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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33화 (133/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33화

주말, 백현은 윤수를 데리고 서울 메리야트 호텔 강남점으로 이동했다.

“우와! 형 봤어? 빌딩 엄청 높다. 이렇게 높은 건물 처음 봐.”

윤수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해 보였나보다.

“큰일이네. 겨우 이거 보고 난리칠 정도면.”

“형, 완전 쩔어. 지려버리는 줄 알았네.”

“기대해. 이따가 누나 보면 장난 아닐 테니까.”

균형발전계획으로 인해 지방도 많이 발전했지만, 서울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됐다.

그만큼 차이나는 경제력.

오늘 윤수를 데리고 서울까지 온 이유는 부모님이 둘 다 일하시러 나가셨기 때문.

모처럼 만의 기회인 실장님과의 데이트.

그런 순간에 윤수가 끼어드는 게 탐탁치 않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메리야트 호텔 내부로 들어간 윤수는 고급스러움에 기가 눌렸는지 백현의 뒤로 숨었다.

“왜?”

“여기 조폭 아저씨들만 사는 데 아니야?”

“아니야 인마! 윤수 쫄았어?”

“안 쫄았어.”

“들어가자.”

직원들의 인사를 받고 들어간 백현은 곧장 우측에 있는 브랜드샵으로 이동했다.

안내데스크를 기준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샵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상태였다.

“실장님, 저 왔어요.”

“백현 씨, 잠깐만요. 윤수야~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일 금방 끝낼 테니까 밥 좀 먹자.”

“응.”

김성현은 외국인 손님들을 안내하며 이번에 런칭한 신규 브랜드 제품의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강백현은 김성현의 숙달된 영어실력에 감탄했다.

《어머, 세련된 것 봐. 여보, 나 이런 디자인 처음 봤어. 이게 샬롯에서 나온 그 프랑수아? 누가 디자인 한 거지? 디자이너 성현?》

《안녕하세요! 이 제품에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네. 호텔 내에 입점했다는 것도 신기하고, 제품이 굉장히 화려해보여서요.》

《네. 맥시멀리즘한 디자인으로 구성해봤는데, 시장 반응이 꽤 좋아요.》

김성현은 외국인 고객을 위해 제품을 개봉해 하나하나 꺼내보이며 어떤 느낌을 의도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성적이었다.

제품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고객의 연령, 편의, 그리고 선호하는 디자인에 대해 고려하면서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는데 열과 성을 다 했다.

“누나, 영어 엄청 잘한다. 맞지?”

“응. 멋있어. 최고야.”

윤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김성현과 외국인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물었다.

“누나 직업이 뭐야?”

“디자이너.”

“디자이너는 뭔데?”

“말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다. 옷이나 가방을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것만 하는 건 아닌데, 쉽게 설명하면 그래.”

잠시 후, 김성현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윤수야.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누나 완전 멋있었어요. 영어 너무 잘해.”

“윤수도 누나 나이 되면 영어 잘할 수 있을 거야.”

강백현은 김성현의 말에 속으로 웃었다.

‘다들 그렇게 잘하지 않아요. 거의 원어민 레벨이면서.’

김성현은 윤수에게 향한 시선을 백현에게 돌리고 배를 만지며 물었다.

“백현 씨, 우리 뭐 먹을까요?”

“윤수 왔으니까, 돈가스가 어떨까요?”

“돈가스 좋죠.”

그때, 뒤에서 김성현을 찾는 점원.

“실장님, 로체 씨 전화 왔는데요.”

“어머 그래요? 백현 씨 잠시만요.”

김성현은 바빴다. 재벌집 딸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1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이어갔다.

“누나 엄청 바빠 보여.”

“응.”

“근데 진짜 행복해 보인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질 않잖아.”

“그래? 난 못 느꼈는데.”

“형. 저건 좋아하는 일 할 때 나오는 표정이야.”

윤수의 말에 강백현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좋아하는 일? 너 그거 어떻게 알아?”

“나도 게임할 때는 항상 저런 표정 짓잖아.”

박윤수의 말에 강백현이 장난을 곁들여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너 게임하고 싶다고 돌려 말하는 거지?”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너 오늘 집에서 게임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지금 투정부리는 거지?”

“아니야~ 형 그런 거 아니고.”

“너 표정 딱 걸렸어.”

“형, 그게 아니고. 뭐~ 게임 하기 싫은 건 아닌데.”

한쪽 분위기로 몰아가는 백현의 말에 박윤수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게임 많이 해도 돼. 대신 공부도 그만큼 열심히 하기. 약속!”

“응.”

강백현은 김성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통화가 끝나질 않는다.

한 시간 뒤, 김성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에게 다가왔다.

“백현 씨, 미안해서 어떻게 하죠? 갑자기 로체 씨가 일주일간 방문한 고객 분석 자료를 넘겨달래요. 3시간 내로 정리해서 보내야 될 것 같은데, 식사 같이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얼굴 봤으면 됐죠. 윤수야. 누나한테 인사.”

“누나, 안녕.”

“응. 많이 컸네. 백현 씨네서 지낸다고 들었는데 불편한 건 없어?”

“응. 없어. 누나 우리 형이랑 사귄다며.”

“크크. 그래~ 맞아. 윤수야~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오늘 같이 못 먹어서 미안. 이해해줄거지? 백현 씨, 이거 호텔 레스토랑 밀 쿠폰이에요. 이거 쓰세요.”

“밀 쿠폰이요?”

“네. 식사하고 가요.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 미안해요.”

김성현이 바쁜 얼굴로 다시 매장에 돌아갔다.

고객 분석 자료를 종합하고 그걸 다시 프랑스어로 바꾸어 보내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터.

“누나 바쁘단다. 우리끼리 밥 먹자.”

“응.”

* * *

다시 부주시의 집으로 돌아온 백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현의 얼굴을 본 건 5분 남짓.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인지 버스에서 곯아 떨어졌던 윤수는 게임해도 된다는 기대감인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강백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윤수가 게임을 하는 것과 김성현이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판매하는 것.

사실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내일이네.’

내일부터 서천군 사전감사가 시작된다.

분명좋아하는 일,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예방하고 좀 더 나은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이니 보람을 느껴야 하건만….

강백현은 곧 다가올 후폭풍에 자신의 결심이 꺾일까봐 두려웠다.

서천군수는 도지사, 부지사와 동향.

서천군수의 비리가 드러나면, 아마 도지사와 부지사는 자신들이 동원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 막을 것이다.

강백현은 침대에 누워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서천군은 비리가 없기를.

서천군만은 정의롭고 깨끗한 사람들만 모여 있기를.

* * *

다음날, 강백현은 출근 직후 사전감사를 진행하며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김태웅 주무관님, 잠깐 와 보시죠.”

“네.”

김태웅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기간제 근로자 채용 관련해서 왜 빼먹었어요?”

“팀장님, 잠깐 따로 이야기 가능하겠습니까?”

“네. 그러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옥상에 올라간 두 사람. 김태웅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현아, 알면서 물어본 거지?”

“뭐가.”

“그쪽 군수가 친인척 채용한 거.”

“그럴 것 같았어. 그런데 왜?”

“빼는 게 좋을 것 같아. 처음부터 발견 못한 걸로 가자.”

강백현은 자신의 친구이자 부하직원인 김태웅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추궁했다.

“장난치는 거지? 너 또 뇌물 먹었냐?”

“아니, 도지사하고 관련되어서 그래.”

“도지사랑 관련이 되어 있다니?”

“이번에 기간제 근무자 중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이 바로 도지사 조카야. 너 이거 터트릴 거야? 너 또 왕따 당하고 싶냐? 가만히 있으면 편해. 가끔은….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가는 게 살아남는 거라고.”

김태웅의 말에 지켜보고 있던 최용규 또한 백현에게 훈수를 뒀다.

[김태웅 말이 맞다. 너 그거 터트리면 인생 망한다. 성공해야지.]

강백현은 최용규와 김태웅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태웅아, 나 알잖아. 내가 이런 거 넘어갈 것 같아?”

“이미 실장님이 알고 먼저 빼라고 했어. 너 모르게 넘어가라고.”

“실장님도 알고 계신거야? 고태준 실장님도?”

“너 빼고 다 알아. 차우현 선배님도 알고, 고태준 실장님도 알고, 부지사님도 알고, 도지사님도 다 알아. 다른 팀도 다 알고. 백현아, 친구로서 한 마디 할게. 쉬쉬하고 넘어갈 것도 있는 거야. 그게 오래 살아남는 길이고. 너 이제 5급 된지 1년도 안 됐다. 인생 망칠 생각 아니지?”

김태웅의 설득에 강백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강백현은 분명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립을 지킨다는 것.

그건 어떻게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둘 다 모른 척 하는 방법.

그게 태웅이의 방법.

뇌물을 받고 모른 체 넘어가거나, 크게 사고가 터질 일이라 생각되면 쉬쉬하고 숨기며 다음 세대로 넘긴다.

당장의 위기는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있겠지만, 조직은 곪아 썩어버린다.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넘은 2016년에도 아직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게 백현은 치가 떨렸다.

“백현아, 이번만 내 말 듣자. 응?”

강백현은 김태웅의 설득에 자신의 결심을 드러냈다.

“태웅아, 난 평소처럼 강행한다. 그게 공무원 생활의 끝이라도 난 할 거야.”

“이… 새끼야! 하지 말라니까.”

김태웅이 심각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강백현은 제 아무리 최악의 결과가 기다린다 해도 원리원칙대로 업무를 수행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게 초심이었으니까.

대한민국의 공직사회가 청렴해지기 위해서는 꼭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 * *

피날레가 시작되었다.

사전감사 결과를 보고하는 시간.

고태준 실장이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강백현을 마주하고 있다.

“강 팀장 빼고는 다 나가보게.”

“네.”

차우현을 비롯한 감사팀 모두가 실장실 밖으로 쫓기듯 나가고, 강백현만이 고압적인 시선의 고태준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야!”

“사전감사 보고 드리는 자리입니다.”

“인마! 너 미쳤어? 이건 아무리 봐도 도지사님 엿 먹이는 문서잖아. 너 이거 확실해? 도지사님 친척만 정규직 채용, 누가 이런 프레임 짜라고 했어? 누가 기획했어? 너 뒤에 있는 놈 누구야?”

고태준의 말에 강백현이 자신의 진심을 담았다.

“제 뒤에 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러자 고태준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태웅이가 다 불었어. 너 최장철 국회의원하고 커넥션 있다며?”

“그런 거 없습니다.”

“이미 연락하고 있다는 것 다 들었네. 잡아뗄 거야?”

“연락은 한 적 있지만, 커넥션은 없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부주시랑 홍천군 감사를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인마, 난 이거 인정 못해.”

“뭘 인정 못하십니까?”

“사전감사 결과. 이거 보고서 못 올리겠다고.”

강백현은 자신의 손과 발을 막는 고태준을 향해 말했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채용관련 비리의혹을 묻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너 왜 이렇게 건방지냐? 내가 네 부하야?”

고태준은 강백현의 대드는 목소리에 진심으로 화가 난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백현의 보고서를 그대로 진행했다가는 자신의 공무원 인생도 끝장날 테니까.

“너, 이거 보고하면 네 공무원 인생 좆 되는 거 알아 몰라?”

“그런 거 신경 안 씁니다.”

“인마! 너만 죽는 거 아니고 다 죽는다고! 도지사님은 다음 대선 주자야. 우리는 숨죽인 채 가만히만 있어도 승진이 보장되어 있는데, 왜 불구덩이로 들어가냐고. 너 미친 거지? 아주 돌았지?”

강백현이 씩 웃었다.

“친인척 비리에 연루된 놈이 대통령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범죄자입니다. 범죄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단 일도 없으니, 결재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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