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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3화 (123/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3화

    태천 군수가 당황하자, 어민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군수님, 들어보세요. 축제도 축제인데, 어획량도 생각을 하셔야죠. 안 잡힌다고 금어기를 없애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대구를 예로 들어봅시다. 예전 같으면 1월 15일부터 2월 14일까지 한 달 정도 금어기를 했단 말이에요?”

    “네.”

    “그런데 지금 수산물 축제 몇 년 해오고 있습니까?”

    “10년째지요.”

    “10년 동안 금어기 없이 어획량이 남아나겠어요?”

    어민들의 불만에 태천 해안수산과장이 나섰다.

    “아니, 어획량이 줄어들면 알아서 줄이시면 되잖아요. 어촌계장님이 그런 말씀 안하세요? 어촌계장님 어디계세요?”

    해안수산과장은 세 달간 준비한 수산물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어민들의 대표인 어촌계장을 찾았다. 그러자 서면 둔도리 어촌계장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예. 누가 날 찾아요?”

    “아니, 어촌계장님, 지금 축제 막 시작하는 날, 이렇게 행사 방해하면 되겠습니까? 빨리 통제하세요. 그리고 계란 던진 사람 빨리 군수님 앞으로 데려와서 사과시키고요.”

    해안 수산과장은 강하게 나갔다. 사실상 기싸움.

    여기서 지면 자신에게 문책이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시장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고 이 상황을 수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촌계장은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아니, 우리 어민들이 오죽하면 그렇겠습니까? 금어기가 없어지니 개똥이 소똥이 나 나가서 싸그리 잡아오는데, 수산물이 제대로 잡히겠습니까? 벌써 10년입니다. 그런데 뭐요? 작년보다 30% 가격을 내리라고요?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네.”

    어촌계장의 불만에 해안수산과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누구 머리?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고, 이제까지 전혀 문제없이 진행되었던 사항을 왜 지금 와서 이러냐고요. 그것도 축제 첫 날! 당신들 돌았어? 미쳤어? 눈에 뵈는 게 없지? 돈 밖에 모르지?”

    “아~ 이 사람 말이 안 통하네. 다른 사람 없어? 군수! 네가 와서 얘기 좀 해. 어?”

    “군수가 네 친구냐? 친구냐고!”

    “넌 끼어들지 말고 인마.”

    “하아, 답답하네. 김 주무관, 오 주무관, 너희들이 상대 좀 해.”

    “아… 네.”

    해안수산과장은 자신의 밑에 있는 직원에게 응대를 맡겼다.

    강백현은 점점 논란이 커져가는 중에 한숨을 내쉬며 태천 군수에게 다가갔다.

    “군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도청 감사실에서 나온 강백현입니다.”

    “도청? 아 네. 제가 지금 좀 바쁜데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요?”

    태천 군수는 곤란한 상황을 수습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백현은 지금 이 상황에서 수습이 될 거라 보지 않았다.

    이미 축제를 망칠 작정을 하고 나온 어민들. 30여명이나 나와서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들의 불만이 머리끝까지 쌓였다는 것.

    “군수님, 일단은 자리 피하시고, 축제 연기하시죠. 도지사님은 이미 상황 파악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도지사께서… 보셨나?”

    “네. 일단 저희 공무원들의 잘못이고, 이제 막 군정활동 하시는 군수님 잘못은 없으시니, 일단은 어민분들부터 진정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강백현의 말에 방금 전까지 어민들에게 큰 소리를 치던 해안수산과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군수님, 오늘부터 관광객들이 몰려들 텐데 행사를 취소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일단은 리본 커팅식 진행하시고 예정대로 밀고 나가시죠.”

    태천군수는 처음 겪는 위기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다른 과장들은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대로 진행하시는 게 낫겠습니다.”

    “네. 매번 하던 행사고, 그대로 진행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안수산과장과 친분이 있는 과장들은 강백현 대신 수산과장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러자 수산과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소리쳤다.

    “당신들! 한 번만 더 소란 피우면 경찰 부를 겁니다. 공무집행 방해죄인 거 아시죠? 네?”

    태천군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과장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많진 않지만, 가끔씩 겪습니다.”

    “그렇군요. 이게 맞는 행동이겠지요?”

    “네. 해안수산과장이 이 분야는 베테랑이기 때문에 잘 해결할 겁니다.”

    태천군수는 행사에 참석한 과장들의 말에 자신감을 가진 채, 백현에게 말했다.

    “도에서 나와 주신 건 정말 고맙고요.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그만 가 봐요.”

    “네. 알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한쪽에서는 커팅식을 치르며 태천 수산물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어촌 계장을 비롯한 어민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공무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수산물 축제는 수산물의 가격을 일괄 30% 할인해서 판매하는 행사. 싸다는 소문에 인파가 몰려 대형축제로 거듭날 수 있었기에 주변의 상인들도 몰려왔다.

    공연장에는 이름 모를 가수들의 공연이 계속되고 있고, 상당한 금액을 쓴 게 틀림없는 다양한 조형물과 조화들이 띠를 이루며 배열되어 있었다.

    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조형물에 조화까지? 도대체 세금으로 얼마를 쓴 거야?’

    부주시랑 별반 다를 것 없는 태천군.

    거기에 강압적인 해안수산과장과 그에 동조하는 동료과장들까지.

    그나마 군수는 전 부주시장과 달리 대화라도 통했으나, 상황판단능력이 떨어지는 듯 밑에 있는 과장들에게 끌려 다녔다.

    ‘잘 해결되면 좋을 텐데….’

    다행히 인파는 많이 몰렸다.

    시민들이 찾는 축제현장.

    평소에는 수산물 시장인 이곳이 축제라는 이름에 맞춰 작년 대비 30% 일괄 할인에 들어가니 시민들로서는 당연히 기대하고 방문했을 터.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수산물 시장에 한기가 감돈다.

    “냉동대하인데 킬로그램당 35000원이요? 가격 왜 이렇게 비싸요? 축제라서 할인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 잘 안 잡혀서요. 전체적으로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아니, 광고 이렇게 해놓으시고 이런 가격에 파시는 게 어디 있어요?”

    “그거 태천군에서 한 거지. 저희가 하자고 한 적 없습니다.”

    광어 1kg에 3만원, 모듬 조개 3kg에 4만원, 농어 도미는 1kg에 4만원.

    평소 2~2.5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시세보다 1.5배는 오른 가격.

    수산물뿐만이 아니다. 새우, 건어물, 수산물을 이용한 튀김류 또한 마찬가지다.

    “가격 봐라! 미쳤다! 이게 축제고? 아이고마. 미~치겠다. 이거 바가지다 바가지. 생선 봐라. 저리 비실비실한기고, 여기 상인들 다 미쳤다.”

    경상도에서 온 손님은 포항, 부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불만을 토했고, 어민들 또한 불만이 극에 달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사려면 그냥 가요.”

    * * *

    백현은 도청에 돌아와 고태준 실장에게 현 상황을 전했다.

    “확인해보니까 어때?”

    “무리하게 축제를 진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왜? 매번 하는 축제였잖아.”

    “농사에도 풍년이 있고 흉년이 있듯 바다의 해양자원도 넘쳐날 때가 있고 기근이 있을 때가 있는데, 최근 10년 동안 축제를 이어가며 무리한 남획을 하니 결국 해양자원의 부족을 야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쉽게 말해 봐.”

    “수산물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중입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태천군에서는 작년보다 30% 가격 다운시키라며 시장 논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고, 그 가이드 라인대로 따를 수 없는 상인들은 시장가격을 고수하다보니까 관광객들도 불만이고, 상인들도 불만이고, 태천군 또한 골머리를 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알았네.”

    고태준 실장은 바로 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백현에게 들은 상황을 전했다. 그러자 도지사가 단단히 화가 난 말투로 두 사람을 호출했다.

    “강 팀장.”

    “네. 실장님.”

    “도지사님이 호출하셨다. 같이 들어가지.”

    “네. 알겠습니다. 저 잠시 참고자료만 챙겨가도 되겠습니까?”

    “참고 자료? 무슨 참고 자료?”

    “지역 축제 관련 연구 논문 자료입니다.”

    “그러지.”

    도지사실.

    고급스러운 목재로 장식된 20평 규모의 넓은 공간.

    도지사와 고태준 실장, 그리고 강백현 단 셋만이 의자에 앉아 있다.

    도지사는 고개를 저으며 고태준에게 물었다.

    “현도가 군의원에서 올라온 건가?”

    “네. 태천군의원 하다가, 이번에 군수로 당선되어서 올라왔습니다.”

    “그놈 말이야. 군정활동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뭘 어떻게 했길래 계란에 맞아?”

    도지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친분이 있는 사이인 군수를 돕고 싶은 것 같았다.

    “행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도지사의 질문에 고태준이 현재 파악한 상황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일단 24시 YXN뉴스에 현재 어민들 농성하는 부분이 방영되었습니다. 일단 태천군에서는 어민들과의 일이 해결될 때까지 언론사에 엠바고 요청했으나, 화문일보에서 먼저 기사를 내보내자 지금은 모든 언론사에서 같은 내용을 내보내고 있어 초기대응에는 실패한 모양입니다.”

    “후우, 하인리히 법칙을 생각 못했구만.”

    하인리히의 법칙.

    한 개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300개의 작은 조짐과 29개의 큰 조짐이 보인다는 법칙.

    도지사가 공무원 교육에서 단골로 나오는 법칙을 언급하자 고태준과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는 건가?”

    도지사의 권한과 군수의 권한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도지사가 하라는 대로 시장이나 군수가 따르는 맹목적인 상하관계가 아니기에 고태준은 나름대로 설득을 해보려 했다.

    “전화를 걸어서 축제를 중지시키라고 전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건 이미 해 봤지. 근데 계속 해보겠대. 자기 첫 임기 중 첫 축제라서 이대로 멈출 수가 없다네. 답답해. 진짜 답답해.”

    이미 언론까지 제보가 나간 상황에서 도지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군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역사회와 어민들, 그리고 관광객과 시청자들의 비난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강백현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도지사님.”

    “그래. 무슨 좋은 생각이 있나?”

    “아닙니다. 축제행사를 개최하고 마는 것은 전적으로 군수 고유의 권한이므로, 태천군수가 축제를 강행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막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히려 도지사님께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도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지? 우리 도에서 일어난 일이네.”

    “이번 수산물 축제에 저희 도 지원예산이 11억이 나갔습니다. 수산물 축제로 계획된 예산이 총 19억이었는데, 도 지원예산이 11억이었고 군 자체예산이 8억이었죠. 태천군은 재정 자립율이 25%밖에 안 되는 적자도시입니다. 그런 상황인데 이쪽의 예산을 줄이면 태천군은 많은 타격을 받겠죠.”

    “그렇게 되면 사람을 잃지 않나. 안 그래도 그 친구는 같은 정당인데…….”

    “맞습니다. 예산을 줄이면 앞으로 같은 정당인 태천군수와 그 비호세력으로부터 정당 내 지원을 받기는 확실히 힘들어질 겁니다. 그러나 삭감에 그치지 않고, 해당 내용에 대해 도지사님이 언론에 인터뷰를 하시면 어떨까요? 『일부 군의 무리한 축제와 예산낭비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따라서 저희 충청도는 앞으로 태천군 수산물 축제의 도 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요. 아마 이런 행동 하나가 일반 국민들에게 도지사님의 이름을 알리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후보 8위이신 도지사님께는 좋은 기회이지 않겠습니까?”

    강백현의 대선후보란 말을 꺼내자 도지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한편, 고태준 실장도 빙그레 웃으며 말을 보탰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도지사님도 여기에서 안주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정도 리스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런가? 부지사, 부지사 불러주게. 부지사하고 의논 좀 해보고 진행토록 하겠네.”

    “네. 도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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