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32화 (13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32화

    홍천군수는 강백현의 등장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부주시장이 강백현을 만난 후 어떤 결과가 되었는지 알기에 말을 할 때도 무척 신중했다.

    “어이구~ 이런 누추한 곳까지 우리 감사관님들 오시고, 고생이 많아요.”

    본 감사에 앞서 시장과 접견하는 자리.

    시장은 강백현과 차우현, 김태웅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백현의 표정을 살폈다.

    강백현은 홍천군수 앞에서 머뭇거림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요. 감사중점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에헤이~ 시간 많은데 뭘~ 잠시 앉아요. 누추하지만, 그래도 사람 대접하는 자리인데, 그냥 보내면 쓰나~.”

    군수나 시장이라면 반드시 하나쯤은 있는 골프채가 역시나 걸려 있었다.

    거기에 군수실에는 커다란 어항도 세팅되어 있다.

    어항에 사는 구피들 냄새 때문에 관리가 쉽지 않을 텐데, 어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루마다 어항 물을 갈아주고 있다는 뜻.

    그가 말한 누추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즉, 엄청난 세금이 홍천군수의 취미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

    “군수님, 누추하진 않고, 좀 추한 것 같네요.”

    “추하다고?”

    “아닙니다. 춥다고요.”

    강백현의 독설 섞인 말에 홍천군수가 고개를 숙였다.

    ‘의원님이 하신 말하고 다른데? 왜 저렇게 나오지?’

    홍천군수는 어제 최장철 국회의원의 전화를 받고 다소 안심한 상태였다.

    이미 부주시장의 목이 날아간 전적이 있는 터라 한참 걱정하고 있을 때, 믿고 따르는 최장철 의원의 격려와 걱정 말라는 한마디가 그에게 위안을 선사했다.

    그런데 왜! 왜 저 새끼는 저런 반응인 거지?

    태도가 너무 불순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은 주제에.

    아직 30대의 파릇파릇한 어린놈이 말장난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강백현 감사관요~ 혹시 최장철 의원 알죠?”

    “네. 제 동기의 아버지시더군요.”

    홍천군수는 최장철 의원의 이름을 대며 자신의 권력을 자랑했다.

    “대한민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정치인을 모시던 게 불과 9년 전이네. 내가 의원님이 국방위원 자리에 있을 때, 요구자료 종합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매일같이 코피를 흘렸어요. 그게 이렇게 보상으로 돌아왔잖아. 나하고 최장철 의원님하고 각별한 관계니까, 강백현 감사관도 우리 의원님 아시고, 서로 아는 관계잖아. 안 그래요?”

    홍천군수는 회심의 미소를 띄웠다.

    옆에서 지켜보던 차우현과 김태웅은 처음 듣는 소리에 백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장철 국회의원을 안다고? 대선유력후보 최장철 국회의원을?’

    차우현 주무관은 그제야 강백현이 고민하던 이유를 깨달았다.

    ‘팀장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공무원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그쪽이셨습니까? 여당 지지자였기 때문에 노조가 마음에 안 드셨던 겁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또 의문점이 생긴다.

    ‘잠깐만! 부주시장은 여당 쪽이었잖아. 지금 홍천군수랑 같은 편이었단 말이야. 뭐지?’

    그 의문의 실마리는 강백현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서로 아는 관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거랑 감사는 별개고요. 저는 감사관으로 이 자리에 온 거지. 최장철 의원님과의 친분으로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군수님.”

    강백현의 말에 홍천군수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군수님,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요.”

    “안 드리려고 했다?”

    “네. 앞에서 팩폭 날리면 싫어하잖아요. 그래도 저보다 인생 30년 가까이 더 사신 분인데,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을 깔고 들어가니까 어르신들에게는 심한 말 안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홍천 군수님은 좀 심해요~”

    강백현의 말에 김태웅이 웃음을 터트리자 차우현이 김태웅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렸다.

    그러면서도 차우현은 방금 전 의문은 순식간에 잊고 이제 미친개로 빙의한 강백현의 활약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까와는 달리 껄렁껄렁한 강백현의 말투.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6.25 참전용사 지원금 어디다 쓰셨어요?”

    “난 모르겠는데.”

    백현의 말투가 홍천군수로 하여금 하대를 이끌어낸다.

    강백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감사관으로 대우해주는 것보다 그냥 아랫사람처럼 대해주는 게 더 편했다. 그래야 자신도 마음껏 날뛸 수 있을 테니까.

    “군수님이 모르면 누가 알까요? 군수님이 시작한 군정활동을 군수님이 모르신다고 하면 누구한테 알아봐야 될까요? 사회복지과장일까요? 아니면 부군수일까요? 그런데 어쩌나~ 둘 다 군수님 책임이라는데.”

    “뭐?”

    강백현은 씩 웃었다.

    “사실 군수실에 먼저 들린 게 아닙니다. 이미 사회복지과에 들려서 그 예산, 작년 11월 22일, 군수님 사모님께서 LS편의점 행복2동지점 앞에서 사회복지과장으로부터 사과박스로 받으셨다는 진술 확보했습니다.”

    “증거 어디 있어? 난 몰라. 모른다고!”

    “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과장은 실토하더군요. 자기는 하나도 받은 게 없다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사회복지과장도 자기 살아남으려고 이미 수를 썼더군요. 왜 LS편의점 행복2동지점 앞에서 사과박스를 건넸을까요?”

    강백현의 말에 홍천군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사실 없다니까.”

    “편의점 앞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회복지과장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증거를 남겨두었습니다. 혹시 잘못되었을 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놓으려고요. 고향 후배라서 철썩 같이 믿고 계셨죠? 근데 고향 후배도 이럴 땐 다 소용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거짓증언 하면 되겠지만 그냥 사실 그대로 진술하면 징계는 받더라도 법적 처벌까지는 애매하거든요. 실질적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 사람은 복지과장이 아니었으니까요.”

    강백현의 말에 김태웅이 씩 웃었다.

    ‘독한 새끼. 최용규보다 더 독해. 미친 놈.’

    차우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자신감,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팀장님 모습 그대로네요.’

    * * *

    감사일정 1일차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참에 오랜만에 최용규가 나타났다.

    [백현아~ 잘 지냈냐?]

    “선배, 오래 걸리셨네요.”

    [진한이 이 새끼가 무슨 귀인이라고. 재판 받아야 된다잖아. 그것 때문에 시간 좀 걸렸어.]

    “크크,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너한테 좋은 소식 있다?]

    “뭔데요?”

    최용규는 신이 나는지 백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너 이번 인생 제대로 성공한대. 대한민국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참된 정치인이 네 미래라던데?]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무튼 최장철 국회의원하고 잘 지내봐. 그쪽에서 널 제대로 밀어주지 않겠냐? 일단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출신이기도 하고, 대선 후보이기도 하니까.]

    강백현이 최용규의 조언에 웃음을 지었다.

    “그건 물 건너갔네요.”

    [왜?!]

    “이미 많이 실망하셨을 거거든요.”

    귀신도 곡할 노릇, 때마침 백현에게 최장철 의원의 전화가 걸려오고, 백현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의원님.”

    - 뭐하는 건가? 자네, 내가 그리 일렀거늘.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슨 생각이라뇨.”

    - 말 했잖은가! 그냥 넘어가라고. 내가 아끼는 친구고, 나중에 자네를 밀어줄 힘이 될 사람이야. 그런 사람 앞에서 한바탕 했다는 게 말이 되나. 내 참~ 어이 없어가지고. 지금이라도 군수한테 전화해서 사과해. 사과하고 해프닝으로 끝내. 뭐 이런 경우 없는 행동을 하나?

    최장철 의원의 전화내용을 들은 최용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백현아, 너 성공 안 할 거야?]

    강백현은 최용규를 째려보고는 최장철 의원에게 말했다.

    “의원님, 이건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전 헌법과 법률에 의거하여 정당한 공직기강 감사를 하고 있고, 그게 지방자치단체장 중 하나인 군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최장철 의원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 뭐야! 너! 너! 너!

    “의원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업무 끝나고 전화 드리죠. 지금 전화는 청탁인 거 아시죠?”

    - 이… 이이이이!

    백현은 전화를 끊고 최용규에게 말했다.

    “그 결과는 날아갔네요. 미래도 바뀔 수 있는 거 맞죠?”

    [강백현! 너 인마, 무슨 짓을 저지른 지 알아? 정치인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줄 모르는 거야?]

    “그게 청탁의 결과라면 전 거부합니다. 안전한 울타리에 갇혀 동물원에서 길러지는 육식동물보다, 매일매일 맹수의 위험을 감수하고 자유롭게 들판에서 뛰노는 초식동물이 좋습니다.”

    [아~ 오랜만에 왔더니, 황당한 행동을 하네. 모처럼 좋은 정보 가져왔는데 왜 그러냐?]

    “됐습니다.”

    [성현이 보러 갈게. 필요하면 성주단지 만져서 불러.]

    “네. 아 맞다. 저 성현 씨랑… 어?”

    김성현과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는데, 최용규가 사라졌다.

    강백현은 한숨을 내쉰 채,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이게 맞는 거야. 이게… 내가 할 업무잖아?’

    * * *

    1주일 동안 감사팀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홍성군의 감사를 계속했다.

    홍성군수는 감사 결과에 따른 시정조치 사항을 논의하는 감사팀과의 마지막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군수님께서는 감사결과를 인정하지 못하시겠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조치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시네요.”

    군수의 비서실장이 씁쓸한 얼굴로 강백현을 비롯한 감사팀에게 정중한 거절을 전해왔고.

    “돌아가죠. 우리 팀원들 고생 많았어요.”

    5분 거리인 도청에 돌아온 백현은 실장에게 감사결과의 보고를 시작했다.

    각종 지적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군수의 응답을 전하자 실장은 행복한지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 도지사님이 좋아하시겠네. 좋아하시겠어. 잘했어! 강 팀장, 그래. 자네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리의 미래가 아주 밝아.”

    백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 고태준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면, 강백현은 업무에 회의감을 느꼈다.

    2년마다 치러지는 정기 감사.

    분명 2년 전에도 감사실은 홍성군의 비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왜 그 동안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어떤 정치적 파급을 일으킬지 확신할 수 없기에 쉬쉬하며 봐주며 넘어간 것이다.

    강백현은 지친 얼굴로 업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을 꺼냈다.

    “고발 건에 대해서는 업무프로세스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 없는 사항이고, 고발조치를 안 하면 오히려 저희가 직무유기로 처벌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홍성군수를 고발 조치?”

    “네. 비리가 워낙 심해서 고발조치 안 하면 저희가 공범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경찰에는 횡령 혐의로 수사의뢰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근데… 내가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고태준의 말에 강백현이 그가 원하는 대답을 먼저 꺼내들었다.

    “최종결재권자 말씀이시죠?”

    “그래. 부주시장도 자네 이름으로 결재했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해.”

    “네. 저로 하겠습니다. 매도 한 번 맞아본 사람이 잘 맞는다고, 이미 부주시를 박살낸 적이 있는 제가 해야죠. 그게 순리에 맞고요.”

    “고맙네. 든든해.”

    그렇다. 실장은 나중에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백현에게 미뤄둘 생각인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이해했으니까. 처음부터 받아들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백현을 열 받게 하는 이유가 생겼다.

    “다음이 어디지?”

    “서천군입니다.”

    “아, 거기는 너무 쥐 잡듯 잡지 마. 거긴 우리 편이니까.”

    올 것이 왔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네 편은 가중처벌을 하고, 내 편은 봐주기로 일관하고.

    “저 오늘 피곤한데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야근도 했고요.”

    “그래. 고생했네.”

    이제 강백현은 선택해야만 했다.

    공무원으로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업무를 수행할 것인지.

    강백현은 퇴근을 하며 혼자만의 선택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답은 결정되어 있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