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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6화 (126/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6화

공무원에게 부여된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경찰, 경찰의 수사권이야 말로 공무원들을 옥죄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강백현은 빔 프로젝터 건에서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차수진 주무관의 떨리는 말투,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주지훈은 넉살 좋은 표정을 지으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경찰은 무슨 경찰을 불러. 강백현 팀장, 그만 하지.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장난 아닙니다. 일단은 도난된 것은 확실하니 그 문제는 짚고 가야죠. 안 그렇습니까?”

강백현이 차수진 주무관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이건 도난물품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코너에 몰린 주지훈이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할게요. 그거 내가 업자한테 가져가라고 했어요. 했네요. 어떻게 할 거예요? 경찰 부를 거야?”

강백현은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저렇게 뻔뻔한 사람 앞에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는 법.

“하하하, 와, 그랬구나. 당당하게 나오는 거 정말 대단해요. 주지훈 팀장님 최고네요. 인정합니다.”

“야. 너 말이 좀 그렇다? 어차피 새 거 왔으니까 중고품 쓸 일 없잖아. 일 크게 벌리지 말고 돌아가라. 우현아, 빨리 너희 팀장 모시고 가라. 응? 나 화낸다?”

차우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 그만 하시죠. 강 팀장님도 그만 하세요.”

“뭘 그만해? 저 새끼 약 올리는 거 봐. 새파란 젊은 새끼가 어디서 기어올라? 행정고시 패스하면 다야? 난 9급부터 올라왔어. 말단부터 해봤다고. 저딴 새끼 말 왜 듣냐?”

차우현이 주지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희 팀장님도 9급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따르는 거고요. 강백현 팀장님, 여긴 제게 맡기시죠.”

강백현은 화가 덜 풀렸는지 차우현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아니, 그냥 경찰 불러서 해결해요. 말 섞는 시간도 아깝네요.”

“뭐야? 이 새끼 미쳤나 봐. 너 매장되고 싶지 어? 이거 일 벌리면 너 수습 절대 못해. 나만 이런 줄 알아? 다른 팀장도 똑같아. 그냥 넘어가 인마. 넘어가라고.”

강백현은 눈을 부라리는 주지훈에게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차우현이 둘 사이를 가로 막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팀장님, 이제까지 제가 모시던 형님인데, 오늘부로 가슴속에서 지워버리겠습니다.”

“뭐? 지워?”

당황한 주지훈, 그리고 가슴에 품었던 욕설을 내뱉는 차우현.

“야 이 새끼야. 너 일로 와. 씨발, 네가 지금 그게 할 말이냐?”

강백현은 갑자기 차우현이 주먹을 쥐고 거칠게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를 말렸다.

“아니, 차우현 주무관님, 지금 뭐해요?”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으렵니다. 뭐? 내가 우리 젊은 팀장 왜 따르는 지 알아? 너처럼 약아가지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득 챙기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놈들 때문에 더 빛이 나거든. 자기가 하면 당연한 거고, 남들이 하면 손가락질 하고, 내로남불도 너 같은 내로남불이 없어 인마. 형님? 지랄 떨지 마.”

차우현의 모습에 강백현이 일단 말렸다.

말로 오가는 고성과 폭력은 처벌 수위가 다르다.

“아니 말로 하시죠. 무슨 폭력이에요?”

“아니, 저딴 새끼를 어떻게 나둬요? 분명히 뒤에서 돈 먹고, 지금 코너에 몰리니까 저 지랄로 나오잖아요. 팀장님, 제가 책임질 테니까 말리지 마요. 야! 너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무섭냐? 무섭냐고.”

차우현의 말에 주지훈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야~야야! 너 왜 그래? 미쳤냐? 나 주지훈이야. 너 나랑 술 얼마나 마셨어? 너 나랑 친하잖아. 내가 형이면 형 편을 들어야지.”

“미친놈아. 형 소리 그만 해라. 난 너 같은 형 둔 적 없어. 고작 몇 년 일찍 임용됐다고 어디서 삿대질이냐? 선배, 형 대접 해주는 것도 사실 꼴 사나웠어 인마. 일도 잘 못하는 게!”

“이런 씨발 새끼를 봤나.”

상황이 바뀌었다. 둘을 말리는 강백현은 당황스러워 무슨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팔짱을 끼고 밖에서 쳐다보는 두 사람이 있다.

외부인의 등장에 차수진 주무관이 눈을 치켜 올리며 묻는다.

“아니, 보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요!”

“끝나면 처리하려고 했죠. 다 싸우신 건가요? 주먹도 오간 것 같지 않은데.”

“경찰관들이 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빨리 해결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주지훈 사무관님이 누구시죠?”

경찰관의 부름에 주지훈이 한 사람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팀 구성원 중 한 명인 차수진이었던 것이다.

* * *

경찰관은 조사를 마치고 백현에게 토로했다.

“요즘 공무원분들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아니 왜요?”

“강원도 고성에서도 사무용품으로 공무원 496명 중 88명이 비리에 연루되어서 조사중이거든요. 안동은 더한가 봐요.”

경찰관의 말에 강백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네요.”

“뭐 공무원만 그런가요? 저희 경찰들도 똑같습니다. 어떤 새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도박판 벌이고 있을 걸요? 어떤 놈은 찻길에 차 대놓고 바람도 피고, 잠도 쳐 자고. 뭐 대한민국이 다 그렇죠. 그나저나 강백현 사무관님 소식은 저희 홍성에도 많이 들려옵니다.”

“네?”

“부주시에서 한 건 하셨다면서요. 부주시장 모가지를 팍 짤라버렸다고.”

강백현은 경찰관의 제스처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누가 보면 사람 죽였다는 줄 알겠어요.”

“인생을 망쳐놓긴 했죠. 부주시장이 해먹은 돈이 30억이 넘었다면서요? 그거 밝혀져서 곧 언론에 뜰 것 같긴 한데 그걸 하신 분이니 저희로선 고마울 따름이죠.”

“형은 얼마나 나올 것 같나요?”

“그거야 검사, 판사 나으리들께서 정해주시는 건데, 3년에서 5년 정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 법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500원짜리 빵 훔쳐도 징역 2년이고, 500억짜리 사기를 쳐도 징역 2년에서 5년이고, 뭐 유전무죄무전유죄. 대한민국에 딱 어울리는 말 아닙니까?”

경찰관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럴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경찰에 의해 2015년 충남도청 재물조사 결과가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분실 68건, 파손 1건, 기능고장 2건.

분실물품은 대부분 고가의 전자제품들. 컴퓨터, 빔 프로젝터, 방송용 마이크, 앰프 등.

역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분실 68건은 도난 64건으로 변경.

그걸 받은 장물업자는 홍성에 살고 있는 **컴퓨터 사장.

장물업자는 경찰의 조사에 겁을 먹었는지 자신이 매입한 물건들과 연락한 공무원들의 주소를 전부 제출했고, 그에 따라 충남도청 공무원 2561명 중 주지훈 등 45명이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

공무원들 여럿을 골로 보낸 차수진과 강백현, 그리고 차우현에게는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저놈인가 봐.”

“미친 놈, 형재하고 지석이 보낸 놈이 저 새끼지?”

“저 새끼 때문에 30명이나 정직 당했잖아. 나머지 몇 명은 구속되고.”

“미친 새끼 아니야? 그냥 말로 하고 넘어가면 되지. 저렇게 해서 자기한테 떨어질 게 뭐냐고.”

식당에서도 대놓고 핀잔을 주는 공무원 동료들.

내부고발자에 대한 대접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아는 강백현은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 외의 다른 한 사람은 걱정이었다.

“시간 괜찮으실까요?”

“네.”

차수진 주무관, 바로 경찰을 부른 당사자였다.

“어려운 선택 하셨네요. 저야 원래 또라이고 사고뭉치라서 문제는 없는데, 차수진 주무관님의 마음은 어떠신가 해서요.”

“주변에서 대하는 것 때문이죠? 남편이랑 조금 상담해봤는데, 일단 휴직 내려고요.”

“네?”

“저는 경찰 부를 때부터 생각했었어요. 공무원에 대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거든요. 뇌물 받고 비리 저지르는 자칭 선배라는 공무원들이 너무 많아서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도 싶고. 많이 우울하기도 했고요.”

“하-아, 그 심정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휴직은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마음 결정 끝냈어요. 그런데 강 팀장은 괜찮으세요?”

“저는 처음이 아니거든요. 부주시에서도 한 번 난리친 적이 있었죠. 하-아, 그냥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들러봤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한테 그런 눈치를 주셨나 싶기도 하고 해서.”

“후후후, 아무튼 말 걸어주셔서 고맙네요. 강백현 팀장님이 오늘 저한테 말 걸어주신 유일한 분입니다. 고마워요.”

“네. 알겠습니다. 시간이 약이긴 하죠. 힘내요.”

“넵!”

차수진을 만나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온 강백현은 눈빛이 어둡게 변한 고태준 실장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할 말 있지? 내 방으로 들어 와.”

“네. 차우현 주무관도 같이 들어갈까요?”

“아니, 강 팀장만 들어와.”

고태준은 이번 사태로 인해 꽤나 곤란한 입장인 것 같았다.

“도지사님이 너 키워주기로 한 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하신다. 왜 그렇게 일을 크게 벌린 거야?”

고태준의 말에 강백현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크게 벌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검수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얽힌 게 많았네요. 무슨 문제 있으실까요?”

“15명, 우리 노조원 15명이 연루됐어. 그것 때문에 도지사님은 물론 부지사님까지 얼마나 대노하시는지 방금 전까지 쓴 소리 듣고 온 참이야.”

“……”

사실 노조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강백현이기에 그런 소식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고태준은 강백현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경찰에 네가 신고 한 거 아니라며.”

“네. 하지만 진술은 저도 했습니다.”

“아니, 안 했어. 안 한 걸로 해.”

“네?”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어차피 경찰에 신고한 것은 차수진인가 뭔가 하는 쌍년이고, 너는 그냥 연루되어서 어쩔 수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한 것뿐이야. 알겠어?”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이유가 뭡니까?”

강백현의 말에 고태준이 한숨을 푹 쉬더니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나도 올라가야 되지 않겠냐?”

“네?”

“내가 널 적극적으로 밀고 있었는데, 네가 이렇게 되면 난 어떻게 되겠냐? 내 입장은 생각 안 하니?”

“실장님…….”

“이번 건은 너도, 우현이도 잘못한 거 전혀 없어. 모든 건 차수진이 잘못한 거야. 걔가 처음부터 계획해서 사건 터트린 거고, 너랑 우현이는 그 상황에서 이용당한 거라고 부지사님하고 도지사님께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너도 두 분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해. 차수진이 잘못한 거다. 알았니?”

“……”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어렵게 말했어?”

강백현은 억울한 희생자가 된 차수진의 심정을 역으로 생각해보았다.

“아니요.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강백현은 고민 끝에 중립을 지키려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로 했다.

“전 노조활동 의향이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습니다. 누굴 모시고 싶은 생각도 없고, 누굴 따르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강백현의 폭탄선언에 고태준 실장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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