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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4화 (124/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4화

    부지사를 부른 도지사는 백현의 의견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단하네요. 이게 백현이가 낸 의견이라고요?”

    “강 팀장을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부지사는 강백현과의 친분을 묻는 도지사의 질문에 당연한 듯 대답했다.

    “아, 예. 그렇습니다. 백현이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인재 중 하나지요.”

    바로 앞에 있는 강백현이 머쓱한 얼굴을 하자, 도지사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렇단 말이지. 부지사가 인정할 정도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강백현은 도지사의 말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자신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 인정한다는 말에 수반되는 부담감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을 텐데, 부지사님께서 너무 좋게만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자네를 한 번 평가해보겠네. 강 팀장. 내일까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대응방안 구체적으로 모색해서 가져오게. 우리 공보대응팀과 비교해서 자네의 역량을 확인해보겠네. 물론 자네의 역량은 인사평가에도 반영된다는 것 잊지 말게. 부지사, 반영할 거지?”

    “그럼요. 곧 인사평가 기간이니까요.”

    부지사의 말에 강백현은 더욱 부담이 커졌다. 인사 평가에는 공무원의 승진이 걸려 있다. 자신에게 인사평가를 매기는 사람은 바로 고태준 실장과 부지사.

    도지사가 자신의 평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도지사를 따르는 부지사와 실장은 자신의 행보를 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권한이 있었다.

    “백현이, 잘할 수 있지?”

    “강 팀장은 잘할 겁니다. 공보대응팀보다 더 잘 만들어올 걸요?”

    부지사와 실장의 기대에 강백현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도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 해보게. 혹시 알아? 이번 일로 내 직속 라인으로 들어올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강백현은 고민 끝에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만족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래? 잠시만.”

    도지사가 전화를 들어 비서실장과 통화를 한다.

    “비서실장.”

    - 네. 도지사님.

    “공보대응팀장 바로 올라오라고 해. 급하게 지시할 게 생겼네.”

    - 알겠습니다.

    * * *

    도지사실에서 사무실로 돌아온 강백현의 마음은 후회뿐이었다.

    ‘아이구~ 이 오지랖.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지만 인사평가가 달려있다는 말도 있으니 여기서 발을 뺄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공보대응팀의 준비 자료.

    같은 자료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을 게 분명하니 결국 그들보다 일을 잘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백현은 밤새 관련 자료를 뒤적였다.

    청와대부터 인권위원회, 그리고 언론대응팀의 활동자료까지.

    그들의 자료를 확인하고 분석한다.

    오후 6시 퇴근시간.

    차우현 주무관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현에게 물었다.

    “팀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먼저 퇴근하십시오. 전 오늘 야근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제 2월까지 바쁜 일은 없을 텐데요.”

    “도지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지시하신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십쇼.”

    “아 잠시만요. 수산물축제 사고 대응방안? 이 문서를 왜 팀장님이 만드십니까?”

    컴퓨터를 들여다본 차우현의 질문에 강백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습니다. 괜히 도지사님께 대응방안 말씀드렸다가 문서로 작성하라고 지시하시는 바람에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태천군에서 발생한 그 수산물 축제 말씀하시는 거죠?”

    “네.”

    “잠시만요. 제가 형한테 전화 좀 해볼게요.”

    “형이요?”

    “네. 친형이 태천군 어민협회장이거든요.”

    “그래요?!”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 도지사는 공보대응팀이 작성한 문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응팀장, 자네 의견은 일을 크게 벌리지 말자, 이 말인가?”

    “네. 예산삭감까지는 좋은 대응이라고 보이나, 그것을 언론 인터뷰로 활용하는 것까지는 결코 좋은 대응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상인, 어민협회의 반발 가능성이 제로도 아닐뿐더러, 그들과의 커넥션이 없는 상황에서 도지사님이 선뜻 나선다면 그건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려는 의도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행동이 될 거라고 봅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자네는 공보대응팀에서 몇 년이나 일한 거지?”

    “7년 정도 했습니다.”

    “그렇군. 꽤나 안정지향적이야. 좋아. 알았네. 나가보게.”

    도지사의 말에 만족한 얼굴을 한 공보대응팀장이 도지사실을 나가서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감사실에서는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아직 보고 안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많이 긴장하셨겠네요.”

    “그럼요. 아무리 그래도 감사실한테 저희하고 같은 지시를 내리시다니요. 자존심 많이 상했습니다. 저희가 이 업무만 중점적으로 하는데, 저희를 믿지 못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사실에 새로 온 젊은 팀장을 평가하는 겁니다. 부지사님이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그 친구를 계속 어필하고 계시거든요. 도지사님도 좋은 인재를 구하고 싶어하시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만,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네. 고생하셨어요.”

    공보대응팀장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3층 도지사실에서 2층 자신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1층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

    ‘어? 그 친구잖아.’

    어제 도지사님의 뜬금없는 지시에 강백현 팀장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수석으로 합격하고, 공무원교육원도 수석으로 수료한 강백현 팀장의 활약.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그걸로 모든 업무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하루 만에 되겠어?’

    그래서 물었다.

    “강백현 팀장, 처음 봐요. 공보대응팀장 주지훈입니다.”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손님이 있어서, 잠시 한눈을 팔고 있었습니다.”

    “손님이요?”

    “아, 네. 손님분들이랑 도지사님 뵈러 가는 중이거든요.”

    강백현의 뒤쪽에 차우현 주무관과 일반인들이 보인다.그들이 떼거지로 도지사실로 향하자 주지훈 팀장은 궁금한 나머지 자신보다 어린 차우현에게 물었다.

    “우현아, 뒤쪽에 누구셔?”

    “아, 넵. 태천군 상인협회장님하고 어민협회장, 그리고 부회장님들 잠시 모셨습니다. 실례지만 조금 바빠서요. 선배님,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지사실에 들어온 태천군 상인협회장과 어민협회장, 그리고 부회장 둘.

    그들은 도지사와 악수를 나누며 얼굴이 환해졌다.

    “도지사님, 이렇게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천 군수는 저희를 피하기만 하는데, 차까지 보내주시고 자리도 마련해주시다니요.”

    “하하하, 아닙니다. 악수도 했으니 앉으시지요. 얼마나 억울하셨으면 시위까지 하셨겠어요. 그 어려움을 공무원들이 몰라주니 저도 근심이 깊을 따름입니다. 구체적으로 상인협회, 그리고 어민협회에서의 어려움은 어떻게 되십니까.”

    도지사가 직접 협회장 및 협회부회장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강백현과 차우현은 뒤쪽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도지사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도지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공감해주었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태천군의 공무원, 그리고 군수와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도지사라는 역할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설명해주었다.

    “아시다시피 도지사라고 해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민분들에게, 그리고 상인분들에게 강압적으로 가격을 내리라고 하는 지자체의 횡포는 절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지요. 당장 올해 지원된 예산 중 아직 사용되지 않은 금액은 전액 회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조형물 업체는 물론 조화, 생화 등을 납품하는 업체와 공무원 간의 커넥션 부분도 확실히 확인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축제를 마냥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니고요. 가격 일괄 통제 같은 정책을 할 땐 보전금 같은 걸로 지원해주시면 저희도 가격 할인해서 많이 팔아 좋고, 축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협의가 안 되었기 때문에 저희가 뿔이 나 있는 상태인 거고요.”

    “그래요? 그런데 그것을 세금으로 지원하면 국민들의 반발이 예상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좀 더 고민이 필요하겠는데요?”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백현이 손을 들었다.

    “도지사님, 그 부분은 지역행사 입장료로 보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축제 기간 상가별 매출규모에 따라 수산물 축제에서 얻은 수익금을 일정부분 배분하면 상인들도 부담 없이 할인에 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입장료라, 수산물 체험행사나, 해양영화 상영에 따른 수익금으로 대체하자는 말이지?”

    “네. 그런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 상인들의 적자보전에 보탤 수 있다면 수산물 가격도 안정화시킬 수 있고, 행사 활성화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조형물이나 조화, 생화를 한다고 특정 업체에 몇 십억씩 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그 돈을 수산물 가격 안정에 투자한다면 축제가 더 활성화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 아무튼 하루하루 생업에 바쁘실 텐데 도청까지 직접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도지사의 말에 황송한 표정을 짓는 4명.

    “식사는 제가 대접해드려야겠죠? 점심식사 같이 하실 시간되시죠?”

    “네. 됩니다.”

    “오셨는데 사진 한 번 찍으시죠. 비서, 공보팀 철우 올라오라고 해.”

    - 네. 도지사님.

    문제를 회피하고 대화를 차단한 태천군 군수 덕분에 도지사의 이런 행동은 더욱 더 빛이 난다.

    미국과 핀란드, 기타 유럽 선진국에서는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듣고, 주민을 위한 정책들도 많이 쏟아진다.

    반면 대한민국은 달랐다. 국회의원도 그렇고 자치단체장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이지 지역을 위해 움직이진 않았다.

    물론 이번 도지사의 행동도 자치단체장 대선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활동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했다.

    특정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

    그게 정치적 목적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런 정책을 원한다.

    도지사가 강백현을 불렀다.

    “백현아, 너도 식사 같이 하자.”

    “네. 저희 차우현 주무관도 참석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여기 어민협회장님이 차우현 주무관 친형님 되시거든요.”

    백현의 말에 도지사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 그래요? 아니, 어민협회장님,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동생분이 도청 공무원이라고 하셨으면 제가 더 빨리 이런 자리 마련하고 도움 드렸을 텐데. 차우현 주무관도 같이 식사하죠.”

    차우현이 도지사의 말에 감격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도지사와 처음으로 같이 하는 식사 자리.

    도지사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7급 공무원에겐 평생에 한 번도 힘든 경우였다.

    차우현이 식사를 하러 계단을 내려가며 강백현에게 말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가시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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