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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31화 (131/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31화

1개월 후. 2016년 3월, 봄이 찾아왔다. 구제역 해프닝은 잠잠해졌지만 백현네 가족은 윤수의 건강검진이 신장적합도 검사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다행히 신장은 무사히 이식했다고 들었지만….’

껄끄럽다. 양육권을 가져가기 전, 건강검진을 핑계로 윤수의 신장적합도를 검사한 성한 그룹의 진위가 의심스럽다.

“윤수야. 학교 갔다가 학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야 돼. 모르는 어른 쫒아가지 말고. 형이나 아저씨, 아줌마 말고는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알았지?”

“응.”

“형 집에 왔었던 그 친구 알지? 그 놈 따라가도 안 돼. 알았어?”

“알았어. 형, 나 이제 11살이야.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곧 어른인데?”

“그래도 걱정 돼. 쪼끄만 게 무슨 어른이야. 어린이지.”

백현의 걱정스런 말에 윤수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때, 집 앞 초인종이 눌렸다.

백현은 익숙한 듯 문을 열어 윤수의 친구 권우를 맞이했다.

“권우 왔어?”

“네. 윤수야. 학교 가자.”

“응.”

단짝 친구가 된 둘.

학원에서 만난 권우랑 윤수는 학교도 같은 반에 배정되어 등교를 같이 하기로 했다고.

윤수가 떠나자 백현도 부모님께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섰다.

“출근 할게요.”

“응. 조심히 다녀와.”

“넵.”

나이 서른셋.

아직 결혼 못한 총각의 삶은 학생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학생은 돈을 내고 공부를 하지만 직장인은 돈을 받고 공부를 한다는 점.

‘오늘이 그 날인가?’

정기 감사 시즌이 시작되는 날.

백현은 지난 사무용품 비리 건으로 한 달 내내 쥐죽은 듯 다녔다.

고태준 실장이 한 달 동안 백현의 뒷배경이 되어주며 모든 원인을 차수진으로 몰아간 탓에 별일 없이 지내는 중이지만, 정작 고태준 실장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는 상태다.

도청,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

백현은 일찍 출근한 고태준 실장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실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런 백현의 인사에 혼자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옹알거리는 고태준.

“나쁜 새끼….”

그런 실장의 태도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무래도 같은 팀원들이다.

한달 전만 해도 서글서글한 태도로 백현의 인사를 받아주고, 우리 강 팀장, 우리 백현이 하다가 지금은 싸늘한 표정과 태도로 일관하니 같은 사무실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차우현은 고집불통인 강백현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는 고태준 실장 사이에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실장님은 여전히 화가 안 풀리셨나보네요.”

“네. 그렇죠. 배신감이 상당하셨을 테니까요.”

“일이나 합시다. 오늘부터 사전 감사죠?”

“네.”

“홍성군이네요.”

홍성군수는 저번 선거에 이어 연임에 성공했다.

집권여당인 대통령과 같은 세력. 즉, 실장과 부지사, 도지사와는 반대세력이란 것.

백현은 일주일 동안 많은 자료를 모았다.

사전감사 기간 동안 작년 그리고 올해 3월 현재까지의 자금 출처와 공익 제보 사항을 종합해 사전 감사에 임한다.

많은 의문점을 확인한 백현은 직접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정황을 다시 한 번 체크했다.

“홍성군 사회복지과장님, 6.25 참전용사 거주비 지원 자금 왜 다 현금으로 나갔죠?”

- 아, 그게 신용불량자 분들이 일부 계셔서 개인 계좌가 없는 분들 때문에 현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사인 받았고요.

여기서 의문점.

신용불량으로 인해 계좌가 정지된 사람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사회복지과장의 말은 맞지만, 그럴 경우 가족이나 친척 등의 계좌로 지급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현금으로?

그것도 6.25 참전용사 중 살아계신 481명에 대한 지급분이 모두 현금이었다는 게 수상하다.

한 명당 25만원. 약 1억 2천만원.

이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했다고?

물론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노인 단기 일자리 같은 경우 대부분 일급으로 지급하고 현장에서 마무리한다. 이런 일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계복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6.25 참전용사 거주비 지원은 좀 다르다.

홍성군에서만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복지정책.

즉, 군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음이 틀림없었다.

강백현은 해당 사항을 깊게 파고 들어보기로 했다.

“복지과장님, 말씀 잘 들었고요. 기분 나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지급하신 481명에 대한 명단하고 연락처 좀 주시겠어요?”

“그건 개인정보라서 곤란하겠는데요.”

“정기 감사인데도 곤란합니까?”

“검토해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검토할 것도 없다.

제 아무리 개인정보라고 해도, 감사에서는 가감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대중에 공개되는 자료에서는 개인정보를 제외해야겠지만, 지금은 대중에 공개하는 용도로 요청한 것이 아니고 업무의 절차와 수행의 적합성을 따지는 것이기에 그 대답은 적절치 않았다.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어 백현은 홍성군청에 직접 찾아갔다.

도청과 군청.

걸어서 단 5분.

옆 건물인 군청의 복지과장을 찾아가는 길은 집에서 도청으로 출근하는 길보다 훨씬 가까웠다.

“복지과장님, 강백현 팀장입니다. 감사실에서 나왔습니다.”

“아~ 직접 오실 줄이야. 앉으시죠. 차는 뭘로 드릴까요?”

“차는 됐고요. 지급 명단 좀 확인하려고 왔는데요. 사인도 확인 좀 하고요. 수기기록물에도 안 올리셔서 한참을 찾다 직접 찾아왔습니다.”

“저 지급 명단은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네?”

“석현 씨! 언제 잃어버렸다고 했지?”

과장의 말에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공무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희 실수인 것은 맞는데, 정확히 지급됐습니다. 지급 명단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강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저도 체크하겠습니다.”

강백현은 사무실로 돌아가 미심쩍은 둘의 행동과 태도를 떠올리며 고심에 빠졌다.

‘의심하는 버릇이 결코 좋지 않은데 말이야.’

최용규 선배는 지난 일 이후로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선배만 있으면 염탐을 부탁하든 아니면 조언이라도 들어서 확인이라도 할 텐데.

이럴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공법을 택하는 게 최고.

강백현은 도청 앞에 있는 재향군인회 홍성지부를 찾았다.

“누구세요?”

“고생 많으십니다. 도청에서 나왔습니다. 강백현 사무관입니다.”

머리에 검은색 향군 모자를 쓴 남성이 백현을 보고는 악수를 건네며 물었다.

“아이고~ 젊은 사무관님, 무슨 일이셔?”

“홍성군에서 6.25 참전용사 거주 지원 사업으로 25만원씩 현금 지급했다는데, 그게 정상지급 됐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실까요?”

“처음 듣는데? 현수야!”

“네. 아저씨.”

“참전용사 거주 지원 사업, 돈 받은 거 있나 알아봐라. 태석이랑 경철이부터 전화해 봐.”

“네. 태석이 아저씨랑 경철이 아저씨한테 연락해볼게요.”

나이 80이 넘어가는 6.25 참전용사 분들은 여전히 국가를 지키던 그 때 마음 그대로 재향군인회 활동을 이어나가고 계시다. 그래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젊은 친구에게 친한 회원에게 연락해보라고 한 것.

때로는 공무원 조직보다 민간 조직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

“없다는데요. 처음 듣는대요. 돈 주는 거면 신청하겠다고 하시는데요.”

“그래? 두 명 다?”

“네. 다른 아저씨들도 연락해볼까요?”

강백현은 결과를 듣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알겠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함 놓고 갈게요. 혹시 받으신 분 있으면 연락 좀 주세요.”

“네.”

* * *

사전 감사 4일째.

복지과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 강 팀장님, 지급 명단 찾았습니다. 사인된 지급서류 첨부해서 보내드리니까 추가 확인 부탁드릴게요.

스캔본에 포함된 481명의 명단과 서명.

그런데… 서명 글씨를 본 백현이 한숨을 토해냈다.

‘한 사람이 서명을 다 한 것 같아. 글씨체가 똑같아. 도대체 그 돈은 어디 간 거지?’

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주신 스캔 파일 잘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서명 받은 글씨체가 비슷하네요. 400여명의 글씨체가 다 똑같은 건 이상한 것 같은데요.”

- 아, 그거 저희 담당관이 대신 서명해서 그래요. 노인 분들한테 글씨 쓰라고 하면 역정 내셔서 편의로 그랬습니다. 돈 다 지급했고 문제없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복지과장의 말에 강백현이 다시 물었다.

“확실합니까? 녹음중입니다.”

- …….

“확실하냐고 물었습니다.”

- 확실…하죠.

“네. 확실하다는 대답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재향군인회 분들 말은 다를까요? 지급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던데요. 정상적으로 지급된 것 맞을까요?”

- 아… 제가 찾아뵙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강백현은 그제야 거짓말 대신 설득으로 포지션을 바꾸는 복지과장의 스탠스를 확인하고 혀를 차고 말았다.

“아니요. 본 감사 때 뵙죠.”

사전감사 결과를 고태준 실장에게 공유한 백현.

고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더 없어?”

“네. 일단 의심스러운 것은 이거고요. 나머지는 본 감사 하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 박살내버려. 홍성군 박살내고, 너도 도지사님하고 부지사님 라인에 같이 서는 거야. 알았지?”

강백현은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00퍼센트 찬동하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고태준 실장은 백현이 조사해온 사전감사 결과가 썩 마음에 든 눈치였다.

하지만 강백현의 마음은 더욱 더 복잡해졌다.

‘실장님, 이번 건 반대편이니까 이렇게 나오시지만 다음 감사는 아니잖습니까. 서천군수는 같은 야당일 텐데, 그때도 이렇게 나오실지 지켜보겠습니다.’

그날 오후, 사전 감사를 마친 백현은 홀로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선배, 언제 오시는 겁니까. 성현 씨랑 사귀는 거라도 미리 말 해둬야 했는데, 빨리 오셔야죠.’

한 때 선배의 여자 친구였던 김성현과 깊은 관계로 진척된 것이 그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 것.

그때, 백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입니다. 의원님. 잘 지내셨습니까?”

- 그래. 강 사무관,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최장철 국회의원, 같은 동기 최현희의 아버지이자 4선 국회의원의 전화였다.

“네. 경기도에서 간부급 노조활동 제한한다는 공문 확인했습니다. 제 의견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 경기도 말고 강원도, 제주도도 곧 시작할 거야. 그리고 해당사안에 대해서는 입법 조치도 진행할 예정이고. 그것보다 자네. 홍성군에 대한 정기 감사를 진행한다고 들었네.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 그거, 문제없도록 처리하게. 그 친구 내 직속라인이야. 참전용사 자금, 조사하지 말게. 이쯤 하면 알아듣겠나?

“……”

강백현은 최장철 국회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실무진에서 손을 쓰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게야. 그게 자네가 나를 위해서 해줄 일이네. 이번 일 잘 손봐주면, 난 자네를 제대로 키워주겠네. 그럼 후일을 기대하지.

최장철 의원이 전화를 끊었다.

명백한 청탁. 비리를 봐주라는 청탁이었다.

강백현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박창현 비서님, 비서님하고 이야기하길 잘 했네요. 난 위에 올라갈 놈은 못 되나 봐요.’

* * *

3일 뒤 월요일. 한 주가 지나 본 감사일정에 돌입했다.

차우현이 5분 거리에 있는 홍성군청으로 걸어가며 백현에게 물었다.

“오늘 기분이 어떠십니까?”

“평상시와 같습니다. 독하게 마음먹어야죠. 군수부터 조지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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