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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디펜스-1화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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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녀석을 막아라!”

    화려한 마법이 땅바닥을 망치처럼 두들겼다. 마족들이 할 말을 잃었다.

    신화가 재현되고 있었다. 마법의 빗줄기, 아니 대포가 끊임없이 전쟁터에 쇄도했다. 대지가 진동했다. 독전관이 병사들 등을 후려치면서 소리쳤다. 저 녀석을 막으라고.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막으라는 말인가?

    “대, 대장님. 적군이 너무 거셉니다.”

    “벌써 제2진까지 돌파당했습니다……미노타우르스 부대가 전멸했어요!”

    마인들은 모두 정예병이었다. 전황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기꺼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마인 정예병도 기겁했다.

    마법이 쏟아지는 한가운데로 내달리는 인간이 한 명 있었다. 마치 대로를 질주하듯이. 마법과 화살의 세례에도 개의치 않고 인간은 대검을 휘둘렀다. 대검이 번쩍일 때마다 마인 정예병 열댓 명이 창자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친다. 승리를 위해 희생하라면 기껍게 받아들인다.

    그러나――저 인간을 막아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이런 쫄보 새끼들. 그러고도 네놈들이 대왕 폐하의 군대냐!”

    독전관이 아군 병사의 목을 뱄다. 평생 적군보다 아군을 더 많이 죽여본 이였다.

    “싸워라! 죽을지언정 창이라도 한번 찌른 다음에 죽으란 말이다!”

    그가 할버드를 꼬나쥐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러자 마족 병사들이 이내 독기에 차올랐다. 그들은 양쪽의 동료와 전열을 맞추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시발! 한 번 죽지 두 번 뒈지겠냐!”

    “저 괴물 새끼 모가지만 따면 다 끝이야! 마족의 긍지를 보이자!”

    “크르훕! 크후흡! 크훌라, 크르훕!”

    마족 병사들이 특유의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신념이 있었다. 생김새가 달랐으나 그들이라고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내딛는 발걸음, 거기에 실린 용기도 똑같았다. 그렇기에 허무했다.

    그들이 나에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내가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일까? 우선은, 맞았다. 나는 강했다. 그걸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한 바닥 놓여 있었다. 그 탓에 마족들이 아무리 용감하게 걸음을 내딛어도, 눈앞에서 지푸라기 흩날리듯 머리가 몸통에서 잘려 날아가는 동료를 보며 발광하더라도, 내 칼끝에 비명횡사했다.

    마침내.

    “크읍! 나 바알이 일개 인간에게 죽으리라고는……!”

    대마왕 바알의 던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파되었다.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은 그곳이 말이다.

    푸욱, 하고 나의 서늘한 대검이 마왕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안심하라, 마왕.”

    내가 바알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세계의 악몽이자 전무후무한 대마왕이라 불린 마족이 죽어가고 있었다. 자그마치 120층으로 이루어진 대미궁 또한 이제는 약간 거대한 공동묘지로 전락했다.

    “그대는 분명히 내 최고의 적수였다.”

    “…….”

    “한 명의 전사로서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크흐.”

    바알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인간들 중에서도 아직 긍지를 품은 이가 남았던가.”

    “아니야.”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그대가 우리 인간에게 강요했어. 긍지를 품을 것을. 그만큼 그대는 강했다.”

    “하! 나 바알의 오천 년 생애가 무의미하지 않았음이라.……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에게 신념이 가닿았다. 필멸자로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일찍이 이만한 업적을 이루어낸 마족이 있었는가. 없다. 없을 것이다…….”

    바알이 두 눈을 감았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일개 하급마족으로 태어나서 마계를 재패. 인간계까지 넘본 제왕이 생을 마감했다.

    나는 제왕의 시체를 향해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런 내 주위로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대마법사, 기사단장, 대도(大盜), 성녀, 모두 이십 년이 넘도록 고락을 함께 나눈 동료였다.

    “짜식이!”

    기사가 와락 달려들어 내게 헤드록을 걸었다. 내가 아파! 아프다고! 라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막무가내였다. 그 또한 열 시간 가까이 전쟁터에서 굴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원, 알 수가 없었다.

    “축하해, 로리타.”

    두 남정네가 툭탁거리는 사이 세 명의 여인이 다가섰다.

    “헤에. 진짜로 바알의 던전을 공략할 줄이야! 꽤 하잖아.”

    “무슨 소리예요? 저는 처음부터 로리타 님께서 해내실 거라고 확신했어요. 열두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걸요.”

    기사가 토라져서 투덜거렸다.

    “아이고. 누가 보면 이 자식 혼자 마왕성 깨부순 줄 알겠네. 이거 홀아비는 서러워서 어디 던전에 놀러올 수나 있겠나, 쳇.”

    기사를 제외하고 모두 웃었다. 외진 산골에서 곰탱이랑 이웃사촌 먹으며 십 년은 굴렀을 법한 용모로 그리 중얼거리니 웃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자 드디어 실감이 났다.

    아, 끝났구나.

    내가 정말로 바알의 던전을 공략했구나.

    대마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대륙을 강타했다. 국가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이 환호했다.

    그들은 인간계가 멸망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태까지 대마왕성을 함락하겠다며 수십 개의 군단이 출진했으나 모조리 전멸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희망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용사 일행이 모험자와 용병을 이끌고 대마왕을 토벌한 것이었다.

    영웅의 탄생!

    대륙 전역에서 축제가 열흘 밤낮으로 이어졌다. 마족이 지상에 전염병을 퍼트린 이십 년 전부터,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지 장례식장과 같았다. 끔찍한 나날이었다. 이제 악몽이 끝났다. 인류는 지난 이십 년을 보상받을 기세로 마음껏 놀았다.

    건배 소리와 웃음소리가 도시 상공에 흩날렸다. 거기에는 어쩐지 처절한 구석이 있었다. 당연했다. 보상받고 싶어도 보상받지 못할 이들이 있었으니까. 많은 이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인간들은 웃다가 곧바로 울면서, 다시 웃어재꼈다…….

    “모험자 로리타.”

    여황제가 친히 축제에 왕림하여 영웅을 치하했다. 여황뿐만이 아니었다. 인간계를 지배하는 열두 국가의 군주 전원이 참석했다. 그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위대한 영웅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대는 작게는 마왕을 토벌했으며, 크게는 인류를 구원했다. 어찌 대륙의 모든 대왕이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겠는가. 로리타여. 그대는 살아서 만인의 존경을 받을 것이요, 죽어서는 영원토록 이름을 남길지어다.”

    여황제가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두 손으로 검을 바쳤다. 동시에 다른 군주들도 무릎을 꿇었다.

    행사장을 둘러싼 수만 명의 군중이 숨을 죽였다. 만인지상이 무릎을 꿇다니! 하물며 열두 군주가 한꺼번에 무릎을 꿇은 존재 따위, 유사 이래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내가 황제의 검을 건네받았다.

    “황공하나이다. 폐하.”

    거대한 함성이 제도(帝都)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법사들은 때를 맞추어서 형형색색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 로리타! 로리타! 로리타!……영웅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이것으로 모든 던전을 공략했다.

    나는 모험자 중의 모험자였고, 내가 깨지 못한 던전이란 없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히든 던전 바알의 대마왕성을 공략했습니다.』

    『전무후무한 업적!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72개의 던전을 모두 공략했습니다.』

    ……모니터 속에서만 최강의 모험자이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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