 모험대와 맞붙기 전에 고블린 부대는 지난한 공성전을 벌였을 터. 사백 마리의 부대가 최소한 이백 마리 정도로 줄어야 했다.

    무엇이지, 혹시 마왕 새끼가 더 많은 고블린을 동원했나, 몇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치는 순간에 동료들이 소리쳤다.

    “어이! 이거 이상해! 마을놈들이 왜 양옆으로 쏟아지는데!?”

    “고블린놈들 뒤쪽을 안 때리고 우리랑 합류하려나봐!”

    “저 겁쟁이 새끼들이!”

    동료들은 우락부락 성을 내면서도 성실하게 창을 찌르고 빼기를 반복했다. 리프도 기계적으로 동작을 따라했다. 머릿속은 동료들이 소리지른 내용으로 가득했다.

    ‘마을놈들이 고블린 뒤쪽을 후려치지 않는다고?’

    리프가 고개를 빠르게 움직여 전장을 확인했다.

    확실히 마을사람들이 고블린을 양옆으로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양쪽에서 마을사람들이 고블린 부대 그리고 모험대를 감싸안는 형국이었다.

    ‘육시랄? 뭐하자는 거야?’

    단독으로 고블린과 싸우기보다 이쪽 모험대와 함께 싸우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할 만했다. 모험대가 압도적으로 강력하니까. 하지만 지금 고블린은 마을사람을 향해 적나라하게 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등을 내보인 사냥감을 굳이 때려잡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만큼 마을 놈들이 겁쟁이였는가?

    그보다 고블린 새끼들은 패주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끈찔기게 싸워대는가.

    “……!”

    리프가 깨달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오직 한 가지 대답만이 지금 일어나는 기현상을 해명했다――마을 놈들이 우리를 배신했다!

    “씨팔!”

    리프가 자기도 모르게 욕했다. 그랬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마을 놈들이 마왕군한테 들러붙었다. 고블린들은 후퇴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공격해오는 것이었고, 마을 놈들은 지금 모험대를 양옆으로 감싸려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전세가 역전되었다. 여태까지 유리하다고만 여겨지던 상황이 돌연 정반대의 형태로 비추었다. 모루와 망치는 이쪽이 펼치는 게 아니었다. 고블린이 모루가 되어 모험대를 붙잡아둔 사이 마을 놈들이 망치가 되어……우리 모험대를 깨부수려 하고 있었다!

    리프가 거의 비명 지르듯 외쳤다.

    “후퇴! 후퇴해! 후퇴!”

    “훕? 대장님, 후퇴라니 무슨…….”

    “잔말 말고 후퇴해! 씨발!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얼른!”

    리프는 그대로 대열을 이탈하고 뒤로 달려갔다. 동료들이 비명을 질렀다. 리프를 욕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리프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다. 모험대는 함정에 빠졌다. 완벽하게. 허나 아직은 마을 놈들이 모험대를 감싸안지 못했다. 시간문제이긴 해도……아직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모험대는 정면의 고블린과 양익의 마을사람에게 포위되어 전멸해버릴 것이다.

    그 전에 도망친다!

    “헉!”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리프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리프를 따라 무작정 같이 도망쳐온 모험자들도 함께 발을 멈췄다. 그들도 슬슬 무언가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망치려던 모험대의 후방에는 약 백 명의 인간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다름아니라 리프가 배신자 마을이라고 여겼던 동쪽 끄트머리의 마을들. 두 개 마을 분의 인간들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