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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5화 (125/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5화

    점심 식사가 끝나고 도지사는 곧바로 공보대응팀을 불러 오늘의 도정활동을 기사화 할 것을 주문했다.

    공보대응팀장 주지훈은 도지사의 비서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패배의 원인은 간단했다.

    자신은 언제나 그렇듯 위험 요소를 분석해서 이를 회피하고자 보고를 했던 반면, 공직기강감사팀은 자신이 위험 요소라고 판단한 어민협회, 상인협회 관계자들을 구슬려 일을 해결한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주지훈은 고민 끝에 후배인 차우현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선배님.

    “응. 그 친구 누구야? 누구길래 상인협회랑 어민협회 사람들을 이렇게 구워삶았어? 나이도 어린 친구 같던데.”

    - 아, 저희 친형이 태천군 어민협회에서 활동하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도움 좀 드렸죠. 무슨 일 있으세요?

    친형이란 말에 주지훈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우현아,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 먼저 이야기를 해야지. 중간에서 나만 병신 됐잖아. 어떻게 생각해?”

    - 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다. 다음부터 협조 좀 부탁할게. 당해도 좀 알고 당하자. 응?”

    주지훈과의 통화가 끝나고 차우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뭘 당했다는 거야?’

    고민이 있으면 바로 질문해서 해결하면 되는 법. 차우현은 바로 옆의 강백현에게 다가가 질문을 했다.

    “팀장님, 공보대응팀 주지훈 팀장님이 당했다는 말을 하시던데 무슨 말씀이신지 아세요?”

    “당하다니요?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셨대요?”

    “아, 뭔가 있긴 있나보네요.”

    “태천군 관련해서 오늘 주무관님 형님 오신 거 그거 말하는 걸 거예요. 그쪽하고 저희 쪽하고 해결방안이 달랐는데, 도지사님께서 제가 제시한 방향으로 진행하겠다고 오늘 막 결정하셨거든요. 상인협회 분들하고 어민협회 분들 만난 게 신의 한수였지요.”

    “아, 그것 때문에 그러시군요. 뭐, 알았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었겠네요. 제가 팀장님 말고 공보대응팀에 도움 줄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공무원 간의 커넥션은 바로 업무 협조에서 시작된다.

    업무 하나로 친해질 수도 있고,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차우현은 주지훈과 13년을 같이 지냈다.

    알고 지낸 기간은 길지만, 아랫사람을 자신의 수족처럼 생각하고 막말을 일삼는 주지훈이었기에 차우현은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며칠 후, 공보대응팀에서 협조공문이 날아왔다.

    강백현은 접수문건을 보며 가장 친한 차우현에게 물었다.

    “검사/검수 요청이라는 문서가 왔네요. 이거 꼭 저희가 해야 되는 업무인가요?”

    “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물품을 구입하면 외부에서 검수관이 입회해서 물품에 대한 검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오복주 팀장님 쪽에서 하는데 왜 저희한테 왔을까요? 문서 저한테 지정해주시면 제가 감찰팀 쪽으로 넘기겠습니다.”

    오복주 감찰팀장과 백현은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저번 홍진학원 감사 중 뇌물을 받으려던 오복주 팀장의 행동이 꼴사나워 이후 사무실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로 형식상 인사만 건넬 뿐이다.

    “아닙니다. 제가 하죠. 공보대응팀장님하고는 오해도 풀어야 하니까, 차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죠 뭐.”

    조달청에서 구입한 물품은 바로 빔 프로젝터.

    230만원에 낙찰된 비싼 물품이었다.

    강백현은 조달청에 적힌 요구조건을 먼저 확인했다.

    5300안시 루멘 이상.

    무게 5kg 이하.

    해상도 1280 * 800 (WXGA)

    램프수명 5000시간 이상

    화면비 : 16:9

    명암비 : 22,000:1

    생각보다 자세하게 적혀있는 요구조건.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낙찰된 제품은 D사의 일련번호 DX4145 제품이었다.

    ‘역시 조달청이야. 요구조건 정확하게 해서 낙찰했네. 인터넷 최저가 가격 좀 볼까?’

    인터넷 최저가.

    169만 6천원.

    강백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인터넷에서 169만 6천원에 팔리고 있는 제품이 조달청에서는 230만원에 낙찰된 것.

    물론 정부구매 물품이므로 설치비, A/S비용 포함이지만 그걸 생각해도 60만원 차이는 너무나 컸다.

    “같이 갈까요?”

    “그럼 검수관 입회, 저랑 팀장님 이름으로 바로 기안하겠습니다. 기록물 관리함에 기록 남겨야 하니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다양한 물품을 구입하는 공공기관.

    책상부터 의자, 빔 프로젝터는 물론 TV, 컴퓨터, 온갖 사무용품까지.

    보통은 팀 내 담당자 한 명이 알아서 해결하지만, 가격이 비싸거나 문제가 생길만한 물품은 이렇게 검수관 입회를 해야 한다.

    두 사람이 사무실에 방문하자 주지훈 팀장은 강백현을 무시하고, 차우현한테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우현아, 검수관으로 왜 네가 오냐? 복주는 뭐해?”

    “오복주 팀장님은 잘 모르겠는데요.”

    “됐고, 복주 오라고 해. 아니다. 내가 전화 걸게.”

    오복주에게 전화를 거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상한 백현이 말을 걸었다.

    “주지훈 팀장님, 제가 뭐 잘못한 것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부터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네?”

    “아니 새로 왔으면 인사도 좀 다니고, 선배들한테 싹싹하게도 굴고 그래야지. 오자마자 도지사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놈을 누가 좋아하겠어. 안 그래?”

    “아,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가요?”

    “모르지. 공직기강감사팀만 모르고 다 아는 얘기지만 말이야.”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에 강백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표정을 애써 숨긴 백현은 이 기분 나쁜 공간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자 업무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 팀장님, 검수하러 왔으니까 물품 빨리 보고 끝내죠. 빔 프로젝터 어디 있습니까?”

    “아아, 저기. 박스 열어보면 될 거야.”

    손가락으로 아직 개봉도 안 한 프로젝터를 가리키는 주지훈의 행동에 강백현이 목소리를 깔며 대응했다.

    “직접 열어주시죠.”

    “뭐?”

    “저희는 입회해서 검수할 뿐입니다. 지켜만 보는 입장이니까, 실 사용자이신 주지훈 팀장님이나 다른 주무관분들 중 한 분이 개봉하고 열어서 제 기능을 잘 하는지 확인해 달라 이 말입니다.”

    “나 참! 깐깐하네. 너 몇 살이냐?”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곧 갈 놈입니다. 저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백현은 고개를 돌리며 차우현에게 눈빛으로 지시를 내렸다.

    차우현은 개떡 같은 눈빛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며 공보대응담당 차수진 주무관에게 상자를 뜯을 것을 요청했다.

    “바로 개봉해주시고요. 전원 연결해주세요.”

    “네.”

    차수진은 남자 셋이 불편하게 굴자 당황한 표정으로 상자에서 제품을 꺼냈다.

    백현의 요구에 따라 프로젝터를 켜서 컴퓨터와 연결되는지, 잭에 이상은 없는지, 전원은 들어오는지, 렌즈에는 이상이 없는지, 낮에도 밝기가 괜찮은지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강백현은 차수진 주무관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다 의문을 품고 물었다.

    “조리개가 살짝 뻑뻑한 것 같네요. 다시 한 번 돌려보실래요?”

    “네. 여기 불량인 것 같아요. 일단 체크해 둘게요.”

    차수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노트북도 연결해보실래요? 회의실 연결할 때는 노트북하고 연결하셔야 되잖아요.”

    “네. 잠시만요.”

    RGB 포트만 있는 탓에 노트북과 호환이 되지 않는다.

    “아, 이거 교체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 요구조건에 노트북 연결용이라는 말은 없었으니 이걸로 교체한다고 하지 마시고, 조리개 불량으로 새 제품으로 교환한다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납품한 분께 바로 전화 드리죠.”

    “네.”

    백현의 말에 주지훈이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툭 하고 내뱉었다.

    “일단 업체하고는 교체한다고 제가 이야기할 테니까, 검수는 여기서 마무리 짓죠. 다음에 일정 잡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일단 지금 연락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강백현 주무관은 그만 가시죠. 우현아 고생 많았다.”

    강백현은 주지훈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제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검수할 때는 납품업자와 같이 해당제품을 확인하고 이상유무를 현장에서 바로 잡아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납품업자가 이미 가버린 상태니 제대로 된 검수가 될 리가 없었다.

    ‘뭐지? 뭔가 있어. 뭔가 있지?’

    “이거 물건 누가 받았습니까? 이런 건 제대로 확인 좀 하셔야죠.”

    차수진은 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님이 받으셨는데요.”

    “차 주무관, 내가 언제 받았다고 그래요?”

    “아니, 팀장님이 한 시간 전에 직접 받으셨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검수관 입회해달라고 연락 하라고 하셨고요. 저 이렇게 메모도 해두었는데요? 전화기록도 있어요.”

    차수진이 자신이 적었던 3M 메모지를 꺼내고 전화기록도 꺼낸다.

    강백현은 차수진 주무관도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부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업무를 할 때 자신과 주변 사람의 행동을 강박적으로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다.

    무언가 있다.

    강백현은 제품을 일련번호부터 다시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해당 제품의 라벨이 조달청에서 낙찰된 제품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만요. 일련번호가 다르네요. DX4144인데요?”

    “네?”

    “낙찰된 제품번호는 DX4145였습니다. 그런데 DX4144로 적혀 있잖아요. 아예 제품이 다른 게 왔네요. 빨리 전화해서 오시라고 연락하세요.”

    “네.”

    차수진이 바로 물품 납품업자에게 전화를 걸자, 납품업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주지훈 사무관님 연결해주세요. 따로 이야기할게요.

    “네? 아니, 제품이 다르다니까요.”

    - 네. 그거 관련해서 주지훈 사무관님하고 이야기할게요. 제품 스펙은 동일한 제품이고요. 4145 제품이랑 크기만 조금 다르거든요. 조달청 요구조건도 다 맞춘 동일한 스펙 제품이고요.

    강백현은 스피커폰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고 DX4144의 인터넷 최저가를 알아보았다.

    146만원. DX4145과는 무려 23만원 차이.

    업자의 말은 일부 맞았다. 스펙은 동일하지만 다른 부분은 바로 무게였다.

    4.9kg짜리와 3.1kg의 차이.

    그 무게의 차이로 23만원 차이나는 제품이 되는 것이다.

    강백현은 주지훈의 인상이 구겨진 것을 확인했다.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확실하다.

    납품업자와 주지훈 팀장과 뭔가가 있다.

    그때, 차수진 주무관이 하나 더 말했다.

    “어? 팀장님, 그 전에 쓰던 빔 프로젝터는 어디다 놓으셨어요?”

    “뭐? 그 이야기를 지금 왜 꺼내요?”

    주지훈이 당황한 채 차수진 주무관의 옆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툭툭 찌르자, 차수진이 정색하며 되물었다.

    “3년 동안 잘 쓰던 프로젝터 있잖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잘 썼었는데.”

    “나도 모르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우현아, 너희 팀장 모시고 돌아가. 내가 다시 정리해서 복주한테 처리해달라고 할게.”

    그의 말에 차수진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빔 프로젝터 어제까지 있었는데. 도난당한 거 아니에요?”

    눈빛으로 SOS를 호출하는 그녀. 이를 확인한 백현이 씩 웃으며 확실한 태도를 취했다.

    “도난 당했나보군요. 경찰에 신고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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