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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0화 (120/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0화

아침 9시, 백현은 자신이 늦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오늘은 일요일. 그러나 일어난 곳은 공교롭게도 김성현의 방이다.

‘어휴~ 나도 미쳤지. 여기서 잠을 잘 생각을 다 하고.’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네. 회장님, 곧 나갑니다.”

강백현이 당황한 얼굴로 주춤주춤 바지를 입고 문을 열자, 그 자리에는 회장 대신 박창현 비서가 굳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백현아, 사모님이 너 깨우라고 해서 왔다. 근데 너 진짜 대담하다. 어떻게 여기서 잘 생각을 했냐?”

“아, 어쩌다보니. 이제 가봐야죠. 회장님하고 사모님은 어디 가셨어요?”

“골프 라운딩 있어서 같이 나가셨어. 성한그룹하고의 일이라고 하니 안 나가실 수 없으셨겠지. 아마 그룹 매각 관련 미팅일 거야.”

“성한그룹이요? 그 고기웅 본부장 회사?”

“그래. 아무튼 일어났으면 차에 타라. 집까지 태워 줄 테니까.”

“아니에요. 버스 타고 가면 돼요.”

“회장님 명령이야. 거부하면 내가 곤란하니까 타.”

박창현의 차를 타고 부주시로 내려가는 백현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성한그룹하고 왜 이렇게 거래를 하시는 걸까요?”

“회사를 위해서지. 1만명은 족히 일하는 회사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 봐. 그 파급력은 어떻게 할 거야?”

“회사를 정리한다면 다른 곳도 많잖아요. 메리야트 그룹을 탐내는 곳이 한 곳도 없을까요?”

“많이 있지. 하지만 성한그룹처럼 자금이 많은 회사는 그리 많지 않거든.”

“그것 참 고민이네요. 회장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만.”

백현은 고민을 접어두고 박창현에게 말했다.

“박 비서님, 저 주소 여기에서 내려주세요.”

“어? 여긴 왜?”

“오늘 일요일이라 봉사활동 해야 하는 날이거든요.”

백현은 웃음을 머금었다.

오늘은 윤수랑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이제 11살이 된 윤수.

얼마 전 휴대폰을 선물해 준 이후 항상 신이 난 녀석이다.

“박 비서님, 감사합니다.”

“그래. 근데 너 하나만 묻자. 너 아가씨랑 진짜 사랑하는 거 맞냐?”

“네. 맞습니다.”

“크크, 이제 뭐라고 불러야 되나. 호칭을 바꿔야 될 것 같은데.”

“그냥 처음 만난 그대로 부르시면 돼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 인마. 아무튼 이왕 만나는 거 잘 해봐!”

“감사합니다.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강백현은 차량에서 내려 곧바로 보육원 시설로 들어갔다.

이미 봉사활동하는 아주머니들이 떡국 만들 준비에 한참이다.

“백현이 왔어? 그 여자는?”

“아~ 지금 프랑스에 있어요.”

“재벌인가 뭔가더만. 디자이너 선생이라고.”

“네. 그렇네요.”

“으이구~ 잘 해봐! 빨리빨리 결혼했으면 좋겠구만.”

아줌마들이 별의별 말을 다 해댔다.

백현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 보통은 봉사활동 나오신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함께 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저희 엄마 아빠 못 보셨어요?”

“원장님이랑 윤수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네? 원장님이랑요?”

백현은 윤수 관련 이야기라는 말에 곧바로 원장실로 달려갔다. 그러자 백현의 엄마와 아빠가 자리에 앉아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보며 원장과 상담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백현이, 왔니?”

원장의 말에 강백현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네 원장님. 엄마, 아빠랑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하세요?”

“아, 별건 아니고 윤수가 입양이 안 된 상태잖아. 그래서 그 문제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백현은 원장실 앞에 놓인 입양관련 서류 목록이라고 출력된 종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윤수 입양하시려고요?”

“아니, 우리가 입양하는 건 아니고.”

“그럼요?”

“너희 아빠가 윤수한테 도움 되고 싶어 해서 무슨 방법이 없나 이야기하다가 말이 나와서 원장님하고 얘기하던 도중에 네가 온 거야.”

백현은 입양을 하는 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윤수가 행복하려면 우리 집이 아니라 더 잘사는 집안에 가야 한다.

입에 풀칠하는 게 겨우인 우리 집에 와봐야 과외도 못 시켜주고 학원도 제대로 보내줄 수 없다.

물론 윤수가 싫은 것은 아니다.

가족들 모두 윤수가 어릴 때부터 자라는 과정을 지켜봤기에 윤수를 대하는 마음이 애틋한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입양은 현실 문제.

더구나 이제 50대 후반인 엄마, 아빠가 11살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다는 것은 사회 통념상으로도, 윤수에게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기에 백현은 입양만큼은 아니기를 바란 것이다.

“입양 가능성이 없는 건가요?”

“전에 말했다시피, 윤수 이마에 흉터 때문에 시기를 많이 놓친 것도 있고, 이제 11살이잖아. 가치관 형성이 이미 다 된 나이라 부모들이 입양하는 걸 꺼리는 나이라…….”

“그럼 원장님은 엄마랑 아빠가 윤수한테 어떤 도움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건데요? 꽤 오래 대화 나누신 것 같은데…….”

백현의 질문에 백현의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백현아, 미성년 후견제도란 게 있어. 윤수 같은 경우는 엄마가 세상을 떴고 아빠는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잖아. 그 젊은 엄마는 가족도 없었고 말이야. 그래서 친권자가 아닌 제 3자가 후견인이 될 수 있는데, 그걸 한 번 신청해볼 생각이야.”

“아빠가요?”

“그래. 저번에 아동학대 당한 것도 기억이 나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윤수 또래들은 다 입양됐는데 혼자 남아 쓸쓸하잖니. 이렇게라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윤수도 좋고, 우리도 좋고.”

“그러니까 윤수를 저희 집에 데려오겠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래. 시설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후견인이 되면 국가에서 지원금도 들어오기 때문에 윤수한테 더 많이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원장님하고 윤수, 그리고 백현이 너만 허락해준다면 우리가 윤수 성인이 될 때까지 후견인이 돼서 학교도 보내고, 학원도 보내주고, 일반 가정집처럼 챙겨줄 생각이야. 원장님, 믿어주시면 저희가 윤수 잘 돌볼게요.”

“백현이 엄마나 아빠야 10년 이상 뵌 분이니까 믿는데, 윤수가 어떻게 생각해줄지 모르겠네요. 백현이 넌 어때?”

“저야 뭐, 윤수가 저희 집에 온다면 좋죠. 제가 윤수 좋아하는 건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후후, 그래. 내가 윤수 따로 면담해보고 알려줄게.”

백현은 머슥한 표정을 지으며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았다.

항상 남과 더불어 사는 부모님 밑에서 살아온 백현에게도 후견인제도는 낯설었다.

과연 윤수가 좋아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백현의 눈에 윤수가 보였다.

“윤수, 형한테 인사 안 해?”

“응. 백현이 형. 잘 지냈지?”

“그래. 못 본 사이에 키 많이 컸네. 핸드폰 잘 쓰고 있어?”

“어. 완전 좋아.”

백현이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댄다. 어디 가?”

“원장실, 원장님이 불렀대.”

“그래. 들어가 봐.”

“응. 형도 연애사업 잘 되지?”

“크크크, 잘 된다. 아주 잘 돼.”

“알았엉.”

윤수가 신이 난 표정으로 원장실로 들어갔다.

백현은 윤수가 원장실로 들어간 사이 다시 떡국을 준비하기 위해 식당에 들렀다.

그러나 이미 다 완성된 떡국. 김가루만 솔솔 뿌리면 끝나는 상황.

“아~ 늦어서 죄송해요.”

“얼른 애들한테 떠 줘. 백현이가 그런 거 잘 하잖아.”

“네.”

강백현은 원장실에서 윤수와 엄마, 아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때, 윤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에게 다가왔다.

“형, 잠깐 얘기 좀 해.”

“응.”

“여기서 말고, 바깥에서.”

“아, 응.”

백현은 심각한 표정의 윤수를 보며, 자신의 엄마, 아빠, 그리고 원장님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이야기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윤수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얘기 해보라는 원장님이나 부모님의 표정이 조금 걸린다.

바깥에 나오자, 윤수가 뒷짐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형, 나 후견인이 뭔지 오늘 처음 알았어.”

“아-응.”

“그럼 나 형네 집에서 살아도 되는 거야?”

“네가 원한다면…….”

윤수가 백현의 대답에 신이 난 듯 말했다.

“형, 나 잘 할게. 빨래도 하고, 이불도 잘 개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 고마워. 형! 진짜 고마워.”

“바보. 뭐가 고맙냐? 그럼 윤수 너도 우리 집에서 사는 거 괜찮은 거야?”

“응! 당연하지. 입양 아니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 형네 집에서 살래. 형이랑 같은 방 쓰고, 같은 침대 쓰고. 같이 잘래.”

“바보, 우리 집 생각보다 넓어. 남는 방 하나 있으니까 거기서 자면 돼.”

“형네 집 부자야?”

“바보, 평당 300만원짜리 집이 뭐가 부자냐. 그리고 내 집 아니고 우리 부모님 집이야.”

“아무튼 나 기뻐. 형이랑 같이 산다니까 너무 좋아.”

“바보! 떡국이나 먹자.”

“응.”

강백현은 신이 나 어쩔 줄 모르는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떡국을 먹으러 방으로 향했다.

‘앞으로 7년인가.’

솔직히 이게 옳은 결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한 결정이고, 분명 자신도 원하고, 당사자도 원하는 결정인 것이다.

‘이제부터 많이 맞춰 가야겠지. 정식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에 준하는 관계니까.’

백현은 부모님의 결정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윤수가 받아들여줘서 정말 고마웠다.

“윤수야 많이 먹어.”

“응!”

백현은 작년과 비교해 보육원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윤수와 같이 놀던 친구들도 입양이 됐는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아이들도 여럿 보이고.

윤수는 어느덧 보육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다섯 안에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중, 고등학생인 것을 감안하면 초등학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단연코 윤수였다.

백현은 이제 가족이 될 윤수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엄마, 아빠, 잘 결정하셨어요. 그리고 윤수야.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 * *

한편, 성한그룹 회장을 기다리고 있던 김도한은 예기치 못한 소식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미 라운딩 준비를 하고 있던 김도한.

성현이의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구체적인 회생 계획과 자금 투여를 논의하려는 자리였는데 이것이 갑작스럽게 취소되었으니 당황하는 게 당연할 터.

- 김도한 회장님, 저희 회장님께서 갑작스럽게 병세가 나빠져 오늘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한그룹 비서의 말에 김도한이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다.

“어떤 병세신데?”

- 그게 신부전 문제라고 합니다.

“신부전? 손주 신장 받지 않았나? 그래서 완치 되신 것 아니었나?”

- 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나 이식받은 신장에 문제가 생겨 혈액 투석하러 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발하셨다 이 말인가?”

- 네. 그렇습니다.

“그래 이만 끊지. 회장님 곧 만나러 가겠네.”

- 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닐세. 연락 줘서 고맙네.”

김도한은 전화를 끊고 부인인 노진희에게 말했다.

“여보, 돌아가자.”

“무슨 일인데?”

“신장에 또 문제가 생기셨다네.”

“어머! 어떻게 해. 이식 받은 지 10년도 안 됐잖아. 왜 벌써 고장나?”

“뭘 어떻게 해. 회장님께선 손주가 2명이잖아. 기웅이가 이식하겠지. 그 집도 건강이 참 문제야. 그런 유전적인 문제는 없어야 되는 건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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