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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6화 (11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6화

    작업반장을 찾은 백현은 보호복을 착용하며 말했다.

    “저도 편성해주세요. 일하다 가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팀장님이 직접 나오실 필요까진 없으셨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높으신 분이 이러니 감개무량하네요.”

    “높다니요~ 공무원끼리 높고 낮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일단 검문소랑 초소는 끝났고, 이게 조금 곤란한 일이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백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을 후회하고 말았다.

    그가 맡은 일은 매몰 작업.

    구제역이 발생한 축산농가의 가축들을 땅에 파묻는 작업이다.

    물론 땅을 파는 일과 흙을 운반하는 일은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한다.

    “벤토나이트랑 흙이 깔리면 비닐을 위에다 깔아줘야 돼요. 이 작업, 같은 팀원들이랑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비닐만 깔면 되는 거죠?”

    “아뇨. 전반적으로 매몰 작업 끝까지 다 해주셔야 됩니다. 나중에 매몰 구간으로 동물들 몰아넣는 것까지 하는 게 이 일입니다. 아무튼 너무 감사해요. 이거 다들 기피하는 작업이라 지원자가 많이 없었는데, 뭐든 하신다니까 믿고 맡기게 되네요. 괜찮으시죠?”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주변의 공무원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매몰 작업 지원해주실 분 더 없으신가요? 5명 정도 더 필요한데! 거기 두 분, 매몰 작업 지원 좀 해주세요. 한 번 도와주세요! 네?”

    사람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죽인다는 게 결코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문제는 같은 팀원들까지 말려들었다는 것.

    차우현이 처음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저희가 매몰 작업 하는 겁니까?”

    김태웅 또한 엄살을 피우며 중얼거렸다.

    “이건 좀 아니죠. 이거는 좀 아닌데?”

    강백현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두 분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 혼자 하죠.”

    “삐지신 건 아니시죠?”

    “아니, 내가 알아서 와서 알아서 하겠다는 일에 왜 삐집니까? 두 분은 초소나 검문소 지키세요. 그게 맞죠.”

    “삐지셨죠?”

    “아니라니까요.”

    “삐졌는데요?”

    “아닙니다.”

    “삐졌네.”

    “아닙니다만?”

    차우현이 강백현을 놀려먹다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팀장님 삐지면 안 되지.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아~ 물론 태웅이도 동참시키겠습니다. 작업반장님, 저희 2명 지원자 추가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동물을 죽이는 게 복 받는 일이라니.

    전반적인 프로세스는 이동차단부터였다.

    구제역과의 전쟁.

    방역 담당 공무원들이 보호복을 입은 채로 수도꼭지를 사용해 차량의 물탱크에 물을 담고 그 안에 소독약을 타기 시작했다.

    “팀장님! 방역차단 시작하겠습니다.”

    “네. 꼼꼼히 해주세요.”

    소독약을 담은 차량이 무려 10대.

    그 차량에 탄 방역공무원들이 오늘 긴급 소집된 타부서 공무원들에게 소리쳤다.

    “지암 검문소 배정되신 분, 차량에 타세요!”

    “네. 접니다.”

    “검문소로 바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마스크 착용하시고요.”

    “네.”

    방역공무원들이 방역차량을 움직여 각 포인트에 공무원들을 내려주기 시작한다.

    굉장히 숙련된 인력들. 평생 방역활동만 하는 그들의 중요성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작업반장은 대책본부의 지령을 받으며 종합상황반, 이동도로초소반, 사후처리반, 살처분반 등으로 임무를 구분했다.

    그리고 수시로 무선으로 종합상황반과 연락을 꾀하며 현장의 공무원들을 각 지점으로 이동시켰다.

    백현과 차우현, 김태웅도 마찬가지였다.

    살처분반에 배정된 셋은 곧장 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했다.

    배정된 현장에는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통제하는 또 다른 작업반장이 있었다.

    “이리 와요!”

    “네.”

    그는 자연스럽게 백현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거기 아저씨들! 비닐, 이거 매몰지에 좀 깔아주세요. 넓게 까세요.”

    “어우~ 무겁네요.”

    “남자 셋이서 충분히 합니다. 한 분이 가운데 들어가서 들으시고, 나머지 두 분이 비닐 쭉 당기시면서 매몰지 바닥에 넓게 까시면 됩니다.”

    3명이 나란히 비닐을 잡았다.

    보호복에 파란색 고무장화를 신은 3명. 10m는 족히 넘는 엄청난 길이의 비닐을 길게 늘여 잡은 후, 작업자들이 파놓은 매몰지 위에 깔아두는 게 그들이 할 일.

    “아저씨, 이거 비닐은 왜 까는 거예요?”

    “침출수 때문에 그러죠. 죽은 시체에서 박테리아나 병원균 같은 거 지하수로 퍼지지 말라고. 소나 돼지들 죽으면 부패하면서 내부에 있던 병원균들 다 밖으로 나오잖아요. 그게 지하수에 흘러가면 안 되거든요.”

    “아…….”

    작업은 체계적이었다.

    빛을 반사하는 형광조끼와 반사복이 지급되었고, 현장에 사람이나 차량이 출입할 수 없도록 안전 견광봉을 들고 통제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 정도면 됐나요?”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올라오세요!”

    매몰지 바닥에 깔린 비닐, 중장비 작업자들이 그 비닐 위에 살포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 돼지들이 비닐을 못 찢어요. 얘네 엄청 울을 텐데. 하아~ 진짜. 못할 짓이라니까. 비닐 다 깔았으면 나 따라와요.”

    현장의 작업반장은 매몰지 작업이 대략 끝나자 백현 일행을 축사로 데리고 왔다.

    축사에는 이미 사람 반, 돼지 반.

    사람들이 각 축사 구역에서 돼지들을 쫓아내 매몰지가 있는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다.

    『꾸웩! 꾸웨웨웩!』

    갑자기 주변 환경이 확 변해버린 돼지들은,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축사 주인만 보고 살았을 텐데, 10명이 넘는 보안경과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축사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강백현은 가슴 한 켠이 쓰라렸다.

    분명 가축인데.

    구제역으로 죽지 않았더라도 식단에 올라가는 재료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파올까?

    돼지들이 매몰지 앞에서 머뭇거리며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백현을 비롯한 보호복을 입은 공무원들 10여명은 그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돼지들을 계속해서 밀어낸다.

    푸른 색 천막인 일명 갑바천을 이용해 돼지들을 바깥으로 몰아가는 것. 지능이 낮은 돼지들은 조금조금씩 동료들을 밀어냈고, 결국 매몰구역 끝에 있는 돼지들이 한 마리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현장을 통제하는 작업반장이 소리 질렀다.

    “거기 포크레인 아저씨! 돼지들 밀어넣어요!”

    “네?”

    “밀어넣으시라고. 집에 안 갈 거예요?”

    다소 부도덕한 장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돼지를 산채로 매몰지에 밀어넣는 작업자들과 그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

    매몰지에 떨어진 돼지들은 기어코 다시 일어나 살아남고자 탈출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높이 3m는 돼지들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장벽.

    돼지들이 전부 매몰지에 들어가자 작업반장이 한숨을 내쉬며 지시했다.

    “이산화탄소 주입하세요!”

    이산화탄소는 공기보다 무겁다. 그래서 매몰지에 주입하면 바닥에 쫙 깔리게 되고, 돼지들은 영문을 모른 체 의식을 잃는 것이다.

    편안한 죽음.

    적어도 산채로 매몰되는 불상사는 없었다.

    * * *

    작업이 끝나자 작업반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많이 힘드셨죠?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저희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죠. 국민에게 봉사하려고 공무원 한 거잖습니까.”

    “그렇습니까? 아,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더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반장님도 일 다 끝나신 거죠?”

    “아, 이거 관리 한 3년 해야 돼요. 침출수 나오는지, 유해가스 농도는 어떻게 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해야 되거든요. 이거 진짜 못할 짓입니다. 앞으로 3년은 죽었다 생각해야죠.”

    당장의 조치보다 사후조치가 더 어려운 작업.

    한편 구제역은 전염성이 강해 그 무엇보다도 초기조치가 중요하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었다.

    방역담당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공무원들까지 합심하여 문제에 대응, 이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며칠 후, 강백현은 이번 작업을 계기로 구제역에 대해 개인적인 공부를 마쳤고 따로 차우현과 별도의 시간을 가졌다.

    밤 늦은 시간, 횟집에서 술을 마시는 두 사람.

    강백현이 차우현에게 물었다.

    “차우현 주무관님, 소식 들으셨어요? 구제역 최초 전파한 곳이 부주시라네요. 그 농장주가 글쎄, 베트남을 갔다왔대요~ 아, 그 할아버지 제가 이름도 기억하거든요? 저한테 다짜고짜 욕을 엄청 퍼부으시더니, 결국 큰일 한 번 터트리셨잖아요. 성격만 보면 진짜 사람 웬만큼 안다니까요.”

    “정말 아이러니하네요. 팀장님이 부주시 8급 공무원일 때 허가 안 내줬다고 징계하려던 그 축사잖아요. 전 부주시장 친척.”

    차우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계셨군요. 제가 그 축사를 허가 내줬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공무원 파면 되셨겠죠. 그리고 앞으로 5년간은 공무원 시험도 응시 못할 거고요.”

    “네. 김여린 주무관이라고, 저보다 임용이 1년 늦은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위기라네요. 마음이 씁쓸합니다.”

    강백현의 말에 차우현이 방긋 웃었다.

    “원래 자기 일을 똑바로 못하면 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공무원 중에 병신이 한 둘입니까? 처벌 받을 사람은 처벌 받아야죠. 단!”

    “단?”

    “팀장님 같은 분은 높이 올라가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습기간 몇 개월 남으셨죠?”

    “이제 2월이니까, 4개월 남았네요.”

    “4개월이 지나고 감사원으로 올라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힘 있는 자리, 권력 있는 자리로 올라가서 대한민국을 바꾸셔야죠.”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대한민국은 지금도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느릴 뿐이죠.”

    차우현이 미래의 강백현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했다.

    “그 속도를 느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 사람만도 못한 놈들을 골라내서 배제시키는 게 우리들의 일이고요. 안 그렇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 말은 왜 꺼내신 겁니까, 그리고 갑자기 둘이 술 먹자는 이야기는 뭐고요.”

    “사실 팀장님, 여기 오늘자에 기사가 났습니다.”

    “네?”

    “팀장님 작업하시는 모습, 제가 살짝 사진 찍어서 공보담당관에게 보내줬습니다. 간부급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일하는 멋진 모습이니까 홍보차원에서 기사 좀 내보내자고요.”

    “네?!!!”

    해당 기사는 제목부터 홍보성 기사라는 게 너무나 티가 날 정도였다.

    『5급 공개채용 수석, 공직기강감사실 강백현 팀장, 구제역 방역활동도 제 일이죠.』

    “제목부터 이게 뭡니까? 다 같이 한 일이잖아요. 이거 기사 나온 거예요?”

    “네. 오늘 공보담당관이 주요언론사 15곳에 일괄적으로 뿌릴 겁니다. 그리고 다 같이 한 일은 아니죠? 강백현 팀장님은 원래 비상소집 대상이 아니셨지 않습니까.”

    “주무관님… 그래도 이건….”

    “실장님 지시입니다. 실장님께 살짝 언질 드렸더니, 공보담당관 통해서 미담사례로 넣어보라고 하셨거든요. 물론 국민들에게는 홍보성 기사일 수 있지만, 실제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신 건 맞으니까요.”

    부하직원의 억지에 강백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아닌데.”

    “이건 제 뜻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그렇게 고민합니까? 팀장님에게 나쁜 일도 아닌데요. 술 한 잔 하시죠!”

    “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조금 있으면 기사 나갈 텐데. 난 못 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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