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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36화 (13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36화

    언론의 반응을 본 강백현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과연 도청의 반응은?

    그때, 김성현이 전화를 대고 말했다.

    - 기사 봤죠? 그만 징징대고 서울로 올라와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안 되면 내가 백현 씨 인생 책임져요. 그러니까 슬플 일 아니고 죽을 일도 아니에요.

    “성현 씨, 그건 좀…”

    - 이제 좀 마음 풀렸나보네. 그리고 백현 씨, 나 실장님이라고 부를래요? 이러다가 실장님이 성현 씨 되고, 성현 씨가 성현아~ 그리고 성현아가 야! 되는 거 시간문제거든요? 저는 실장님 호칭이 마음에 들고요.

    “우리 커플 보면 진짜 특이한 커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서로 존댓말에,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 원래는 남녀 중 한쪽이 져야 제 맛인데.”

    - 그거야 백현 씨가 워낙 경우 없으니까 그렇죠.

    “아이고~ 실장님도 만만치 않거든요? 감정 오락가락 하시는 편 아니에요?”

    - 칫! 이제 기분 풀렸죠? 기다릴게요.

    다시 한 번 서울로 올라간다.

    강백현은 일단 복잡한 마음을 접어두고 아버지의 차를 타고 김성현을 만나러 사무실로 직행했다.

    김성현은 여전히 바빴으나, 예전과 달리 손님이 아닌 직원을 상대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세팅은 끝났으니 이제 판매에 주력할 때.

    매장에 나온 직원들의 태도가 브랜드의 가치를 판가름할 터.

    그런 김성현이 강백현을 보자마자 직원 교육을 마무리했다.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 할게요. 자~ 오늘도 힘냅시다.”

    “네!”

    “여깁니다.”

    “백현 씨, 뭐 먹을래요?”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매운 거?”

    “불닭?”

    “나가서 먹을까요?”

    “이 시국에? 백현 씨나 나나 얼굴 좀 팔린 편이잖아요? 나가는 것보다는 호텔방에서 먹어요.”

    김성현네 호텔.

    룸서비스를 통해 닭발을 주문한 김성현이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나 사실 충격 좀 받았어요.”

    “왜요?”

    “백현 씨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해서. 내 남자, 잘못되나 싶어서.”

    김성현의 달콤한 말에 강백현이 씩 웃었다.

    “설마 내가 잘못 되겠어요?”

    “백현 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거예요.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잖아요.”

    “그렇긴 하죠.”

    “손해를 많을지도 몰라요. 이제 공무원 생활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걱정 마요.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김성현은 침대를 툭툭 치며, 백현에게 옆에 누우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강백현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곧 있을 룸서비스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 룸서비스 시켰거든요? 지금 바로는 좀.”

    “아우~ 변태! 변태! 누가 숙제 하자고 했어요? 그냥 편하니까 누우라고 한 거지.”

    “아~ 네. 그럼 누워야죠.”

    침대에 누운 강백현이 팔을 벌려 김성현의 머리 아래로 팔이 들어가도록 했다.

    김성현도 그게 나쁘진 않은지, 자연스럽게 팔에 머리를 올렸다.

    “우리 회사, 회생 가능할 거예요. 지금 생각보다 잘 되어가고 있거든요. 백현 씨가 우리 집에 와서 조언 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불안한 짓 하지 말아요. 이런 말, 하기 싫었는데 용규 씨 잃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슬프고 불안해. 너무너무 불안해서 백현 씨 얼굴 안 봤으면 내가 찾아갔을 거야.”

    김성현이 강백현의 넓은 가슴을 툭 치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강백현은 그런 김성현의 마음과 행동에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룸서비스 오기 전에 숙제 빨리 끝낼까요?”

    “에이 진짜, 여기 우리 호텔이거든요. 직원들도 내 얼굴 다 알고.”

    “그럼 여기 호텔을 처음부터 잡지 말았어야죠. 이미 직원들은 나 여기 들어온 거 CCTV로 봐서 다 알 텐데?”

    강백현도 은근슬쩍 말을 놓았다.

    ‘그래. 다 잊자. 오늘은 김성현만 생각하자.’

    두 남녀가 이불 속으로 숨었다.

    들썩이는 이불 사이로 오가는 야릇한 대화.

    “아~ 진짜, 간지러워!”

    “그럼 여기는?”

    “아! 그만그만! 백현 씨, 내가 할게요. 아래로 내려와요.”

    “난 위가 좋은데.”

    “진짜!”

    그리고 그것을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는 또 하나의 존재.

    [……]

    최용규는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김성현과 친한 후배의 관계를 목격하고 고개를 숙였다.

    * * *

    다음날, 강백현은 도청으로 출근했다.

    가시밭 같은 출근길.

    그가 향한 장소는 항상 출근하던 공직기강감사실이 아닌 1층의 민원실이다.

    강백현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공허한 민원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단 3명이 일하는 곳.

    민원실장 강제규가 강백현에게 사무적인 말투로 안내했다.

    “강백현 씨.”

    “네.”

    “오늘부터 강백현 씨는 대기발령 중으로 저쪽 구석에 있는 자리 앉아계시면 됩니다.”

    강백현은 강제규의 말에 자신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텅 빈 책상.

    컴퓨터조차 없는 책상에 20년 전의 학교에서나 쓸법한 나무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저 자리에 앉으면 되는 겁니까?”

    “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니까 5분 후부터 시작되고요. 근무시간 내에는 한 시간에 10분 이상 자리를 비워두시면 안 됩니다.”

    “네? 제가 하는 일이 없는 데도요?”

    “네. 그리고 외출하실 때는 저한테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 화장실, 담배 태우러 가는 흡연조차도 저한테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뭐~ 저도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이니 지킬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리고요. 혹시 뭐 질문 있습니까?”

    강백현은 부주시장보다 더 악질로 나오는 도청의 행태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강제규 실장님. 말씀 잘 들었고요.”

    “네.”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 좀 기분이 나쁜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이 상황을 만든 강백현 씨의 행동이 기분이 나쁜데요.”

    민원실에 있는 다른 직원도 강백현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혹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강백현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부주시에서 이미 겪었는데도, 왜 익숙치 않을까.

    그리고 오후.

    도청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강백현에게 출석통지서를 보내왔다.

    그 통지서는 오복주 감찰실장을 통해서 내려왔다.

    “강백현. 따로 이야기 좀 하지?”

    “네.”

    오복주는 강백현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오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대단한 놈이구나.”

    “뭐, 말씀하신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확실히 도지사는 지금 상황에 난리가 났어. 언론에서도 열심히 때려대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도덕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드러난 것 때문에 다음 선거부터는 공천 자리를 주지 않을 거란 이야기도 있고.”

    “정당에서 밀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네요.”

    “그래. 하지만 넌 어떻게 할 거냐?”

    오복주의 질문에 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어쩌긴요. 그냥 기다려봐야죠. 뭐, 오복주 팀장님한테 악감정은 없습니다. 잘못 되어봐야 공무원 그만두면 되는 거죠.”

    “아무튼 좋은 인연은 아니었지만, 네가 마음엔 들었다. 너 같은 놈이 대한민국에 많아야 할 텐데. 세상이 그렇질 않아.”

    “저 같은 놈 많아봐야 뭐합니까? 분란만 쌓이는데. 저희 화해하죠?”

    강백현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 그러자고.”

    “앞으로 뇌물 드실 생각 하지 마시고요.”

    “…….”

    “약속하실 거죠?”

    “노력해볼게. 아무튼 나도 나쁜 놈은 아니다. 알지? 그리고 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여기 출석통지서 읽어봐. 나도 좀 황당한데, 도지사는 정면 돌파할 생각인가 보다.”

    출석통지서.

    대상 : 공직기강감사실 감사팀장 강백현

    징계사유 :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 직무상 알게 된 비밀에 대한 누설.

    장소/시간 : 2016년 3월 00일, 대회의실.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올 게 온 것.

    “알겠습니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하나만 말해둘게. 내가 시켜서 개인방송한 거 절대 아닌 거다. 그거 비밀 지켜줄 수 있지?”

    강백현은 오복주가 왜 자상하게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네. 걱정마세요. 아무튼 전 괜찮습니다.”

    “그래. 3일 뒤다. 3일 뒤.”

    “네.”

    * * *

    강백현은 퇴근 후 휴대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3일 뒤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것에 대비해서다.

    최용규는 못마땅한 얼굴로 백현 앞에 나타났다.

    [게임 하냐?]

    “아니요. 어플 깔고 있어요.”

    [그것보다 내 말 들어봐. 내가 이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성현이랑…….]

    “헤어지라고요?”

    [아니, 인마. 누가 헤어지라고 했냐? 이미 다 봤어 인마.]

    “뭘요?”

    [너랑 성현이 호텔에서.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다 알았다고. 이미 끝까지 갔더만.]

    “선배… 미안해요.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사실 그게 처음은 아니고….”

    [그만! 그거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고, 잘해 봐. 성현이 내 가슴 속에서 지울 테니까, 행복하게 해 줘. 대신 하나만 부탁하자.]

    “뭔데요?”

    [너 성현이랑 결혼하면 성주단지에서 내 손톱 꺼내서 제사 한 번 지내줘. 그럼 나 성불할 테니까.]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잖아요.”

    [그러냐?]

    “지금 저 굉장히 중요한 시기거든요? 조금 집중 좀 할게요.”

    [어.]

    * * *

    출석통지서에 표기된 당일.

    오후 2시, 대회의실. 양복을 차려입은 강백현이 등장하자 모두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대회의실 앞에 기다리고 있던 차우현만이 백현의 등장에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익숙하죠.”

    “청심환입니다. 드시고 들어가시죠. 긴장이 좀 풀릴 겁니다.”

    강백현은 차우현이 건네준 청심환과 쌍화탕을 벌컥 들이켰다.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아~ 간사는 저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서 사실대로만 말씀하세요. 그럼 다 해결되실 겁니다.”

    “네?”

    “그렇게만 알고 계시죠. 저는 들어가서 징계위원회 준비하겠습니다.”

    “넵.”

    “팀장님, 이거 잠깐 확인하세요. 징계의결요구 내용입니다.”

    “안 보여주셔도…”

    “보고 들어오세요.”

    차우현은 강백현에게 잠시 징계의결요구 내용을 보여주고는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오늘 간사로 임명된 차우현.

    그는 위원장인 부지사와 함께 징계위원회의 진행을 맡았다.

    대회의실에 들어간 차우현이 징계위원회 시작을 알렸다.

    “2015년도 제 8차 징계요구 심의 의결 건이 상정되었는 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하여 징계위원회 위원으로서 공정한 자세로 심의 진행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징계위원회 시작하겠습니다.”

    간사인 차우현의 말에 부지사가 의사봉을 내려치며 입을 열었다.

    “본 징계위원회는 2015년 12월 13일부터 2016년 3월 4일까지,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감사팀장 강백현 사무관의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또한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의 누설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입니다.”

    부지사는 고압적인 시선으로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난 주 토요일, 강백현 사무관은 개인방송을 통해, 업무상 알게 된 서천군 공무원 정규직 전환자의 신분을 공개하고 도지사님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럼 징계의결요구서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간사, 징계의결요구서 배부해.”

    “아, 먼저 징계대상자부터 부르겠습니다.”

    “그게 순서가 맞나? 바뀐 건가?”

    “징계대상자 소환하겠습니다.”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부지사.

    차우현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복도에 있는 강백현을 불렀다.

    “팀장님, 들어오세요.”

    “네.”

    강백현 또한 자신의 계획을 관철하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강백현은 해당 징계위원회를 라이브로 방송할 예정이었고, 차우현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강백현을 위기에서 구출할 생각이었다.

    위원장인 부지사가 강백현을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 다룬다.

    “소속.”

    “없습니다.”

    “이름.”

    “강백현입니다.”

    부지사의 말에 퉁명하게 대답하는 강백현.

    그리고 위원들에게 징계의결요구서를 나눠주는 차우현.

    차우현이 징계의결요구서의 내용을 읽는다.

    『강백현 사무관은 사전 감사에 따라 도지사의 친인척 채용과 관련한 사실을 파악하고 해당 내용에 대해 고태준 감사실장에게 결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후, 당일 14:00, 도지사로부터 직무정지 및 보직해임 통보를 전달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은 직무정지 및 보직해임 상태로 같은 날 밤 12시, 결재 받지 못한 내용을 개인방송을 통해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는 도지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및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의누설이며, 그에 따른 징계를 의결하는 바입니다.』

    징계의결요구서에 적힌 문구는 100% 강백현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 뿐.

    차우현이 진지한 얼굴로 강백현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팀장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마음껏 터트리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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