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51화 (51/510)
  • 00051 E급 모험대  =========================================================================

    “고블린, 고블린이 쳐들어왔다!”

    “목책으로 붙어! 시발, 도망치지 마! 목책으로 붙어!”

    “세파르 개새끼야! 너 이 개새끼 도망치기만 해봐, 네놈 처자식을 분질러버릴 테다!”

    마을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목책 너머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는데, 목책에 바짝 붙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목책에서 떨어지려는 사람, 이도저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는 사람, 공방전을 대비하여 미리부터 땅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줍는 사람, 온갖 부류의 인간이 혼란을 연출했다.

    우리는 멀찍이서 마을을 지켜보았다. 마을 주변에 계단식 논밭이 펼쳐져 있어 낭만적이라고까지 말하기엔 뭐해도 풍경이 제법 목가적이었다. 논밭을 가로지르며 허겁지겁 마을로 뛰어가는 인간들만 없다면 말이다.

    내가 느긋하게 말했다.

    “의외로 도망치는 자가 없군.”

    “산에서 사는 인간만큼 억척스러운 족속도 없소. 평지에서 사는 겁쟁이와 달라도 한참 다르거든.”

    파르시가 우쭐거렸다. 산사람과 평지사람 간에 자존심 싸움이 있는 것일까. 하여간 쓴웃음이 나왔다. 인간이란 겉보기에 차이가 있다면 일단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서 그 차이를 고정시키기 마련이었다.

    “저들은 하층민 중에서도 떠돌이들이옵니다.”

    라우라가 옆에서 말했다. 그녀는 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었는데, 그만 그녀가 당나귀에 탔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동작이 멋졌다. 달리 말해 우스꽝스러웠다. 언젠가 반드시 명마를 구해다 선물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세금징수관과 영주를 피하여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산맥까지 내몰린 것이지요. 저들은 자신의 것을 스스로 지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그들로 하여금 각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민중을 공격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가?”

    “감히 전하에게 먼저 칼날을 겨눈 이들입니다. 소신은 전하의 적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법을 배우지 않았나이다.”

    믿음직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때쯤 고블린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한 원숭이 떼거리가 음정박자 전부 무시하고 합창하는 것 같았다. 고블린들은 제멋대로 발을 굴렀고, 알 수 없는 언어――대충 '꾸르구르구르구르!' 하고 들렸다――로 노래를 불렀으며, 흥에 겨워 손짓발짓 다 써서 춤을 추었다. 어떤 녀석이 초록색 가죽으로 된 북을 울리면서 그나마 박자를 맞춰주었다. 고블린의 군가였다.

    “기선 싸움입니다.”

    “흥미롭군. 본인이 지금껏 들어본 음악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송구하오나 주군, 특별히 총애하시는 음악이 있는지요?”

    “난 음악이 싫다.”

    라우라가 키득거렸다.

    마을측이 맞서서 목청을 돋우었다. 산에서 수확하는 옥수수의 풍요로움과 그것을 결단코 지키겠다는 게 노래 줄거리였다. 풍물놀이처럼 각종 악기가 동원되었다. 확실히 고블린에 비해 음악수준이 한 단계 높았다. 소리꾼들이 선창하면 대다수의 마을사람이 똑같은 구절을 뒤따라 불렀고, 중간중간에 악기를 잡은 자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마을사람들이 쓰는 악기 중에 꽹과리랑 비슷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모든 악기 중에서 꽹과리가 가장 싫었다. 도대체 꽹과리가 어떤 종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공헌하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원래 세계에서 풀릴 길이 안 보였던 미스터리가 지금 해결되었다. 꽹과리는 전쟁에 전문적으로 이용되던 악기임에 틀림없었다! 고블린과 인간이 꽥꽥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에도 꽹과리 비스무리한 악기의 소리는 그 모든 소음을 뚫고 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뒈지랄 것들 뒈지라고 디벼 잡이라윽!”

    “얼쑤우!”

    “뒈지랄 것들 뒈지라고 디벼 잡이라아아악――!”

    마을 목전의 구릉이 금새 노래가락과 악기소리로 가득 찼다. 사실 노래라는 적이 부드러운 낱말로 표현하기에는 거의 악바라지에 가까웠다. 아니, 그냥 소음이었다.

    “이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내가 소리쳤다. 말소리가 노래에 파묻힐 지경이었다.

    “송구하나이다! 본래 인간의 군대끼리 맞붙을 때는 군가에도 법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기고, 어떻게 하면 지는 것인지 암묵적으로 합의가 있나이다! 허나 소신은 몬스터와 인간이 군가로 겨루는 모습은 처음인지라 아는 바가 없습니다!”

    “파르시!”

    “간단하외다악!”

    파르시가 엄청난 성량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중 한쪽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하면 되오!”

    그거 참 룰이 간단해서 좋군. 이 빌어먹을 소음을 계속해서 들어야 할 필요만 없었다면 그같은 룰을 만든 사람을 칭찬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어쩌는가!”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불러재끼는 거요! 거 심심하시면 춤사위라도 한판 땡기는 게 어떻소외까! 벌써 고블린들은 난리가 났구만!”

    파르시 말마따마 고블린들은 아예 단체로 춤을 추고 있었다. 장담컨대 그건 아무리 봐도 대악마를 소환하는 흑마법사들의 의식이었다. 저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허리를 흔들라고? 죽어도 사양하고 싶었다.

    다행히 우려와 다르게 기선 싸움은 금방 끝났다. 마을사람은 대략 오십 명에 불과했다. 백 마리에 이르는 고블린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블린 군가에 인간들의 목소리가 묻혔고, 마침내 마을 쪽에선 예의 꽹과리 소리만이 들려오게 되었다. 그들은 지쳤다.

    ─ 케르르르르르!

    ─ 키루륵! 케르, 키루르르륵!

    고블린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녀석들도 한참 동안 소리를 질렀긴 매한가지인데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전쟁터란 묘해서 일단 기세를 타면 흥분감에 피로를 잊어버렸다. 반면 기세에서 밀릴 시엔 스트레스와 피로 그리고 중압감에 말려들어 전투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마을사람들 꼴이 그러했다.

    자경단원은 모험대로 차출되었다.

    몬스터에 비해 병력도 부족했다.

    하물며 사기까지 떨어졌다.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를 만들어놓은 이후 전쟁에 나선다. 이번 전투는 아직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으나 누가 봐도 승패가 명백히 결정되어 있었다.

    “주군, 때가 되었사옵니다.”

    “아아.”

    “전투에 앞서 한 말씀을.”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블린 대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블린의 키가 작은 탓이었다. 푸른 구릉에 짙은 초록빛의 고블린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꼭 애벌래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확성 마법이 담긴 스크롤을 찢었다. 얼굴 앞에 투명한 막이 생겼다. 나는 <연기> 스킬을 발동했다. 그리고 버럭 소리질렀다.

    “전사들이여!”

    이백여 개의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했다. 나는 한 박자 쉬고 연설을 이어나갔다.

    “저 울타리를 보아라!”

    내가 마을을 향해 손을 벌렸다. 마을사람들도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 산맥의 인간놈들이 건방지게도 울타리를 짓고 있다. 마치 여기가 그들의 땅이라는 듯이. 그들은 마을을 짓고 목책을 쌓아 어느새 산맥의 주인인 양 행세하고 있다……이 산맥의 주인이 인간이었는가?”

    ─ 케르르르륵!

    ─ 끼룩! 끼루룩!

    나의 질문에 고블린 무리가 성난 원숭이마냥 방방 뛰었다. 짐승들의 분노가 공간에 찌르르 퍼졌다. 마왕인 나는 그들의 말을 여과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인간이 목책을 쌓기 전에도 고블린은 있었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전에도 고블린은 있었다. 인간이 감히 신성한 산자락에 발을 내딛기 전에도 고블린은, 이미 고블린은 수백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 끼루루루루루!

    “좋다. 허면 그대들, 긍지 높은 산맥의 종족에 묻겠다.”

    내가 양팔을 치켜들었다.

    “그대들은 신성한 산맥을 사랑하는가!”

    ─ 케르륵! 케륵! 케르륵!

    고블린들이 일제히 발을 굴려대며 회답했다.

    내가 있는 힘껏 외쳤다.

    “그대들이야말로 산맥을 지배하는 전사의 일족인가!”

    ─ 케륵! 케륵! 케르륵!

    “우리의 위대한 영토를 침범한 저 건방진 암퇘지 새끼들을 응징할 것인가!”

    고블린들이 울부짖었다.

    “그렇다! 죽여라!”

    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의 밥상에 흙탕물을 묻히는 돼지 새끼들을 결코 용납하지 마라! 살갗을 뱃겨라! 근육을 헤집어라! 창자를 끊어버리고 모가지를 썰어버려라! 이 산맥의 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라! 저들이 주제 모르는 암퇘지 새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만들라! 누가 포식자이고――누가 사냥감인지 떠올리게 만들라!”

    고블린 대부대에 등을 보이면서 말했다.

    바로 그 순간, 미리 약속한 대로 라우라가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중규모 소환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이었다. 새하얀 빛줄기와 함께 골렘 부대가 나타났다. 그들이 한꺼번에 땅바닥을 밟자 약한 지진이 울렸다. 고블린 부대는 원군의 출현에 하늘이 떠나가라 포효했고, 인간들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전군! 돌격하라!”

    ─ 크후르와아아아아!

    ─ 끼르르르르룻!

    지금까지 울려퍼진 어떤 노래보다 웅장하게 함성이 터졌다. 골렘 부대가 선두로 걸어나갔다. 골렘들이 묵직한 바위주먹으로 후려갈기자 목책이 부서져 성냥개비처럼 흩뿌려졌다.

    “도, 도망쳐!”

    “전선이 밀리면 죽는다! 전선이 밀리면 죽는다――!”

    “시부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안 돼! 목책에 붙어! 죽든 살든 울타리에 붙으라고, 병신 새끼들아!”

    그 한방에 마을사람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렸다. 평균 레벨이 7이 넘어가는 골렘 부대는 다소 억센 산골마을 사람들이 대항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고블린만 있었다면 목책 사이로 죽창을 찌르면서 한동안 수비해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나 골렘에 대한 대비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골렘이 충차와 같이 목책을 부숴버리자, 그 틈새로 뚝방 무너진 물살마냥 고블린이 떼거지로 밀어닥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일부 마을사람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고 남아서 마지막까지 대적하려던 이들도 전의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도망치려는 자와 사수하려는 자가 얽히고 설켜서 혼란을 일으켰다. 거기에 고블린과 골렘이 돌진해오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살려줍――커헉!”

    “으에엥, 으에에엥!”

    손속에 자비란 없었다. 나는 고블린 부대에 약탈을 허용했다. 고블린에게 약탈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의 살점을 뜯는 것이었다. 청장년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노인, 어린애 가리지 않고 살육이 이루어졌다.

    나는 도륙의 현장을 천천히 걸었다. 양옆으로 라우라와 파르시가 나를 호위했다. 파르시가 때때로 혀를 내두르며 질겁했다. 그래도 뒤쳐지지 않고 따라오는 걸 보니 담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겉모습 때문에 아직도 믿기지 않았지만 파르시는 열다섯 살이었다.

    “곡물창고를 확보하라. 제1대는 저쪽으로, 제4대는 이쪽으로.”

    라우라는 걸어가면서도 골렘들에게 척척 지시를 내렸다. 내가 그녀의 작전권을 인정한지라 골렘들이 군말없이 움직였다. 참고로 라우라는 전투가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믿기지 않게도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역시 옛날에는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러웠던 건가.’

    마음속으로 이 시대 인간들에게 감탄했다.

    솔직히 마을사람들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몬스터에 대항하여 싸웠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고블린들을 보자마자 도망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전투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골렘 부대의 출현을 미루었다. 인간들은 예상보다 더 끈질겼다. 물론 자기 살 길을 찾아 가족과 동료 전부 버리고 도망가버린 이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제발 이 아이만큼은 살려주세요!”

    한 여자가 고블린의 장벽을 뚫고 내 앞에 넙죽 엎드렸다. 오른팔은 이미 어디에 두고 왔는지 없었고, 왼팔로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내 발걸음이 멈추었다.

    “아이는……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제발……!”

    “라우라.”

    부연 설명도 필요없었다.

    라우라는 허리에 찬 장검을 꺼내 단번에 여인의 가슴팍을 찔렀다. 세검이 여인의 연한 가슴을 뚫고 등 뒤로 삐져나왔다. 라우라가 휙, 하고 검을 거둬들였다. 핏방울이 땅바닥에 튀었다. 여인은 땅에 까꾸라져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부탁이니 제발이니 하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여인의 시체와 그 품안에서 우는 아이를 내버려두고 앞으로 걸어갔다.

    파르시가 내 옆구리에 바싹 달라붙었다.

    “거, 얼라 한 명 굳이 죽일 필요가 있수?”

    “죽일 필요는 없다.”

    인간이 무더기로 학살당하는 광경은 분명 슬펐다. 비극이라 해도 좋았다. 특히 팔 한쪽이 잘렸는데도 필사적으로 고블린들을 뿌리치고 내 앞까지 당도한 여인의 모성에는 가슴이 아릿해졌다.

    그러나 내 감상은 별도로 이것은 몬스터와 인간의 전투. 몬스터의 우두머리인 내가 인간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애써 살릴 필요도 없다.”

    ============================ 작품 후기 ============================

    제가 설정상 실수를 저지른 부분이나 오타 등을 지적해주는 분들이 계신데요, 따로 리리플은 달아드리지 않고 있지만 제가 확인하는 대로 곧장 수정하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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