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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8화 (128/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8화

    친아빠의 등장, 왜 지금 와서? 11년 동안 뭐하고 지금 나타나서 윤수를 찾는 거지?

    백현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일단 저만 가도 될까요? 바로 만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요.”

    - 그래. 일단은 너희 가족이 후견인이니까 그게 맞겠지. 지금 올 수 있어?

    강백현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7시 30분. 보육원을 다녀오기에는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다.

    “네. 갈게요.”

    강백현은 홀로 게임에 열중인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수야. 형 잠깐 나갔다 올게.”

    “응. 형, 게임 한 시간만 하고 바로 끌게.”

    “더 많이 해도 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응!”

    아직 식당에서 일이 끝나지 않은 엄마와, 오늘은 경비원으로 24시간 근무인 아빠. 따라서 오늘 윤수의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은 백현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후견인인 아버지를 대신해 보육원으로 향한다.

    보육원으로 가는 백현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뭐부터 물어야 할까?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원장님께 상대방 정보라도 미리 물어보는 건데.

    하지만 곧 도착한다. 윤수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원장님! 저 왔어요.”

    “어. 백현아, 여기 인사해.”

    “네. 안녕… 아니, 본부장님?”

    강백현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강 비서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저희 집에서 윤수를 데리고 있으니까요. 본부장님은 고 씨 아니셨나요? 윤수 성은 박 씨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니, 애당초 윤수 아빠 맞아요? 아니 그것보다 아들이 있었어요?”

    백현의 따지고 들자 원장이 당황해서 상황을 중재했다.

    “엄마 성을 따랐나 봐. 희진이가 박 씨였잖아. 그런데 두 분이 아는 사이에요?”

    “네. 아주 잘 알죠. 안 그렇습니까?”

    “강 비서, 따로 이야기 하지. 지금 네가 내 아들 데리고 있다는 거야?”

    “아들은 무슨 아들입니까? 10년 넘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사람이 무슨 아들을 찾아?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따로 이야기 합시다. 원장님, 이 친구가 우리 은수 데리고 있는 거 맞죠?”

    강백현은 윤수를 은수라고 하는 고기웅의 말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윤수입니다. 이름 윤수라고요. 자기 아들 이름도 모르면서, 뭔 낯짝으로 찾아왔는지 모르겠네. 진짜.”

    “이야기 좀 해. 나도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거든. 일단 따로 이야기하자고.”

    “알겠습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강백현은 바로 앞 커피숍으로 향했다.

    2월의 날씨는 굉장히 추웠다. 보육원 내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 백현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았다.

    고기웅, 그는 뭔가 다급한 표정이었다.

    “설명이 필요하겠는데요?”

    “나도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강비서가 왜 은수를 데리고 있지?”

    “어렸을 때부터 봐 왔으니까요. 그리고 은수가 아니라 윤수라니까요.”

    “아무튼 고생 많았고, 내 아들은 어디 있지?”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혼외 자식이죠?”

    강백현의 말에 고기웅이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다. 왜?”

    “그럼 지금 와서 아들을 찾는 이유가 뭡니까?”

    “내 자식 내가 찾겠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강 비서는 그렇게 일차원으로 밖에 생각 못해?”

    “아무튼 저희 아버지 오늘 24시간 근무시거든요. 윤수 후견인은 저희 아버지시니까 내일 아버지가 윤수랑 대화해보고 본부장님하고 재회를 시킬지 말지는 알아볼게요. 그리고 본부장님이 실제로 윤수 아빠라는 증거도 없으니까, 당장 뭐 만남을 성사시켜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강백현의 말에 고기웅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강 비서는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걸림돌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야? 넌 뭔데 내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넘어져? 넌 윗사람 아랫사람 없냐?”

    “네. 없죠.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 아니잖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단 한 명의 인권도 존중해주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러는 본부장님이야 말고 자기 처신이나 잘하시죠. 얼마 전 공항에서 한 건 하신 것 같던데, 노출증은 없어졌나 모르겠네요.”

    “뭐야?!”

    강백현의 핀잔에 단단히 화가 난 고기웅이 손찌검을 하려 손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 강백현과 트러블이 있는 상황이 자신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 사고는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 내가 귀신에 씌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나 정신 멀쩡하고 노출증 환자 아니야. 그리고 너! 듣고 보니까 메리야트 그룹에서 잘렸다며?”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까? 누가 그럽니까? 김동성 도련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던가요?”

    “아니야?”

    “전혀 아닙니다. 아, 그리고 실장님이랑 전 정식으로 교제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관계 잘 유지하고 있고요.”

    강백현의 폭탄선언에 고기웅이 씰룩거렸다.

    “무슨 개소리야. 김성현 지금 프랑스에 있는데.”

    “네. 프랑스에 있죠. 샬롯에 들어가서 로체 씨랑 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상태죠. 얼마 전 한국에도 왔었습니다. 김동성 도련님 사고 나기 바로 전날에 왔었죠.”

    “맞아. 동성이가 너한테 왜 그랬냐?”

    “왜 그랬겠습니까? 저랑 실장님이랑 사귀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겠죠.”

    원인과 결과.

    백현의 말대로 김성현과 강백현이 현재 사귀는 사이라면, 동성이가 그런 행동을 하고도 남아 보인다.

    * * *

    1년 전의 일.

    김동성은 고기웅에게 하나의 장기말이나 다름없었다.

    “기웅이 형, 큰일 났어. 누나가 최용규랑 결혼한대. 미쳤나봐.”

    “내가 뭘 어쩌라고?”

    “형이 헤어지게 하면 안 돼? 형, 우리 누나 좋아하잖아.”

    확실히 김동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기웅이 이제까지 공략에 실패했던 유일한 여자.

    성한 그룹의 이름으로도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 김성현 뿐이었던 것.

    그는 자신의 욕구를 채울 욕심에 한 가지 수를 던졌다.

    “너 지금 나 조종하냐?”

    “내가 형을 어떻게 조종을 해?”

    “아니, 내가 헤어지게 하는 게 아니라, 네가 판을 깔아야지.”

    “응?”

    “너 잘 생각해 봐. 내가 성현이랑 결혼한다 치자. 그럼 누가 제일 이득 볼 것 같냐?”

    “모르겠는데.”

    “너잖아. 메리야트 그룹이 누구 손에 들어오겠어? 그 많은 호텔 직원들이 누구를 향해 머리를 숙이겠어? 바로 너잖아. 김성현이 나랑 결혼하면 가장 혜택 볼 사람이 넌데, 네가 판을 깔아야지. 안 그래?”

    “어떻게 하면 돼? 형, 진짜 우리 누나 좋아하는 것 맞지? 우리 누나랑 결혼할 생각 있는 것 맞지?”

    김동성의 말에 고기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동성이 뭔가 결심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게 최용규를 죽이는 것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이미 김동성이 차를 폐차시킬 때부터 녀석의 살인계획을 짐작하고 있었던 고기웅.

    그래서 김성현의 생일날, 차량이 없는 동성이에게 외제차를 선물했던 것이다.

    * * *

    “동성이가 그랬을 줄은 몰랐네. 아무튼 은수 내 아들 맞으니까, 얼굴만 한 번 보여줘.”

    “내일 보여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아빠라고 공개 안 하고, 너랑 친구라고 하고 잠깐 얼굴 보여주면 되잖아. 강 비서, 그것도 못해? 은수 너희 집에 있지?”

    “하아, 은수 아니고 윤수라고요. 알았어요. 대신 입도 뻥긋하지 마요. 안 그래도 안정 찾은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민감할 시기거든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가자고. 너랑 나랑 친구다. 그렇게 연기 가능하지? 그 정도도 못하는 건 아니지? 나도 아들 얼굴 한 번 보자. 응?”

    아들 때문이어서인지 어째 고분고분하게 나오는 고기웅의 말에 강백현이 흔들리고 말았다.

    ‘도대체 용규 선배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한 달이 지나도록 아직도 깜깜 무소식인 최용규. 저승사자와 함께 떠난 그의 소식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있었으면 고기웅이 왜 그러는지 감시라도 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심정이 변했는지, 그동안 한 번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그가 왜 갑자기 윤수를 보러 찾아온 건지 궁금했지만, 스스로는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기에 백현은 답답할 뿐이었다.

    “아빠라고 말하지 마요.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만 보고 가는 겁니다. 아시겠죠?”

    “그래.”

    강백현은 자신의 집으로 고기웅을 안내했다.

    고기웅은 강백현의 집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

    “왜요?”

    “아니, 너무 낡았잖아.”

    “다 사람 사는 집이거든요? 들어와요.”

    투박한 벽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천장. 바닥은 촌스럽기 그지없는 장판.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자신의 집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고기웅이 중얼거렸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다 살아요. 윤수야! 게임하냐?”

    “응. 형, 왔어?”

    “어. 형 친구랑 같이 왔거든. 잠깐 인사할래?”

    백현은 컴퓨터 게임을 하는 윤수를 불렀다. 그러자 윤수가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형, 금방 끝나거든. 잠깐만.”

    “응.”

    고기웅은 자신과 이목구비가 비슷한 윤수를 보며 분명 아들임을 직감했다.

    ‘진짜 낳았어? 박희진, 이 미친년이 결국 나 몰래 낳았구나.’

    강백현 또한 고기웅과 박윤수의 외모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눈썹하고 입 모양이 똑같아. 왜 몰랐지? 왜 그동안 몰랐지?’

    고기웅은 윤수에게 말했다.

    “은수야.”

    “윤수요.”

    “응. 윤수야. 너 혈액형이 뭐야?”

    “아, 저 O형인데, 왜요?”

    고기웅은 윤수의 혈액형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가능성 있어. 다행이다. O형이면 할아버지하고 신장 적합 확률이 굉장히 높아. 일단 혈액형은 합격이란 소리잖아.’

    고기웅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저씨도 O형이거든. 아저씨랑 은수랑 비슷한 것 같아서.”

    “이상해. 백현이 형, 형 친구 맞아? 이상해. 머리도 완전 올빽 해가지고. 이 아저씨 이상해.”

    강백현은 아들이라고 찾아온 고기웅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윤수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윤수야. 형 친구한테 그러면 안 돼지.”

    “알았어. 형, 나 게임 한 판 더해도 돼?”

    “그래.”

    “응. 형 친구 배웅해주고 올게.”

    “응.”

    강백현은 고기웅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며 물었다.

    “봤죠? 본부장님 생각이나 들어봅시다. 윤수 책임지려고 온 거 맞죠?”

    “당연하지. 혹시 몰라서 내가 윤수 건강검진을 좀 시키고 싶은데. 내일 괜찮을까?”

    “일단 말해볼게요. 그렇게까지 해주시면 저야 감사한데, 저 혼자만 결정할 게 아니니까요.”

    “응.”

    * * *

    다음 날, 강백현네 가족은 윤수에게 비밀로 하고 결국 친자확인 및 건강검진을 시키기로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현네 가족은 유전자 확인결과를 듣고 탄식을 토해냈다.

    “맞습니까?”

    “네. 고기웅 님과 박윤수 님은 99.99% 일치로 친자가 확실합니다.”

    같은 시각, 고기웅은 신장이식 검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백현네 가족에게는 건강검진이라고 속이고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윤수를 데려온 것이다.

    “검사결과 나왔나요?”

    “네. 도련님, 검사결과 나왔습니다. 혈액형 일치, HLA 적합성 검사결과 이상 없고요. 독소 확인하는 조직 적합성 교차검사도 이상 없습니다. 수술 가능합니다.”

    “그럼 저랑 저희 아버지 대신 회장님께 신장 수술 가능한 거죠?”

    “네. 가능합니다. 도련님.”

    “김 박사님, 진짜 최고세요! 아,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그나저나 아드님이 있었다는 건 회장님께는 어떻게 말씀하실 건지, 제가 말씀을 드릴까요?”

    “제가 말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신장 적합검사 일치라는 말에 고기웅이 환호하며 방을 나가자 곧바로 고 회장에게 전화를 거는 김 박사.

    - 그래. 어떻게 됐어?

    “네. 도련님의 혼외자식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단 신장이식 검사는 진행했는데, 회장님과 일치했습니다. 그건 사실대로 전했고요.”

    - 좋아. 알았어. 조만간에 내가 사실을 밝힐 테니, 김 박사는 조금만 더 입조심 좀 해.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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