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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8화 (118/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8화

    인사위원회 결과는 최고수위인 파면으로 나왔다.

    공문 접수기록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고 불리한 상황을 회피로 일관하는 태도가 괘씸죄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파면?! 파면이라고 했어요?”

    부지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원들, 다 나가지. 간사가 잘 설명해줘.”

    “네. 부지사님.”

    차우현은 위원들과 위원장이 나간 자리에서 홀로 남은 김여린 주무관에게 향후 대응 방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소청위원회 통해서 청구하시면 됩니다. 말씀하신 재판 관련 부분 자료를 잘 취합하면 복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서는 파면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재판에서 지면요? 그럼 나 공무원 못해요?”

    “사실 재판과 관계없이 직무상 의무 위반 건 하나만으로 파면 결정이 난 터라, 뇌물 수수혐의가 무혐의로 판명이 나더라도 복직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떻게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 돼! 난 시장님하고 허가과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어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

    “…….”

    차우현은 그녀의 억지 주장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답답하네요. 팀장님. 저는 왜 팀장님처럼 시원하게 말을 못할까요?’

    * * *

    한편, 부지사는 위원들을 이끌고 자신이 자주 가는 다방을 찾았다.

    도청 바로 앞.

    마담이 반갑게 웃으며 공무원들을 맞이한다.

    “어머! 오빠, 이 시간에 웬일이야? 명수 오빠도 왔네.”

    “크크크, 명수 너도 여기 단골이냐?”

    “네. 형님.”

    강백현은 부지사와 다방에서 만난 일이 있었기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도청의 권위 있는 위원들과 친분을 다지는 부지사의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제발 정치에 관한 내용만 나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마담! 쌍화차로 다섯 잔 준비해.”

    “명수 오빠는 항상 꿀홍삼인데~”

    “오늘은 쌍화차로 해.”

    “알았어. 오빠들, 중간에 바꾸는 거 없어. 알지?”

    마담이 떠나고, 부지사는 강백현에게 어깨를 올리며 말했다.

    “다들 오늘 잘 봤지? 여기 백현이가 우리한테는 희망이다 이 말이야! 똑똑하지. 말 잘하지. 거기에 인물 훤하지. 우리 판에 이런 인재가 나올지 누가 알았겠냔 말이야.”

    강백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너 우리 쪽에서 제대로 키워주기로 합의 봤다. 서명만 해라.”

    “키워준다니요?”

    “우리 노조원으로 활동해.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들 너 키워줄 거다. 명수야. 안 그러냐?”

    부지사의 말에 대답하는 위원 중 하나. 그의 이름은 조명수. 기획조정실장.

    그가 씩 웃으며 백현의 오늘 행동에 대해 언급했다.

    “발언 죽이더만요. 역시 도지사님이나 부지사님이 매일 말씀하실 만합니다. 백현이 너 노조 아직 안 들어왔지?”

    “네. 실장님. 아직 노조 가입하진 않았습니다.”

    “너 기회 잡는 거야. 우리 쪽 들어와. 우리가 키워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부지사님, 얘 노조 가입 아직 안 했는데 말해줘도 됩니까?”

    “괜찮아. 이미 우리 편이야. 말해.”

    “이번에 초선 당선된 전광국 의원도 우리가 키워준 애고, 이번에 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장으로 간 형선이도 다 우리가 압력 넣어서 자리 만든 거야. 그리고 너도 우리 노조 가입하면, 우리 선배들이 지나간 자리대로 당연히 키워줄 거고. 너 정도 스펙에 외모 정도면 우리가 조금만 힘 보태면 의원도 결코 허상은 아니다. 하하, 부지사님, 제가 말이 너무 장황했습니까?”

    조명수의 말에 부지사가 씩 웃었다.

    “저짝 세력에 위협이 되면 될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기회가 생길 테지. 크크크, 부주시장놈 이번에 낙선 돼서 꽤나 시끄러웠다지?”

    “다 백현이 덕분이죠. 의석 하나 잃는 게 얼마나 큽니까. 덕분에 우리 충남은 저희 쪽이 거의 꽉 잡고 있습니다. 의석도 총 42개석 중에 17자리 빼고는 다 우리 쪽이지 않습니까. 원래 예상은 저희가 22, 저짝이 19, 무소속이 하나로 비등비등했는데, 백현이가 부주시 조져놓는 바람에 부주시 쪽에서 우리쪽 의원들 뽑느라 격차가 많이 벌어졌죠. 과반석 이상 확보한 건 다 백현이 덕분이라니까요.”

    “그래. 우리가 2/3이상 확보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말이야.”

    “4년 뒤에는 되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아무튼 백현이 오늘 네 모습 보고 우린 확신했다. 네가 노조에서 청년부장만 맡아준다면, 우리가 확실히 이끌어줄게. 오늘 가입 신청서 쓸 수 있지?”

    강백현은 그제야 오늘 위원들의 명단이 왜 그렇게 잡혔는지 알게 되었다.

    부주시의 구세력을 견제하려던 위원들.

    공무원 노조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세력끼리 뭉쳐서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은 결국 조직에 큰 혼란을 야기한다.

    물론 오늘의 김여린 주무관 징계는 그들과 목적이 같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들의 지향과 달랐다면 백현의 증거와 진술은 한순간에 묵살 당했을 것이다.

    “오빠~ 쌍화차 왔어. 나희랑 진희 오면 옆에 앉힐까? 오빠 나희 좋아하잖아.”

    “아니야. 오늘은 오빠들끼리 얘기할 거니까, 나중에. 마담! 이걸로 계산하고 남으면 팁!”

    부지사가 5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마담에게 건네자, 마담이 살짝 째려보며 말한다.

    “오빠, 쌍화차 6잔이면 4만8천원이야. 내 팁이 겨우 2천원이야?”

    “이년아, 네가 먹는 쌍화차는 계산 안 해? 네 주둥아리는 왜 계산 안 해?”

    “아~ 진짜! 말 좀 곱게 하징! 알았엉. 간식거리 필요하면 말해. 과일 같은 거는 깎아서 올 테니까.”

    “됐어. 겨울에 무슨 과일이야. 나가봐!”

    마담이 삐진 표정을 지으며 방 밖으로 나가자, 강백현은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한 다섯 명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강백현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노조의 가입.

    정치적 색채가 묻어나는 탓에 꺼림칙한 모임.

    그들이 원하는 바는 대한민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이끄는 것.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 무색하리만큼 노조의 활동은 너무나 삐뚤어져 있다.

    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차단했던 전화번호를 애써 기억해냈다.

    최현희. 여당의 실세 중 하나, 최장철 국회의원의 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네. 백현 씨.

    “현희 씨, 먼저 최장철 국회의원 5선 축하드립니다.”

    - 고마워요. 그것 때문에 전화주신 건가요?

    “아니요. 사실은 아버님하고 자리 마련해주신다고 했는데 미뤄진 후 한 달이 지나서요. 언제 가능한가 싶어서요.”

    - 무슨 일이시죠?

    “제안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입법 관련 내용입니다.”

    - 입법이요?

    “네. 야당 세력을 두둔하는 공무원 노조의 정치적 야합을 막기 위한 입법 내용입니다.”

    - 알았어요. 말씀드려볼게요.

    * * *

    며칠 후, 강백현은 서울 종로의 한 한정식 집에 들어갔다.

    세미 정장을 입은 최현희가 정장 차림의 강백현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한 건 하셨네요. 백현 씨, 기사 봤어요. 수습기간인데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최현희는 아빠가 탐내는 남자를 자세히 살폈다.

    고압적이고, 자신에게 선을 긋는 남자. 달콤한 제안조차 거부하는 그는 과연 청렴한 자인가 아니면 반대세력인가. 이를 구분할 수 없었던 최현희였지만 의문이 풀린 것은 지난 백현의 말 때문이었다.

    “먼저 만나자고 한 건 처음이었네요. 무슨 심경의 변화였어요?”

    “네?”

    “백현 씨 극구 부인했었잖아요. 처음부터 그쪽 세력이라고 말했다면 이렇게까지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아무튼 지금은 아니라니 안심이네요.”

    “뭘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어느 쪽 세력도 아닙니다.”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야당 세력을 두둔하는 공무원 노조의 정치적 야합을 막기 위해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기억 안 나요?”

    강백현은 최현희의 치우친 정치논리에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야당을 지지하든 여당을 지지하든 그건 상관없다. 그러나 한쪽의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사고가 유연하지 못했다. 그건 부지사를 비롯한 공무원 노조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들어가죠. 본론은 의원님께 말씀드리도록 하죠.”

    “그래요. 어차피 저도 그 자리에 같이 있을 거니까 그때 듣도록 할게요.”

    한정식집.

    한 사람당 54,000원짜리 음식을 시킨 상태.

    백현은 세 명의 음식값을 미리 지불하고 최현희의 아버지를 기다렸다.

    수행원과 함께 들어오는 최장철 국회의원. 그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딸을 챙겼다.

    “현희야. 이 친구가 그 수석한 백현인가?”

    “네. 백현 씨, 인사드려요. 저희 아버지세요.”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강백현입니다.”

    “그래. 내가 자네를 꼭 만나보고 싶었어. 현희한테 듣자하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 정치적 야합을 하는 공무원 노조를 막고 싶다?”

    “네. 먼저 식사 하시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약주 한 잔 괜찮으실런지요.”

    “좋지. 때마침 오늘 이후일정은 없으니, 약주 정도는 괜찮겠지. 여기 일품소주로 갖다 주지.”

    일품소주가 나온 후, 한 잔 올리며 강백현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를 청년 비례대표로 영입하고 싶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후, 그건 자네 하기에 달렸지. 내가 꽂는다고 바로 꽂히는 게 아니야. 이미 자네는 저짝 편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으니, 우리 내부 당원들을 설득하려면 시간이 걸리지. 다만, 나도 자네에 대한 조사는 끝냈네. 확실히 어느 당을 지지한 적은 없더군.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주장한 적도 없었고 말이야. 지금이라도 우리 쪽의 루키가 될 생각이 있다면 바닥부터 키워줄 생각은 있네.”

    “시간이 걸린다는 말씀이네요. 다만 전 청년비례대표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하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게 목표도 아니고요. 전 정치에 욕심이 전혀 없으니까요.”

    “하하하,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들 말하지.”

    “전 진심입니다.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야당을 지지하는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나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최장철은 잠시 고민한 뒤,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우리 여당을 지지하는 노조를 적극 지원할 생각이네. 창립멤버로 점찍어둔 사람들도 있으니, 우리 세력도 곧 커지겠지. 자네가 생각한 대책은 뭔가?”

    “그건 너무 늦습니다. 지지하는 세력을 구축하는 것도, 그것을 통제하는 것도 결국엔 일이죠. 저에게 또 다른 방안이 있습니다.”

    “설마 노조를 해체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자네가 말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사안은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노조를 해체한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더군. 그건 쉽지가 않아. 공무원 노조라는 게 정치적 의도만 빼면, 결코 나쁜 방안은 아니거든. 공무원도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행복권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주장할 권리가 있네. 공무원 역시 국민 중 한 사람이니까 말일세.”

    강백현은 최장철 국회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더구나 2006년 공무원 노조법 시행 이후 노조의 세력은 더 커져만 갔죠. 10년이 지난 지금 공무원 노조를 해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반발이 예상되므로, 그냥 놔두는 게 현재로서는 이롭겠죠.”

    “이롭다?”

    “공무원 노조의 설립 이유는 바로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기본권 보장이었습니다. 그러한 노조의 활동으로 공무원의 연봉은 10년 전과 비교해 무려 60% 이상 상승했습니다. 10년 전에는 대기업의 60% 임금 수준이었던 것이 지금은 대기업의 95% 수준에 이르고 있죠. 대한민국은 공무원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간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합니다. 또한 현재에도 100만명 이상의 공무원이 대한민국에 존재합니다. 그들의 표를 잃는 것은 결코 여당에 좋은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강백현의 입에서 정치적 분석이 흘러나오자, 최현희와 최장철 의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꽤 거시적 분석을 하고 있군. 분명 설득력이 있어.’

    하지만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자네가 이야기하는 입법은 뭔가?”

    “제가 말씀드리려 한 것은 바로 간부급 이상의 노조가입 제한입니다. 입법으로 이것을 막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부급?”

    “네. 공무원들은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공공성과 중립성이 요구됩니다. 그런 원칙에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간부급인 5급 이상의 공무원들입니다. 그들의 정치적 견해는 곧 국가의 정책이 됩니다. 그들의 노조활동은 결국 한쪽의 논리로 치우치게 되고, 그것은 공공성과 중립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간부들은 6급~9급 공무원들을 징계할 수 있는 인사위원회의 위원들입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한 영향력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공무원 노조에 소속되어 활동한다면 그들의 의견이 다수의 일반적인 논리를 배제하고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되고요.”

    “후후, 재밌는 발언이군. 그럼 우리도 그렇게 이용하면 되지 않나?”

    최장철 의원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걸려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면 여당의 지지자들이 더할 나위 없이 늘어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이쪽보다 유리하다면, 이쪽을 비슷하게 끌어올리는 것보다 상대방을 같은 위치로 끌어내리는 게 더 쉬울 겁니다. 더구나 간부급 이상의 가입만 제한한다는 논리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반 공무원들의 지지를 얻기도 쉬울 거고요. 오히려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중도세력의 표를 여당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결과가 될지도 모릅니다.”

    “꽤나 설득력 있어.”

    최장철은 자신의 턱을 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자 강백현이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 번 주장했다.

    “의원님, 입법 활동에 공무원 노조의 간부 가입 제한.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것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차기 대통령 후보이신 최장철 의원님 밖에 없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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