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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7화 (117/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7화

홍보성 기사 이후 잠시 뜸했던 동기들의 채팅방에 열이 올랐다.

[김지혜] : 우와! 백현 오빠, 기사 떴어. 링크 공유할게.

『5급 공개채용 수석, 공직기강감사실 강백현 팀장, 구제역 방역활동도 제 일이죠.』

http://naver.me/Glv8Z31452

[오현수] : 오~ 역시 백현이 형. 대단하십니다.

강백현은 채팅방에 기사와 글이 올라오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메시지를 입력했다.

[강백현] : 난 별루 한 거 없어. 다 공보담당관이 만들어낸 이야기야.

[오현수] : ㅋㅋㅋㅋ. 형이나 되는 인물이니까 공보담당관도 그런 기사를 실어주죠. 우리는 국물도 없어요.

[조성환] : 형님들, 누님, 잘 살고 계시죠?

조성환의 등장에 강백현이 씩 웃었다.

[강백현] : 뭐냐. 너 군대 들어간다고 안 했어?

[조성환] : 지금 훈육장교님이 휴대폰 잠깐 열람 허락해줘서 켰어요. 내일부터 제식 평가 보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서 짜증나네요.

[오현수] : ㅋㅋㅋㅋ. 그거 병기본이잖아. 장교도 그런 거 하냐?

[조성환] : 병기본 5주 받고, 간부양성화 과정 추가로 받아요.

[강백현] : 고생 많다. 나중에 면회 한 번 갈게.

[조성환] : 면회 안 돼요. ㅠㅠ. 아, 전역하고 싶다. 여기 너무 강압적이네요.

[오현수] : 군대가 다 그렇지.ㅋㅋ

[강백현] : 아무튼 다들 잘 지내. 나 오늘부터 조금 바쁘거든.

[조성환] : 형님,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강백현] : 성환아, 고맙다.

* * *

강백현에게 새로운 업무가 배정되었다.

그건 바로 인사위원회 간사 역할.

지난 주, 구제역 발생지역으로 판명 난 부주시 축산허가에 관련한 건이다.

“수고스럽지만, 김태웅 주무관이 퇴근길에 부주시에 들러서 김여린 주무관에게 출석 통지서 좀 주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주시장은 어떻게 됩니까?”

출석통지서를 만들어 당사자에게 3일 전까지 전해주는 게 인사위원회의 첫 번째 절차.

“그거야 당정위에서 정하겠지. 일단은 공무원인 김여린 주무관 먼저 징계하고, 부주시장에 관련된 건은 윗선에서 정하지 않을까?”

백현의 말에 차우현이 말을 보탰다.

“그 분도 참 안 됐네요. 부주시장도 관련된 탓에 징계업무가 저희 도에 이관이 되었으니 말이죠”

원래는 부주시 내에서 자체징계하고 끝났어야 할 일.

하지만, 부주시장의 친척과 관련된 비리 건이라 도에 승격되었다. 결국 그 업무는 도청 감사실로 넘어왔고, 그 징계자료를 만드는 일이 지금 백현이 해야 하는 일.

강백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 업무를 맡는 게 마음에 안 드네요. 그들이 싼 똥을 제가 치우는 꼴이잖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팀장님, 부정부패를 본인 손으로 직접 처벌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지 않으실까요?”

“저도 일단 사람인지라 쓴 소리 하는 건 그리 탐탁치 않아서요.”

“그러셨나요?”

“네?”

“아닙니다. 3일 뒤에 보면 알겠지요.”

* * *

3일 뒤.

김여린이 씩씩거리며 충남도청을 찾았다.

오늘 인사위원회, 즉 김여린 주무관에 대한 징계심의가 이루어지는 회의실. 그 앞에 앉아 있는 김여린을 보고 강백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여린 씨, 오랜만이에요.”

“……”

눈을 부라리는 그녀의 얼굴을 본 백현은 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분명 그 업무 처리할 때 똑바로 처리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지금 나한테 할 말인가요? 난 그냥 시장님이 원하신다고 해서 허가해준 것뿐이에요. 최종 결재권자도 시장님이었으니까, 내 잘못 아니라고요.”

“아직도 멀었네요. 제가 이 말씀 드리는 이유는 다음부터는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라고 그러는 겁니다. 아무리 시장, 도지사, 대통령의 지시라도 그게 올바르지 못한 거라면 하지 않는 게 맞는 겁니다. 여린 씨.”

“진짜!”

“감정으로 대응하려고 하지 마시고 현실을 직시하세요. 전 당신이 무시하던 예전의 그 직장 동료가 아닙니다. 부정부패한 과장, 시장 밑에서 똥꼬나 빨던 예전의 그 강백현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린 씨, 아시겠어요?”

“닥쳐! 닥치라고!”

그때, 회의실로 또 한 명의 사내가 걸어왔다. 차우현 주무관이었다.

“팀장님! 위원분들 곧 다 도착하신답니다. 마실 차 좀 준비할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차 마시면서 대충대충 할 징계가 아닌 것 같아서요.”

“네? 아~ 넵. 들어가시죠. 그럼 바로 인사위원회 절차 시작하겠습니다. 김여린 주무관님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상황이 바뀌었다.

불과 1년 전, 강백현은 김여린이 만든 함정에 빠져 인사위원회의 징계대상자로 출석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김여린이 징계대상자로 출석했고, 강백현은 징계위원 중 하나로 참석한 것이다.

간사인 차우현 주무관이 징계절차의 시작을 알렸다.

“2016년도 제 1차 징계 요구 심의 의결 건이 상정된 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하여 징계위원회 위원으로서 공정한 자세로 심의 진행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징계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차우현의 말에 부지사가 의사봉을 3번 내려쳤다.

“본 징계위원회는 2015년 2월 24일부터 2016년 2월 2일까지 부주시청 허가과 허가담당 김여린 주무관의 청렴 위반, 뇌물 수수 행위 건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입니다.”

위원장인 부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사인 차우현에게 지시했다.

“그래요. 진행하세요.”

『부주시 허가과 허가담당 김여린 주무관은 김형복 씨의 축사신축 허가 신청이 시 조례상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시장 및 허가과장의 지시로 해당 허가를 내준 바 있습니다. 이에 개인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허가과장으로부터 200만원이 개인계좌로 입금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직무상 의무 위반은 물론 청렴 위반, 뇌물 수수 행위에 해당하며 해임은 물론 파면까지 가능한 사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돈까지 받았구나. 김여린. 도대체 넌 어디까지 썩은 거니?’

김여린은 강백현의 1년 후배였다.

부주시 도서관에서 공무원 준비를 할 때 같은 공시생으로서 몇 년 동안 얼굴을 마주친 사이. 밥도 자주 먹었다.

조그마한 동네. 부주시.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끼리는 이미 얼굴을 다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반가워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그런데 그녀는… 왜 이렇게까지 타락한 건지.

“징계대상자, 들어오세요!”

부지사의 말에 문이 열리고, 차우현이 바깥으로 나가 조심스럽게 김여린을 부른다.

“들어오시죠.”

이윽고 부지사가 고압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징계대상자 이름.”

“김여린입니다.”

“소속.”

“부주시청 허가과입니다.”

그 다음은 취조다.

“김여린 주무관은 2015년 6월 24일, 허가과장으로부터 자신의 계좌에 200만원을 송금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감찰과 경찰 합동 조사 간에 나온 사항이죠. 이 200만원을 왜 받았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네?”

“진술 거부하겠습니다. 전 변호인 통해서 제 입장을 말씀드릴 것이고, 이 건은 재판을 통해 변론을 드리겠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김여린은 강하게 나왔다.

공무원의 징계는 범죄 여부와는 별도의 성격이다.

이중 처벌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공무원이 비위를 저지르면 징계도 받고 법적 처벌도 받는다. 즉 법적 처벌과 징계는 별개의 사안.

그런데 그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나오니 징계위원장인 부지사로서는 황당한 일.

“알겠습니다. 피고인에게는 그럴 권리가 분명 있지요. 그럼 징계사안 중 뇌물수수 혐의는 별도로 하고 직무상 의무 위반 건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여린 주무관은 김형복 씨의 축사 허가 관련 건이 조례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부지사의 말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여린.

강백현은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을 포착했다.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강백현 위원, 말하세요.”

“위원장님, 김여린 주무관은 조례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 그 증거를 제출합니다.”

“증거요?”

“네. 녹음파일입니다. 전 통화할 때 항상 녹음을 해 둡니다. 3자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아니라 김여린 주무관과의 대화를 직접 녹음한 파일이니 불법으로 수집한 자료가 아닙니다.”

강백현의 증거자료라는 말에 김여린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여린 씨, 통화해봤는데, 김형복 씨 단단히 화나셨던데요.>

<네. 그래서 강 주무관님 번호 안내해드린 거예요.>

<저기, 업체한테는 뭐라고 말했어요?>

<업체요?>

<재형건축, 거기 조 실장 있잖아요.>

<그냥 다시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했는데요.>

<이보세요. 김여린 씨, 그렇게 하면 업체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어? 이거 될 것 같은데? 계속 밀어보면 허가 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아니, 제가 그것까지 왜 고려를 해야 되는데요?>

<후후, 미치겠다. 당신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됐으면 당연히 업무파악부터 해야 될 거 아니야? 3개월 동안 아무것도 파악 안하고, 지금 나한테 책임 떠넘기는 거야?>

<강 주무관님, 말 똑바로 하세요. 주무관님이 깽판 치고 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게 내 책임이에요?>

<여린 씨, 자기 실수는 솔직히 인정하자. 응? 내가 당신하고 있을 때, 당신한테 피해준 거 있어? 많이 도와줬잖아. 지금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 이게 내 잘못이야?>

<몰라요. 이 일은 강 주무관님이 책임져요. 과장님도 주무관님한테 전화해 보라고 하셨어요.>

<난 더 이상 안 해. 지금부터 다시는 이 업무로 전화하지 마.>

<강 주무관님!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

녹음파일의 등장에 김여린이 당황하면서도 허점을 찾았다.

“이 녹음 파일에서 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는 증거가 어디 있죠?”

그의 말에 위원인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 대화 내용에는 김여린 씨가 조례상 불가하다는 것을 인지한 장면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업무를 남에게 떠미는 장면만 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 문서가 증거에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강백현이 결정적 증거로 내민 문서. 이를 본 김여린이 강백현을 노려보았다.

“이 문서는 작년에 절 모함하고 징계하려던 징계위원회의 문서입니다. 당시 8급이었던 저는 직무태만 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무혐의 처리되었습니다. 저는 그 증거자료로 수기기록물 관리함 내에 있는 자료를 제시했고, 그 자료를 통해 혐의 없음을 통보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서를 접수한 사람이 누구죠? 기록물 관리함에 누가 접수했나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있죠. 징계위원회의 소명자료를 접수한 것은 놀랍게도 허가과 허가담당이었던 김여린 주무관이었습니다. 문서를 열람하며 제가 증거로 내놓은 수기기록물 첨부문서를 안 보셨나요? 해당 축사는 민가와 132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허가가 불가능한 지역이었습니다. 이 문서를 접수한 김여린 씨는 아직도 자신이 해당 내용을 인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실 건가요?”

김여린이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억울해. 시장님이 시킨 거란 말이에요. 내가 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왜 나만! 왜 나만 처벌하는데. 내가 왜 처벌 받아야 하는데.”

그녀가 억울했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백현은 자신의 주장을 되돌릴 생각이 없었다.

“그런 악어의 눈물로 처벌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칠 때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정상참작이 가능한 거죠. 김여린 씨는 생각이 너무 물렀습니다. 공무원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회피로 일관하는 공무원을 누가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강백현의 말에 차우현이 속으로 피식 하고 웃었다.

‘팀장님, 마음이 약하시다고요?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하는 사람이 누가 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튼 오늘도 속 시원한 사이다 한 모금 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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