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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4화 (114/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4화

백현이 먹을 것을 가져오자 노인은 허겁지겁 먹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좀 사람다운 음식 먹네.”

“많이 드세요.”

편의점 즉석 도시락, 혹시 부족할까 싶어 3개나 사왔는데 그걸 단숨에 흡입한 노인의 모습을 한 주진한.

“백현아, 이 아저씨가 보통이 아니야. 나 내쫒으려고 일부러 산짐승 먹고, 열매 따 먹고,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곧바로 목 매달려고 하고.”

“드라큘라도 아니고 산짐승을 왜 먹어요?”

“백현아, 내가 싫어하니까 그렇지. 너 말에 어폐가 있다?”

주진한의 말에 강백현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아니, 뭐, 그럴 수 있죠. 지금 선배 상태도 정상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정상은 아니지. 올해 몇 년이지?”

“2016년이요.”

“하아, 그렇구나. 아무튼 나는 네가 말하는 원귀하고는 좀 다르고, 이 아저씨 죽으려고 하는 거 막으려는 거야.”

“네. 그러시겠죠.”

“그 말투는 뭔데?”

“저승사자 여럿 흡수하셨다면서요.”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 너 무당 같진 않아 보이는데?”

“식사 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잠시 성주단지 좀 가져올게요.”

강백현은 그 말을 끝으로 성주단지를 가지고 주진한에게 다시 돌아왔다.

성주단지 뚜껑을 열자 두려움에 벌벌 떠는 최용규가 백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끝났어? 어떻게 됐어?]

“나와 보세요.”

[다 끝난 거지?]

“네.”

최용규가 조심스럽게 성주단지를 빠져나오다 주진한이 빙의한 노인을 보고 기겁해서 도로 숨어들었다.

[이 미친놈아, 빨리 뚜껑 닫아. 바로 옆에 있잖아.]

“선배, 괜찮아요. 겁먹지 말고 나와요. 진한 선배에요.”

[진한 선배?]

“네. 주진한, 선배님 1년 후배, 주진한. 같은 기숙사였잖아요.”

[말도 안 돼.]

최용규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한이 맞아? 나 보여?]

최용규의 물음에 주진한이 의아한 시선을 보이며 말했다.

“백현아, 그 잡귀는 왜 데려 왔어?”

“네. 진한 선배, 잡귀가 아니고요.”

[뭐? 잡귀?]

“넌 조용히 해라. 금방 사라지는 수가 있다.”

[와, 미치겠네. 백현아, 쟤 진한이 맞지? 와, 하늘같은 선배한테 잡귀?]

최용규의 흥분한 태도에 강백현이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진한 선배, 이 분은 최용규 선배고요. 서울대 들어가신 1년 선배, 아시죠?”

“아, 그런데 웬 잡귀냐?”

[잡귀 아니라니까!]

최용규의 항의에 주진한이 찌릿 하고 노려보았다.

[아니, 잡귀는 아니고요. 진한님?]

“아무튼 최용규가 선배든 아니든 그걸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이 잡귀는 왜 불렀는데?”

강백현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한 선배, 어르신한테 저승사자 찾아왔었잖아요.”

“그래. 왔었지. 집요하더라.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난리를 쳐서 내가 가둬놨지. 물론 이 아저씨가 죽는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 나도 내가 직접 목숨 던졌지만 죽고 나니 후회가 막심하더라. 이 아저씨도 같은 결정을 하게 놔둘 순 없겠더라구.”

예상했던 전후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현은 황당함을 금치 못하며 최용규에게 따지듯 물었다.

“용규 선배, 저승사자들은 진한 선배랑 대화할 시도를 안 해봤어요?”

[아니, 원귀니까 일단 잡으려고만 하지. 대화는 안 하지.]

“어휴~ 답답해. 저승사자들 답답해 미치겠네. 대화만 좀 하려 했어도 이렇게 서로 못 볼 꼴 되진 않았잖아요. 진한 선배, 저승사자는 그 어르신을 데려가려고 한 게 아니라, 선배를 잡으러 왔던 거예요.”

백현의 설명에 주진한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진짜야? 나 때문에 온 거였어?”

“네. 선배도 크게 원귀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저승사자분들 어디에 흡수하셨나 알려주실 수 있어요?”

“아, 문제는 없는데, 네 말이 맞는 거지?”

“네. 제 눈에는 저승사자들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럴 거예요.”

“그래. 풀어주마.”

주진한이 노인의 몸 밖으로 호리병을 들고 빠져나와 최용규에게 건네자, 노인은 의식을 되찾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으으으… 나 죽을 거야. 썩 꺼지지 못할까. 나 죽게 내버려둬! 죽게 내버려둬!”

주진한이 한숨을 내쉬며 노인의 몸으로 되돌아가자 노인은 다시 잠잠해졌다.

“진한 선배, 호리병 열어도 되죠?”

“아, 응. 그런데 날 데려가는 건 좋은데 이 아저씨는 어떻게 하냐?”

“어르신은 제가 설득해야죠. 일단 저승사자부터 불러올게요. 용규 선배, 호리병 진한 선배한테 받은 거 맞죠? 그거 사용 부탁드려요.”

[응.]

호리병에서 저승사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백현에게는 성주신인 최용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죽은 자인 최용규와 주진한에게는 먼지를 뒤집어쓴 저승사자들이 똑똑히 보였다.

[옛끼! 이놈아, 네가 멍청해서 잡힌 거잖아!]

[이놈이! 어디 안전이라고 말을 함부로 해? 넌 그게 500년 조상인 나한테 할 말이냐?]

[얼씨구~ 오래 살았다고 또 잘난 척 하는데, 이 노인네야! 너네들이 그러니까 원귀 하나 못 잡고 잡히는 거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어?! 너 죽고 나 죽자고!]

저승사자들이 싸우는 모습에 최용규가 한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부님, 지금 싸울 때가 아닌데요. 호리병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진짜네. 어? 오 씨발!]

[야! 야야야야! 그놈이 앞에 있잖아. 호리병 잡아, 호리병!]

저승사자 셋이 싸우다 말고 주진한을 발견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주진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리병 써도 저 못 잡아가니까, 세 분 다 가만히 좀 계셔요.”

[뭐라?! 원귀 놈이 우리랑 말을 섞으려고 해?]

“한심해. 노인네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백현아.”

“네. 선배님.”

“나 잡혀가면 누가 이 분 챙겨주냐?”

“산 사람인 제가 챙겨야죠. 저 공무원이잖아요.”

“그래? 뭔가 아쉽네. 그런데 벌써 3년이나 지나버렸으니 이대로 갈 순 없고.”

“연락이라도 해보시지 그러셨어요. 이 어르신도 가족 분들 있으실 거 아니에요.”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어야지. 시도 때도 없이 죽으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나가냐?”

“일단 어르신 좀 불러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설득할게요.”

“그럴래?”

저승사자와 최용규가 멍하니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백현은 잠시 제 정신을 차린 어르신을 설득해보고자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제 말 들리세요?”

“나 죽을 거여. 말 걸지 마!”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

“나 같은 놈 누가 좋아한다고.”

어르신의 말에 이어 주진한으로 보이는 인격이 튀어나왔다.

“이 분, 강원랜드에서 재산 다 탕진하고 집까지 보증 잡혀서 그거 못 견디고 움막에 살다가 자살하려고 한 거야. 내가 그걸 막은 거고.”

“그렇군요. 알았어요. 다시 불러주세요.”

다시 노인으로 인격이 바뀌자, 그가 서러운 듯 울음을 터트렸다.

“으으으으. 흐흐흐흐읔.”

“아니, 도박을 왜 하셨어요?”

“흐흐흐흑.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지. 나 같은 놈은 얼른 죽어야 돼.”

“죽일 놈 같은 사람은 없어요. 생명은 소중하죠. 어르신, 일단 씻어야겠네요. 제가 복지센터로 모시고 갈게요.”

“안 돼. 나 죽어야 돼.”

“가족은 보고 결정하세요. 어르신은 모르겠지만 지금 저승사자 분들도 여기 지켜보고 있거든요? 자살하면 천국 못 가는 거 알죠? 지옥 가고 싶으세요?”

“…….”

백현이 자신이 아는 사회복지사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성이 형. 잘 지내시죠? 출동하실 시간입니다.”

- 오랜만에 전화해서 무슨 출동이야? 지금 독거노인 목욕지원 왔어. 바쁘지 않으면 끊자.

“와주셔야 돼요. 여기 3년 동안 은거생활 하신 어르신 있어요. 끝나고 바로 좀 와주세요.”

- 아아아아! 알았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그거냐?

“헤헷. 와주세요! 주소 보내드립니다.”

사건은 대강 일단락되기 시작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 독거노인 찾아가기 사업.

부주시랑 세종시는 서로 인접해 있기에 서로 협조하는 사업이 많았고 때문에 지원을 받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박재성은 오랜만에 연락을 준 백현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악취에 치를 떨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어르신, 얼마나 안 씻으신 거예요?”

“3년 정도 됐지?”

“아이쿠! 일단 여기 휴대용 욕조에 들어오세요. 씻겨드릴게요.”

“나 죽을 거여. 어? 이놈들아. 죽는다니까.”

“죽기 전에 때깔이라도 좋아야죠. 이렇게 더러운 몸으로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 백현아, 거기 보습제 좀 가져다줘.”

“네.”

“하아, 일단 이 분은 내가 독거노인 지원센터로 모셔갈게. 너도 같이 갈 수 있지?”

“네. 가야죠. 아, 진한 선배는 어르신 몸에서 이제 나오셔도 돼요.”

“무슨 소리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잣말 좀 했어요.”

백현은 보습제를 가져다 준 후 잠시 휴대용 욕조에서 벗어나 최용규에게 물었다.

“용규 선배, 진한 선배 뭐하고 있어요?”

[스승님하고 이야기 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요?”

[자살한 것 때문에 지옥가야 된다고. 그런데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군요.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예요? 진한 선배가 나쁜 사람도 아니잖아요.”

[목숨을 함부로 여긴 건 방법이 없지. 안타깝게도 그런 게 없지.]

그때, 최용규의 스승인 이성복이 주진한에게 제안했다.

[너도 저승사자 수련생 한 번 해 볼텨?]

[그걸 내가 왜 해? 그냥 지옥이나 보내줘.]

[인마! 지옥은 너 같은 사람 갈 데가 아니야. 너같이 영력이 높은 잡귀들은 저승사자가 돼서 악귀들 물리치러 다녀야 한다고. 알았냐?]

[아~ 말끝마다 반말 짜증나네. 그냥 지옥 간다니까.]

[이 놈이! 안 돼! 너 같은 놈은 지옥가면 큰일 난다. 무조건 저승사자 해야 되니까 나 따라 와!]

[잠깐만, 잡귀야.]

주진한이 최용규를 불렀다.

[……]

[백현이한테 고맙다고 전해줘라.]

[……]

[인마! 삐졌냐? 너 나랑 친하지도 않았잖아. 무슨 선배야. 다 죽은 마당에, 그리고 너 약하잖아.]

[약하긴 한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호리병 들어갈래?]

[……]

최용규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백현에게 말했다.

[주진한 님께서 저승사자 수련생으로 가기로 하셨단다. 네가 못 보니 내가 대신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도 하셨고.]

“아… 잘 됐네요. 저승사자님!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고생 많으셨고요. 이 어르신은 저희 공무원들이 책임지고 마음 추스를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당분간 찾아오지 말아주세요.”

백현의 말에 저승사자들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한테 말 거는 놈이 있네.]

[당돌해. 웃긴 놈일세!]

최용규는 고개를 저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스승님하고 잠깐 위에 좀 같이 다녀올게. 일단 경과보고는 해야 되니까.]

“네. 다녀오세요.”

그리고 혼자 어르신을 씻기고 있던 박재성이 백현에게 물었다.

“어디다 전화를 그렇게 해? 백현아, 복지센터 전화하는 거야?”

“아, 바로 할게요. 돌봄사업으로 임시거처 바로 배정 가능하죠?”

“응. 24시간 가능하니까 바로 연락해 봐. 거기 센터장 전화번호 알지?”

“저도 부주시 공무원인데 알죠. 잠시만요. 어르신! 집 주소가 부주시에요? 아니면 세종시에요?”

“부주시지.”

“어르신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윤석동. 윤.석.동.”

“윤석동 선생님, 바로 접수해드릴게요.”

“……”

백현의 배려있는 행동에 윤석동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지만,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탓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윤석동은 아직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고 흐느끼며 생각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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