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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38화 (138/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38화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연락드리죠. 해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고요.”

    VIP가 찾는다? 비공식적 행사.

    그들이 원하는 바를 예측할 수 없는 백현은 성주단지를 통해 최용규를 찾았다.

    “선배. 선배!”

    [어.]

    “지금 상황이 어떤 것 같아요?”

    [뭘 어때? 너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럽지. 뭐, 생각보다 너한테 부정적인 반응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청와대에서 절 찾는대요. 이유 좀 알려주세요.”

    [어. 잠깐 다녀올게. 어디로 가야 되냐?]

    “민정수석실이요.”

    강백현은 최용규가 정보를 물어오길 기다렸다. 10분이 지났을 때 최용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백현 앞에 나타났다.

    [우와~ 접근이 안 돼.]

    “왜요?”

    [건물 입구에 부적들이 붙어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어. 미쳤네. 왜 저런 거야?]

    “아, 부적 쓰면 유령 접근이 안 돼요?”

    [부적에도 종류가 있긴 한데, 퇴마부 같은 것도 있어. 아~ 다른 부적은 다 통과되는데, 퇴마부는 좀.]

    “그렇군요. 알았어요. 가보죠. 일단은 뭐 저한테 손해날 일은 없겠죠.”

    * * *

    다음날, VIP를 대면하기로 한 강백현.

    그는 마음을 가다듬은 채 청와대로 향했다.

    으리으리한 블루하우스.

    난생 처음 들어간 청와대는 입구부터 경찰들이 출입을 막고 있었다.

    “고정출입자이십니까?”

    “아니요.”

    “신분증 제출하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민정수석실장 최석현이 강백현을 데리러 왔고 강백현은 그의 안내에 따라 블루하우스로 들어갔다.

    민정수석실 안.

    최석현은 방긋 웃으며 강백현을 바라보았다.

    “몇 살이야?”

    “서른셋입니다.”

    “그래? 당돌하네. 너 사고 제대로 쳤더라?”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거죠?”

    “자, 들어봐. VIP 앞에서 고개 숙이고 울기만 하면 돼. 그러면 VIP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어깨를 두드려주실 거야. 그럼 넌 복직될 거고, 네가 비리를 밝혀낸 충남도지사와 서천군수는 비난에 시달리게 되겠지. 복직시켜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강백현은 민정수석실장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짜여놓은 각본.

    그 안에서 움직이면 복직이 가능하다. 즉, 자신을 장기말로 이용하려는 것.

    여당과 야당.

    도지사와 반대편인 여당의 우두머리,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행동.

    최근 들어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알고 있다.

    경제, 복지, 출산 거기에 외교에 국방까지.

    다섯 가지 분야를 다 못하는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그래서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도 종종 나오는 모양이었다.

    “생방송입니까?”

    “아니, 사진만 찍을 거야. 그냥 울기만 하면 돼. 연습해보자~ 울어봐!”

    이게 바로 짜놓은 각본과 프레임.

    사진 한 장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자신을 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강백현에게 자신의 계획을 강요했다.

    “우는 것 힘든가? 안약이라도 줄까? 안약 넣어볼래?”

    “사진 찍는 것 안 하면 안 됩니까?”

    강백현의 말에 민정수석실장의 눈이 무섭게 변했다.

    “꼭 해야 된다면?”

    “그래도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꼭 해야 돼. 이건 나라를 위해서야. 국가를 위해서고. 자네 같은 억울한 공익제보자를 살피는 VIP. 그로 인해 국가는 안정되고, 국민들은 VIP를 더욱 더 지지할 수 있겠지. 물론 덤으로 자네가 복직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서로 다 좋은 일 아닌가? 뭐가 불만이지?”

    강백현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인이란 국가를 위해 더 좋은 정책을 내고,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발전에 힘써주며,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영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투명하게, 사소한 것 하나라도 공개하고, 사안을 정면으로 극복하길 원할 것이다. 그런데 왜 청와대는 자신을 이용해서 국민을 선동하고 지지율을 왜곡하려 할까?

    더구나 대통령은 연임제도 아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일인데 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그 의문점이 여기서 풀리려 하고 있었다.

    “내가 하나 약속하지. 너 내가 나중에 대통령 되면 한 자리 채워줄게.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은 아냐?”

    민정수석실장 최석현.

    그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 대한민국 최고의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자리를.

    강백현은 왜 대통령이 어느 한쪽의 이권에 치우쳐서 나라의 근간을 흔들게 되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한쪽 회로만 가진 인재들이 대통령의 밑에 깔려 있었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공무원이 나쁜 게 아니야. 나라를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이 나쁜 거지. 이런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거야!’

    현실을 깨달은 강백현의 눈에서 통한의 눈물이 흘러나오자, 최석현이 방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 잘하는데. 기다려 봐. 모시고 올 테니까.”

    “…….”

    잠시 후, 민정수석실로 들어오는 대통령.

    그는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강백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네. 꼭 하셔야 합니다.”

    “아~ 귀찮아 죽겠네. 좀 쉬고 싶은데.”

    “사진만 찍으시면 됩니다. 다정한 얼굴로 거기 공무원을 바라봐주시겠습니까?”

    대통령은 강백현에게 인사도, 악수도 건네지 않은 채 사진기 앞에서 억지포즈를 지어 보였다.

    “네. 좀 더 가까이에서 한 장 더 찍겠습니다. 아들 보는 것처럼! 다정한 포즈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흠… 으흠.”

    강백현은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게 아닌데. 오는 게 아니었는데.

    “다 끝난 건가?”

    “네. 대통령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아, 요즘은 움직이기가 귀찮아.”

    대통령이 나가고, 민정수석실장이 수행하며 따라 나간다.

    강백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같은 날 오후, 대서특필된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공익제보자 강백현의 진심 통했나? 면담을 응하는 대통령]

    대통령이 오늘 오후 청와대에서 공익제보자 강백현 사무관과 면담했다. 대통령은 2시간 동안 강백현 사무관의 억울한 점을 청취하고 공익제보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감사원장에게 주문했다. 이번 공익제보는 야당 소속인 충남도지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자신의 지지율 회복을 위한 쇼라는 반응과 참된 대통령의 자세라는 이중적인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이번 면담은 정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단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조치라며 해당 내용을 일축했다.

    한편, 강백현 사무관은 충남도청 내 징계에 의해 파면된 상태로, 이번 면담이 복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 *

    강백현은 해당 기사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남겼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최용규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미친 것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용당했네.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결과지?]

    최용규는 복직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후 행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나 씁쓸해요.”

    [뭐가, 다 잘 됐잖아. 너 인생도 폈고, 공무원으로 복직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언론에서도 널 잊겠지.]

    “그럴까요? 그런데 선배, 나 못 참겠어요.”

    [또 왜 그러는데? 설마 방송 또 할 건 아니지?]

    “해야죠. 이제 파면도 당했는데.”

    [복직 시켜준다고 말한 거 아니야?]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한 건 복직이 아니었거든요.”

    [아니면?]

    강백현은 최용규의 질문에 씩 웃었다.

    “말씀드렸잖아요. 부정부패 및 비리 척결, 그리고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

    [설마! 설마! 너 대통령을 상대로!]

    “맞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방송국 제목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강백현이 방송을 켜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들 강백현의 근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안전도우미3] : 복직하시나요?

    [조바제수니] : 오오오~ 떴다. 떴어.

    [조1아지매] : 도지사 날려부렸죠?

    수많은 댓글들과 호응.

    강백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기사가 떴습니다.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님과 찍은 사진도 함께 말이죠.”

    [아조마지fb] : 와~ 겁나 기대됨.

    [조하미] : 흥미진진~

    “일단 오류를 잡아드립니다. 저는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고요. 2시간이 아니라 2분도 같이 안 있었습니다. 사진만 찍은 거고요. 눈물 흘리라고 해서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복직시켜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원하는 건 복직이 아니더군요.”

    [노자미1124] : 와! 씨발 ㅋㅋㅋ., 청와대까지 연결되어 있었어?

    [조비1인력] : 크앙. 내 그럴 줄 알았다궁!

    [호호아줌마] : 이런 거 발표해도 되는 거 맞죠? 내가 긴장 된다. 어떻게 해….

    “녹음 파일 올립니다. 민정수석실장이 저한테 한 대화 내용입니다.”

    『사진만 찍을 거야. 그냥 울기만 하면 돼. 연습해보자~ 울어봐!』

    『우는 것 힘든가? 안약이라도 줄까? 안약 넣어볼래?』

    『사진 찍는 것 안 하면 안 됩니까?』

    『꼭 해야 된다면?』

    『그래도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꼭 해야 돼. 이건 나라를 위해서야. 국가를 위해서고. 자네 같은 억울한 공익제보자를 살피는 VIP. 그로 인해 국가는 안정되고, 국민들은 VIP를 더욱 더 지지할 수 있겠지. 물론 덤으로 자네가 복직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서로 다 좋은 일 아닌가? 뭐가 불만이지?』

    녹음파일이 재생되자, 채팅창에는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왔다.

    충격적이라는 말과, 그럴 줄 알았다는 댓글.

    그리고 저 파일이 사실이라면 여당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내용까지.

    그러나 강백현의 음성 파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네. 꼭 하셔야 합니다.』

    『아~ 귀찮아 죽겠네. 좀 쉬고 싶은데.』

    『사진만 찍으시면 됩니다. 다정한 얼굴로 거기 공무원을 바라봐주시겠습니까?』

    『네. 좀 더 가까이에서 한 장 더 찍겠습니다. 아들 보는 것처럼! 다정한 포즈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흠… 으흠.』

    『다 끝난 건가?』

    『네. 대통령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아, 요즘은 움직이기가 귀찮아.』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장의 대화.

    그것까지 공개되자 방송국 운영자는 너무 큰 사건이라서인지 방송을 강제 종료시키고 만다.

    강백현은 이제 더 이상 접속할 수 없는 방송국 사이트를 보며 허망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다 끝났네요.”

    [그래. 너 인생 ㅈ망했지.]

    “말 표현이 그게 뭡니까. 천국 가실 분이 귀한 말, 교양 있는 말 쓰셔야죠.”

    방송이 끊어짐과 동시에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

    강백현은 씩 웃으며 핸드폰을 꺼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게?]

    “이제 좀 쉬어야죠. 달릴 만큼 달렸는데. 이제 제 망한 인생, 즐기러 가보렵니다.”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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