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디펜스-3화 (3/510)
  • 00003 약하게 뉴게임  =========================================================================

    게시글에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어떻게 바알 대마왕성을 공략했는가? 썰 좀 풀어봐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아마도 비너스빤스는 아직 바알 대마왕성을 깨지 못한 것 아닐까.

    나는 내심 뿌듯했다. 과도한 친절을 발휘하여 공략과정을 일일이 적었다.

    ─데낄라떼: 일단 최소 인원 4인 파티로 공략했습니다. 나, 기사, 대마법사, 힐러.

    ─비너스빤스: 4인 파티는 너무 불안한데. 적어도 25인 파티로 가는 게 정석임.

    내가 눈썹을 찡그렸다. 정석? 지금 내 앞에서 정석을 논하는 것인가?

    게임에 정석이란 없었다. 적어도 최고 수준에 이르면 그러했다. 진정한 고수는 정석을 새로이 탄생시킨다. 비너스빤스라고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정석 운운했다는 것은, 누구의 방법이 더 정석에 가깝냐고 나한테 결투를 청한 것이었다.

    나보고 음식물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은 상관없다. 진실이니까. 그러나 던전 어택 플레이어로서의 나한테 음식물쓰레기라고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이쪽에서 내가 쌓은 노력이 죄다 허무하게 증발해버린 것과 다르게, 그쪽에는 나의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나밖에 모르는 세계이지만 그곳 역시 하나의 세계란 말이다!

    ─데낄라떼: 마왕성 AI가 끝내주게 쩔어서 파티 인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몬스터가 바퀴벌레처럼 불어납니다. 그럼 몬스터 종류도 많아져서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어집니다. 차라리 몬스터 숫자를 줄이고, 패턴을 최소화해서 공략하는 게 훨씬 편합니다.

    댓글이 쭈욱 이어졌다. 우리 두 사람은 이론과 반론을 주고받았다. 욕지거리만 오가지 않을 뿐이지 숫제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어느새 토론은 던전 어택의 시스템 자체로 주제가 번졌다. 댓글 숫자가 순식간에 이백 개가 넘어섰다. 바보들아, 그건 아니지! 하고 제3자가 끼어들기도 했다.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팬 사이트 회원들은 비너스빤스 편이나 내 편으로 갈라져서 대판 싸웠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댓글 숫자가 칠백오십 개가 넘었다. 그제야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토론 후반부터 잠자코 말싸움을 관전하던 회원들이 판정승을 내렸다.

    ─파르테논기둥: 이번에는 데낄라떼가 이긴 듯?

    ─플러스백: 내가 보기에도 데낄라떼 주장이 맞는데.

    혈투가 끝났다. 회원들이 줄줄이 나의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콜로세움의 생존자가 된 나는 그러나 썩 기쁘지 않았다. 아까 전이랑 똑같았다. 허무함만이 남았다. 내 이렇게 시간을 허공에 날릴 줄 알았지, 하고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노트북을 덮으려니까 비너스빤스가 또 댓글을 달았다.

    혹시 승부에 불복하는 건가?

    댓글을 읽어보니 전혀 아니었다.

    ─비너스빤스: 님, 던전 어택 후속작 나오는 거 소식 들었음?

    후속작이라고!?

    내가 척추반사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데낄라떼: 헐, 진짜입니까?

    ─비너스빤스: 레알. 기본적으로 던전 어택이랑 똑같음. 근데 딱 한 가지가 다름.

    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너스빤스가 개발진에 속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걸까.

    딱 한 가지 다르다는 것이 대체 뭐냐고 얼른 물어봤다.

    ─비너스빤스: 그건 비밀.

    지금 장난하나! 내가 흥분해서 키보드를 연타했다. 조금만 더 빠르게 쳤으면 그만 키보드가 망가졌을 것이다.

    ─데낄라떼: 밀당 쩌네요. 그러다 설렐 뻔.

    ─비너스빤스: 아무튼 던전 어택에선 마왕들 막고 세계를 지키는 게 목적이라면, 이번 후속작에서는 세계를 정복하는 게 가장 주된 목표라고 함. 이거 중요함. 반드시 기억하시오.

    비너스빤스는 계속 변죽만 두들겼다. 자잘한 정보뿐이었다.

    나는 애가 탔지만 화내지 않았다. 아무리 개발자라도 후속작 정보를 섣불리 풀어버리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핵심 정보가 빠지긴 했어도 이리저리 작은 정보를 긁어모으니 밑그림이 대충 그려졌다. 아마도 신작에서는 용사가 아니라 마왕 시점에서 게임이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세계를 정복하는 게 목적이겠지.

    두근거렸다.

    던전 어택을 전부 클리어해서 의기소침해진 게 바로 몇 시간 전이었다. 이제 다시 시간을 투자할 곳이 생겨났다. 머리 한 구석에서 폐인 새끼니 뭐니 자책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지금 당장은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신작을 플레이할 생각에 정신이 가출했다.

    여기서 더 충격적인 소식이 떨어졌다.

    ─비너스빤스: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님이 베타테스터로 뽑였음.

    눈앞이 빙그르르 돌았다. 나의 손가락은 마치 이십 년 동안 주구장창 피아노를 쳐온 음악가처럼 자동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데낄라떼: 세상에, 진짜 님이 개발자였구나!

    ─비너스빤스: 님 베타테스터로 뽑으라고 내가 강력하게 추천했음.

    ─데낄라떼: 우윳빛깔 비너스빤스 사랑해요 비너스빤스

    ─비너스빤스: 꺼ㅈ.

    ─비너스빤스: 꺼져.

    얼마나 싫었으면 오타까지 냈을까.

    나는 이미 얼굴이 싱글벙글 상태였다. 꺼지라는 욕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었다.

    ─데낄라떼: 베타 언제 시작합니까?

    ─비너스빤스: 솔직히 님이 원하기만 하면 오늘 시작할 수도 있음.

    ─데낄라떼: 대박. 고고.

    ─비너스빤스: 지금 당장?

    ─데낄라떼: 고고.

    ─비너스빤스: 벌써 밤인데. 님 일상생활은 어쩌고?

    ─데낄라떼: 일상생활이요? 그런 거 저 모릅니다.

    ─비너스빤스: 폐인이네.

    사돈 남 말한다.

    오늘 내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아하니, 아마 메일로 체험판 같은 것을 보내줄 생각인 듯했다.

    나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자취집에 돌아가 봤자 예의 허무함에 잠길 뿐이겠지. 차라리 일상사를 전부 잊어버리고 게임에 빠져버리는 편이 나았다.

    ─비너스빤스: 진짜 지금 당장?

    ─비너스빤스: 후회하지 않을 거임?

    ─비너스빤스: 네 시간을 전부 빼앗길지도 모르는데?

    내게는 우문처럼 보였다.

    당연히 후회할 것이다. 아까 전에도 후회했다. 지금도 후회한다. 앞으로 후회할 거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별로 고민하지 않고 썼다.

    ─데낄라떼: 전혀 상관없습니다.

    상대방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게시글에 댓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혹시 파일을 보내고 있는가 싶어서 기다렸다. 삼십 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재촉해볼까 싶었지만 글쎄,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거니 생각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어쩌면 상대방이 나를 낚시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카페에 나오면서 들었다.

    대학로 넓은 사거리에 자동차가 빠르게 오갔다. 직장인이 대다수겠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집을 떠올리면서 건널목에 섰다. 이어폰에서는 유행가가 들렸다.

    차로가 하얀빛, 노란빛, 붉은빛으로 번쩍거렸다. 그것들이 잠깐 내 시야에 들어왔다가 빠르게 지나쳤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까.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하면 뭐가 달라질까?

    이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끊어지는 걸까.

    내 처지는 나았다. 나보다 심각하고 한심한 인간쯤이야 세상에 널렸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은 안심하자.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그렇게 계속해서 지금이 거듭하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지금을 말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 가서 마지막으로 후회하면 된다. 누구보다 낫다거나 누구보다 못하다거나, 그런 위안을 삼지 못하도록 모두에게 공평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신호등이 빨간빛에서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나는 머릿속을 가득 매운 생각을 발꿈치에 남겨두고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까지가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풍경이었다.

    무척 아팠고.

    한 순간 머릿속이 정전했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아.’

    이어폰에서 나오는데도 음악이 왠지 모르게 멀리서 울렸다. 멍하게 생각했다. 차였다. 트럭에. 그럴 법했다. 귓구멍을 음악으로 틀어막고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채웠으니까. 옆에서 자동차가 돌진하는지도 모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나는 최후까지 이쪽 세계에 충실하지 못할 팔자였다.

    ‘죽기 싫은걸.’

    ‘어머니.’

    ‘……아프다.’

    시야가 깜빡거렸다.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대신해서 눈을 뜨고 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

    그렇다…….

    새카맸다.

    *  *  *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깨어났다.

    어딘지 머리 한 구석이 맹했지만 바로 눈앞에 돌덩이가 떨어지니 없던 정신도 생겼다. 내가 벌떡 일어섰다. 멀리서 폭탄이라도 터졌는지 주변이 요동쳤다. 그것도 연달아서.

    “이거, 이거 뭐야!?”

    나는 난생 처음 보는 방에 서 있었다. 아니, 방이라고 부르기도 뭣했다. 거대한 동굴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본 종유석동굴보다 두 배는 천장이 높았다. 어디까지 통로가 이어졌는지 까마득한 저편까지 동공이 이어져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차마 의문을 풀 틈새조차 없었다.

    지독한 피비린내. 콧구멍에서 뇌속까지 회칠하는 듯 비릿한 피냄새가 풍겼다.

    “우욱……!”

    식도로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몸이 퉁퉁 부른 인간, 목이 잘린 인간, 팔다리가 역방향으로 뒤틀어진 인간, 화살이 박히고 내장이 튀어나온 인간――마치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살인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시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중간중간에 인간이 아닌 괴생물체의 시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이 쏠릴 정도로 내가 제정신은 아니었다.

    “우웩! 켁, 우으웨엑!”

    한차례 토를 쏟아내고, 본능적으로, 지금이 한가하게 토할 때가 아니라고 느꼈다. 여전히 저 멀리 어디에선가 굉음이 들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동굴바닥과 천장이 심하게 흔들렸다.

    “젠장, 우욱, 제기랄!”

    입가를 훔치며 맹목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여기 있어서는 위험했다.

    오른발을 움직인 순간, 나는 힘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제야 내 오른발이 부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삔 수준이 아니었다. 척봐도 뼈 자체가 바스라졌다. 오른발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렁거렸다.

    “제기랄! 으흑!”

    다시 한 번 일어서려다 넘어진 다음, 나는 두 팔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폭발음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굉음과 굉음 사이로 함성소리와 비명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전쟁이라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조차도 그것이 생사를 건 전투의 소리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전쟁터였다.

    대체 뭐야.

    난 죽지 않았나.

    아니, 여긴 어디야.

    그때 뒤편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저기 있다! 마왕이 저기 있다!”

    마왕.

    나와 전혀 연이 없는 호칭이었다. 그런데 느낄 수 있었다. 외침은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 간신히 뒤를 돌아보니, 십수 명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결코 내게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눈앞에 박혀들었다. 화살이었다. 녀석들이 나에게 화살을 쏘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앞으로, 앞으로 기어갔다.

    “쏘지 마세요! 으흑, 쏘지 마요! 제가 아니예요! 제가 아니예요!”

    내가 듣기에도 미약한 목소리였다. 울음기에 파묻혀 목소리는 겨우 숨을 쉬는 수준으로 나왔다. 그래도 나는 소리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조금씩 토해내듯, 계속해서 말했다.

    “후흑, 쏘지, 쏘지 마세요! 흑, 제가 아니예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화살이 끊임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피할 수 있어. 피할 수 있어. 머릿속에 그 한 마디만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되었다.

    그러나 행운은 금세 끝났다. 화살 하나가 내 팔뚝을 스친 것이었다. 살이 잘게 잘렸다.

    아프다!

    정말로――아프다!

    “우욱, 우으윽!”

    눈앞이 새하얘졌다.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너무 뜨거웠다.

    나는 방향감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팔다리를 움직여 애벌레처럼 기어갔다. 동굴바닥의 날카로운 바위에 허벅지가 찔렸다. 그것 역시 아팠다. 어쩔 수 없었다. 기어갔다. 불쑥, 무언가가 등을 묵직하게 눌렀다. 강하게 나를 짓밟았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았다! 내가 마왕을 잡았어! 나 리프 님이 마왕 단탈리안을 붙잡았어!”

    “이거 봐! 이 새끼 꼭 벌레 같잖아.”

    “리프, 이게 네 혼자의 공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허리에 닻이 내려앉은 것마냥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발버둥쳤다. 팔을 내뻗어서 땅바닥을 긁었다. 물장구치듯 다리를 움직였다.

    내 위에서 수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정말 벌레 같군. 아니, 말 그대로 벌레야.”

    “개자식보다 개 같은 놈. 우리도 드디어 마왕을 잡는구나.”

    “잠깐만. 다들 진정해봐. 너무 흥분하지 마라고. 아직 우리는 던전의 재화가 있는 곳을 듣지 못했어. 저 새끼를 족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대로 빈 손으로 돌아가봤자 웃음거리가 될 뿐이야.”

    “오, 친애하는 애꾸눈이여. 네 말대로지. ”

    누군가가 내 허리를 걷어찼다. 나는 비명도 못 지르고 굴렀다. 컥, 컥, 하고 숨을 내뱉는 것이 고작이었다. 눈물범벅인 얼굴에 땅바닥의 모래가 들러붙었다.

    눈을 뜨지도 못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좋아, 마왕 전하. 물어보지. 던전의 재화가 저장된 방은 어디지?”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리프. 귀찮으니까 무릎을 쑤셔버려. 참새처럼 조잘댈걸.”

    “필요없어. 이 정도면 충분해, 애꾸눈.”

    살벌한 대화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빌었다.

    “살려주세요……전 아니에요……정말로 아니에요…….”

    “오케이. 오케이. 진정하시라고, 마왕 전하. 우리도 필요이상으로 폭력적이고 싶진 않아. 너무 울지 마. 응? 울음을 그쳐보셔. 뚝!”

    “크하하하!”

    주변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나는 울음을 참았다. 어찌되었든 최대한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야 했다. 그게 내 생존의 도화선 길이였으니까. 구역질과 울음기가 한데 섞여 목구멍을 역류하고 있었지만 있는 힘껏 삼켰다. 하지만 딸꾹질 비슷한 무언가가 나오는 것은 어떡해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협상할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군! 그렇게만 하면 된다.”

    “윽……흐윽, 끄흑.”

    “다시 한 번 묻겠다. 던전의 재화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지?”

    “명륜동――흐끄윽, 명륜동에 있어요”

    명륜동은 내가 자취하는 동네였다. 나는 되든 대로 지껄인 것이었다. 무슨 상관인가. 어떻게든 말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상대방이 어엉? 하고 반문했다.

    “메이룬, 뭐?”

    “명륜, 명륜동이요.”

    “요상한 발음이군. 누구 알아듣는 새끼 없어?”

    “마족의 언어인 모양이지. 신빙성이 있어.”

    “오케이. 마왕 전하. 스마트한 비즈니스가 마음에 들어. 우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이.”

    상대방이 장난스레 내 뺨을 두들겼다.

    “그래서 그 메이룬토우 방은 어디에 있지? 정확히 말해주게.”

    “제가 있던 방에서……비밀통로가 있어요.”

    “마왕방에? 마왕방에 비밀통로가 있다고?”

    “예, 마왕방에……오직 저만을 생체인식해서 열리는……그러니까 제가 손을 갖다 대야만 열리는 비밀통로가……예, 거기 있어요.”

    “마법적인 장치로군.”

    좋아, 하고 상대방이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부러진 오른발에서 끔찍한 통증이 퍼졌다.

    “아악!”

    “이런. 다리병신이군.”

    상대방이 혀를 찼다.

    “어이, 신입. 마왕 전하를 부축해주라고. 귀중한 손님이니까.”

    “알겠습니다, 리츠 선배!”

    신입이라 불린 사내가 내 팔을 목에 둘렀다. 나는 그를 지탱하여 걷게 되었다.

    그제야 약간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팔뚝으로 얼굴을 비볐다. 눈물이 닦이고 시야가 트였다. 눈가에 눈물 혹은 응어리진 찌꺼기가 고여 있었지만 앞을 바라볼 정도는 되었다.

    나를 둘러싼 인간은 모두 열댓 명이었다. 다들 활이나 창 등 무기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인상은 하나같이 험악했다.

    “출발!”

    리츠라 불린 사내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서로 잡담을 떠들거나 물주머니를 주고받으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는 거의 신입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

    운 좋게도, 그들은 마왕방이 어딘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내게 마왕방으로 안내하라고 물었다면 꼼짝없이 거짓말이 탄로났을 거다.

    “흐흑……끄응…….”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내 죽음에 약간의 유예를 준 것에 불과했으니까.

    동굴천장에 마치 조용해서 섬뜩한 진혼곡처럼 일단의 무리가 떠드는 소리가 조곤조곤 울렸다. 거기에는 물론, 내 신음도 미약하게 섞여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